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가
김 길 영
산행 끝에 들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들국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언제 보아도 가을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 꽃이 국화다. 도시에선 좀체 보기 드문 그 향수어린 들국화가 오늘 불현 듯,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요로웠던 옛 시인들을 불러냈다.
서울 자하문성 밖에 살 때였다. 배움에 목마르던 학창시절, 김관식 시인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 분의 집은 정자가 딸리고 서재까지 갖춰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였으나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문객들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저서의 서문을 받으러 오는 인사도 있었으나 대부분 술을 대작하러 오는 이가 많았다.
가을이면 시인의 집 너른 텃밭엔 각종의 국화꽃이 국화축제를 방불케 했다. 들국화 꽃이야 지천으로 피어있었고 여러 종류의 국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밭고랑에서는 굵직한 무가 몸통을 키우는 모습도 넉넉하였고, 바람결에 풍기는 국화꽃 향기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뿜어내고 있었다.
시인은 자신이 공들여 가꾼 국화꽃 앞에서 손님맞이를 좋아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육모정 앞뜰에 자리가 펼쳐지고 어린 두 아들은 술 주전자를 번갈아 날랐다. 시큼털털한 막걸리에 손수 키운 국화꽃송이를 띄워 손을 대접하는 시인의 일상이 내 눈엔 마치 詩처럼 보였다. 국화꽃향기와 함께 문향을 나누는 시인의 삶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막걸리와 국화꽃은 가난한 글쟁이들에게로 가서 시가 되고 밥이 되는 것 같았다.
하루같이 취기에 젖어 지내는 가난한 시인에게 산해진미의 술상이란 턱도 없는 일이다. 막걸리술잔에 안주라고는 국화꽃 한두 송이 띄우는 게 고작이었다. 국화꽃 떠다니는 술자리가 그리워 찾아오는 객들 또한 문단에서 쟁쟁한 문사들이었지만, 그들 역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글쟁이들이었다.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보름달 무렵엔 더 많은 문사들이 모였다. 그들의 입에선 즉흥으로 영시(英詩)가 읊어지고 달을 건지러 간 이백이 술잔을 들고 시를 읊었다. 나는 옛 화첩에서나 본 듯한 그 정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곁에서 훔쳐본 그들의 말씨는 연금술사 같았다. 행색으로 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귀한 언어들이 밤하늘별빛처럼 마당귀에 빛나고 있었다.
내 어릴 적,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다가 하나씩 빼먹던 맛, 약간 떫긴 해도 달콤한 맛이 감돌던 그런 맛. 곱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동서양의 풍류시어가 순료(醇醪)에 섞여 맛을 더했다. 그들의 입술에서 떨어진 낱말 하나하나는 책갈피 속에 넣어둔 마른 국화꽃 냄새가 났다.
겉만 번지르르한 잔치처럼 먹을 게 별로 없는 술상이었다. 그래도 가을이 깊어갈수록 시인의 집에는 문객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들 문사 중에 김관식 시인의 부인으로부터 미움을 샀던 시인이 있었다. 그 분 역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시인이었다. 해맑은 웃음을 짓다가도 바보 같은 표정에 어눌한 말씨가 그 시인의 전부였다.
그분은 허구한 날 김관식 시인 집을 드나들었다. 육모정에 한번 틀어잡고 앉으면 당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 주전자가 바닥이 나도 안주로 띄울 국화꽃이 있으니 어디서든 술을 구해 와야 했다. 그 분이 바로 시와 술에 빠져 일평생을 기인처럼 살다간 ‘귀천(歸天)’의 천상병 시인이다.
천 시인은 태양의 흑점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았다. 추레한 몰골은 언제보아도 행려병자 같았다. 술에 취해 누우면 그대로 하늘이 이불이었고 땅이 베개였다. 바바리코트에 머릿기름을 바르고 멋을 부린 글쟁이들은 그분을 발견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천 시인은 명동의 이름 있는 다방 근처에서 끈질기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문사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몇 푼 손에 쥐면 자하문성 밖의 국화꽃 시인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내 눈에 비친 천 시인은 국화꽃집 주인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몸은 기가 빠져버렸고 술에 찌들어 낡아 허물어져가는 서까래처럼 쇠락해져 갔다.
김관식 시인과 이웃해서 살던 사람들이 오십여 가구쯤 되었다. 4.19와 5.16의 혼란기를 거치고 사회가 안정 되자 도시정비계획이 세워졌다. 성 밑에 자리 잡은 동네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다. 십여 년을 함께한 끈적끈적한 정이 타의에 의해서 끊기는 아픔이 있었다. 달빛 쏟아지는 성 아래 국화꽃과 막걸리와 시인들의 풍류축제를 옛 이야기로 묻어 두고 떠나왔다.
