'길위의 역사학' 서울에서 제주까지 릴레이보도 다섯번째 구간 평택역에서 천안까지
오늘 기점은 집에서 가까운 관계로 발걸음도 가볍게 평택역 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역사에선 매월당 김시습의 칠언절구가 반기는군요.
<매화를 그리며(畵梅花)>
김시습
香魂玉骨先春姸, 향기로운 혼, 옥 같은 기골은 봄보다 고운데
獨占孤山煙雨邊. 홀로 안개끼고 비내리는 외로운 산 구석을 차지한다.
疏影暗香雖不動,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은 비록 움직이지 않지만
淸姝風韻正依然. 맑은 여인 같은 자태와 운치는 바로 의연하리라.
알다시피 평택은 요즘 물류의 전진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택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쌍차, 미국 범죄 문제 등등.
본래 평택은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천안 땅이었습니다. 연산군 시절에 경기도 복속시켰다가 다시 충청도 이전했지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충청도편 온양 다음에 평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도반은 15명입니다. 날씨가 쌀쌀합니다만 힘차게 1번국도를 타고 내려갑니다
.
길가 양편엔 너른 평야가 이어지고 오른쪽 철길엔 기차, 전철이 기적 소리도 내지 않고 바삐 오르내립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석물들.
이제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 지점이 다가옵니다. 한 십리길 걸었나요? 이 다리를 건너면 성환입니다.
이곳이 안성천입니다. 이 물줄길가 흘러흘러 아산만으로 빠집니다. 예전에는 아산만에서 이곳으로 배들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안성천이라 부르지만 옛 명칭은 한내(大川), 한천(漢川), 소사하(素沙河)이랍니다. 이 일대에서 1894년 청일전쟁이 벌어졌죠. 청군과 일군이 1894년 7월부터 이곳 평택시 서부와 남부, 안성의 서남부 일원 소사들(素沙坪)에서 전투를 시작하여 이듬해까지 벌어졌습니다. 슬픈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만 하천은 말없이 흘러갑니다.
이 다리의 산증인인 듯한 버드나무는 그러거나말거나 물이 오를대로 올라있습니다.
이제 성환읍으로 접어듭니다. 역시 너른 벌판아 펼쳐집니다. 성환읍 대홍리, 안궁리, 양령리, 신가리, 와룡리 일대의 평택평야 남부, 성환의 북부 지역을 소사평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소사들, 평택들, 성환들 등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안궁5리 문화촌 마을입니다. 텃밭을 일구는 촌부의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안궁리에서 천안삼거리까지는 23킬로
가다보니 양령리 향나무 표지판이 나옵니다.
이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427호라고 한다. 향나무는 신라 시대부터 귀족 사회의 상징적인 나무로 전해져, 부정을 씻어주는 신기한 나무로 여겨 궁궐, 사철, 사대부의 정원, 동네 우물가에 심어 왔다. 수령이 8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곳은 다음 기회에...
신가리를 지나고.
이제는 대홍리로 접어듭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이민 온 돌하르방
천안 지역의 유일한 국보7호 봉선홍경사 갈기비. 고려 8대왕 현종의 명으로 이곳에 홍경원을 세웠다. 현종은 고려 실록 편찬과 팔만대장경 조판을 실행한 임금이기도 하다. 이곳은 사람 왕래가 드물어 도적이 자주 출몰하여 형긍이라는 스님에게 명하여 홍경사를 창건하게 하고 숙박 시설의 일종인 광연통화원을 지었다. 비문은 '해동공자'라 불리는 최충이 지었고 글씨는 백현례가 썼다. 성환이라는 지명이 최초로 보이는 기록이 바로 이곳에 쓰인 <봉선홍경사사적갈비>다.
역대 문인들이 이곳에 유숙하면서 남긴 시가 전한다.
<홍경원>
목은 이색(1328-1396)
大野微茫如掌平, 큰 벌판 아득하여 손바닥처럼 평쳥한데
群山四面遙攢靑. 뭇 산이 사방에 멀ㄹ 솟아 푸르다.
中途碧瓦照大道, 중도에 푸른 기와 대로를 비추니
豐碑突立高亭亭. 공덕 새긴 비석 우뚝 솟아 있다.
啼禽迎風自上下, 새는 울며 바람 따라 오르내리는데
近馬又見飛蜻蜓. 말 가까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보는구나.
平生遠遊眼界闊, 평생 널리 유람하여 안계가 넓고
雲夢胸中甚軒豁. 운몽택 가슴 속이 시원히 트였다.
適從鶴野飛征驂, 마침 요동벌에서 말을 달리다가
東山小魯師上達. 동산서 노나라 작게 여긴 상달을 배웠다.
歸去來兮有餘地, 고향에 돌아가면 살만한 땅이 있으니
携被何曾語剌剌. 이불을 가지고 가며 어찌 여러 말 하랴!
飛雲忽來雨滴微, 갑자기 구름 일어 가는 빗방울 떨어지는데
平澤一點明斜暉, 평택에는 석양빛 한 점 선명하다.
我馬正馳王字城, 내 말이 한창 왕자성을 달리노니
淸風習習吹征衣. 맑은 바람이 나그네 옷에 솔솔 불라온다.
興來吟哦強排比, 흥 일어 시 읊조려 억지로 배율에 맞추니
不愁異日遭人譏. 다른 날 남의 조롱 들을까 근심하지 않노라.
