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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to] 김도우
#1. 프롤로그
-단풍이 절정에 다달은 숲 한 가운데... 바람에 낙엽이 휩쓸려 간다.
벤취에 앉아 가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진영. 햇살이 눈이 부신 듯 찡그리고 있지만 아주 기분 좋은 얼굴이다.
진영 : (Na.) 아주 먼 기억을 더듬어보면 귀엽고 똑똑한 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말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해
사람들로부터 항상 귀여움을 받았다.
-춘천역. 정확히 9,400원의 돈을 매표창구에 밀어넣는 진영.
-프린트되어 나오는 2장의 표. 청량리행 3호차 33, 34번.
-두 장의 표에 찍히는 구멍. 진영, 표를 꼬옥 쥔 채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3호 객차에 오르는 진영.
-3호 객차, 33호석에 앉아 헤드폰을 낀 채 창 밖을 보는 진영. 그 무심한 눈빛이 참으로 순하고 맑다.
진영 : (Na.) 언제부턴가 아이는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노래도 하지 않았고 춤도 추지 않았다.
누가 쳐다보면 부끄러워 방으로 숨어들었고, 하루종일 음악만 들었다.
-열차가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암전.
진영 : (Na.)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타이틀 뜬다. 'Thanks to...'
#2. 달리는 기차(F.I)
-터널(암전)을 빠져나오는 기차/아침안개 피어오르는 강, 강 저 멀리로 철교 보이고, 철교 위를 달리는 기차.
초가을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
#3. 3호 객차(하행선. 오후)
-'창쪽 33'이라는 좌석표시에서 카메라 내려오면 헤드폰 낀 채 창 밖 보고 있는 진영. 헤드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객차 문이 열리고 두르르 굴러들어오는 커피카트. '커피있습니다'를 반복하며 오는 세원.
-진영, 세원을 발견하고는 눈에 생기가 돌면서 헤드폰을 빼 목에 건다.
그 순간, 터지는 주말 오후의 소음(소음때문에 음악을 듣고 있었으므로 소음 강렬하게).
진영, 시선은 앞 등받이에 둔 채 세원에게로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소음들이 멀어지면서 들려오는 카트 바퀴 소리.
그 소리 점차 커지면서 거기에 오버랩되는 세원의 구둣발 소리.
진영과, 굴러오는 바퀴와, 무심히 걸어오는 세원이 느린 속도로 교차되면서 바퀴소리와 구둣발 소리가 점점 커진다.
(소음은 완전히 없어진).
진영의 입가에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감도는데 드디어 커피카트가 진영을 지나 치려 한다.
진영, 망설이듯 손을 든다.
세원 : (보고는 멈춘다) 커피 드려요?
진영 : (차마 시선 맞추지 못하고 끄떡이는)
세원 : (종이컵 꺼내 커피 타며) 커피 두 스푼, 설탕 두스푼 반, 프림은 빼고. 맞죠?
(대답 듣자고 물어본 건 아니다. 온수를 따라 건네며) 저기 혹시요.
진영 : (커피 받다가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는) !...
세원 : 제가 무서워요?
진영 : (정색하듯이 강하게 고개 젓는다)
세원 : 그럼 제가 흉칙하게 생겼나요?
진영 : (내 맘은 그게 아닌데, 답답한 표정으로) 아-뇨.
세원 : 근데 왜 절 안보세요?
진영 : (비스듬히 세원 쪽을 보며 딴에는 설명하려 노력하는) 음... 저기... 그러니까 전... 음...
(달리 설명할 길이 없자 체념하듯 입 다물며 고개 수그린다)
세원 : (구제불능이군! 머리카락 훅 불고는 간다)
진영 : (그 뒷모습을 본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있는데)
아줌마 : (E) 총각, 여기 자리 없지?
-진영, 쳐다보는데 옆자리에 있는 가방을 진영의 발치에 내려놓고는 '아구구 다리야' 하며 철퍼덕 앉는 아줌마.
-그 서슬에 놀라 창 쪽으로 비켜앉는 진영(커피 좀 흘리고). 좀 불안한 얼굴.
-아줌마, 신발 벗고 발 주무르는데 진영, 창 쪽으로 조금 더 비켜앉으며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아줌마, 문득 그걸 보더니 탁! 친다.
아줌마 : 복 나가. 인물은 훤하게 생겼구만.
진영 : (다리 떨기를 뚝 멈춘다. 그러나 가중되는 긴장과 불안)
아줌마 : (새삼 훑어보며) 뉘집 자식이 이렇게 잘 생겼어어? 하이고, 속눈썹 긴 거봐, 아주 우산이네 우산이야.
(툭 치며) 총각, 결혼했어?
진영 : (치인 팔을 움추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어정쩡한 표정-웃는 듯 일그러지는 듯)
아줌마 : (어이없는) ! 허이구 참...
진영 : (시선 딴 데 둔 채, 나란히 붙은 표를 꺼내보이며 조심스레) 거기 제 자린데요...
#4. 열차 내 창고로 쓰이는 공간
-세원, 떨어진 재료들을 채워넣고 있다. 기석 역시 서비스 카트에 물품을 채우고 있다.
세원 : (갸웃) 말만 안붙이면 멀쩡한데...
기석 : 왜, 관심 있어? 중매 설까?
세원 : 으이- 내가 본드야, 아무데나 갖다붙이게?
기석 : 너 본드 맞어. (능청스레) 친절을 가장해서 붙은 사람이 몇인데. 한다스는 될 걸?
세원 : (곱게 흘기며) 그래, 나 본드다! 초강력울트라슈퍼 뽄드!
기석 : (웃는)... 근데 아까 보니까 문제 생긴 거 같던데...
세원 : ? 무슨 문제?
#5. 3호 객차
-아줌마, 삿대질하며 악다구니를 하고 있다.
아줌마 : 눈구녕에 금칠을 했나, 내가 길가에 깨구락지로 보이나, 어른이 말씀을 하시면 예, 아니오 대답을 해야지
어디서 방정맞게 쳇머리를 흔들어? 싸가지 없는 자식 같으니라구. 누굴 전염병 환자 취급하고 있어. 살다살다 별!
-어느새 다가온 세원, 아줌마가 삿대질하는 쪽을 보고는 어리둥절하다.
-헤드폰을 낀 두 귀를 틀어막고 두 다리를 무섭게 떨고 있는 진영.
아줌마 : 저것 봐, 저거.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귀를 틀어막어? 뉘집 개가 짖냐 이거지?
세원 : 진정하시구, 조용조용 말씀하세요. 다른 승객들도 있잖아요.
아줌마 : 아가씨도 눈이 있으면 똑바로 봐. 어른이 타이르는데 저게 할 짓이야?
(진영의 하는 꼴을 보니 더욱 괘씸하고 분이 난다. 벌떡 일어나 달려든다) 야, 너 그거 안벗어?
세원 : (얼른 붙잡는) 아줌마!
아줌마 : (그러나 늦었다. 어느새 진영의 헤드폰을 우왁스럽게 채가며) 어른이 쓴소리를 하면 달게 들어야지!
막되먹은 자식같으니라구!
-그 순간 귀를 막은 채 머리를 찧기 시작하는 진영.
-당황해 휘둥그래지는 세원.
#6. 춘천역 플랫폼(동 오후)
-어깨 늘어진 채 역사로 향하는 진영. 누군가 어깨를 치자 흠칫 놀라 돌아본다.
-세원, 조심스런 눈길로 헤드폰 벗으라는 제스츄어를 한다.
-진영, 고개 떨구며 헤드폰 벗어 손에 든다.
세원 : 아줌마랑 왜 싸웠어요?
진영 : (고개 떨군 채 젓는다)...
세원 : 그럼 아줌마가 왜 그러셨어요?
진영 : (역시 고개 젓는다)
세원 :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자 한숨만 폭 쉬는데)
진영 : ... 사람들은 가끔...
세원 : (반짝 쳐다본다.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진영 : (서글픔에) 나한테 화를 내요.