반세기가 무심하게 흘러갔다. 두 시인의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우연케도 산행 끝에 무더기로 핀 들국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하문성 밖의 시인들이 새삼 떠올랐겠는가. 내 젊은 날 보았던 그 아름다운 정경들은 무덤가의 잡초나 될 것이었다. 들국화 꽃향기가 나의 아릿한 기억을 되살려줬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영혼이 맑은 시인들이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내가 어찌 두 시인과 막걸리 잔을 기우리려고 꿈이라도 꾸겠는가. 물관이 말라가는 깊은 가을 날, 새벽잠을 설칠 때가 많다. 꿈인지 생시인지, 자하문성 밖의 시인들이 자주 눈에 아른거린다. 공연히 망상만 번다하다.
이다음 저승에 들어 그 옛날처럼 두 시인을 뵙는 행운을 누리면 좋겠다. 막걸리를 짊어지고 가서 노란 국화꽃잎을 띄운 술잔을 들고 권주가를 부르리라. 자하문성 머리위에 보름달이 떠서 더 운치 있었던 그날 밤처럼, 입술언저리에 술 자국이 번진 채로 달을 향해 껄껄 웃어댈 시인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김길영, 2013년 가을 『현대수필』당선 작품 전문)
당선 소감
김길영
출발선에 서서
어머니 등에 귀를 대고 듣던 어릴 적의 그 분의 심장소리가 제일로 먼저 떠오릅니다. 늦깎이로 문학에 업혀서 온 소년 때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습작기 때 맞은 매서운 회초리 생각이 간절합니다. 마냥 부럽던 등단이 오늘처럼 두려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기분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 백군 대표로 출발선에 섰을 때, 떨리기도 하고 좋기도 한, 꼭 그 때의 마음입니다.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홍억선, 신현식 교수님! 이게 꿈은 아닐 테지요. 초로의 늙은 제자를 끌어주신 그 고마움은, 앞으로 좋은 글로써 보답하겠습니다. 최해숙, 박월수, 김희자 작가님 감사하다는 말로 인사 대신 합니다. 텃밭시인학교 김동원, 이승주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시인님의 지도 편달도 갚을 은혜입니다. 수필문학회 회원, 텃밭시인학교 문우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텃밭시인학교 1기 김길영 회장의 수필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텃밭으로써는 매우 뜻깊은 전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도 열심히 문학공부를 하더니, 큰일을 해냈습니다. 늘 초심으로 돌아가 크게 문필을 드날리길 기원합니다.
종손집 자손이 집안을 일으키고자 하는 심정으로 일을 냈습니다.
귀엽게 봐 주시고, 저 같은 마음으로 일을 내 주어야 합니다.
텃밭에서 공부하는 누구나 일을 터뜨려 주십시오.
회장님! !
축하드려요
텃밭시인학교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의 꿈도 이루었지만,
텃밭시인학교를 더 알리고 싶습니다.
총무님! 축하 메시지 고맙습니다.
김길영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정우씨 감사 해요. 나는 나이 때문에 바빠요.
짧은 시간에 이루어야할 것들이 많아요.
정우씨는 이 세상에 남길 글을 쓰세요.
충분한 실력이니까요.
김길영 회장님 축하해요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우리 효진씨 축하를 받으니 용기가 납니다.
집 앞 연호지에는 연꽃이 만발하겠네요.
연호지를 소재로 글을 써 보세요.
드디어 우리는 하나의 문장, 아니 문장가를 얻었습니다. '囊中之錐'라고나 할까? 그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리와 속내, 생의 목마름과 정념이 이제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뒤늦은 출발이니, 이제부터는 롱런입니다. ‘길永’입니다. 축하합니다. 김상환.
김상환 교장 선생님! 아직도 글이 짧습니다. 수필공부 4년째 입니다. 다른 문우들이 각종 문학상에서, 신춘문예에서 상을 타고 등단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습니다.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막상 등단이란 대기권에 들고보니 바람부는날 높은 나무 위에 메달린 연처럼 두렵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합니다. 텃밭시인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행운이었습니다. 축하 메시지 감사 합니다.
늦었지만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제가 없는 사이 그렇게 좋은 일이 있었다니! 자리 비우고 볼 일입니다.
성취하신 소감이 어떠세요 정말 축하드려요.
소연님! 그 소식 전해드리려고 몇 번이나 뵙기를 청했습니다.
무정타 했습니다. 그리고 문자로 일일히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선 축하 메시지가 왔는데 소연님만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