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파크. 약간 안개가 낀 듯 흐린 톤이다.
내가 엄마랑 누군가(우리 식구들인 듯)와 놀고 있는데
위로 큰 보트 같은 게 떨어져서
나 포함 3명이 다쳤다. 나는 약간 타박상 정도인데,
다른 두 사람은 다 어딘가 부러진 수준이었고,
누군가 119를 불러서 소방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왔다.
들것은 튜브형 보트 모양으로 생겼고,
나는 나보다 저 사람들이 심하니깐 저 사람들 먼저 데려가라고 말했다.
근데 소방대원들이 오더니 핸드폰을 챙겨서 가져가며 날 들것에 실었다.
나는 ‘어차피 병원 갈거니까 폰은 필요 없겠지.’ 하며
별말 안 하고 들것에 몸을 맡기고 챡챡...가는데...
엄청 급경사인 원형의 회전 수영장 미끄럼틀이 있었다.
‘이거 타고 내려가다가 더 다치는 거 아니야..?’ 싶었는데
소방대원들이 앞뒤로 내 튜브를 잡고 그걸 타고 아래로 솩! 내려가 보니
잔잔한 수영장이 나왔다.
- 30대 직장인 여성 -
#워터파크꿈 #수영장꿈 #여름 #겨울 #긴장 #불안
저희의 상상에서 이 꿈을 펼칩니다.
(꿈투사에 들어가기 앞서,
워터파크는 익사이팅한 방식으로 즐기는 물놀이를 총칭하는 단어이자 공간을 일컫는다.
그 차원에서 워터파크를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꿈의 이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던져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워터파크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워터파크를 떠나야 하는가?
물론 꿈이 전하는 조언은 자명해 보인다.
꿈이 워터파크를 떠나게 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이유는 뭘까?
자각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진작에 워터파크를 떠났어야 했다고 질책하는 듯하다.
자아의 의지는 워터파크에 머물기를 고집했다는 뜻이다.
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워터파크에 은유된 나의 심리적 특성을 밝히는 것이다.
작업 목적은 워터파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포기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워터파크는 뭐랄까...아주 격렬하고 흥분되는 방식으로 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사람들은 워터파크를 찾는다.
때문에 워터파크에서도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춘 곳으로 모여든다.
익사이팅한 경험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공간에 있다가 잔잔한 수영장으로 옮겨진 것 같다.
이동은 나의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강제된 조치였다.
내가 있던 곳과 잔잔한 수영장의 이미지는 그 속성을 따져보면 다분히 대조적인 것 같다.
요란한 웃음과 즐거운 비명으로 가득한 곳에 비해 잔잔한 수영장은 말 그대로 잔잔하기 때문이다.
‘잔잔한 수영장’은 한 차원 그 공간에 대한 나의 낯설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식 같다.
내가 이전에 있던 곳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꿈에서 대조가 두드러진다면, 균형의 회복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크고 작은 심적 갈등과 심리적 어려움이 비슷한 형태로 계속 발생한다면, 어쩌면 잔잔한 수영장과 너무 멀리 있었던 탓일지 모른다.
나는 줄곧 워터파크에 있기를 고집하다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자아의 미련한 고집이 불러온 참사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워터파크에 있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워터파크는 여름을 뜻하는 다른 단어라 할 수 있다.
워터파크에 있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사계절 중 여름만을 경험하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모든 활동과 시도가 한껏 위축되는 겨울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워터파크에만 머물고자 한다면 겨울을 살아가는 법에는 무지해진다.
겨울을 살아가는 법에 무지하다는 것은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혹독한 추위에 몹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겨울은 봉인, 숨김, 감춤, 보호, 방어 등의 단어와 친숙하다.
사회생활에서 이러한 자질들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반면, 여름은 무엇이든 펼쳐서 보여주는 계절이므로 개방과 활발한 교류가 일어난다.
경계의 필요성을 높이기 보다는 자유롭고 적극적인 표현이 장려된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여름의 워터파크에서는 거칠 것 없이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다.
온통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 공간이 워터파크이다.
내적으로 워터파크에서 긴 시간을 보낸 이라면, 그로 인한 다양한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가령 워터파크에 있으면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기란 대단히 힘들 것이다. 워터파크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환경에 대한 높은 개방성 및 밝고 활달한 성격적 일면을 가능하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꿈이 여름과 겨울의 이미지를 띄운다면 여름과 겨울이 상징하는 바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봐야 한다.
소통 방식 역시 여름과 겨울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발생시킬 것이다.
겨울은 모든 것을 동결시킨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다들 어딘가로 숨어든다.
모든 활동이 달갑지 않고 내키지 않는다.
겨울에는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 뿐이다.
생존을 최우선하는 겨울을 살아갈 때 자아는 어떤 시도도 꺼리게 된다.
겨울을 살아내들은 조용히 의미를 따져보는 데 익숙하다.
그 태도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관계에 임할 때 또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의미를 따져보고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최소한의 것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겨울은 그냥..그저..무작정 등의 단어를 허용하지 않는다.
주변과의 소통은 봄과 여름으로 향할 때 활발해지고 보다 적극성을 띄게 될 것이다.
