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동김씨 집성촌 <경기도>
경기 고양군 일산읍 풍 리 경기 광주군 초월면 신월리 ◀서운 경기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 경기 양평군 지제면 옥현리 경기 여주군 홍천면 귀백리 ◀안렴 경기 이천군 율 면 본죽리 ◀안렴
경기도 이천시 율면 소재지 전경 고향사랑 율면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항상 그립고, 아련한 추억이 있어 마음은 항상 그곳으로 달려간다. 나의 고향은 경기도의 끝자락 이천시 율면(栗面)이란 곳으로 옛날에는 밤이 많았던 고장이라 율면이란 지명이 태어 났는지는 모르나 현재 본죽리의 마을명이 밤골이다. 율면은 충청북도의 음성군 삼성면, 금왕읍, 생극면, 감곡면과 경기도의 안성시 일죽면과 경계를 이룬 지역으로 사람들은 인심이 후하고 정이 있으며, 공장하나 없이 오직 농사지으며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천시 장호원읍과 설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청미천과 율면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르는 석원천은 맑고 풍부한 물이 흐르고 있어 하천 주위로 펼쳐진 평야는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좋은 품질의 이천쌀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며 지금은 청미천에 다리가 있어 통행이 자유롭지만 30여년전 만하여도 나룻배로 물을 건너야 갈 수가 있는 곳이라서 지금까지도 이천의 제주도라고 불리고 있다. 석산리로 가는 길을 끼고 경지정리가 잘된 논이 이어지는데 길 양편 동쪽과 서쪽 골짜기 산밑마다 아담한 촌락을 이루고 있으며 충청북도 경계를 지나 생극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2km쯤 가면 산성1리란 율면지역이 다시 나오는데 자연부락명이 돌원이라 한다. 그곳에는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서 용감히 싸우다 순절한 어재연장군의 생가가 있고 어재연 장군과 함께 전사한 장군의 동생인 재순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위패를 모셔 놓은 충장사가 있는데 봄 가을(陰 3월, 9월)에 유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율면의 입구인 고당교를 건너 200여 미터쯤 왼쪽으로 총곡리 가는 길로 접어들면 청미천 주변으로 논들이 이어지고 오른쪽 임오산 줄기 산밑으로 오밀조밀한 마을들이 이어 지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 풍경만큼이나 순박하고 정이 많으며 마을마다 같은 성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들이다. 소재지인 고당리엔 고령박씨, 신추리엔 순흥안씨와 경주이씨, 본죽리에 안동김씨, 북두리에 태원안씨, 석산리에 안성이씨, 산성리에 함종어씨, 오성리에 장수황씨와 개성왕씨, 월포리에 전주유씨, 총곡리에 경주김씨 등이 수백년을 이어오며 자식을 키우고 농사지으며 살아온 고장이다. 율면은 냇가를 끼고 잘 발달된 너른 평야는 비옥한 곡창지대로서 삼국시대부터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많은 피를 흘리며 싸웠던 고장이기도 하다. 산양리(용산동)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마이산(해발 472m)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쌓았다는 망이산성이란 성터가 있는데 지금은 성곽이 조금 남아있어 그 옛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성곽 안의 면적이 약 3만평이나 되는 큰 성이었다고 하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정상 주변으로는 어른 키 보다 더 큰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4월 중순이후쯤 등산을 하면 진달래꽃을 볼 수가 있었는데 누군가 많이 베어버려 아쉬움이 크다. 율면엔 학교가 하나밖에 없다. 전에는 초등학교 3개소 중.고등학교 1개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가 모두 폐교되고 중.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70여억원을 투입한 전국에서 몇 안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울타리에서 공부할 수 있는 농어촌거점 현대화 시범학교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4-H회는 풍물로도 유명한데 이천지방에서 추석명절에 행해지던 민속놀이인 거북놀이를 재현하여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는 봄이 오면, 나는 신추리 만중들을 막고 있는 청미천 제방 둑에 봄나물을 캐러 간다. 그곳엔 하천 둑이라고는 하지만 산에서나 볼 수 있는 봄꽃이 무수히 많이 피고 있다. 