세원 : ?... 왜요?
진영 : (헤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어렵게) 난 그냥... 음.. 그러니까.. 그냥 부끄러운건데...
세원 : !...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럼 부끄러워서 표를 항상 두장씩 사는 거예요? 다리두 떨구요?
진영 : (억울한) 아뇨, 난 안떨어요. 다리가 혼자 움직이는 거예요.
세원 : (웃음 참고) 그럼 내가 쳐다봐도 부끄러워요?
진영 : ... 조금요... 그래도 무섭진 않아요.
세원 : ? 왜요? 왜 난 안무서운데요? (무슨 대답이 나올까 잔뜩 기대하는)
진영 : ... 그냥... 안무서워요.
-세원, 너무 싱거운 대답에 웃고만다. 그러다 이상하긴 하지만 순수한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이 든다.
세원 : 난 세원이에요, 김세원. 그쪽은요?
진영 : ... 최진영이요.
세원 : 진영씨, 우리 이제 친해졌으니까 나 똑바로 봐봐요, 부끄러워하지 말구요.
진영 : !... (차마 용기가 안난다)
세원 : 눈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진영씨 눈, 참 이쁜 거 알아요?
진영 : (그래도 못보고 부끄러워한다)
세원 : 으응, 내가 무서운 거구나. 하긴, 나 실은 되게 무서운 사람이에요. 우왕~ (짐짓 무서운 인상 지어보인다)
진영 : (힐긋 보고는 킥 웃는다)
세원 : 어, 웃었다!
진영 : (보지는 못하고 배시시 웃으며) 세원씬 참 귀여워요.
세원 : (우쭐해서) 알아요.
진영 : 근데 코가 너무 커요.
세원 : (황당한 듯 곱게 흘기더니 웃는다)
진영 : (시선 비킨 채 같이 웃는)
#7. 진영의 집 전경(동 저녁)
-뜰이 있는 2층 양옥 주택.
#8. 욕실
-세탁기 전원버튼이 눌러지고 뚜껑이 열린다.
-진영, 물의 양을 조절하는 버튼을 누른 다음 벽에 붙은 메모를 본다.
메모 (1. 전원 버튼을 누른다. 2. 물조절 버튼을 눌러 물의 양을 조절한다.
3. 수온선택 버튼을 눌러 온도를 조절한다(따뜻한 물에 빨아서는 안될 옷이 있음. 그땐 엄마한테 물어볼 것)
4. 세탁시간을 조절한다. 5. 헹굼횟수를 조절한다. 6. 탈수시간을 조절 한다.
7. 세제 한스푼을 넣고 동작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온다. 8. 세제가 녹아서 거품이 나면 빨래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다.
9. 탈수할 때는 뚜껑을 열지 않는다)
-진영, 메모대로 물조절 버튼을 누른다. 다시 메모를 보고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는데 삐익삑 소리.
진영, 듣기 싫은 소리에 몹시 찌푸리며 어떻게 해볼려고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진영모 : (문 열며) 진영이 빨래하니?
진영 : (무안한 웃음) 적힌대로 했는데...
진영모 : (웃으며 들어온다) 하긴, 엄마두 운전할 땐 표지판 대로 가도 맨날 엉뚱한 데만 나오더라. (버튼 몇번 누르자 물이 나온다. 진영 돌아보며) 알겠어?
진영 : (어, 그렇구나, 주억거리며 웃는) 진영모 근데 우리 아들 오늘 기분 좋네? 뭐 좋은 일 있었어? 진영 (속내를 들킨 것 같다)아아니... 진영모 (피식 웃고 나가며)엄마가 옷 사왔는데 볼래? -진영모, 거실로 나와 쇼핑백에서 옷을 꺼낸다. 티셔츠와 남방과 청바지, 그리고 하얀 운동화까지. 진영 어때, 딱 니 스타일이지? 운동화도 있어. (청바지 내려놓고 하얗고 심플한 운동화를 들어 보인다)어때? 괜찮아? 진영 어, 이뻐. 진영모 그지 이쁘지. 이게 요즘 젤 유행하는 거래. 이거 입고 나가면 아마 이쁜 아가씨들이 줄줄이 따라올 걸? 그러지 말고 내일 입고 가라, 그거 내일 아침까지 안마를지도 모르잖아. 진영 나중에. 진영모 (힘 빠진다)... (다시 밝게)그래, 나중에 입고 싶을 때 입어. 방에다 갖다놀게. (진영의 손에 들린 티셔츠의 얼룩 보고는)? 근데 그게 무슨 얼룩이야? 진영 (좀 당황해서 얼른 빨래를 세탁기 안에 넣으며)커피자국... 진영모 ? 커피? 너 커피 안마셨잖아. 진영 ... 이젠 마셔. (들킬까 조마조마) 진영모 (기쁜)잘됐다, 이젠 우리 아들하고 마주앉아서 커피도 같이 마실 수 있구. 진영 집에선 안마셔. 진영모 ? 왜? 진영 그냥... 진영모 (곱게 흘기며)아무래도 수상해 우리 아들... (나간다) 진영 (문 닫히는 소리 들리자 혼자 빙그레 웃는데) 세원 (E)눈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진영씨 눈, 참 이쁜 거 알아요? 진영 (생각에 빠져드는)...
#9. 진영 방(동 밤)
-커다란 벽거울로 보이는 진영의 발치. 그의 시선인 양 카메라 서서히 올라가면 거울 속 그의 무릎이, 허리께가 보인다. 거기서 멈추는 카메라.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멈춰있는 진영의 시선. 자신 없음과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F.O
#10. 열차 내 통로 또는 물품창고(오전. F.I)
-메모지에 쓰여지는 글씨들. 사과, 배, 감, 동태 포 뜬 것, 떡, 닭, 소고기, 당면... -세원, 박스 같은데 대충 앉아 메모하는데 열심이다. 그 다음 생각이 안나는지 볼펜 끝을 깨물며 또 뭘 사야 되지? 곰곰 생각하다가 문득 창 밖을 보더니 갸웃한다.
