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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0: 1-16> 천국의 영적 원리와 비유, 이른 아침과 제 십일시,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 포도원, 한 데나리온, 품꾼, 선하신 집주인의 뜻, 공로와 은혜
1. 말씀배경
성경은 천국의 영적 원리에 대하여 “천국은 ~와 같으니”로 시작하면서 다양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 13:24-52, 18:23, 20:1, 22:2).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천국이 어떻게 시작되고. “겨자씨, 누룩비유”를 통해서 천국이 어떻게 확장되고, “감추인 보화, 진주 비유”를 통해서 천국이 어떤 가치가 있고,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 비유”를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심판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오늘 말씀도 마13장 비유와 같이 “천국은 ~와 같으니”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천국” (헬, 바실레이아 호 우라노스)이란 “하나님 나라”(헬, 호 바실레이아 호 데오스)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차 우리들이 영원히 살 황금빛 찬란한 저 천국의 개념보다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이 땅에서도, 마음에도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도 예수님께서도 사역의 시작부터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 17:20)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것은 ① 천국을 이루시는 예수님이 우리들 가까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며, ②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에 가는 길이 우리 눈 앞에 다가왔다는 것이며, ③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천국원리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2. 이제 오늘 말씀내용을 보면서 천국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것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로 시작합니다.
집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것입니다.
”집주인“은 천국 복음을 위하여 일꾼을 부르시고 /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품꾼“은 천국복음을 위하여 부르신 일꾼들이요 /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일꾼들이 일하는 사역현장이며 / 품군들이 들어가는 천국을 상징합니다.
1) 이를 위하여 집주인 곧 하나님은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자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 나가신 것입니다.
”이른 아침“(헬, 프로이)입니다. 유대인 시간으로 ”0시“입니다, 오늘날 아침 ”6시“입니다.
▶ 여기서 추수하는 일꾼을 부르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쉬지 않으십니다 (요 5:17). 룻기에서 신부 룻을 얻기 위하여 쉬지 아니하시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보아스 (히, 민첩, 재빠름)와 같습니다 (룻 3:18). ※ 보아스는 예수님 상징, 다윗의 중조부
게을러서 영적 인력시장에 나가지도 않고, 여전히 영적인 잠을 자고, 여전히 품꾼으로 나갈 능력이나 자격을 준비하지 않는 영적 아이로 있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 서울 구로동에 가면 인력시장이 있는데,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누군가가 그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그날은 공치는 날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래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나갑니다. 다행한 것은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는 우리들이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다면 반드시 쓰임을 받으므로 공칠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실 준비와 열심히 있습니다. 충분한 포도원과 품삯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준비가 덜되어서 문제인 것입니다. 출애굽시 계수된 20세 이상 남자들처럼, 군사로 부름 받기 위해서는 영적나이 20세가 되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 아이로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라“ (렘 1:6)
2) 아침 6시에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들여보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일용직 노동자의 근로계약입니다. 그들은 하루 일하고 ”한 데나리온“ (로마 화폐단위, 그리스 화폐 드라크마와 동일한 가치)을 받습니다. 당시 여관비가 1/20 데나리온 수준이라고 하니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한마디로 하루 일당 줄테니 하루 일하는 조건으로 포도원에 들여보낸 것입니다. 당시 하루 근로시간은 12시간입니다. 오늘날은 8시간인데 당시에는 이렇게 힘들게 오래동안 일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집주인이 이런 조건으로 불러 사용해 주시는 것 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당시는 경제 구조나 규모가 대체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오늘은 가족을 굶기지 않고 먹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포도원으로 갔을 것입니다.
3) 집주인은 또 제삼시에 장터에 나가봅니다. 오전 9시입니다. 그런데 놀고 서 있는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상당하게 품삯“을 주리라 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상당하게“(헬,디카이오스)는 ”의로운”이란 뜻인데 의역하면 일한 만큼 주는 정당한 품삯인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하루를 놀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할 곳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첫 번째로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보다 더 감사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4) 그런데 집주인은 계속해서 제육시시, 제구시에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오전12시, 오후 3시입니다. 더구나 제십일시, 곧 오후 5시에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십일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은 일할 시간은 한시간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한시간 일하고 한시간에 해당하는 상당한 품삯을 받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루종일 노는 것보단 낫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일한 만큼 품삯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3. 일이 끝나자 집주인이 청지기를 시켜 품삯을 모두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것입니다.
