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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녁, 시인을 만나다
부산 대연동 ‘달빛콘서트’에서 진행한 사이펀 문학토크에 참석한 조선영, 이문영 시인
배재경 - 코로나의 장기화로 계간 <사이펀>의 북토크를 지상으로 모시지 못하고 지면으로 모시게 된 점, 먼저 이해를 구합니다. 사적 모임 5인 이상 하지 말라는 정부방침에 따라 저희 편집부도 최소 인원만 나와 지면토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사인회와 많은 독자들을 마주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지면으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모두들 안전하게(?) 건필 하시지요?
이문영 - 네, 갑갑한 게 많지만 지금은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조선영 - 앞으로는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배재경 - 네. 어려움은 견디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겠지요. 먼저 자신에게 시는 어떤 존재인지부터 묻고 싶습니다.
이문영 - 시는 경외롭고 신성한 것이었죠. 늘 꿈꾸게 하고 제 삶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같은 것. 세월이 흐르니 참 편안한 동반자 같습니다. 예전보다 덜 치열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진솔한 이야기가 시입니다. 저에게는......
조선영 - 감히 시라는 존재는 제 인생에서 놓칠 수 없이 가까이 들여다보는 아주 친애하는 사이입니다. 뭔가 잡고 싶은 추락하는 절실함이기도 하고요. 완성도 높은 사물이나 예술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기도 하고 어떤 극한 작업에 대한 스토리이기도 하며 지난 기억의 회상, 이웃들의 이야기,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곰곰이 두고두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나름의 상상력이 무언가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시달리는 삶, 때때로 찾아오는 그리움, 외로움을 자연과 일상에서 채굴하며 그 존재에 대해 스스로 응답하며 사는 인생의 고백이기도합니다.
배재경 - 이문영 시인은 90년대 동아대학교 학생들 중심의 ‘시작업이후’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오랜 문학적 여정을 걸었습니다. ‘시작업이후’의 동인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당시의 구성원들을 소개해주시고 지금도 동인활동은 이어지고 있는가요?
이문영 - 당시 동아대학교 재학생들의 문학동아리에 ‘시작업’이라고 있었습니다. 그 동아리의 졸업생들이 학교를 나와서도 문학활동을 하고자 계속 모이면서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동인명도 ‘시작업이후’로 하게 된 것이지요. 1989년에 시작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윤규, 전기웅, 김상균, 이선형, 우동엽, 황보화, 이문영으로 시작하였고 뒤에 이희철, 김중일, 배재경 시인 등도 참여하였습니다. 90년대는 전국으로 동인지 문화가 활성화 될 때였는데, ‘시작업이후’는 전국에서도 부산을 대표하는 젊은 동인으로 인식되었지요. 그때 부산의 선배 동인들은 ‘목마’, ‘시와자유’ ‘열린시’ 등이 있었습니다. 동인시집을 13권까지 출간하였고 매주 신작품평회, 시화전, 다양한 문학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배재경 - 그랬군요. 당시 제 기억에도 ‘시작업이후’ 동인들의 참신성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등단이 1991년으로 문단에 나오신 것은 오래됩니다만, 작품 활동은 아주 과작입니다. 이제 두 번째 시집이시니까요. 이 부분은 시를 한동안 쉬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열정이 좀 부족한 탓이었나요?
이문영 - ‘시작업이후’ 동인 활동은 30년 넘게 지속이 되었지요. 시와 멀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듯 합니다. 매주 신작시를 써야 했으니까요. 품평회는 참 길고 험난했습니다. 초저녁에 시작하여 새벽에 마치곤 했지요. 참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한동안 그런 시기를 가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 뿐만 아니라 동인 모두가 조금 느슨해진 것은 있습니다. 20~30대에서 50-60대가 되는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 힘은 그렇게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배재경 - 조선영 선생님은 노래나 흥을 좋아하시는 시인이신데, 코로나로 움츠려 있으려니 힘드실 터인데 그 ‘끼’를 어떻게 추스르고 있습니까?
조선영 - ㅎㅎ. 언제부터인지 사는 일, 지루한 여백의 시간을 스스로 위무하는 방편이라고 할까요. 『칼국수를 미는 저녁』 시집에서 시인들에게 제가 춤추는 이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춤에 대한 변명」이라는 시를 발표 한 적이 있습니다. 운동과 좋은 음식으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지만 본능적인 인간의 감흥은 춤과 노래로 즐거움을 주지요. 가끔씩 춤과 노래는 나무토막 같은 건조한 삶을 풀어주는 몸의 청량제이기도 합니다. 경직된 몸에 대한 살풀이라고 할까요. 코로나는 저에게도 예외 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젠 점점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가끔 분위기에 어울려 깜빡일 뿐입니다.