#11. 춘천역 플랫폼
-마악 떠날 통일호 열차가 서 있고 금방 출발할 거라는 안내방송 나오는데 귀를 막은 채 초조하게 서성이는 진영. 저만치서 세원이 달려온다. 세원 (달려와)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진영 (고개 젓는다) 세원 근데 뭐하고 있어요, 기차 떠나는데. 진영 너무 시끄러워요. 세원 에?...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3호객차 입구 앞의 철기둥에 뭘 박느라 용접하고 있는 현장. 세원 (보고는, 어이없는 웃음)그런다고 못타요? 장난하지 말고 빨랑 타요. (하는데) -지친 듯 아무데나 기대는 진영. 이마에 식은땀까지 맺혀있다. -세원, 엄살이 아닌 걸 느끼고 놀란다. 세원 그럼 (앞에 있는 객차 가리키며)일루 타면 되잖아요. 진영 안돼요. 난 3호차예요. 세원 일루 타서 3호차로 건너가면 되잖아요. 진영 안돼요. 3호차에 타야 돼요. 세원 그럼 기차 놓쳐요, 그냥 타요. 진영 (완강히 고개 젓는) 기석 (출입구에서 내다보며)야, 김세원! 뭐해 안타고. 땡땡이 칠 거야? 세원 금방 가! 기차 좀 붙잡고 있어! -세원, 용접공한테 달려가 뭐라뭐라 얘기한다. 그러자 진영을 힐긋 돌아보는 용접공. -기차가 느리게 떠나기 시작한다. 세원, 몸이 달아 설득하는데 열 올리고. -힘들어하는 진영 위로 들리던 용접소리가 뚝, 멈춘다. 그러자 고개 드는 진영. 세원 (움직이는 기차에 올라타며)얼른 타요, 얼른! -진영, 3호 객차를 향해 달려간다. 세원 (안타까움)위험해요! 아무데나 타요! -그러나 일편단심 3호 객차를 향해 달리는 진영. -세원, 안타깝게 발 동동 구르고. -진영, 간신히 3호 객차에 올라탄다. -털썩 기대며 안도하는 세원. #12 3호 객차(동) -진영,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데. 세원 (옆에 서서 토라진 척)미워서 바퀴벌레 집어넣었어요, 이따시만한걸루. 진영 (입에 머금은 채 욱!) 세원 (등을 탁 치며)어우 농담이에요, 농담. 진영 (등을 치이는 바람에 꿀꺽 삼키는) 세원 (깔깔 웃고는)그래두 아깐 얼마나 미웠는 줄 알아요? 하여간 목숨 걸고 고집 부리는 사람 첨이라니까? (하다가 뭔가를 보고는)어! (갑자기 진영의 손목을 잡아채 창 밖을 향해 마구 흔든다) 진영 (놀라고 어리둥절한 채 창 밖 보면) -아기를 안은 40대 여인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세원 (손 놓고 자연스럽게 옆에 앉으며- 진영은 조금 당황스런 표정으로 옆으로 살짝 비켜앉는다. 싫은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우리 기관사 아저씨 사모님인데 아저씨가 운행할 때마다 항상 저렇게 나와 계세요. 보기 좋죠? 진영 (그렇구나! 기분 좋아져 저 혼자 창 밖 보고 손 흔든다) 세원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진영의 손을 내리게 한다)지나갔잖아요. 진영 (무안해 세원 보고 씩 웃는) 세원 어? 나 봤다! 방금 나랑 눈 맞췄어요! 진영 (무심결에 한 행동이라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다시 시선 비킨다) 세원 (에구 이런 순둥이,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진영씬 꼭 기린 같아요. 근데 매일 뭘 듣는 거예요? -진영, 목에 걸려있던 헤드폰을 세원의 귀에 씌어주고 cd player의 버튼을 누른다. -(E)째즈피아노곡. (후에 진영 음반의 타이틀곡이 될) -세원, 음악에 취해 듣고. -그런 세원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진영. 세원 (헤드폰 벗으며)무슨 곡이에요? 되게 좋다. 진영 (휘둥그래지며)정말 좋아요? 세원 실은요, 나 이런 거 잘 몰라요. 영 젬병이거든요. 그래도 이건 좋네요. 진영 (기분 좋으면서도 수줍게 웃는다)... 세원 ? 왜 웃어요? 진영 (쑥스러운)그거... 내꺼예요. 내가 지었어요. -(E)노랫소리 #13 상우의 스튜디오(동) -녹음실 안에서 아가씨 하나가 우스꽝스런 광고음악(음료나 과자)을 녹음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하고 있는 상우. 옆에 앉아 온 촉각을 곤두세워 듣고 있는 진영, 뭔가 맘에 안드는 듯 찡그린 채다. 상우 (스톱 시키고 진영 보며)또 뭐가 맘에 안드는데. 진영 (이게 아닌데...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자기 머리를 콩콩 찧는다) 상우 말을 해, 말을. 하 짜식... 진영 (갸웃)신이 안나요. (긴가민가)아가씨 배고픈가봐요. 상우 ? (녹음실 마이크 켜고)너 점심 먹었냐? 아가씨 (어리광)점심은 무슨, 오늘 한끼도 못먹었는데. 상우 (황당한 표정으로 진영을 돌아보며)니가 나보다 낫다. -진영과 상우 뒤편으로 김밥을 먹고 있는 아가씨 보이고 상우는 진영을 한창 설득하는 중이다. 상우 (답답한)한울 김실장이 누구냐. 이런 기회가 맨날 오는 줄 알어? 여자랑 기회는 왔을 때 확 잡아채는 거야. 괜히 어물쩡하다간 남의 밥 된다니까? 야, 근사하지 않냐? 최진영 1st 앨범! (단정적으로)내일 곡 가져와, 당장 작업 들어가게. 알았지? 진영 (고개 숙인 채 배시시 웃으며 고개 젓는다)... 상우 (지친다)... 왜에, 도대체 왜 싫은데. (갑자기 꽥)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말을! 진영 (흠칫 놀라는) 상우 (그럼 더 입을 다물 거라는 걸 안다. 화 나는 거 참으며 얼른 태도 바꾼다)미안 미안. 정말 미안하다. 마음 넓은 니가 이해해라. 응? 그러니까 말인데, 왜 음반 내기 싫은 건데? 응? 진영 (고개 수그린 채 말을 할 듯 말 듯)... 상우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만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다) 진영 아무도 안사가면 슬프잖아요. 상우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그 말 들을려고 두달씩이나 기다린 거네? 진영 (무안하게 웃는) -상우, 갑자기 쇼파에 몸을 던지더니 으아~ 괴성 지르며 머리를 퍽퍽 박는다. -놀란 채 보는 진영. #14 달리는 전동차 안 -입구에 기대어 바짝 밀착한 젊은 커플. 남자가 선물로 준비한 핀을 여자에게 꽂아 준다. 행복에 겨운 그들에게서 카메라 빠지면 시선 거두어 앞을 보는 진영. 3초 쯤의 사이를 두고 비시시 웃는다(나도 머리핀 선물해야지 하는 생각에). #15 청량리역 홍익회 사무실 앞(동 오후) -창 너머로 서너명의 직원이 모인 책상에 각종 전, 잡채, 과일, 떡, 음료수 등 제수 음식을 펼치고 있는 세원 보인다. 직원들, 뭐라 한마디씩하며 달려들고 세원은 '많이 드세요' 하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진영, 창 너머로 보고 있다가 세원이 이쪽으로 향하자 얼른 자세 바로 한다.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나오는 세원. -진영, 평소의 그녀가 아니라는 생각에 의아한데. -세원, 진영을 발견하더니 갸웃하며 다가온다. 세원 나 기다렸어요? 진영 (걱정스런 얼굴로 끄떡끄떡) 세원 (말 자르며)나 배고픈데 국수 좀 사줄래요? #16 청량리역 앞 홍익회 국수집 -국수쟁반을 들고 자리로 가 앉는 세원. 뒤따라 국수쟁반 들고 오던 진영, 나란히 앉은 연인을 지나치며 유심히 보더니 세원의 옆자리에 앉는다. 세원, 의아하게 쳐다보면,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슬그머니 앞자리로 가 앉는 진영. -표정없이 국수만 먹는 세원. -진영, 안색을 살피다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온갖 잡동사니가 얼핏얼핏 보인다. 치약, 칫솔, 비누, 작은 타월, CD 플레이어, CD 케이스들, 한꾸러미의 종이, 오선지 노트, 중고생용 필통, 마시다 만 생수통... 드디어 껌 하나를 꺼내 세원 에게 내민다. 진영 머리 아프면 이거 씹어요. 세원 (피식 웃으며 받고는)나 안아파요. (국수 먹는) 진영 (아픈 거 같은데... 시무룩하고) 세원 (보더니 피시시 웃는다. 담담하게)어제 우리 엄마 아빠 기일이었거든요. 참, 나 고아예요. 초등학교 때 두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진영 !... 세원 근데... 