이곳에서 여러 도반이 준비해 온 간식을 먹고 영농법인 농심회 배 직판장을 끼고 성환천으로 길을 바꾼다.
장남감처럼 아기자기한 누리호 열차가 성환천을 지난다.
성환의 특산물은 배다. 그전에는 나주배만큼 명성을 떨쳤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환천도 나름 정취가 있다. 쓰레기만 없으면. 묵은 갈대 사이로 새들과 강태공들이 한가롭게 낚시한다.
오죽했으면.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
드디어 성환역을 지나다. 조선시대 때 성환역은 찰방역이었다. 성환도의 11개 역. 즉 신은(천안), 김제(천안), 광정(공주), 일신(공주), 경천(공주), 평산(연산), 원평(공주), 유구(공주), 금사(연기), 장명(청주), 연춘(목천)을 관할하던 역이었다.
이제 즐거운 점심 때가 되었다. 이곳 매주리에 식당 몇 곳이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하여 임진강 한우마을로 들어가다.
설렁탕(9천원)과 반주로 요기하고 남은 길을 걷기 시작하다.
이곳은 직산읍 수헐리다. 직산 수헐리에 수헐원(愁歇院)이 있었다. 수헐리를 현지 주민들은 '시름새'라고 부른다. '금심을 털어놓고 잠시 다리쉼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리라. 서쪽으로 성거산이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수헐원에 행차했을 때 이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어리고 신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낸 후 聖居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밖에도 통수원(通水院, 성환역 근처), 말원(末院, 고을 남쪽 8리)이 있었단다. 각 지역의 지명에 원골, 원터, 원말 등으로 불리는 지명은 모두 원을 두었던 지명에서 유래한다.
수헐교 옆에 공덕비가 초라하게 서있다.
'김공봉서송덕기념비
수헐교량준공'
라고 적혀 있는데 김봉서가 누군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기존의 다리는 허물고 철제 교량으로 대체하면서 이 공덕비만 남았다.
뒤에 쳐진 뼁끼와 당 선생
두 빈의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네요. 무슨 얘기를 속삭일까요?
논갈이에 나선 두 농부도 운전을 멈추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오늘 일 서둘러 마치고 곡주 한 잔하자네요.
이제 직산역을 통과합니다.
직산역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 한대가 서더니 창문을 내립니다.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그 친구 이름이 김성환, 내 이름은 조성환. 성환들에서 김성환과 조성환이 만난 겁니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죠. 주말에 농장일을 하고 밥 먹으러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앞에 가는 차가 친구 차입니다.
친구와 헤어지고 뒤따르니 선두는 다시 구이향에서 쉬고 있군요.
방금 만났던 고딩 친구 모친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이제 거의 다와갑니다.
업성동 삼거리
천일고등학교 앞. 천안상고에서 출발하여 일반고로 전환했다가 다시 천안상고로 바꾼답니다.
신설된 신당고등학교
공주대 천안공대
동서대로를 건너는 도반들
천안천
이곳이 방죽안오거리, 속칭 역말오거리입니다.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는 천안역으로, 일부는 고속터미널로, 시외터미널로.
다음 천안역에서 만나길 기약하면서.
오늘 공식 모임을 마치고 청주에서 후배가 넘어온다고 하여 태조산 기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시 걷는 게 아니구요, 바로 앞에 있는 '태사모'라는 주막집에 들렀습니다.
돼지껍대기, 두부김치 안주에 막걸리 네 주전자를 비웠습니다. 주모와 함께.
날씨가 쌀쌀하고 다리는 무거웠지만 나름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참 좋은 글입니다. 같은 길을 걷고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민산님의 고향 천안이라서 더 뜻 깊은 기행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모두 당 선생님이 이끌어주신 덕분이지요. 전공을 향토사로 바꾸려고 합니다.
좋으신 생각!!!
재재창입니다!!! & ♬♬♬
봄을 시샘하듯 다시 영화의 날씨
마주 보고 있는 의자가 우리의 일상이 아닐까요. 다 아는듯 하지만 알수 없는것
버드나무의 물 오름이 다시 다가 오네요 민산님의 감각가 촉감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시고 수행 열심이 하세요.
길위에역사학이 눈앞에 쫙 펼쳐져있습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안성교의 메서운 바람이 이번 도보에도 엄청 불었나 봅니다.
호문님이 충청도 들어서며 소사벌 얘기를 하셨는데, 그 말씀을 민산님을 통해 다시 듣습니다. 그때도 소사벌 바람이 매서웠지요^^*
걷다... 그냥 걷다...
생각하며 걷다... 알고 걷다...
완전 새로운 길로 내게 다가오는 군요.
그길을 걸었구나.... ^^
이제 걷기의 품격이 달라지는 건가요~~
앞으로의 발검음도 무지 기대됩니다.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민산님, 좋은 글 늘 흥미 유발자이십니다..우리..제주도에 갈 즈음에는 모두 많이 유식해져 있을듯 합니다. 덕분에요..ㅎ 감사합니다.
아주 세밀하게 가닽은 눈길이 색달랐네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잘 봤습니다. 멋진 걸음들....... 부럽고요.
안목이 다르다는게 이런거군요^^
걸어온 길을 다시 걷는 기분입니다. 사진 찍으시라 걸으시라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