1) 저는 제가 당사자들도 아닌데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매우 “불공평하다” 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원리가 많이 일한 자는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자는 적게 받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불공평한 것은 이뿐 만이 아닙니다. 늦게 온 자들이 먼저 품삯을 받는 것도 당시 관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먼저 온 자를 먼저 지급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니 더 받을 줄로 생각했던 “먼저 온 자”들은 집주인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늦게 와서 일찍 품삯을 받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똑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 회사에 출근을 오후 다섯시에 하고 똑 같이 월급을 받는 자가 있다면 아마 여러분들도 사장에게 불만을 가질 것입니다. 혹시 뒤로 넘어가는 자도 있을지고 모릅니다. 다음 날 오후 다섯시에 출근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심한 사람은 다음 날 출근 안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짤리는 것입니다.
▶ 과연 그들이 원망이 정당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2) 일한 만큼 받는 것은 이 세상의 지배원리로 “공로의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공로가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받는 원리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공로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 아침 곧 아침 6시에 포도원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 이 공로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 일한 만큼 하루 일당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틀 일하면 이틀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한 만큼 품삯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로의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원리가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원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을 한만큼 댓가, 보수를 받기 원하고, 또 주인은 그렇게 주어야 합니다. 안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됩니다.
그래서 야근 수당, 휴일수당도 주어집니다. 천국에서는 이 공로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최소한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도 은혜입니다. 왜냐i하면, 이른 아침부터 나갓지만 일자리가 없는 분들도 있고, 일을 하고도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써 주시고 일한 만큼 품삯을 받으니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이렇게 최소한의 은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로 투입된 그 사람들이 집주인에게 원망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들과 약속한 일당을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공로대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주인도 “잘 못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13절)
3) 이제 제삼시, 제구시, 제십일시에 오신 분들인데, 이들이 적용받는 원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따라 추가로 받는 “은혜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하신,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일한 것보다 더 받는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말씀 15절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하므로” (15절).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늘 4절 말씀처럼 “상당한” 품삯을 주면 됩니다. 이것이 약속한 정당한 댓가입니다. 그렇게 공로원리를 적용하면 포도원에 투입된 시간에 따라서 점차 적게 품삯을 지급하는 “시할계산”로 계산하여 주면 문제 없습니다. 이것도 그들에게는 감사해야 하는 최소한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공로주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집주인, 하나님은 천국의 원리,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은혜의 원리”를 작동시켜 그들 모두에게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것입니다.
일한 것보다 더 품삯을 지급한 것입니다. 더 지급한 품삯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가장 늦게 십일시에 온 자들이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더 큰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온 자들도 원망하면 안되고 더 뒤에 온 자들도 더더욱 원망을 하면 안됩니다.
10절에, 집주인에게 원망을 한 자들은 “먼저 온 자들” (헬, 프로토이) 인데, 원어적으로 처음에, 첫째의, 최고의 뜻이 있어 원어적으로나, 그들이 종일 일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마 20:12)
이들이 집주인 곧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12절, 14절에 기록된 “나중에 온 이 사람들”(헬, 에스카토)은 원어적으로 맨 끝에, 마지막에 온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망을 한 기준은 한시간 일한 사람들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제삼시, 제구시에 오신 분들은 원망을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그들의 원망 여부가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원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가장 나중에 온 자들로부터 품삯을 먼저 지급했고, 그리고 그들도 상대적으로 가장 나중에 온 자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아마 세상 원리인 상대적 원리 또는 비교의 원리가 작동되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도 엄청난데,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를 해보니 감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제삼시, 제구시에 온 자들도 “내가 더 많이 일을 했는데 똑 같이 받네, 그리고 내가 더 빨리 왔는데 더 늦게 받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누군가와 서로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에 따라서 자기가 행복하다. 불행하다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만약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을 집주인이 주는 것을 그들이 아무도 몰랐다면 그들 모두 집주인에게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이후에 들어간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추가적인 은혜에 감사해서 모두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비교하니 감사가 “원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들에게 감사의 제목이 없어져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기가 가난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이 조선시대 사람과 비교를 해본다면 그는 갑부입니다. 조선시대에 누가 여러분들처럼 자가용을 타고 다닙니까? 당시에는 말과 마차를 타고 다녀도 부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부족함이 없는데 상대적 빈곤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원망,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만을 보라보는 것이 천국의 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은혜를 주셨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보다 적게 받고 많이 받고 그런 것 비교하면 은혜를 놓치고 원망 모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주신 은혜도 넘치는 것입니다.
4. 원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추가적인 은혜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은혜를 입어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최상의 것,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 선하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은혜는 품꾼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 기도 합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15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넘치도록 풍족하게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품군으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대박인 것입니다.