큰아버지도 안오시고, 해마다 와주던 친구들도 안오고... (목이 메여온다) 왜 나만 빼고 다들 바쁜 지 몰라... 나 요리 참 잘해요. 전도 잘 부치고, 나물도 잘 무치고... 근데 제수음식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눈물 뚝 떨어진다) 진영 !!!... -세원, 소리없이 굵은 눈물을 떨군다. -그녀가 운다. 진영,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그녀를 봤다가,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젓다가, 다시 그녀를 봤다가... -세원, 눈물을 쓱 닦더니 눈물 보여 미안하다는 듯 씨익 웃는데. -진영, 눈을 짜부라트려 우스꽝스런 인상을 짓는다. -킥 웃음 터트리는 세원. -진영, 세원이 반응을 보이자 기분 좋아져 음수대로 간다. -진영, 쟁반에 일곱 개의 물잔을 갖고 온다. -세원, 왜 저러지? 의아한데. -국수 그릇 치워진 자리에 나란히 놓인 일곱 개의 물잔. 물의 양이 조금씩 다르다. 물잔을 각각 젓가락으로 톡톡 쳐서 음을 캐치하는 진영. 세원 ?... 지금 뭐하는 거예요? -진영, 물잔을 톡톡 치다가 이윽고 멜로디를 탄다. 젓가락 행진곡이다. -세원, 연주에 몰두해 있는 진영을 홀린 듯 바라보고. -진영, 연주를 끝내고 세원을 돌아본다. 세원 (웃으며)나 이제 정말 안아파요. 진영 (용기 백배, 가방에서 핀을 꺼내 수줍게 내놓는다) 세원 ?... 나 주는 거예요? 진영 (수줍어서 못보고)네... 세원 (핀을 꽂는다. 진영 보며)이뻐요? 진영 (봤다가 자신이 선물했다는 사실이 쑥스러워 다시 고개 숙이며 끄덕이며)해도 이쁘고 안해도 이뻐요. 세원 (그런 그가 애틋해진다)... 그거 알아요? 진영씬 참, 특별한 사람이에요. 진영 (더 쑥스러워져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 #17 강촌역(또는 노을이 잘 보이는 역이나 중간지점, 해질녁) -열차 멈춰 있고 저만치 앞에 뭐가 잘못됐는지 수리반과 역무원들이 모여 웅성 거리고 있다. 기다리다 지친 승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바람을 쐬고 있다. 세원 (E)내 소원이 뭔지 알아요? -노을과 마주하고 있는 진영과 세원. 세원 창경원에 가보는 거예요, 지금은 창경궁이지만. 우리 아버진 창경원에서 동물 우리를 관리하시던 분이었어요. 덕분에 난 여덟살 때까지 창경원에서 자랐어요. 원숭이랑 낙타랑 기린이랑 친구하면서요. 기린이 목겨루기하는 것도 보고 짝 잃고 수절하는 거위도 보고... 진영 ...... 세원 (웃는 얼굴이지만 쓸쓸함이 배어있는)난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그래서 갈 수가 없어요. 이젠 동물들도 아버지도 없으니까요. 근데... 한번쯤은 가보고도 싶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가 벗나무를 한그루 심으셨거든요. 그땐 키가 요만 했는데... 이젠 많이 자랐겠죠? 진영 ... 내 소원은 슬플 때 우는 거예요. 난 눈물이 없거든요. 세원 (돌아보며)?... 진영 난 원래 똑똑한 아이였대요. 말도 잘하고 한글도 잘쓰고. 근데 다섯 살 때, 예방 주사를 맞고나서부터 달라졌대요. 그때 아마 눈물샘도 말랐나봐요. 세원 그럼 내 눈물을 훔쳐가요. 난 눈물이 많거든요? 진영 훔치는 건 나빠요. 세원 (진영의 어깨를 치며 웃는데) -후두둑 쏟아지는 비. -열차로 뛰어가는 진영과 세원. #18 3호 객차(동) -진영, 눈 내리깐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있다. -진영의 자리와 앞자리가 마주한 채, 20대 후반의 껄렁한 남자 셋이 왁자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다. -진영, 말도 못하고 난감하게 서있는데 33호석에 앉은 남자가 진영을 꼬나본다. 남자1 술 마시는 거 처음 보나... 진영 !... 저기... 거기 제 자린데요. 남자1 자리 많잖아요. 딴 데 앉아요, 딴 데. (복도 옆 빈자리 가리키며)저기 앉으면 되겠네. (저희들끼리의 얘기에 낄낄대며 웃고) 진영 (의기소침) ... 남자1 (아직도 서있는 걸 보고는)아이 참, 거 아무데나 빈자리 앉으시라니까. 진영 거기 앉아야 되는데... 남자2 고래심줄을 삶아먹었나, 거 참 고집 쎄시네. 우리 간만에 바람 쐬러 갔는데 기분 좋게 갑시다 에? 진영 (고집스럽게 서 있는) 남자1 (같잖다는 듯 웃고는 선심 쓰듯 34호석으로 옮겨앉는다)앉으슈, 보물지도라도 숨겨놨나본데. -진영, 33호석으로 들어가 앉는다. 긴장감에 무릎에 두 손 모아 얌전하게 앉아 있는데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남자들, 그런 진영을 보고는 '맛이 간 놈 아냐?' 등등 숙덕이며 낄낄댄다. -마음 상한 진영, 얼굴이 벌개진 채 얼른 손으로 꾸욱 누른다. 의지와 반대로 떨리는 다리를 누르는 그 손이 안쓰러운데. 남자1 (E)어이 커피! 진영 !... 남자1 (E)석 잔만 줘봐요. -세원, 커피 타며 상황파악 하고는 마음이 안좋다. 남자2 (이름표 보고)김세원이라. 이름 좋네. 남자1 내 옛날애인 이름이 세원이었는데, 니들 기억 나냐? 왜 있잖아, 은행동 단란주점에 가슴 빵빵한 애. 남자3 가슴만 빵빵하냐, 엉덩이는 남산만 했지. -진영의 미간이 꿈틀댄다. 남자1 아가씨, 이것도 인연인데 술 한잔 받으슈. (술잔 내미는) 세원 죄송합니다, 근무중이라서요. 남자1 아차차 근무중이지. 그럼 우리 연애나 한번 해볼까? 세원 (애써 담담히)죄송합니다 손님. 승객이랑 연애하면 짤리거든요. 남자1 (걸판지게 웃고는)아가씨 유머 있네, 응? (손목 잡으며)그러지 말고 우리 잘해 보자구. 짤리면 내가 책임 진다니까? 세원 (손 빼내려하며)다른 승객들한테 피해가 가는 행동은 삼가해주세요. 남자1 우리가 뭘 어쨌다구? 이리와봐. -남자1이 확 잡아채는 바람에 중심 잃고 남자의 무릎에 앉게되는 세원. 비명 지르며 하얗게 질리는데. 진영 (벌떡 일어나며)그러지 마세요! 세원 !!! 남자1 ? 넌 뭐야? 진영 (다리 떨린다)그, 그럼 아프잖아요. 남자1 허, 이단옆차기라도 보여주실라우? 발모가지가 근질근질한가본데 왠만하면 참으시지, 응? 세원 (잡아당기며)진영씨 우리 딴 데 가요, 딴 데 갔다가 이따 와요. 남자1 얼랄라? 둘이 사귀나본데? 어이 형씨, 당신 (새끼손가락)이거야? 세원 (분 삭이는 진영을 끌어내는)나가자니까요! 남자1 육갑들 떨고 있네. 세원 (눈에 불 붙어 남자1을 휙 노려보면) 남자1 (진영 보며 비웃는)등신 같은 게 어디서 여잔 하나 꿰차가지구. 세원 (그 순간 뺨 올려붙인다) 진영 (휘둥그래지는) 세원 누가 등신이야, 누가! 이 사람은 훌륭한 음악가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 가라구! (분하고 서러운 눈물 흐르는)사과해 어서! 어서! 남자1 이게 미쳤나. (세원의 뺨을 때리고) -진영, 쓰러지는 세원을 보자 꼭지 돈다. 전광석화처럼 남자1에게 온 몸을 던져 주먹질을 해대고 삽시간에 싸움판이 된다. #19 춘천역 플랫폼(동 밤) -비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상처투성이 진영.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은 상태다. 우산 들고 총총히 쫓아오는 세원. 세원 (우산 씌어주며)이거 쓰고 가요. 진영 (우뚝 멈춘다) 세원 (말없이 우산대 내민다) 진영 (시선 떨군 채)난 훌륭한 음악가가 아녜요. 세원 ?... 진영 난... 난... (가슴이 턱 막혀온다) 세원 (그 안타까움이 전해져 오는 듯 아프게 보는) 진영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휙 돌아서는데) 세원 (얼른 잡는다. 나즈막히, 그러나 단호하게)진영씬 대단한 사람이에요. 왠줄 알어요? 난 진영씨만 보면 수다장이가 되니까요. 진영씨처럼 내 입을 많이 열게 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누가 뭐래도 나한텐 진영씨가 최고예요. 진영 (돌아본다. 똑바로 보며)... 사랑하진 않잖아요. 세원 (뜻밖인)!!!... 진영 (가만 보다가 팔을 뿌리치고 간다) 세원 (멍하게 보는) -빗 속의 그들의 모습 부감되면서 피아노 소리. #20 진영 집 전경(동 밤) -세찬 빗속에 2층 진영의 방에만 불이 켜져 있다. 피아노 소리. #21 진영 방(동 밤) -피아노 치고 있는 진영. 마음이 산란해 틀린데서 또 틀리고 또 틀리고 하다가 쾅! 건반을 내리친다. -거울로 보이는 진영의 몸. 