특히 5월경에 피는 들현호색은 흔히 볼 수 없는 꽃이나 잡초 속에 숨어서 예쁘게 피고 있으며 그 외에도 봄맞이꽃, 솜방망이, 미나리아재비등의 꽃들이 지천이다. 뿌리를 먹기도 하고 약재로도 쓰이는 잔대는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잎줄기를 뜯어 나물로 먹는데 어느 나물보다 맛이 있어 우리나라 산나물 중 고급에 속한다. 또한 봄의 입맛을 돋우는 달래는 굵고 좋아 몇 뿌리만 캐도 된장찌개에 넣어 끓일 수 있으며 청미천엔 피라미, 붕어, 모래묻이 등 물고기도 많아 투망 몇 번 던지면 매운탕을 끓일 수 있다. 금방 잡은 물고기를 고추장 벌겋게 풀고, 대파 손으로 툭툭 꺾어 넣고 끓여 라면이나 국수 넣어 빙 둘러앉아 후후 불며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이나 안다. 또한 지금도 마을 뒷산 골짜기 개울에는 가재가 많다. 어렸을 때 봄이면 친구들과 쌀 한되씩 걷어 진달래 만발한 골짜기에서 가재를 잡아 철렵을 하였는데 고추장 풀고 마늘잎을 따서 잘라 넣고 끓이면 가재가 빨갛게 익는데, 오도독 소리가 나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또한 여름밤이면 개구리, 맹꽁이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많이 울고 반딧불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청정지역이며 농업지역이다. |
경기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 경기 화성군 정남면 제기리 경기 화성군 동탄면 중 리 경기 시흥군 남 면 부곡리 경기 김포군 김포면 운양리 경기 김포군 대관면 대릉리 ◀안렴 경기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경기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강원도>
강원 춘성군 사북면 고성리 강원 양양군 양양면 포월리 강원 명주군 강동면 운산리 강원 삼척군 근덕면 교가리 ◀안렴 강원 김화군 원남면 주파리 강원 철원군 동송면 양지리 ◀부사 <충북>
충북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 ◀익원 충북 청원군 오창면 일 대 ◀안렴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안렴 충북 괴산군 문광면 신기리 ◀안렴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 충북 괴산군 증평읍 일 대 ◀안렴 충북 괴산군 소수면 수 리 ◀제학 충북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충북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군사 충북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안렴 <충남>
충남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문온 충남 연기군 동 면 내판리 ◀안렴, 익원 충남 연기군 전동면 달전리 ◀익원 충남 연기군 전동면 양곡리 ◀전서 충남 논산군 상월면 산성리 ◀익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 대 ◀익원 충남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 충남 천원군 일 대 ◀제학, 안렴, 전서 <전북>
전북 완주군 봉동읍 낙평리 전북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 전북 고창군 공음면 일 대 ◀익원 전북 익산군 성당면 대선리 <전남>
전남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전남 고흥군 도양읍 도덕리 <경북>
경북 달성군 상서면 장기동 경북 의성군 일 대 ◀도평 경북 안동군 일 대 ◀익원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 ◀익원 고향사랑 안동 와룡면 용두고을 주계리 용두고을의 향조(鄕祖)
창애(蒼厓) 김계정(金啓貞,1576~1639)공의 영정 부군께서는 상락의 고벌에서 생장하시여 신라와 고려의 상전함에 여명이 부절 하였도다. 순환의 천도가 무상하야 세간에는 득실이 있었으니 임진과 계사년의 난리에 화가 가실에 미처였네 나이 겨우 성동이 되어 "창애"선비 용사지란으로 한양을 등지고 마음을 비우며 낙향하여 세상을 버려두고 생각도 버리고 홀연히 떠나왔다. 산길따라 굽이굽이 물길 따라 사람사는곳 그 곳이 안동양반고도 용두고을이란다. 와룡산 무재봉에서 본 와룡면 주계리 용두고을 전면 조망
안동 주계리 안동 김씨 집성촌 [위치] 당집골과 용두고을 중간에 위치 [유래] 고을의 옛 선조들은 와룡산의 형세와 고을의 형태를 보고 용두고을이라 이름을 짓고, 다래덩굴을 제거하고 집을 지어 고을을 만들고, 고을 어귀에 동구를 조성하면서 동구목인 신목(신수) 한 그루와 적송 여섯 그루를 식수하였다. 동구 앞에는 고을민을 위하여 연자방아를 만들고, 고을 한가운데 공동 우물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신목 뒤에 연못을 파서 용이 마음껏 활동하고 등천할 수 있겠금 세심한 배려를 했다. | 동제(당제)모습 | 고을의 그 해 풍농과 안전을 기원하고자 당집골에 상당인 동신당을 건립하고 동구에는 하당인 동구목을 선정하여 매년 정월 열나흘날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토지신인 동신당에 산제를 지낸 다음 하당인 동구목에 동제를 올렸다. 조선조 후기 동신당이 전소되면서 동구목에만 제를 올렸는데 제를 올리기 사흘전부터 금줄을 쳐서 부정이 타지 않도록 했으며, 제관이 제물을 운반할 때도 동구목 신목까지 황토흙을 뿌려 잡신의 접근을 방지하는 세심한 정성을 들였다. 현재 동구목은 갑신년 2월경에 폭설의 무게로 신목 아랫둥치 3m만 남기고 부러져 옆에 새 신목를 식수하고, 기존 동구목과 새 신목(신수)를 소중하게 보전하면서 옛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용두고을은 유서깊은 곳이다. | |
