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노마 Sonoma 밸리에 있는 캔우드 Kenwood 라는 포도주 농장에 방문한 적이 있다. 리셉션 카운터에는 와인 테스팅을 돕는 나이 지긋한 백인신사가 서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전직 FBI 요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내게 늑대얼굴이 음각된 잭 런던 Jack London 이라는 포도주병을 보여주며 소설가 “잭 런던”을 알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잭 런던은 구한말 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한국에도 수개월간 방문했다고 하면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잭 런던에 대하여 궁금해졌다. 1876년생 잭 런던은 40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젊은 시절 사회 밑바닥의 경험을 수 십권의 소설에 토하듯 담아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유산계층을 증오했던 잭 런던은 큰 돈을 벌게 된 후 멘탈붕괴의 상태가 된다.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된 해에 출간되어 주목을 받은 “암살주식회사(The Assassination Bureau, Ltd.)” 가 이러한 그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문제작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법망을 피해 악행을 일삼는 힘있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암살단체가 비밀리에 조직된다. 구성원은 신조에 따라 움직이는 최고의 프로페셔널 킬러들로 의뢰인은 “타켓이 왜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어느 날 사장의 외동딸 사윗감이 찾아왔다. 그는 사장과 끝장 토론을 통해 사장 역시 제거되어야 할 사회악으로 스스로 인정하게 만든다. 논리의 함정에 빠진 고지식한 사장은 회사의 이사회 멤버들에게 그들의 상사인 사장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린 뒤에 도주한다. 충직한 직원들이 사장을 암살하러 찾아 가지만 실력이 미치지 못하여 차례차례 모두 전멸한다. 사회악 제거를 소명으로 한 혁명가 조차도 처벌의 대상인 사회악이 되어버린 논리의 함정 때문에 원작자는 끝내 소설을 종결 짓지 못하였다. 잭 런던은 논리의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TV 드라마 “도망자”의 작가 “Robert L. Fish”가 뒷부분을 마감한다.
재미 있는 것은 유명한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의 경영서적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Build to Last’을 통해 성공기업의 객관적 방법론을, ‘Good to Great’에서는 성공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의 혁신법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하다고 지목한 여러 기업체들이 재무적 위험에 빠지자, 재빨리 ‘How the Mighty fall’을 통해 위대한 기업도 유의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논리로 응대했다. 이 책의 논법이 애플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자, ‘Great by Choice’에서는 결국 하늘이 정한 ‘운’이 따라야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수십 년간 그의 역저를 읽고 이를 실행했던 많은 독자들에게 지금의 짐 콜린스는 자가당착에 빠진 듯하게 보인다. 만약 짐 콜린스가 주장하는 성공방정식의 답이 결국 ‘운’이라면 그가 MBA 학생들에게는 가르칠 내용은 어느 곳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물리적 현상을 서구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었을 때, 동양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철학에서 답변을 찾았다. 경영학의 세계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터드러커는 “좋은 일은 (결코)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이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차원이 다른 곳에서 설명을 찾아야 한다. 2차원 동물인 개미가 3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위대한 기업으로의 성공과 유지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한 듯 보인다.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KAIST 장세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성공요인은 산업효과, 기업효과, 기업집단효과, 경기변동효과와 같은 모델링 가능부분이 45%인 반면 55%가 설명할 수 없는 ‘운’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모델링 가능부분이 55%이고, 나머지45%가 운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최고위층으로 갈수록 운이 90% 이상이라는 판단을 한다는 조사도 덧붙였다.
장교수의 모델에는 내부직원공감지수, 긍정적 고객평가지수, 환경보존 지수, 사회적 기업지수와 같은 다른 차원의 영향도가 고려되었는지 궁금하다. 기업이 내외부와 관계한 거래는 동양사상에서 흔히 말하는 ‘업Karma’과 같다. 매일 매일의 트랜잭션의 무수한 점은 마치 점묘화처럼 모여서 회사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업”은 본인의 살아생전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조상의 공덕까지도 현세의 “나”의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조상과 나의 공덕이 쌓여 자신과 대대손손 좋은 음덕을 받는다고 말한다. “덕을 쌓으면 모르는 귀신도 도와준다”라는 말이 이러한 예이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며 거의 모든 기록이 영구히 남는 시대”이며, 인터넷이 독재자를 물리치고 시민에게 권력을 주는 사회를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한 기사를 보았다. “그렇다. 이제는 인터넷 “업”이다.” 하늘이 감시하지 않아도 클라우드와 인터넷이 점묘화처럼 세상의 나를 기록하고 ‘업’을 자동으로 쌓는다. 짐콜린스가 못 찾은 기업의 성공방정식에는 동양의 “업”에 궁극적 해답이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고객의 감정계좌에 덕을 쌓으면 잔고가 올라가고 인심을 잃으면 잔고가 날라간다. 꾸준히 덕을 저축하여야 위대한 기업의 지위가 유지 되지만, 순간의 실수로 인심을 놓치면 감정계좌에 대규모 인출이 생기고 기업은 부도가 난다. 짐 콜린스가 동양사상에 대한 시각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다음 번 저서의 타이틀은 “위대한 기업의 업보 Great by Karma”라는 제목으로 출판될 것 같다. 짐 콜린스는 경영주제에 관하여 수년간의 체계적인 리서치를 통해 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서 서양인의 관점에서 동양의 “업” 개념을 도입한, 체계적인 경영논리를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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