허리께에서 멈췄던 시선이 올라가면 가슴께가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목덜미. 거기서 멈춘 진영의 시선... 끝내 보지 못하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22 달리는 3호 객차 안 -자기 자리에 앉아 창 밖 보고 있는 진영. 그런 진영을 화난 듯 쳐다보고 있는 세원. 세원 정말 이럴 거예요? 진영 (창 밖만 보며) ... 세원 (약 오른)쫀쫀하다 정말. 남자가 그깟 일로 일주일씩이나 꿍해 있구. (그래도 반응 없자 한숨 쉬고는 옆에 앉는다)나 호남선 배치 받았는데 이별인사도 안할 거예요? 진영 ! (그제야 돌아본다) 세원 광주, 목포까지 가는 기차 있잖아요. 다음주부턴 그거 타요. 진영 !!! (놀란 사슴처럼 보는) 세원 (그 눈빛을 보니 마음 아프고)그러지 마요, 내가 가끔 놀러올께요. 아님, 진영씨가 호남선 타러 오든가. 진영 (슬픔이 차올라 고개 떨궈지고) 세원 (안쓰럽게 보는)... #23 진영 집 주방 -진영모, 요리하고 있고 진영은 식탁에 반찬이나 수저를 놓고 있다. 진영 (눈치 한번 보더니 짐짓 무심한 척)나 서울에 방 하나 얻어줄 수 있어? 진영모 !... (돌아보며)방은 왜? 진영 혼자 살아보고 싶어. 엄마 !... 왜 갑자기? 전엔 미리 얻어놓고 가라 그래도 싫다 그러더니. 진영 그땐 싫었고... 지금은 좋아. 엄마 (속내가 뭔가 살피는)너 혹시... 진영 (들킬세라 외면하고) 엄마 (그러자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충 감이 오는 듯 웃으며)그래,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얻어줄게. 어디다 얻을까? 상우네 스튜디오 근처에 얻는 게 낫겠지? 아파트를 얻을까, 원룸을 얻을까? 진영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24 춘천역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역사로 향하고... #25 열차 안 -바닥의 쓰레기를 주워담던 세원, 허리 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진영이 우뚝 서 있다. 세원 (곱게 흘기며)뭐예요, 놀랐잖아요. 진영 (빤히 보는) 세원 (다시 쓰레기 주우며)청소하는 아줌마가 몸살이 나셨대요. 여기만 하면 끝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진영 나 서울에 아파트 얻을 거예요. 세원 (돌아보며)이사 가요? 진영 네, 나만요. 이젠 나 혼자 살거거든요. 세원 ? 갑자기 왜요? 진영 우리 창경원 가요. 세원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하다)네? 진영 거기 가보는 게 소원이라면서요. 가서 벗나무가 얼마나 컸는지도 보고... 그리구... 세원 (나 참, 황당하다는 듯 웃고는)좋아요, 가요. 진영 (그러나 마주 보는 눈빛이 복잡하다) 세원 (의아함에 웃음 가시는) 진영 ... 혹시... 내가 불쌍해서 이러는 거라면... 안가도 좋아요. 세원 !... 진영 (눈길 피하는) 세원 ...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듯) -(플래쉬백)'사랑하진 않잖아요' 하던 진영. 세원 (이제야 오늘 그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서울로 오는 거... 혹시 나 때문이에요? 진영 ... (보며 망설이는) 세원 (보며)맞아요? 나 때문이에요? 진영 (시선 피하며)네... 세원 !... (일순간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진다) 진영 (불안해져서는)창경원... 나랑 가기 싫어요? -세원, 대답 못하고 갈등한다. 예스라고 하면 관계가 발전되는 결단의 순간이므로... -진영, 그녀의 대답없음에 힘이 빠진다. 아니구나... 혼자 단정하고 등을 돌린다. -세원, 아직 결정을 못해 잡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본다. -힘없이 나가는 진영. -세원, 창 밖 진영의 모습을 좇는다... 자석에 이끌리듯 창 밖 그의 모습을 보며 나란히 걷는다. #26 춘천역 플랫폼 -축 쳐진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진영. #27 다른 객차 안 -여전히 창 밖 진영을 보며 나란히 걷는 세원. -(플래쉬백)부끄러워 눈도 못맞추고 배시시 웃기만 하던 진영, 껌을 내밀고, 물잔 연주에 몰두하고, 머리핀을 주며 쑥스러워 하고, 호남선을 탄다고 하자 너무나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우뚝 멈추는 세원. 눈빛이 흔들린다. -멀어져가는 진영의 뒷모습... -세원, 극심히 갈등하다가... 뛰어간다. #28 플랫폼 -진영 걸어오는데 어느새 출입구로 뛰어내려 가로막는 세원. -진영, 놀란 듯 보고. 세원 김밥 좋아해요, 샌드위치 좋아해요? 진영 ?... 세원 창경원 갈 때 싸갈려구요. (활짝 웃어준다) 진영 ... (그제야 미소 감돈다) -(E)경쾌한 음악. #29 세원의 방 -초밥을 유부에 꾹꾹 눌러담는 세원. 찬합에 유부초밥을 이쁘게 담고, 보온병에 따끈한 녹차를 담고, 피크닉 가방에 찬합과 과일과 보온병을 넣는다. #30 진영의 방 -가방을 매며 나가려던 진영, 멈칫하더니 거울 앞에 선다. 서서히 고개를 들고... 드디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살짝 웃어주고 나가고. #31 청량리역 플랫폼 -3호 객차 출입구로 올라가는 진영. 곧 다시 내리더니 옆 객차 출입구로 올라간다. 객차와 객차 사이를 통과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진영의 모습 보이고. #32 창경궁 앞 일각 -부지런히 걸어오는 진영. 그러나 문득 미간을 모으더니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몇발짝 더 가다가 도저히 못견디겠는지 멈추어 앞을 보면, -길을 거의 가로막은 채 공사가 벌어지고 있고 드릴이 땅을 파고 있다. -(E)강력한 드릴 소리. -두 귀를 막은 채 뒤 돌아가는 진영. #33 달리는 택시 안 -피크닉 가방을 품에 안고 기대감에 들떠있는 세원. #34 근처 약국 -진영, 솜을 뜯어 정수기의 물을 살짝 묻혀 똘똘 뭉친 다음 한쪽 귀를 막는다. 다른 쪽 귀도 막고. #35 몽타쥬(창경궁 앞) -달려와 멈추는 택시. 세원, 계산하려고 피크닉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지갑 꺼낸다. -달려오는 진영. -세원, 안녕히 가세요 하며 택시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선다. 들뜬 표정. -진영, 달려오다가 멈춘다. 저만치 앞에 보이는 공사현장. -파란불 켜진다. 세원, 서둘러 건너간다. -귀를 막은 채 전속력으로 공사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진영. -건너편에 다달은 세원, 마악 인도에 올라서는 순간! -(인써트)택시에 놓고 내린 피크닉 가방. -앗차! 휙 돌아서서 차도로 내려가는 세원. -빠르게 달려오는 버스. 크랙션 소리와 급정거하는 소리! -땅을 파고드는 드릴(소음의 극대화) -공사현장을 지나쳐 달려가는 진영. -차도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세원. 반쯤 감긴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에게로 줌인되면서 진영이 들려줬던 음악이 아름답게 들려온다. 마치 음악이 들리는 듯 미소 감도는 세원. -창경궁 안. 아무것도 모른 채 연못을 향해 달려가는 진영. -세원의 눈이 사르르 감기면서 음악도 끊기고 무음 상태. -(무음상태에서)연못가에 이르자 가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는 진영. 그 들뜬 얼굴에서 F.O #36 서울역 대합실(F.I) -북적대는 대합실 풍경. 그 풍경 속에 못박힌 듯 서서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진영. 시선 따라가면, 호남선 개찰구와 그 위의 전광판... 진영, 호남선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고싶다는 열망의 눈빛... 그러나 곧 어깨를 늘어뜨린 채 돌아서서 간다. #37 3호 객차 -슬픔 가득한 채 33호석에 앉아있는 진영.... 그 앞으로 쑥 내밀어지는 음료수. 