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015 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이 충돌은 결국은 아마겟돈 전쟁을 촉발할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이 점점 격해져 현재 이스라엘의 사망자가 약 1300명, 팔레스타인은 사망자가 2214명으로 사망자만 3500명이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통보로 가자지구에는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고, 미국은 항공모함을 이스라엘로 급파했습니다. 지금의 레바논 쪽에 있는 헤즈볼라도 참전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라 양상이 국제전으로 발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미사일 공격은 단순한 테러를 넘어 이스라엘 국민을 학살한 것입니다. 민간인을 학살한 이 사건은 과거의 홀로코스트 이래로 처음입니다. 이스라엘은 테러에 대한 대응이 아닌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미국의 911 테러 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과 외국인이 학살당하고 120여 명이 인간 방패로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세계는 양분되어 어떤 곳에서는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가자지구는 성경에 19번이나 지명이 나오는데, 4천년 전 아브라함 때부터 있던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이집트에서 곡물을 수출할 때 이 가자지구를 거칩니다. 중요한 무역항로이며, 이집트와 북쪽에 있는 제국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이 지역을 통과하는 전쟁의 통로였습니다. 왜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무슨 명분으로 이런 대참극을 벌였을까요? 그들이 핑계 삼은 것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연정한 뱅그리브 국가안보장관이 경찰을 데리고 성전산을 시찰한 일이라 합니다. 이를 규탄하기 위해서 테러를 감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평화조약 협정을 맺으려 하는 것을 경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가자지구의 후원 주체로 후원금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게 테러를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들이 문제 삼는 성전산은 과거에도 이스라엘 리쿠드당 당수가 방문했을 때도 팔레스타인들이 민중 봉기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성전산 또한 분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제3성전을 세우려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연정한 세력이 극우파, 즉 정통 유대교인들이라 반드시 성전산에 성전이 서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 분위기를 험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전이 세워지고, 두 증인이 성전에서 3년 반 동안 기도한다고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점령했음에도 성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재 세워진 회교 사원을 없애면 전 아랍에서 공격할 것을 우려해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바깥은 놔두고’라는 말이 나와 있는데, 아마도 성전산의 회교 사원은 놔두고 성전이 건립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의 6일 전쟁에 대해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단 6일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지배 영토를 3배나 늘렸습니다.(요르단 강 서안(West Bank),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시리아골란고원, 이집트 시나이반도)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가 이스라엘에게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지 못하게 금지시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아래쪽, 사우디 아라비아와 연결된 조그만 항구가 있는데, 이 항구가 있는 아카바만의 타란 해협을 봉쇄해 버립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무역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땅인데, 당시에는 시리아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시리아가 식수 사용을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먹을 물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스라엘을 몰아내서 지구상에서 없애겠다고 공언을 하고 많은 전투기와 무기들을 계속 수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까지 위협적인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적인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방어를 위한 전쟁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쟁에 승리한 이후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끝 수에즈 운하 쪽에 폭 14미터의 큰 모래산을 쌓고 방어막을 설치합니다. 군인들을 배치하고, 골란 고원을 요새화해서 절대 침략당하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안심하고 있는 사이 다시 침공을 당했습니다. 이집트의 물대포 공격으로 모래산이 반나절 만에 무너졌고, 골란 고원은 몇천 대의 댕크로 방어선이 다 뚫려버려 이스라엘은 멸망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쟁사에서 기록된 것처럼이스라엘 청년들의 생명을 건 애국심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게 됩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성경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 이후, 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을 통해 기독교 교리가 만들어졌는데, 면제부 등 몇가지 만 제외하고 천주교의 교리를 거의 가져와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과 안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을 터부시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세상이 끝나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며, 이스라엘은 마지막 때 주목해야 할 국가입니다. 잘못 만들어진 교리들이 틀이 되어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인간을 지옥에 보내려고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옥은 사탄과 마귀를 가둬놓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려고 만든 곳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단 성경의 해석만이 아니라 사람 간에도 많은 오해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막는 중심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부터 46절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말씀을 보면 때를 알리는 사명이 중요한 사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있으나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합니다. 즉 때를 알고 예비하고 있던 자는 데려가십니다. 때를 모르면 버려집니다. 지금 마지막 때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때 깨어 있으라고 전하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은 어느 날에 주가 임할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오늘 밤이라도 오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실 때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충성된 청지기는 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지혜,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과거 교리를 만들 당시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했기에 이스라엘은 단지 상징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스라엘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국가가 다시 세워진 이후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유다로, 우리 이방 그리스도인은 에브라임 또는 이스라엘로 분류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성경이 더 명확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바냐 2장 4절부터 7절
4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
5 해변 거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찐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6 해변은 초장이 되어 목자의 움과 양떼의 우리가 거기 있을 것이며
7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찌라 그들이 거기서 양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권고하여 그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니라
성경에 가사가 어떻게 된다고 적혀 있습니까? 가사는 지금의 가자지구인데 버리운다고 쓰여 있습니다. 4, 5절 말씀에서 블레셋 땅에 거민이 없어지고, 그 지경은 유다 족속에게 돌아간다고 쓰여있습니다. 남은 자는 살아남아 돌아온 자들 곧 지금의 알리아를 의미합니다. 결국 말씀을 보면 가자지구에 다른 족속들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요엘 3장 1절부터 6절
1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4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6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엘서는 전 세계로 디아스포라 됐던 유대인들이 돌아오는 사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에 만국이 여호사밧 골짜기에 모여서 이스라엘을 칩니다.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내가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국문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을 멸종시키겠다고 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은 현재의 레바논입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계속 이스라엘 공격하고 쳐들어갈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쪽에서도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 상황과 비슷합니다.
