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새댁
김 영 애
여름을 맞아 흰색 티셔츠를 하나 사려고 자주 가는 가게에 들렀다.
가게에는 먼저 온 두 사람의 손님이 있어 주인은 나에게 인사만 하고는 열심히 손님에게 옷을 권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물건을 훑어보면서 두 손님도 슬쩍 보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고부지간 이란 것을 단 번의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시어머니 되는 사람은 며느리에게 옷을 이것저것 대보고 입혀보면서 크다, 적다 ,안 어울린다는 등,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는데 옷을 입어보는 사람은 말이 없이 시키는 데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딸이 어머니가 시킨다고 의사 표현 없이 그렇게 말없이 고분고분 입었다 벗었다할까? 며느리는 스물도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았고 자그마한 키에 어깨가 좁고 얇으며 허리가 길고 가늘어 가냘프기 짝이 없었다.
문득 우리와 동족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사람들을 어디서 봤더라?’
그랬다. 중국 계림에 갔을 때 염소 한 마리를 끌고 가던 원주민 총각의 체형이 생각났다. 염소를 몰겠다는 사람이 너무 약하여 차라리 염소가 사람을 끌고 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수려하고 웅장한 자연경관에 비해 땀에 절은 후줄근한 복장을 한 원주민의 체격은 너무도 왜소하고 초라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었는데 바로 그 사람과 앞에 있는 젊은 여자의 골격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인지요?”
시어머니 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물어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월남, 월남.”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때 가이드가 계림지역은 남쪽이라 예로부터 월남인의 내왕이 많았고 정착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염소에 끌려가던 사람도 월남인의 후예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 사이 시어머니는 또 하나의 부라우스를 입혀보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벗기고 있었다. 짝 달라붙고 제비꼬리처럼 빠진 생머리에 검고 뾰루지가 많이 난 화장기 없는 겁먹은 새댁의 얼굴에 잘 맞는 옷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대화로 이방인의 처지를 확인했는지 월남 새댁은 유난히 까만 속눈썹 밑에서 방황하는 머루 같은 눈동자를 어디든 한 곳에 자신 있게 멈추지 못하고 밑으로 내리면서 표정 없는 얼굴로 어깨를 시어머니에게 맡긴 채 서 있었다.
“이것도 안 되겠다. 저기, 저거 좀 보시더.”하면서 높이 걸려있는 자켓을 턱으로 가리켰다.
몇 벌 째 입어보더니 드디어 어울리는 옷을 찾았다.
한 쪽 팔을 끼고 한 쪽마저 끼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더니 며느리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거 좋다, 그거 됐구나를 연발하며 얼마냐고 물었다.
“예, 잘 맞네요. 육 만원이래요.”
“어이?”
갑자기 시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멈추더니 입히던 옷이 벗겨졌다.
“돈이 안돼, 돈이 안돼. 그리 비싼 줄 몰랐제. 아버지한데 더 받아와야 돼. 아버지한데.”
시어머니는 며느리 눈을 들여다보고 손바닥을 부채처럼 펴서 잘게 흔들어 보이면서 돈이 없다는 것을 며느리에게 알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옷 벗기기도 끝났다.
여전히 새댁은 말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보며 구르는 머루같은 까만 눈에도 변화가 없었다.
“가자, 가자. 어여! 돈, 더 갖고 오자.”
시어머니는 며느리 등을 돌려세우고 팔을 휘휘저어 앞 쪽을 가리켰다. 새댁이 앞에서고 시어머니가 뒤에서 며느리를 몰고 황황히 나갔다. 그러나 다시 이집에 옷을 사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삼 만원으로 자켓을 살려니 어디 쉽나.”주인은 중얼거리며 다시 옷을 걸었다.
모서리를 돌아가는 초라한 두 등이 보기 민망해 눈을 감고 싶었다.
밤이 깊었는데 왜 이렇게 잠이 들지 못하고 점점 눈이 맑아 올까? 정말로 시어머니 수중에는 삼 만원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낮에 본 월남 새댁이 다시 앞에 서 있다. 머루 같은 까만 눈을 어디 둘 줄 몰라 멍한 모습으로 서 있던 가녀린 몸체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실망의 눈빛도, 체념의 눈빛도, 귀찮다는 눈빛도 담지 않은 무표정이어서 더욱 안쓰러웠다.
딱하도록 무표정한 눈빛은 월남새댁이 아직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시어머니와 감정 교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형편을 말하는 것이다. 신랑하고 나왔으면 사정이 반전 됐을 텐데. 그런데 좀 늙었다는 그 신랑은 뭐하고 시어머니와 나왔을까?
가난을 면해 보고자 국제결혼을 하여 타국까지 왔을 텐데 육만 원 짜리 자켓 하나 얻어 입지 못하는 시집이라면 아직 어린아이 같은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자리 잡을까?
나는 새댁이 되어서 실망감에 젖어 헤매다 이 현실이 절망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울며 매달리는 가족을 뿌리치고 나올 땐 더 나은 장래를 약속받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헛꿈으로 이어지는 조짐을 어찌해야하나. 차라리 다시 되돌리고 싶다는데 까지 와서는 시어머니가 되었다.
잘 해주려 했지만 막상 뜻대로 되질 않았고 겨우 찾아 낸 어울리는 옷을 벗기고 나올 땐 며느리에게 부끄러워 얼굴에 불을 붇는듯했다. 돈이 없지 체면이 없나? 어린 며느리에게 미안하고 체면을 세울 수 없는 가난한 살림을 어떻게 하나? 겨우 얻은 며느리가 행여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헤매다가 친정어머니가 되는 망상에 젖었다.
자기네들 극장표 한 장보다 싼 옷 하나를 못 얻어 입을 처지라면 낯설고 물선 외국에는 왜 가며 가족이 서로 헤어져 살 일이 무엇인가? 잘 해줄 것처럼 하더니, 엄청 잘 사는 것처럼 하더니, 갑자기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운명에 맡기면서 용서하고 싶진 않다. 나는 월남새댁의 친정어머니가 되는 망상에서 오래 헤어나질 못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간장이 끓게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무안한 얼굴로 황황히 나간 시어머니와 도무지 표정 없는 얼굴로 따라 나가는 새댁을 그저 보기만 한 구경꾼일 뿐이다. 먼저 그러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우리를 믿고 장래를 맡기는 어린 외국인 신부에게 삼 만원 보태 옷 한 벌 해주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우연히 또 한 번 만났으면 좋으련만.
이도 저도 못해준 지금 내 얼굴도 이렇게 달아오른다. 꿈을 가지고 온 어린 신부에게 신랑의 동족으로서 정말로 미안하다. 그리고 진정 부끄럽다. 내 동족, 그 늙은 신랑은 하늘을 쳐다보는 나무꾼이 되지는 않을 런지 또 하나의 걱정이 생기면서 밤이 깊어간다.
첫댓글 동남아 여성들과의 국제결혼.......... 한번 쯤 생각해서 결정 할 일이랍니다...............
연당님, 지난 토요일 초향께서 찾으실 때 왜 안보였지요? 많이 찾았는데.
요즈음 흔히 볼수 있는 모습 가슴이 답답 하네요. 좋은글에 머물렀다 갑니다.건필 하세요^^*
은배초님의 아름다운 마음에 머물러 봅니다, 모두가 그렇듯 따뜻하게 바라봐만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