배재경 - 하하! 조만간 그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문영 - 맞습니다. 그래야 저도 달빛 콘서트를 가볍게 닻을 올릴 건데요. 참, 안 그래도 혹시나 하여 넉넉히 시간을 두고 4월24일 저녁 7시에 제 문학콘서트를 이곳 ‘달빛콘서트’에 잡아두었습니다. 두 분도 그날 오셔서 봄밤의 운치를 같이 즐겼으면 합니다.
조선영 - 알겠습니다. 꼭 오도록 하지요.
배재경 - 조선영 시인은 시조를 먼저 쓰시고 시를 나중 쓰신 걸로 압니다. 시라는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또 전혀 다른 장르처럼 느껴지거든요. 시조를 쓸 때와 시를 쓸 때의 차이점이 있나요?
조선영 - 네. 먼저 2000년도에 시조에 먼저 입문했습니다. 과연 제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시조는 정형화된 운율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시조에서 다하지 못한 용량이 큰 스토리를 자유시를 통해서 수다스럽게 쏟아 놓기도 합니다. 글의 수다에도 절제가 있어야겠지요. 간혹 시를 시조로 축소해서 써 보기도 합니다.
배재경 - 이문영 선생님의 이번 시집을 보면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삶의 이해가 맞물린 철학성을 보여줍니다. 이번 시집에서 자신이 드러내보고 싶었던 부분이 따로 있었는지요?
이문영 - 긴 시를 좋아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쓰기도 했구요. 저는 말도 짧은 편이고 친화력도 원활하지 않습니다. 성격처럼 시가 짧아지더군요.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를 쓸려고 합니다. 시에서 떠들고 싶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가려서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간결한 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배재경 - 이번 시집에서 ‘새’라는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만 실은 새의 이미지에 이문영 시인이 담아내지 못한 지난날의 꿈을 심고자 하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은유적 매개물로 ‘새’를 가져오게 된 정황을 알고 싶습니다.
이문영, 조선영 시인의 최근 발간 시집
이문영 - 그냥 새라는 존재를 생각했습니다. 새는 하나의 세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밝음과 어두움, 기쁜 것과 슬픈 것, 어쩌면 나라는 존재, 이승을 떠난, 떠나고 있는 모든 존재를 새라고 통칭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 ‘새’ 연작을 쓰던 중에 부모님이 같은 해에 돌아가셨고 슬픔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고 찔끔 찔끔 흘렀습니다. 시를 쓰고 노래 부르는 아들을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내 부모님을 위해 아주 많은 새를 쓰고 싶었습니다.
배재경 - 선생님의 ‘새’에게는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불변의 상처를 바탕에 깔려 있군요. 조선영 선생님의 시편들은 끌고 가는 힘이 느껴집니다. 과거의 시들을 보면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도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담아가고자 하는 열정이 그대로 노출되곤 했거든요. 하지만 어쩌면 그 힘이 곧 선생님 시의 장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은 스스로를 많이 솎아낸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앞서의 시들과 이번 시집의 차이점라면 어떤 걸 볼 수 있을까요?
조선영 - 산문시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다 보니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장문을 끌고 가는 힘을 길렀다고나 할까요. 이번 시집에서는 열정도 줄어지고 단출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번엔 따로 내지 못한 시조집에서 소개하지 못한 시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쓰고 살아 친근감이 가는 경상도 사투리 시 「가부리연」이 부산시인 작품상을 받게 되었고 표준어로 시를 쓰는 것이 정석이지만 토속적인 언어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독자들에게 적어도 지루함을 주는 시를 쓰는 일은 사실 용서가 안 됩니다. 늘 새로운 지식과 글쓰기의 자료들을 채집하며 세상에서 추방되고 버려진 슬픔과 아픔, 야생의 꽃처럼 아련하거나 가련한 것들에 침묵해선 안 되겠지요.