여름이 오면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기 마련이고 외부활동의 욕구도 치솟는다.
여름은 어떤 형태의 모험이든 권장되고 소통의 욕구가 올라가는 만큼 실제 활기를 띈다.
여름의 상징인 워터파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많았다면, 매사 소통의 욕구가 대단히 높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태도는 워터파크에서 온다.
짐작컨대, 나의 장점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워터파크를 떠나도록 명 받았고 떠나게 되었다.
워터파크에서 머물 때 이점보다는 그로 인한 부정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을 충분히 살아봤으니, 이제 겨울을 살아갈 준비를 해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워터파크를 떠나는 과정에서 강제적 조치가 필요했던 이유는, 워터파크게 있기를 바라는 자아의 고집과 저항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신은 치우침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반드시 균형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불러온다.
치우침은 다른 한쪽의 취약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흔히 인생은 사계절에 비유된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사계절을 두루 경험하며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아는 겨울의 매섭고 혹독한 날씨와 외로움을 거부해왔다.
자아가 여름만을 고집한다면, 자아가 거부한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과 차디찬 냉기는 실제 경험 속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 경험이 취약한 부분을 보상함으로써 균형의 회복을 꾀하려 하기 때문이다.
매서운 추위와 세찬 바람에 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걸어가는 경험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또 다른 습은 워터파크의 물이미지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꿈 상징에서 물은 우리의 감정을 뜻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물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나는 워터파크의 물을 경험한다.
워터파크에서 공중으로 튀기는 물은 그지없이 찬란하고 아름답다.
이리저리 튀기는 물은 우리를 즐겁게 할 뿐이다.
워터파크의 물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리저리로 마구 튀겨대는 물의 영향을 받더라도 누구 하나 눈살 찌푸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기분 상하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워터파크는 즐거움을 위해 모여드는 곳이고 다들 즐거운 흥분에 몰두한다.
물이 많이 튀기면 튀길수록 기분은 한껏 업되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워터파크에만 머물 수 있다면 일생 서로가 즐거운 감정만을 공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북적임, 시끌벅적함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 보다 즐거움과 흥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워터파크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불쾌함과 스트레스 지수를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워터파크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일체 배제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워터파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는 부정적 형태의 감정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될 수밖에 없고, 환경 적응의 어려움은 거기에서 올 것이다.
워터파크에서는 사람들이 튀겨대는 물이 내게로 와서 문제 될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뭐든 유쾌하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물의 장점만 지나치게 부각된다.
마치 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워터파크에서는 기분 좋게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기본값으로 한다.
워터파크를 나오는 순간, 그런 기대는 산산히 부서지고 씁쓸함은 커진다.
뭐냐면, 내가 쏟는 심적 노력의 대부분은 나와 주변을 워터파크 환경에 두기 위함이었나...하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꿈은 내가 쏟는 그 노력의 과도함을 강하게 일깨우고자 하는 것 같다.
워터파크를 벗어난 공간에서 사람들이 튀겨대는 물은 짜증과 불쾌함을 일으킬 뿐이고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관계를 악화시키는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피로함과 스트레스가 증대될 뿐이다.
내적으로 워터파크에 있기를 고집하는 이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전제를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공간에서 적당한 가벼움, 유쾌한 감정만을 허용하겠다는 태도이다.
자신과 주변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그 상태가 어그러지면 그 상태로 되돌리고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워터파크에 있기를 강하게 고집해온 자아는 긴장과 불안을 다루는 데 심한 어려움을 겪고 무거운 분위기를 몰아내는 데만 급급해 한다.
긴장을 불러일으킬만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그것은 워터파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물이기 때문이다.
긴장이나 불안의 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계발되지 않은 탓이다.
워터파크를 벗어난 일상에서 내게로 물이 튈 경우, 그 물이 우리를 즐겁게 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하겠다.
내게로 튀는 물로 인해 나는 그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크고 작은 생채기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일상의 치열함을 살아가자면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서로는 서로에게 물을 튀겨댈 수밖에 없다.
다들 조심하는 가운데 더 신중하게 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기 마련이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서로가 튀겨대는 불쾌한 물에 덤덤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야 하며 세련된 대처 기술을 위해 애를 써 보는 것이다.
워터파크를 벗어나 겨울의 존재를 인정하고 겨울을 살아본 이만, 물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그에 따른 노하우를 쌓아갈 수 있다.
그 노하우는 자신에게 물이 튀는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도울 것이다.
밝고 활달한 성격적 일면은 워터파크에서 보낸 시간의 선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힘들게 워터파크를 벗어난 이상,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꿈은 워터파크를 떠나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이유는,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주변을 워터파크 환경으로 만들기 위한 헛된 노력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잔잔한 수영장에 머물면서 물의 다른 측면을 경험할 때이다.
한시도 잔잔할 새 없이 이리저리 마구 일렁이고 높이 솟구치고 여기저기로 정신없이 튀겨대는 물 대신, 고요하고 잔잔한 상태의 물도 구경하고 경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과 새롭게 만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환경에 있기를 고집한다면,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이 물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누가 만들어내는지 알 길이 없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영향의 한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