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60년대 팔달동 (현 대구 북구 팔달동)에 살면서 5리밖의 옆 동네 매천국민학교( 현 대구북구 매천동) 다니던 무렵 그 동네들은 모두 칠곡군 칠곡면 중의 한 농촌 동네들 이었지요.
대구시 사무처장을 맡고나서 북구청 홈피에 들러 현 행정구역도를 확인해보니 팔달동, 금호동, 매천동,사수동,노곡동의 5개 법정동이 관문동 이라는 북구 최남단의 한 행정동으로 망라되어 있네요. (팔달동을 팔당동으로 잘못 표기해놓아 즉각 수정 요청했음).
그 위쪽의 태전동, 국우동, (칠곡)읍내동 까지 다 북구로 편입되었으니 옛 칠곡에 대한 향수가 진함에도 불구하고 이젠 천상 대구북구인으로 살아가야 할까 봅니다.
한개 행정동으로 묶어진 남단의 관문동 5개 동네야 골목골목까지 다 알 정도였지만 북단의 읍내동도 초등학교 핸드볼 선수할때 면 대회 제패를 위해 드나들던 곳이고, 동편의 조야동은 할머니 산소가 있어 매년 한번은 들르는 곳이며, 바로 금호강 건너 형이 운영하던 섬유공장이 있었고 작은어머니가 아직도 고향집 지키고 있는 침산동도 친숙한 곳이지요.
팔달동의 우리 동네는 잠뫼와 수리봉을 좌청룡 우백호로 끼고,
앞에는 금호강이 대구들~금호들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제법 명당소리를 듣던 동네 였습니다.
남쪽 강너머 에는 개구리소년 실종으로 유명한 와룡산이 손에 잡힐듯 하고 그 너머에는 앞산,비슬산이 펼쳐져있고
동편엔 대구의 진산 팔공산이,우편엔 해질무렵 저멀리 가야산이 아련히 보이는 곳이었지요.
몇년전 대구-왜관간 국도확장 공사로 고향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그 푸르른 산하에서 뛰놀며 부모 형제들과 정을 나누며 온갖 추억이 만들어진 그 고향집, 고향산천을 어찌 잊으리오.
대학졸업후 고향을 뜬게 1978년 이었으니 이젠 고향에서 보낸 24년보다 더 많은 33년을 타향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과 고향집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근래 가보면 그간 수십년간의 천지개벽에 준할 대변화 가운데서도 옛 흔적이 꽤들 남아 있더군요.
그러니 어찌 고향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안동, 의성 같은 중소도시 농촌에만 있다 하겠습니까...
대구시의 다른 구들도 아마 다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구 남산동의 대건중고 출신 남일해 선배가 얼마전 KBS 6시내고향 프로에 출연하셔서 인근 남문시장등을 돌아보는 장면이 화면에 나오던데 역시 정겨운 옛 시장골목들이 그대로 살아 있데요...
이런 추억의 자락들을 잡으며 대구시 7개구도 어느 시군 못잖게 잘되는 향우회를 만드는게 불가능하지 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속속 모여서 속히 제대로된 향우회가 탄생하는 그때를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