배재경 - 네에, 시의 표준어는 국어사전의 글이 표준어가 아니라 시인잋 ᅟᅡᆼ조하는 언어가 표준어가 되어야겠지요. 그리고 선생님 시의 대다수가 요즘 현대시의 모랄로 비추는 극 상상력이 아닌 공간의 경험입니다. 보고 느낀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시편들인데도 단순한 사실적 진술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서정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세계는 시인의 자의식과 관계있습니다. 선생님의 부모님 성품이나 유년시절 이야기 하나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영 무릇 시를 씀에 있어 때로는 도발적이며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시들을 만나며 어떤 희열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바탕색은 인간적이며 도덕적이어야 하고 예가 있어야 하고 언어 하나에도 함부로 독자를 대하지 말아야 하는 본의가 시인의 심상에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아버님의 책꽂이에서 소월의 시를 읽고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감히 품었습니다. 친 할머님께서 늘 옛시조를 좋아하시어 “시조 읽어봐라” 늘 하시던 말씀과 아버님께서 시, 소설, 김찬삼의 여행기, 중국소설, 현대문학을 즐겨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게는 생생한 유산이지요. 그리고 큰집 오빠가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제 이십 대엔 부산일보에 투고를 하기도 했지요. 여성문예에 ‘봉숭아’ 시를 올려주신 박재호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글짓기 시간에 몽당연필에 대한 작문을 쓰고 글 쓰는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재경 이문영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부드러움 속에 삶의 실존성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인의 체험적 사유 없이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새’라는 이미지의 치환이 더욱 더 돋보이는데 앞으로의 시는 또 어떤 이미지로 변용될지 궁금합니다.
이문영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살아 왔고 살아 갈 세상은 무궁무진한 시적 자산입니다. 하지만 할 말을 줄이고 생각에 집중하겠습니다. 내가 살아 온 방법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신 줄을 놓지 않도록 애를 쓰며 시를 써야겠습니다. 오래 살면서 그런 작업을 하고 싶지만 욕심인줄 압니다. 사는 날까지 제 시에 몰두하겠습니다.
이문영-달빛콘서트 공연모습
배재경 - 평소 노래강사(이문영 시인은 부산 대연동에 ‘달빛콘서트’라는 소형 무대를 갖춘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노래강습, 시낭송지도 등 교육과 함께 무대에 익숙지 않은 가수들을 위해 콘서트무대, 출판기념회 등을 열어주기도 한다.)로도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래강사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는지요?
이문영 - 노래 강사를 하고 있다기 보다 저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아주 어릴 때 만난 꿈이었습니다. 가수보다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고 그로테스크한 무대 연출을 꿈꾸며 학교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다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시와 노래는 내 삶을 떠나지 않을 듯 합니다.
배재경 - 조선영 선생님 시의 특징 중 하나가 서사구조가 느껴지는 이야기시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시를 쓰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선영 -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의 고달프고 아픈 삶이나 먼 열사의 사막이나 아프리카 야생 동물들의 살벌한 생의 대열을 영상 매체를 통해 만나기도 하며 우리 가죽신을 짓는 장인을 찾아가 흑혜를 만드는 과정을 시로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전통 매듭을 엮어가는 서사시를 밤새 쓸 때는 정말 흥미진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장인들의 이야기나 소박하면서도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장식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4집에선 무덤 속에서 출토된 천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제가 정말 그 시대에 살아있는 듯한 벅찬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배재경 - 네, 그 감성들을 계속 잘 살려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문학적 노정을 이야기 하신다면?
조선영 - 다 떠나보낸 지금의 심정, 다소 홀가분해진 쓸쓸함이 저무는 세월에 낙담과 허무도 간간이 끼어들겠지만 인생의 결곡한 한스러움도 뉘엿뉘엿 저무는 시점입니다. 시에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열정은 남아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 하는 한 새로운 시대에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많은 지식들을 수용하고 충돌하면서 아직 남은 삶은 버겁지만 소고삐를 잡는 심정으로 시의 밭을 일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배재경 - 이문영 선생님은 30여년의 문단활동에서 두 권의 시집을 내셨는데, 다음 시집은 또 10년을 기다려야 할까요?
이문영 - 하하! 시를 쓰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쉽게 쓰는 시인은 없겠지만 쉽게 보이는 시들이 많아서 참 걱정입니다. 시집을 내면서 나는 어떤 시인일까 생각하였습니다. 두려움도 컸습니다. 또 한 번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책을 내겠지요.
배재경 - 오늘 두 분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오픈 토크를 가지지 못한 점, 두 분 초대시인과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어서 빨리 봄날과 함께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두 분 선생님의 안전과 건강을 빌며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데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