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철근 콘크리트 교사(校舍)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급우들을 요시쿠니는 희미한 혐오감과 함께 층계참 창문 너머로 배웅하고 있었다.
“요시쿠니.”
층계참 밑의 그늘 속에 미쓰히로가 서 있었다. 동급생이자, 이번 방학에 기숙사에 남은 학생들 중 한 명이다. 특별히 튀지도 않고 나서지도 않지만, 맡은 일은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무슨 일이든 정확하게 완수하는 건실한 타입이다. 그런 그가 때때로, 아주 가끔, 한순간 보이는 표정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얼음장 같은 경멸. 온 세상과 적이 된 것 같은 창백한 불길이 피어오르곤 했다.
“너하고 간지가 남는다고 해서 기대 많이 하고 있다.”
“진짜? 그런데 간지는 왜 남았대?”
“부모가 이혼 조정중이래. 얼른 저녁 먹자. 메뉴는 김치전골.”
요시쿠니와 간지와 미쓰히로는 전골을 앞에 두고 빙 둘러 앉았다. 전골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요시쿠니는 슬쩍 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 어느 쪽하고 같이 살 생각이냐?”
“어느 쪽하고도 안 살 거다. 두 사람한테 돈 받아내서 혼자 살 거야.”
간지의 눈이 일순 어둡게 그늘졌다. 때마침 죽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셋은 묵묵히 제 몫을 덜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창문 밖으로 하얀 그림자가 슥 떠올랐다. 유리에 손이 척 들러붙는다.
“누구냐!”
간지가 죽도를 치켜들고 부르짖는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방글방글 웃으며 늘 흥분상태로 이곳저곳에 출몰하는 오사무였다. 오사무는 모두를 놀라게 해놓고 혼자서 잘도 밥을 넘겼다. 배가 거의 다 찼을 때쯤, 오사무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고해하고 싶어서 왔어. 하얀 옷 입은 여자가 날 쫓아와.”
미쓰히로는 선 채로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다만 난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는 싫다. 비밀은 워낙 무거운 거거든. 그러니까 딱 하나만 거짓말을 집어넣어.”
*
“일주일 전에 짐을 정리하다가, 아니 뭘 좀 찾다가 옛날에 아버지가 쓰던 전기면도기를 발견했거든.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 엄마가 죽은 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청소하다가 스위치가 켜진 전기면도기가 욕조에 떨어졌어. 난 엄마가 싫었어. 그게 전기면도기를 보고 선명하게 생각났어. 엄마는 보수적이어서 농담이라든지 장난을 싫어했어. 그래서 나 어렸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맞고 살았어. 엄마는 나를 엄마처럼 키우고 싶어 했거든. 난 늘 엄마가 미웠어.”
“어째서 다들 자식을 갖고 싶어 할까. 처음에는 지배욕일까 생각했었어. 권력욕의 사적 버전.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욕망, 꽤 있는 것 같지 않냐? 하지만 이것도 어쩐지 딱 감이 오지 않더라. 그래서 좀 더 생각해봤거든. 최근에 도달한 결론은, 분명히 자기한테 ‘속한’ 게 갖고 싶은 거야. 분명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저기 말이지, 실은 나 어렸을 때 유괴당한 적이 있어. 아버지가 기다리니까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 도무지 유괴범 같지는 않았어. 옷차림이 멋지고 세련됐지, 얼굴도 굉장히 예뻤거든. 나를 데리고 계속 밤거리를 돌아다녔어. 그날은 결국 어느 으리으리한 호텔에 묵었어.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 여자가 굉장히 상냥하기도 했고. 대충 예상했을 것 같지만, 우리 아버지의 불륜 상대였어. 회사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이라나 봐.”
“늘 그래. 어른들은 다들 그래. 전부 끝난 다음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자기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나서 용서해달라 그래. 내가 얼마나 상처를 입는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줘. 다들 자기 생각밖에 안 해. 아무도 내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하면서 나더러 자기를 이해해달라고 그래.”
언젠가 지금 주고받은 대화가 생각날 것 같았다. 추억 어린 눈으로 테이블을 둘러싼 우리들, 넥타이와 술잔, 시끌시끌한 분위기와 따스한 불빛. 그것은 어떤 상황, 어떤 장면일까.
가자, 우리들의 집에.
안 그래? 거기가 우리들의 집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