▶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인의 뜻대로 선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들은 이의를 제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옹기를 만드는 것도, 옹기를 사용하거나 깨뜨려 버리는 것도 옹기장이의 뜻입니다. 옹기가 옹기장이에게 불만을 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건드리는 것은 오늘날 선악과를 따먹는 일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에 무조건 “아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대하여 “아멘” 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하여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계 3:14)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후 1:19)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하셨는데 조금 일해 놓고 많이 받으면서 은혜도 모르고 원망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5. 솔직히 우리들이 주의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하나님 보실 때 마치 어린아이가 이루어 놓은 작은 열매 수준에 불과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기 아이들이 뭔가를 만들어 놓았을 때 실상 별것도 아니지만 마치 놀랍다는 듯이 칭찬을 해주고 넘치는 보상을 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공로가 있어서,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냥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와서 우리들이 일하는 것 자체를 기뻐하시고 풍족히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대단한 성취를 해서 그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설교를 하면 얼마나 잘하며, 찬양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예언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예언도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것들이며 부분적으로 아는 것들입니다. 천국에 가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밝히 보는 날이 이르면 다 폐하여지는 것들입니다 (고전 13:10,12)
더구나 우리들은 대부분은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 제십일시에 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것보다도 넘치도록 은혜를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 늦게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까요? 우리들입니다.
오늘 말씀 3절, 6절을 보니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어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또 서 있었다“ 는 뜻입니다. (헬, 알루스 히스토타스)
이 말씀으로 보건대 이른 아침 6시에 있었던 사람들을 다 포도원에 들여보냈는데, 오전 9시에 가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또 포도원에 다 들여보내고, 12시에 가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오후 3시, 오후 5시에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마 20:7).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다른 집주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집주인들은 세상의 인력시장의 원리에 따라 필요한 사람 만 골라서 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집주인은 세시간마다 나가서 남아 있는 사람들을 고르지 않고 모두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낸 것입니다.
3절, 6절을 보면, ”놀고“(헬, 아르고이)는 원어적으로 ”무익한, 일없는 게으른“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아 있어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은 다른 집주인이 데려가지 않은 뭔가 부족한 사람들이거나 늦게 나온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세상 인력시장의 원리는 힘 좀 쓸 수 있는 사람, 기술이 있는 사람 등 능력이 있는 자들을 먼저 뽑아 갑니다. 그래서 남는 사람이 있는데 뭔가 부족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장애인이거나 기술이 없거나, 나이가 많아 늙었거나 반대로 너무 어리거나 등등
그런데, 오늘 말씀 집주인은 천국의 영적 원리에 따라 이런 것, 저런 것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대로 서 있는 놀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이 우리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능력이 있고 유능한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고린도교회와 같이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도, 능한 자도, 문벌이 좋은 자도 많지 않는 것입니다. (고전 1:26)
이런 우리들을 사용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도 부족한 자들입니다. 당장 포도원에 들어가더라도 당장 쫓겨나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모두 포도원에 들어가지도 못할 자들인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서 모두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음에는 원리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신이 약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지혜도 별로 없는 우리들을 불러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야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능력이 있든 없든 동일하게 품삯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이런 약한 자, 부족한 자들을 내팽겨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사용되어졌을 때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 원리에 따라 교회에서도 일꾼을 배치하고, 천국원리에 따라 기업도 직원을 뽑고, 그러면 처음에는 손해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며 그 곳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포도원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충분하고 넘치는 품삯이 나올 것입니다.
<맺는 말>
세상의 주인과 다르게 하나님에게는 포도원도 품삯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자인 하나님이십니다.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호주머니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들은 다만 부름을 받아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루는 사실 우리 일생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일생 가운데서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우리가 일찍 부름 받기도 하고 늦게 부름 받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능력이 있어서 부름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름을 받은 것도 큰 은혜입니다. 더구나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지급 받은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은혜인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이요, 아들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다.
세상의 원리와 천국의 원리가 서로 상충될 때가 있겠지만, 천국의 원리대로 사신다면 분명히 그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면서 살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땅을 밟고 사는 이상 세상의 원리를 완전히 떠나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두 발은 땅을 딛고, 다른 신체 곧 두눈, 두팔, 머리, 가슴, 귀 등은 서 있으므로 공중 곧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먹고 입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짐승은 두발, 두손 모두 땅에 땋아 있으며 눈도 귀도 전부 땅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을 위하여 목숨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짐승과 같이 살것인가? 아니면 품군으로 부름을 받아 천국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답은 머무나 자명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영적 잠만 자지 말고 어떤 분은 제삼시에, 제육시에, 제구시에, 늦어도 제십일시에 포도원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급은 같을 것입니다. 저도 늦게 시작한 목회이지만 동일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제 영적인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인력시장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속히 인생의 날이 저물기 전에 영적 군사로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늦더라도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대로 여러분들이 부름을 받고 일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은혜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이 되어서 은혜 위에 은혜로 주어지는 한 데나리온의 상급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