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안의 수도 크테시폰(Ctesipon)

파르티안의 수도 크테시폰의 유적지
“파르티안은 신구약 중간기 역사 주역으로 등장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동남쪽 방향으로 30km를 가게 되면 알 마다인으로 갈라지는 지방도로에 접어들고, 다시 남쪽 8km를 들어가면 티그리스강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알 마다인 읍에 도착하게 된다.
페르시야의 재건 꿈꾼 파르티안 제국
알 마다인에서 티그리스 강변 방향으로 1km 거리를 들어서면 길이 1.5km 폭 1km 규모의 살만 파크라는 공원이 있다. 이곳 살만 파크를 중심으로 한 알 마다인(Al-Mada'in) 일대에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과 아르메니아까지 지배하며 로마와 치열한 전쟁을 계속하였던 사산왕조의 겨울철 도읍지 크태시폰(Ctesiphon)이 있다.
살만파크 경내로 들어서면 하늘 높이 솟아있는 10여층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는 웅장한 벽돌아치가 나타난다. 이 지방 사람들로부터 타카스라(Taqkisra)고 불리우는 크테시폰 아치로서 이 아치는 왕궁의 정문으로 보이는 건축물이다.
파르티안 제국(Parthian on Empire, 240 BC-AD 277)은 오늘날 이란(Iran)의 구라산(Khurasan) 지역에서 옛 페르시야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건국한다. 이 세력은 셀레우코스 왕조와 박트리아(Bactria) 왕국을 정복하고 이란 전 지역과 바빌로니아 전 영토까지 포함하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의 전성기는 마르라다테스 1세(Mithradates I. 71-138BC) 치세시대였다. 이 때 이곳 크테시폰에 도읍을 정하고 동진정책을 폈고 이 지역을 정벌한 파르티아는 서진(西進)정책으로 로마와 대결하여 로마제국에 무서운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왕조는 아케메네스(Achaemenid)왕조의 아르닥 크레르크세스 2세(AntaxerxesⅡ. 404-359 BC)의 후손으로 자처하며 왕중의 왕king of king)으로 호칭하였다.
마카비 혁명기 시대(168-135 BC)의 팔레스타인
땅은 셀레우코스 왕조와 신흥 로마세력과 파르티안 제국과의 영토 분쟁의 혼란기를 맞는 시대였다. 이러한 혼란기에 헤롯가문의 시조 헤롯대왕의 조부 안티파터 1세(AntipaterⅠ)는 이두메 지역의 실력자로 있었다. 그가 후일 유대지역의 실력자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마카비 혁명의 영웅 시몬 마카비(Simon Maccabaeus 142-135 BC)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 1세(John HyrcanusⅠ.135-104 BC)의 치세 때였다. 이 시대의 이후 왕조를 하스모네안 왕조(Hasmonean dynasty) 시대라고 한다.
안티파터는 유대 전 지역을 그의 지배하에 두기 위한 영토확장 정책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다. 그는 에돔(Edom)의 영역인 이두매(Idumea)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할례를 받게 하고 유대교로 개종시킨다. 그리고 그 지역을 유대의 땅으로 선포한다. 이때 안티파터 1세는 힐카누스에게 협조를 하므로 신임을 얻는다.
그후 힐카누스의 뒤를 이어 아리스도 블루스(Aristobulus 104-103 BC)의 짧은 통치가 끝난 후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103-76 BC)가 등장한다. 얀네우스의 아내 알렉산더 살로메(Alexander Salome 76-67 BC)에게
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확장한 유대왕국(서쪽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동쪽 트란스 요르단:Trans Jorden 지역까지)의 통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아들들의 권력투쟁이 일어난다.
힐카누스 2세(장남)에게는 대 제사장직을, 그의 동생 아리스토 블루스 2세에게는 왕직을 모친 살로메가 분할시켜 주었지만 두 형제의 권력 투쟁은 계속 되었고 그후 아리스토 블루스 2세의 승리로 끝나는 듯하였다. 아리스토 블루스 2세는 후원국가로 파르티아제국을 의지하였고, 힐카누스 2세는 당시 새로운 세력으로 팔레스타인에 등장하는 로마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헤롯대왕 부친이었던 안티파터 2세는 키프로스라는 패트라의 왕녀와 전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힐카누스 2세(63-40 BC)를 지지하며 로마의 도움을 구한다. 안티파터(Antipater)는 힐카누스를 지지하므로 후일을 도모하는 음모를 꾸민다.
안티파터는 나바테안 왕국의 아레타스 3세(Aretas Ⅲ)에게 원조를 청하게 되고 힐카누스는 안티파터의 도움으로 작전상 수도 페트라(Petra)로 피신하며 은신하면서도움을 구하고 아레타스 왕의 절대적 후원을 얻게 된다. 그의 이러한 협상의 조건으로 나바테안 왕국의 변방에 있는 열두 성읍을 나바테안에게 넘겨주었다.
한편 로마에서는 1차 삼두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Pompeiyus)가 그의 부관 스카우르스(Scaurus)를 파송하여 다마스쿠스에서 유대땅의 권력 투쟁의 소식을 듣고 유대권력 투쟁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후일 유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침략 투쟁의 당사국이 파르티안과 로마로 역사의 무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대 지역의 패권 놓고 로마와 싸워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선 파르티안의 수도가 바로 이 크테시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