진영, 돌아보면 기석이다. 기석 제가 그냥 드리는 거예요. 진영 ... (받는다) 기석 (조심스레)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진영 (내가 버림 받은 걸 아는구나... 그녀가 야속하고) 기석 참 좋은 애였는데. 진영 ... 호남선 기차는 여기보다 더 좋은가요? 기석 예? 진영 호남선 기차는 여기보다 더 깨끗하고 시설도 좋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탔으면 좋겠어요. 기석 (황당한)글쎄요... 그렇겠죠. (지나치면서 고개를 갸웃) 진영 (그녀의 일터가 그랬으면 하는 바람 뿐)... #38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아 한가하게 잡지책 보고 있는 세원. 문득 고개 들면. -환자복 입고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은 다섯살쯤 된 여자아이가 괜히 벽에 몸을 부비며 빤히 세원을 쳐다보고 있다. -세원, 진영이 그랬던 것처럼 눈 끝을 짜브라트려 우스꽝스런 인상을 짓는다. -까르르 웃는 아이. 세원 언니가 사탕 줄까?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 꺼내 건네면) -받아들고 부끄러운지 낼름 도망가는 아이. -웃고는 다시 잡지책 보는 세원. 그 위로 '김세원씨' 부르는 소리 들리지만 반응 없다. 다시 '김세원씨' 하는 소리. 곧 이어 세원의 어깨를 치는 간호사. 그제야 올려다보는 세원. #39 진료실 -스피커에서 청력테스트용 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는 더 정밀한 테스트) -세원, 보청기를 낀 채 청력테스트를 받고 있다. 들리지 않는 듯 무반응... #40 홍익회 락카룸(동) -캐비넷의 소지품들을 쇼핑백에 담는 세원. #41 홍익회 사무실 앞 -기석, 담배 피우고 있다가 세원이 나오는 거 보고 꽁초 버리는데. -세원, 오다가 휘청하며 벽에 기댄다. -기석, 얼른 달려간다. 기석 괜찮아? 세원 (씩씩하게 웃어주며)귀를 다치고 나니까 좀 어지럽네? 귀가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 오빠도 조심해. 이쑤시개로 막 후비지 말구. 기석 (속상해 웃지도 못하고) 세원 너무 걱정하지 마, 수술하면 된대. 결과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난 운이 좋은 애니까 잘 될 거야. 난 정말 운이 좋은 애야. 안그랬음 죽었거나 식물인간이 됐을 텐데 봐, 귀만 좀 다쳤잖아. 수술비도 걱정 없어. 좀 있다 퇴직금 나오면 해결될 거야. 정말이야, 난 괜찮아. 기석 (안심시켜주려 웃어주는) 세원 진영씨... 잘 지내지? 기석 (아닌데... 하지만 끄떡여준다) 세원 아까 부탁한 거 꼭 지켜줘. 내 얘기... 절대 하면 안돼? -기석, 안스럽게 보다가 메모지에 뭔가 적어 내보인다. '꼭 그래야 돼? -그저 웃어주는 세원. #42 진영 아파트 (낮) -거실에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진영모, 베란다 세탁기 위에 세탁기 사용법을 붙이다가 문득 거실 쪽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진영, 이삿짐 정리할 생각은 안하고 선 채로 피아노 건반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치고 있다. #43 번화가 사거리 -오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미용실 쿠폰을 나눠주고 있는 세원. 하지만 대부분이 뿌리치며 그냥 가거나 받아서 곧장 버리거나 한다. 마음 상해도 꿋꿋하게 나눠 주는 세원. 한 아가씨가 쿠폰을 받아가더니 돌아온다. 아가씨 여기 위치가 어디예요? 세원 !... 아가씨 여기가 어디냐구요. 세원 (무안하게 웃기만 하는) 아가씨 (이상하게 보더니 가면서 쿠폰을 구겨 버린다) 세원 (그걸 보고는 착잡해진다) #44 진영의 아파트 -라면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는 진영. 가스를 켜지만 불이 안붙는다. 계속 시도해도 소용 없고. 그러나 잠겨져 있는 코크. -진영, 어지러진 거실 한가운데 대자로 드러누운 채 생라면을 뜯어먹고 있다. #45 홍익회 경리실 -퇴직금 수령 서류에 싸인하고 퇴직금 봉투를 확인하는 세원. 그때 책상위로 똑 떨어지는 머리핀. 플라스틱 부분이 동강 나 있다. 세원, 핀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46 청량리역 광장(동) -힘없이 걸어오던 진영, 문득 멈춰 앞을 뚫어지게 본다. -세원, 마주 걸어온다. -바라보는 진영,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원, 진영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멈춘다. -진영, 세원의 머리를 본다. 핀이 없다. 가슴 한쪽이 베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세원 (마치 그가 보청기를 보는 것만 같아 얼른 머리카락으로 보청기를 가린다)... 자,잘 지냈어요? 진영 (가슴이 먹먹해 보기만)... 세원 (들리지도 않는 질문을 할까봐 자기 말만 수다스럽게 하는)난 잘 지내요. 거기 사람 들이 잘해주거든요. 이번 달엔 모범종사원으로 뽑혀서 호봉도 올랐어요. 어쩜 승진 할지도 몰라요. 진영 ... 축하해요. 세원 (시선 피한 채)그 날 안나간 거... 미안해요. 그치만 잘 한거 같아요. 아무래도 우린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진영 ... 세원 나 약속이 있거든요. 먼저 갈께요. (눈인사하고 가는데 휘청 중심을 잃는다) -반사적으로 부축하는 진영. -얼른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영의 손을 휙 뿌리치는 세원. -진영, 놀란 채 얼어버리고. 세원 (무심결에 한 행동에 자기도 놀란)... 미안해요. (미안한 마음에 웃으며)진영씬 음반 안내요? 그럼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을 텐데... 진영 !!!... 그럼...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세원 (본다. 빨리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막막할 뿐) -당혹스러운 세원. 그녀의 시점으로 그럼 되냐고 재촉하는 진영의 간절한 표정만 보일 뿐 모든 음향 off 된 상태다. 진영 (소리 on 되면서 앞엣 말에 이어지는)그럼, 그럼 되죠? 세원 (난감한 표정이다가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진영 !!!... (서서히 환해지는) #47 거리(동) -숨 가쁘게 달려오는 진영. #48 스튜디오 -우당탕 들이닥치는 진영. -소파에 드러누워 자던 상우, 깜짝 놀라 '뭐야 뭐' 하며 일어나고. -진영, 가방에서 CD 꺼내 건네는데 숨이 가쁜지 마음이 가쁜지 가슴이 들썩거린다. #49 몽타쥬 -스튜디오. 녹음실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진영. 녹음하는 상우. -벽에 붙은 메모를 보며 세탁기를 조작하는 진영. 작동하자 좋아서 손뼉 치고. -가스줄 코크가 열린다. 그러나 막상 불을 켜려니 겁이 난다. 몸을 잔뜩 빼고 팔만 뻗어 간신히 스위치 돌리다가 불 붙으면 깜짝 놀라고. -씽크대가 재료들로 난장판이다. 요리책을 봐가며 신중하게 호박을 썰고. -공장. CD가 과자 찍히듯 찍혀나오고. -남성 캐쥬얼 매장. 옷을 고르는 진영. 세원 (E)진영씬 왜 매일 똑같은 옷만 입어요? 진영 (E)매일 다른 옷을 입는 건 너무 힘들어요. -브라운 계통의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보는 진영. 세원 (E)진영씬 브라운 계통의 옷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따뜻한 느낌이 나는 니트 같은 걸루요. -카운터에 옷을 올려놓고 지갑 여는 진영. 그러나 지갑이 텅텅 비어있다. -은행.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집어넣는 진영. 하지만 다음에 어떡해야 할 지 몰라 화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이번엔 아저씨가 하는 걸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진영. 