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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계절 ◀▽ 스크랩 서설(瑞雪)이 내린 수로왕릉[首露王陵]을 찾아서
별바람 추천 0 조회 23 11.02.18 10: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촬영일자 : 2011년 2월 14일

   촬영장소 : 김해 수로왕릉

   사진사 : 촌장셈 (양촌재/김진수) 

 

김해 수로왕릉[首露王陵]   @2011  사진사 : 촌장셈 (陽村齋/김진수)

 

[首露王陵]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금관가야의 시조의 릉이다.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이라고 부른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무덤의 높이는 5m의 원형 봉토무덤인데, 주위 18,000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되어 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

신도비각·홍살문·숭화문 등의 건물들과 신도비·문무인석·마양호석·공적비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고려 문종대까지는 비교적 능의 보존상태가 좋았으나, 조선 초기에는 많이 황폐했던 듯하다.

『세종실록』을 보면,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에 대해 무덤을 중심으로

사방 30보에 보호구역을 표시하기 위한 돌을 세우고,

다시 세종 28년(1446)에는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세워 보호구역을 넓힌 것으로 나타난다.

무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선조 13년(1580) 수로왕의 후손인

허수가 수로왕비릉과 더불어 크게 정비작업을 마친 후이다.

 

사적 제73호. 원형봉토분으로서 봉분의 높이는 약 5m에 이른다.

이 능은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소재지와 위치가 부합되고 있어서

수로왕릉으로서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이 왕릉은 신라말의 이 지역 호족인 충지(忠至), 고려시대 양전사인 조문선(趙文善)과 관련한

기적(奇蹟)을 보였던 바 영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580년(선조 13)에 경상도관찰사였던 허엽이 수축하여 상석·석단·능묘 등을 갖추었고,

1647년(인조 25)에는 능비를 세웠는데 '가락국 수로왕릉'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른새벽 눈을 뜨니 온 천지가 폭설로 인하여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김해에도 예외없이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국적으로 창궐한 구제역병과

바닥을 치는 국내경제가 주름살을 펴라고 내리는 서설(瑞雪)같다고 느껴진다

 

수로왕릉으로 가는 길에 수릉원에 들르니 부지런한 사람들은

추억만들기에 바쁘다.

 

 

 

 

 

 

 

수릉원(首陵園)은 수로왕과 허왕후가 함께 거닐었던 정원과 같은 이미지로

수로왕릉과 가야왕들의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을 이어주는 단아한 숲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수릉원은 구 공설운동장부지로 인해 가야시대의 중요 문화재인 수로왕릉과

가야왕들의 능역인 대성동 고분군, 봉황동유적의 환경을 단절시키고 있어

그 자리에 야트막한 능선으로 조성하여 재래수종과 소나무 등을 심고 유적 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면서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을 테마로 한 생태공원으로 39,600㎡의 규모로 조성하였다.


동쪽 마운딩에 설치한 산책로는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을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구실잣밥나무와 가시나무, 상수리나무 등 곧게 뻗은 나무를 심어 남성의 느낌이 들도록 하였으며,

정상에는 신단수 (팽나무)를 식재하였고 서쪽 출입문은 대성동 고분군을 지나

허왕후를 위한 공간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에는 신이대를 심고

주변에는 야생감, 돌배, 살구, 개복숭아 등 열매를 맺는 유실수를 심어 여성의 느낌이 들도록 했다.


언덕에는 허왕후의 고국인 인도불교를 상징하는 피나무 군락을 조성했다.

과거 공설운동장을 역사로 간직하기 위해 중앙에 가야의 한마당을 조성해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의 장소로 다양한 축제행사와 공연, 시민놀이마당 등의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운동장 역사를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상징적 건물인 본부석을 리모델링하여 전망대로 꾸몄다.


해상왕국인 가야를 표현하고 수로왕과 허왕후가 거닐었던 정원의 연못을 구상해서 조성하였으며,

옛 가야시대 습지에서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시연꽃, 노랑어리연꽃 등을 식재했다

 

 

 

수릉원 작은 연못에는 눈이 내려 아름다운 겨울꽃(?)을 피웠고,

수로왕비인 허황옥상에는 마치 하얀 솜털 옷을 입혀 놓은듯 하다.

 

 

 

수로왕릉으로 가는 담벼락에도 눈꽃이 만발하였다.

 

 

 

 

 

 

 

수로왕릉의 정문인 숭화문(崇化門)이 단아한 모습으로 보인다.

 

 

 

수로왕릉의 정문인 숭화문(崇化門)을 들어서니 홍살문이 보인다

 

수로왕릉의 홍살문(紅箭門)

 

 홍전문은 홍살문이라고도 한다. 김해김씨 가락국의 시조이신 수로왕릉이 신성한 지역임을 의미하는 유교적 시설물이다. 

따라서 이곳을 찾은 방문객 모두는 경건한 마음과 정숙한 행동이 현대 문화인의 예절이라 하겠다.

 

수로왕릉은 예전에는 입장료를 받았으나 몇년전부터는 무료입장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하얀 눈밭이다. 담장에도 ... 담벼락밑에 있는 자전거에도 ....

 

 

 

수로왕릉을 수호(?) 하는 듯이 입구에 있는 거북돌이 하얀 눈을 덮어쓰고 눈을 부릅뜨고 쳐다 보는 듯 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수로왕릉은 동양화 한 폭을 옮겨 놓은 듯 하다.

 

 

 

 

 

 

숭화문을 거쳐 다시 가락루(駕洛樓)가 있는데 삼문(三門)을 들어 설때에는 항상 우입좌출이다.

(향교 및 유교, 불교의 건물 중 3문을 출입할 때에는 문을 바로보았을 때 우측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에는 반대편 문으로 나온다)

 

가락루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는 납릉정문과 수로왕릉이 보이고, 좌측에는 신도비와 비석들 그리고 좌우로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

신도비각·홍살문·숭화문 등의 건물들과 신도비·문무인석·마양호석·공적비 등의 석조물들이 있다.

 

납릉정문은 잠겨져 있고 담장너머로 본 서설(瑞雪)이 내린 수로왕릉이다.

 

 

〈지봉유설 芝峰類說〉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로왕릉을 도굴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에 의하면 "광 속이 무척 넓고 두골의 크기가 구리로 만든 동이만 했다.

 

 

손발이나 사지의 뼈도 매우 컸다.

 

널 옆에 두 여자가 있는데 얼굴이 산 사람과 같았고 나이는 20세쯤 되었다.

 

이것을 광 밖에 내다놓았더니 금시에 사라져 없어졌다고 한다.

 

아마 순장된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하여 순장묘일 가능성을 짚고 있다.

 

 

1878년(고종 15) 수로왕의 신위(神位)를 모신 숭선전(崇善殿)의 현액을 내리고,

 

김씨·허씨 양성을 교대로 참봉을 맡게 했다.

 

 

이때 안향각(安香閣)·석양(石羊)·비각 등이 설치되었으며

 

왕릉의 전면에는 가락루·연신루·회로당 등의 건물도 있다.

 

능역은 건물 15동 47칸, 임야 1만 5,170평이다.

 

 

 

 

 

 

 

 

 

 

 

수로왕릉옆에 있는 왕릉관리사무소 뒷뜰에도 하얀 눈이 내렸다

 

 

수로왕릉 능역내에 있는 아담한 연못 소나무도 눈밭에서도 독야청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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