위 사진이 옛날 동구목앞 연자방아간 모습이며, 이 연자매는 마을 도로공사로 인하여 1.5m 깊이 도로에 매몰된 상태이다. 지금 보시는것은 최초 연자매 상돌이며 선인들이 약 500년를 이어 오면서 연자매를 축조하여 사용하면서 상돌 모서리 일부가 파손되어 연못안에 보관 했던 것을 2006년도 신목 뒤 연못 중수하면서 발굴되었던 것이고, 후에 만든 연자매 상판돌과 하판돌은 심목에서 전방 2.8m 앞 도로에 매물중이다. 용두고을 역사를 말해주는 연자매를 다시 발굴하여 기존 자리나 적당한 곳에 소중히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사료됨. 하여 와룡면 사무소 유물담당부서와 협조하에 옛 선인들의 얼이 숨쉬고 있는 유물들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것도 안동반촌의 기氣를 모으는데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고을의 선조들이 龍의 활동을 돕고자 연못을 만든 선인들의 심성... 현재 동구신목은 갑신년 2월경에 폭설의 무게로 신목 아랫둥치 3m만 남기고 부러져 옆에 새 신수를 식수 선조들의 얼이 숨쉬는 500년 역사 용두고을 신목 와룡산 용두고을 500년생 동구소나무 생존시 (1999. 7) 중요한 사진자료 필자 : 와룡산 지기 김태희 푸른세상 경북 청송군 파천면 어천동 경북 청송군 진보면 신촌동 경북 양양군 영양면 동부동 경북 영양군 영양면 상원동 경북 영양군 입암면 신사동 경북 상주군 공검면 화동리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경북 문경군 가은면 원장리 경북 예천군 예천면 갈구동 경북 예천군 예천읍 지내동 경북 예천군 감천면 일 대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경북 영주군 평은면 금광리 경북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
<경남>
경남 진양군 진성면 온수리 경남 의령군 당림면 대곡리 경남 함안군 칠서면 태곡리 경남 창녕군 대합면 소야리 경남 창녕군 영산면 봉암리 경남 창녕군 부곡면 거문리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익원 경남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황해>
황해 연백군 송봉면 대용리 황해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 황해 수안군 대성면 제동리 황해 수안군 대성면 좌도리 황해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 황해 수안군 대성면 제동리 <평북>
평북 구성군 동산면 양지동 평북 구성군 이현면 진조동 평북 박천군 동남면 동하동 평북 박천군 용계면 삼광동 평북 박천군 양가면 심대동 평북 박천군 서 면 와봉동 평북 박천군 서 면 금계동 평북 용천군 용암포 용암동 평북 용천군 용암포 운흥동 평북 용천군 용암포 소의동 평북 용천군 용암포 용암동 평북 용천군 용암포 신흥동 평북 용천군 부라면 택현동 평북 용천군 부라면 백송봉 평북 용천군 부라면 덕천동 평북 용천군 부라면 덕암동 평북 용천군 북중면 매장동 *1930년대의 안동김씨 집성촌 및 세대수
<경기도>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 19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귀백리 26 ◀안렴 경기도 이천군 율면 본죽리 21 ◀안렴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 25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제기리 26 경기도 김포군 대관면 대능리 18 ◀안렴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하점면 망월리 40 ◀전서, 익원 <강원도>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교가리 24 ◀안렴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양지리 31 ◀부사 <충북>
충북 청원군 오창면 주성리.양지리.양청리 200 ◀안렴 충북 괴산군 문광면 신기리.장연면 방곡리 52 ◀안렴 충북 괴산군 증평읍 미암리.남하리 98 ◀안렴 충북 괴산군 증평읍 죽리.덕상리 65 ◀안렴 충북 괴산군 소수면 수리 24 ◀제학 충북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35 충북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원남면 마송리.감곡면 쌍평리 168 ◀군사, 안렴, 문온 <충남>