째려보는 아저씨. 왜 째려보지? 하는 표정으로 물러나는 진영. -메모판에 붙어있는 메모지 한 장 '카드로 돈 꺼내는 법 물어보기' #50 거리(낮) -바람에 낙엽이 우르르 휩쓸려간다.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 -레코드점에 붙어있는 포스터(구석진 곳에). 앨범포스터에 'Thanks to...'타이틀이 붙어있고 하단에 작게나마 진영의 사진이 실려있다. #51 미용실 앞(낮) -막상 들어서지 못하고 안을 기웃기웃 살피는 진영(새옷 입은). 여대생들이 소란 스럽게 올라오자 한쪽으로 피했다가 다시 살피는데... 주인 (E)누구 찾으세요? 진영 (놀라 유리문에서 얼른 떨어진다) 주인 손님 찾아오셨어요? 진영 (시선 피한 채 고개 젓는다) 주인 (수상쩍게 훑어보다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진영 (다급히)김세원씨를 찾는데요. 주인 (돌아보며)김세원씨요? 그런 사람 없는데요? 진영 기석씨가 여기 있다고 (하다가 눈 앞에서 문이 닫히자 우물쭈물하는데 다시 문 열린다) 주인 쿠폰 나눠주는 아가씨 같은데, 귀머거리 아가씨 맞죠? 조 밑에 사거리 가보세요, 거기 있을 거예요. (문 닫힌다) 진영 ?... (혼잣말)귀머거리 아닌데... #52 미용실 근처, 사거리(밤) -걸어오다 멈춰 표정 환해지는 진영. -저만치 앞에서 부지런히 쿠폰 나눠주고 있는 세원. 그러다 문득 진영을 발견하고는 흠칫! 아주 잠깐 반가운 미소가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 싹 사라진다. -웃어주던 진영, 의기소침해진다. #53 커피숍(동) -마주앉은 진영과 세원. 어색한 분위기... 세원 (찻잔만 만지작거리는)... 진영 (왠지 거리감이 느껴져 말문이 막힌 채로 똑같이 찻잔 만지작거리다가)... 기차... 왜 그만뒀어요? 세원 (고개 들어 보며)옷이 잘 어울려요. 진영 (쑥스러운) 세원 ... 난 지난번에 얘기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찾아온 거예요? 진영 ?... 세원 진영씨 내 말을 이해 못한 거 같은데... 여자가 남자한테 친구로 지내자는 건... (심호흡하고)그건 싫다는 뜻이에요. 진영 (선뜻 이해가 안가 말뜻을 가늠해보는 표정)... 세원 진영씨 말이 맞았어요. 그동안 난 진영씨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 날 막상 나갈려고 하니까 겁이 났어요. 진영씨랑 끝가지 간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들지 빤히 보이더라구요. 아무하고나 어울릴 수도 없고, 아무데나 갈 수도 없고, 그러 면서 고집은 쎄구... 진영 (힘겹게)나 봐요, 나 보고 얘기해요. 세원 (외면한 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가며)그래요, 나 그런 사람이에요.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고... 진영씨한텐 정말 안어울리는 여자예요. 그러니까 진영씬 다른 여잘 찾아요. 진영 (절망이 분노로 바뀐다. 버럭)나 보고 얘기해요! 얘기할 때 딴 데 보는 건 나쁘다 그랬잖아요! 세원 (모른 채)그리구 사람들이 진영씰 이상하게 쳐다보면... 이렇게 말해요. 난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이 문제죠?... 다시 만나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우린... (목 메이는 거 참고)좋은 친구였으니까요. 진영 (절망적인)... 세원 ... 먼저 갈게요. (일어나는데) 진영 (손목 탁 잡는) 세원 !... 진영 (세원의 손에 CD를 쥐어준다) 세원 (CD 표지에 실린 진영의 사진을 보고 눈빛이 흔들린다) 진영 음반도 내고 아파트도 얻었어요.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젠 세탁기도 잘 돌려요. 옆에 누가 앉아도 무서워하지 않고, 매일 다른 옷도 입을 거고, 앞으론 더 노력할 거예요. 사람들이 왜 나랑 다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지, 많이 보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 하고 같아질게요. 세원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절박한 표정을 읽고는 간신히 참아낸다) 진영 (눈가가 젖어오면서 목이 메인다)내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했잖아요, 내가 최고 라고 했잖아요. 이젠 고집도 안부릴 거예요. 세원씬 좋은 사람이니까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목이 턱 막힌다)세원씨가 원하는 대로 하고... 세원씨한테 어울리는 남자가 될께요. 그래도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면, 세원씨 말대로 할게요. 난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이 문제죠? (세원과 눈 맞추는데 눈물이 흐른다)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세원 (미칠것만 같은 심정이다. 간신히 참아내며)... 진영씬 눈물이 없다면서요. 난 그래서 좋았는데... 난 눈물 많은 사람 싫어요. (금방이라도 울음 터질 듯한데) 남자 (E)세원아. 진영 ?!!! (천천히 돌아보면) -잘 생긴 양복쟁이가 다가온다. -진영, 의아하게 세원을 본다. 남자 여기서 뭐해, 사람 기다리게 해놓고. (진영을 눈짓하며)누구야? 진영 ? (세원을 보면) 세원 (진영에게)나 이사람이랑 결혼해요. 진영 !!! -세원, 남자의 팔짱을 끼며 나간다. -참담해지는 진영. #54 지하철 플랫폼 &3호 객차 -세원, 경계선에 서서 전동차 들어오는 쪽을 보는데 순간 어지러움! 벽도, 전동차의 헤드라이트도, 주위의 사람들도 기묘하게 요동친다. -눈가 젖은 채 공허한 진영의 눈빛. -세원, 머리를 짚은 채 앞뒤로 흔들흔들한다. -#12. 그녀와 처음 눈 맞추며 웃던 진영. -#6. 실은 나 무서운 사람인데 하며 장난 치던 세원. -추억이 되살아나 표정 일그러지는 진영. -전동차는 더 가까워져 오고, 중심 잃은 그녀의 상체가 선로 쪽으로 휘청. -#16. 물잔연주를 하던 진영. -더 가까워져 오는 전동차. 자칫하면 부딪힐 순간, 역무원이 세원을 낚아채며 쓰러진다. -#18. 깡패들에게 항변하던 세원. -기어이 눈물 흘리는 진영. -역무원, 세원을 일으키며 야단친다. '아가씨 미쳤어? 죽을려면 집에 가서 곱게 죽어. 어디서 밥줄 끊을라구' 그러나, 눈만 깜빡이며 쳐다보는 세원의 귀에는 무음 상태. 그런 세원을 미친 여자 보듯 하며 가는 역무원. -진영, 끅끅 참았던 울음을 토해낸다. -세원, 벤취로 걸어가 앉는다. 귀에서 보청기를 빼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가슴이 들썩한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세원. -두 손에 얼굴 파묻고 우는 진영... F.O #55 진영 방(F.I) -대낮인데도 커튼이 다 드리워져 어두컴컴한 가운데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진영. -문을 열어보는 진영모. -진영,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 -진영모, 조용히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진영 ... 진영모 ... 아버지 살아계실 때 엄마 아빠 소원이 뭐였는지 아니? 엄마든 아빠든 둘 중의 하난, 너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거였어. 근데 아버지 돌아가시니까 참 힘들더라. 가능성이 오십프로로 줄었잖아. 몸이 좀만 이상해도 엄만 얼마나 겁이 났게. ... 이젠 그런 걱정 안해. 너보다 오래 살고 싶지도 않고. 넌 이제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으니까. 진영 (일어나는)... 아파트 내놨어. 다시 엄마랑 살 거야. 진영모 (웃으며)엄만 문 안열어줄건데? 진영 ... 