요엘 3장 7절부터 8절
7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지금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두로와 시돈 지역에 있는 자들을 유다 자손의 손에 팔겠다고 하십니다. 전쟁의 참화에 많은 사람이 피난을 간다는 것입니다.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이 스바는 시바 여왕이 있던 지역으로 에디오피아의 북쪽 아라비아 반도의 남쪽입니다. 곧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지금 가자지구의 전쟁이 심각해지면 난민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분쟁의 뒷 이야기까지 성경에 쓰여있습니다.
요엘 3장 9절부터 13절
9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찌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찌어다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찌어다
11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찌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찌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찌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지금의 가자 지역과 레바논 지역에서부터의 분쟁이 아마겟돈 전쟁을 촉발합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상태에서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지역 전쟁입니다. 사람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피난 가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 곧은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분쟁은 결국 아마겟돈 전쟁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고 있고, 하나님은 이 블레셋 지역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16절부터 21절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나일강의 범람)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블레셋 땅에 있던 가나안 족속을 멸하여 거민이 없게 하신다는 말씀을 보며(스2:5) 하나님은 이들을 다 죽이셨다고 생각하겠지만 스가랴의 말씀을 통해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시고 기회를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시니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스가랴 9장 3절부터 8절
3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4 주께서 그를 쫓아 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5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6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8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두로가 불바다가 된다고 하십니다. 블레셋 지역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 주시는 것은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벌 주면 성경은 간단해집니다. 모두 사형! 그러나 성경은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사랑하니까 구구절절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빌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발 돌아오라고 빌고 있습니다. 너희들 이러다 죽는다고 겁을 주셨다가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자식으로 생각하시니 확 내쳐버리질 못합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소중한 보석으로 여기십니다. 주님께 완전히 돌아갑시다.
하나님은 블레셋 땅에 거하는 사람들, 잡족들, 모두를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이 가진 것을 제하여 버리십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한 두목이 되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족속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땅을 다스리시면 전 세계는 한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 아담의 후손이고 노아의 후손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악은 분리시키려 하나, 하나님은 내가 그들도 사랑하고 유다 족속의 두목같이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가망이 있어 보입니까? 가망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그들이 그렇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들도 내가 사랑하여 내 백성으로 만들 것이라 하십니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이 가자지구는 원래 왕들이 지나는 왕의 대로로 늘 전쟁이 있어 왔습니다. 이집트, 바벨론 모두 이 지역을 통과해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다시는 전쟁의 통로가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하나님은 그곳을 평화의 장소로 만들 것이고 그곳 지역의 군민들을 이스라엘로 편입시키며 하나님과 하나 되는 지역이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21절 말씀처럼 더 이상 이스라엘 지경에 가나안인, 즉 여호와를 모르는 자들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를 향한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고 늘 주님을 사랑합시다. 그분을 믿어드립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지금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와 그리고 위쪽에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역과 분쟁에 관해서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배웠습니다.
놀랍게도 아마겟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 또한 다 사랑하며 그들을 예수께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런 원수 같은 그들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오해하였던 많은 것들을 주 앞에 회개합니다.
그리고 더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와 늘 함께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