충남 연기군 전동면 달전리.양곡리 133 ◀전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송간리.저석리 84 ◀익원 충남 천원군 병천면 가전리.복다회리 120 ◀제학, 안렴 <전북>
전북 순창군 풍산면 반월리 52 전북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선동리 76 ◀익원 <경북>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200 ◀도평 경북 안동군 와룡면 주계동.풍산읍 수동 85 ◀익원, 정의 경북 안동군 남후면 개곡동 43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동 30 <황해>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 81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제동리 72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좌도리 43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대평리 20 황해도 수안군 천곡면 평원리 27 <평북>
평북 구성군 동산면 양지동 35 평북 구성군 이현면 진조동 20 평북 박천군 용계면 삼광동 38 평북 박천군 동남면 동하동 30 평북 박천군 양가면 심대동 46 평북 박천군 서면 와현동 24 평북 박천군 서면 금계동 20 평북 박천군 용계면 오룡동 28 평북 박천군 가산면 대성동 20 평북 박천군 청룡면 호전동 180 평북 박천군 박천읍 송덕동 45 안동김씨 씨족족보 안동김씨는 본관은 같으나 시조를 달리하는 세칭 "구안동" "신안동"의 두 가문이 있다. 구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손자인 김숙승으로 고려말엽부터 조선중기까지 상당한 세력을 떨쳤던 명문이다. 신안동김씨의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태사 김선평으로 조선말기 순조~철종대에 대명문을 이루었으나 세도정치로 역사에 명암을 드리웠던 집안이다. ※ 선 안동김씨(先 安東金氏)와 후 안동김씨(後 安東金氏)와의 혼인 가능성: 시조를 달리하기 때문에 서로 일가(一家)는 아니며, 자고로 서로 통혼을 하였고 지금도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다. ★★★ 구 안동김씨(安東金氏) | [유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계 파] 김방경의 6세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 제학공파(提學公派) : 김익달(益達) -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 김사렴(士廉) - 의익원공파(翼元公派) : 김사형(士衡) - 조선개국 1등공신. 태종때 좌정승에 올랐다. - 군사공파(郡事公派:) : 김칠양(七陽) -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 김구용(九容) -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 김구정(九鼎) - 밀직사사공파(密直司事公派) - 개성윤공파 - 전서공파 - 복야공파(僕射公) - 안정공파 - 대호군공파 [ 대표적 인물 ] - 김선 :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를 지냈다. - 김흔 : 김방경의 아들. 찬성사를 지냈다. - 김순(恂): 김방경의 아들.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냈다. - 김윤(倫):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를 지냈다. - 김승용(承用) : 김선의 아들. 대제학을 지냈다. - 김승택(承澤) : 평장사를 지냈다. - 김영돈(永暾) : 유명한 무장(武將)이다. - 김영후(永煦) : 우정승을 지내고 후손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구안동'의 주축이 되었다. - 김질 : 좌의정을 지냈다. - 김수동(壽童) : 영의정을 지냈다. - 김찬(瓚) :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자점(自點) : 인조 때 영의정으로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구안동의 세는 꺾이게 되었다. - 김제갑(悌甲) : 원주목사로 임진왜란 때 순절했다. - 김시양(時讓) : 판서를 지낸 청백리이다. - 김휘(徽) : 김시양의 아들.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득신(得臣) : 숙종 때의 시인이며 참판을 지냈다. - 김응하(應河) : 무장(武將)으로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 김응해(應海) : 김응하의 동생.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중기(重器) : 훈련대장을 지냈다. - 김구(九) : 백범(白凡). 