진영모 너랑, 너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 줄 아니? (진영의 어깨를 안아 벽거울을 향하게 한다)거울이나 다른 사람의 눈 없인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거. 진영 (거울로 자신을 본다) 진영모 (E)엄만 니가 다시 거울을 봤을 때 그 친구한테 얼마나 고마웠는 지 몰라. 그 친구 덕분에 넌 참 많이 변했어. 봐, 이젠 언제든 거울을 볼 수 있잖아. 사랑은 그런 거다. 서로 좋아서 영향을 주고 받고, 헤어져도 몸에 흉터처럼 영원히 남는 거... 진영 ... 진영모 그 친구도 아마 자기가 변한 걸 느낄 때마다 널 생각할 거야. -거울로 보이는 진영은 그러나 아직도 서글프다. #56 세원의 방(동 밤) -벽에 붙은 진영의 포스터. -CD 포장을 뜯는 세원. 타이틀북을 꺼내 살피다가 맨 뒷장을 보면 Special Thanks to... 부분이다. 진영 (E)사랑하는 어머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음반을 기획하고 녹음을 도맡아해준 상우형, 그리고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녀... 고맙습니다. -세원, 쓸쓸히 웃고는 오디오에 CD를 집어넣고 플레이시킨다. 디지틀 계기판이 시간가는 걸 알리지만 세원에게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는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동강난 머리핀에다 접착제를 붙인다. #57 버스정거장 -버스 기다리는 진영.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전면유리에 붙은 '창경궁'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선하다. -진영, '창경궁'을 뚫어지게 보다가 황급히 버스에 올라탄다. #58 창경궁 일각 -주말 오후의 풍경들 속에서 나무를 관찰하고 다니는 진영. 이 벗나무일까, 저 벗나무일까... 그러다 갑자기 우뚝 선다. 연못 반대편에 우두커니 서있는 여자. 세원이다. 진영, 숨막힐 듯 바라본다. 어딘가를 보며 웃기도 하고 뭐라 말을 던지 기도 하는 세원. 진영의 시선이 그리로 가면 야외촬영중인 한 쌍의 커플... 일전에 커피숍에서 보았던 남자가 웨딩드레스 입은 여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영, 의아한 얼굴로 계속 지켜본다. 세원, 그들에게 뭐라 몇마디 하더니 어딘가로 향한다. 진영,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가 가는 쪽으로 간다. #59 창경궁 일각 -걸어오는 세원. 애틋한 눈길로 따라오는 진영. 어느 순간, 휘청하고 넘어지는 세원. 진영, 무심결에 도와주려는 제스츄어가 나오지만 차마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어 자제한다. 일어나 또박또박 걸어가는 세원을 안타깝게 따라가는 진영. -지나가던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세원에게 길을 묻는다. 초1 언니, 여기서 종묘 쪽으로 갈려면 어떻게 가요? 세원 (말끄러미 보기만) 초2 일루 가는 거라니까? 언니 이쪽이 맞죠. 세원 (웃으며)미안. 언닌 귀가 어두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 (주위 둘러보며)다른 사람한테 얘기할래? (하다가 진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세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진영. 주인 (E)귀머거리 아가씨 맞죠? (에코되는) -(플래쉬백)계속 외면한 채 자기 말만 하던 그녀의 여러모습들.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하던 기석, 잘 넘어지던 그녀, 약혼자인 척 하던 친구의 애인... -그랬구나... 진영, 이제야 실마리를 잡고 슬픔에 표정 일그러지는데. 세원 (어떻게든 모면하려 웃지만 당황함이 역력하다)친구 야외촬영도 보고 벗나무도 찾을려구 왔는데... 못찾겠어요, 너무 변해서... (곤혹스럽다) 진영 (차오르는 슬픔)... #60 창경궁 연못가 -마주 선 진영과 세원. 진영 (먹먹한)... 왜 말 안했어요. 세원 소용 없어요. 안들린다고 했잖아요. 진영 (암담한)... 세원 잘 들어요. 나, 수술해도 들을 수 있을지 장담못해요.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요? 평생 아무것도 못듣는단 말예요. 그럼 언젠가는 말하는 법도 까먹게 되요. 진영씨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진영씨가 남들한텐 할 수 없는 얘길 해도 들어줄 수가 없어 요. 진영씨한텐 그런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얘기 들어주고 음악 들어주고. (이 악물 며)그리구 난 진영씨한테 미련 없어요. 아니, 좋아한 적도 없어요. 진영 (그녀의 머리핀을 본다. 다시 그녀를 본다)... 거짓말은 나빠요. 세원 진영씨 바보예요? 안들린다는데 왜 그래요 왜!!! (뛰어간다) 진영 !... -이윽고 쫓아가는 진영. #61 편의점 앞(동 저녁) -세원을 끌고 들어가는 진영. #62 편의점 안 -진영, 놓칠세라 세원의 손목을 꽉 잡은 채 매직펜 하나를 뽑아 통유리 쪽으로 간다. 세원, 괴로운 표정... -진영, 통유리에 매직으로 뭔가를 쓴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에요' -세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눈물 참는데. -진영,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다시 글을 쓴다. '우리는 당신과 다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이 문제죠?' 그리고는 보란 듯 그 사람들을 휘- 둘러본다. -사람들, 벙찐 표정이고. -세원, 흑!하며 눈물 고인다. 세원 (고개 저으며)이러지 마요 제발... 난 진영씨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진영 (두 손으로 그녀의 귀를 막은 채, 마치 눈으로 말하듯)은행에서 돈을 찾아줄 수 있잖아요. 옷도 골라주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타줄 수도 있고. 세원 (그 간절함이 눈빛으로 전해져오는 듯 눈물 흐른다) 진영 못들어도 좋아요. 말 못해도 좋아요. 음악을 지으면 제일 먼저 들려줄게요.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얘기해줄께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마음의 귀가 가장 밝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얘기해줄게요. 세원 (이미 마음은 다 녹았다. 우는 듯 웃으며)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예요. 진영 (간절히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그러나 쉽게 나오지 않고)... 사랑..한다고 했어요. -세원, 울고 웃다가 진영의 목에 매달린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힘주어 안는 진영.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F.O #63 숲(프롤로그의) -눈 부시게 쨍! 한 햇살. -첫 씬 그 모습 그대로 벤취에 앉아 따가운 햇살을 눈부시게 올려다보고 있는 진영. 천천히 카메라 빠지면 바로 옆에 세원이 앉아서 피크닉 가방의 찬합과 과일과 보온병을 꺼내 펼치고 있다. 도시락을 먹고, 녹차를 따라 마시고, 얘기하며 웃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부감된다. 진영 (E)숲이 왜 우는지 알아요? 세원 (E)바람이 부니까요. 진영 (E)아뇨. 고마워서 우는 거예요. 세원 (E)뭐가 고마운데요? 진영 (E)그냥... 그냥 고마워서요. 세원 (E)피- 그런 게 어딨어요. -(E)멋적은 진영의 웃음소리. -(E)그런 진영이 엉뚱하다는 듯한 세원의 웃음소리. -그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부감되다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