독립운동가, 정치가. 3.1운동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지냈으며, 1928년에 항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주석이되었으며, 해방되자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여 독립당 당수 등으로 있다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 족보 발행 ] - 경진보 : 1580년(조선 선조 13년) - 기미보 : 1739년(조선 영조 15년) - 무술보 : 1778년(조선 정조 2년) - 을유보 : 1825년(조선 순조 25년) - 임인보 : 1902년(조선 고종 6년) - 을해보 : 1935년 - 기미보 : 1979년 [항렬표]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원(源) | 영(榮)- | -묵(默) | 재(在)- | -회(會) | 태(泰)- | -식(植)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용(容)- | -교(敎) | 종(鍾)- | -우(雨) | 병(秉)- | -희(熙) | 기(基)-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현(鉉) | 수(洙)- | -동(東) | 연(然)- | -혁(赫) | 진(鎭)- | -영(泳)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근(根)- | -병(炳) | 효(孝)- | -용(鏞) | 택(澤)- | -목(穆) | 희(熹)-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규(圭) | 련(鍊)- | -준(浚)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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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동김씨(安東金氏) [유래] |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安東權氏의 시조), 장정필 [계 파] 지철파, 원수파, 열파 등 3파가 있다. [ 대표적 인물 ] -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데,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 김상용(尙容) : 김극효의 아들. 우의정을 지냈다. - 김상헌(尙憲) : 김상용의 동생. 좌의정을 지냈다. 후손이 세도가문으로서의 주류를 이루어 이들을 '장김(壯洞金氏)'이라고도 한다. - 김조순(祖淳) :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김달순(達淳), 김문순(文淳), 김희순(羲淳), 김유근, 김교근(敎根) 등 일족이 정승, 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 김조근(祖根) : 헌종의 장인. 호위대장을 지냈다. - 김병연(炳淵) : 김삿갓으로 유명하다. - 김옥균(玉均) : 구한말의 정치가이다. - 김좌진(佐鎭) : 독립운동가이며 장군이다. - 김두한(斗漢) : 김좌진의 아들. 국회의원을 지냈다. - 영의정 : 김좌근(左根), 김흥근(興根), 김병학(炳學), 김병국(炳國), 김병시(炳始) 등이있다 - 판서 : 김수근(洙根), 김보근(輔根), 김병기(炳冀), 김병주, 김병덕(炳德), 김병지(炳地), 김병교(炳喬) 등 수십명이 있다. [기타] [인구] 21,554명이 있다.(1985년) [집성촌] 경기도 고양군 중면 일원 충남 논산군 일원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동탄면 일원 전북 순창군 풍산면 일원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일원 경북 예천군 일원 충북 청원군, 괴산군, 음성군 일원 경남 함안군 칠서면 일원 [명인] 조선 중기(광해군) 이후 약 300년 동안에 15명의 정승과 6명의 대제학, 1명의 호당, 1명의 청백리, 9명의 장신(將臣), 그리고 3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순조 이후 철종까지 약 60년 동안은 이 장동김씨 일문이 정권을 좌우하는 세도정치 가문으로서 대명문(大名門)을 이루었다.
[항렬표]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순(淳) | 근(根) | 병(炳) | 규(圭) | 진(鎭) | 한(漢) | 동(東)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현(顯) | 년(年) | 일(鎰) | 구(求) | 모(模) | 연(然) | 배(培)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선(銑) | 원(源) | 영(榮) | 사(思) | 준(埈) | 선(善) | 택(澤) | 43세 | 44세 | 45세 | | | | | 식(植) | 환(煥) | 철(喆)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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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고도 안동반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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