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뉴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영국의 황태자비인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가 죽은 후 앤드루 몰튼이란 사람이 황태자의 전기를 통해서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드러냈는데 다이애나는 영국의 상류사회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 재학중 부모의 이혼소식에 충격을 받아 학교를 16세에 중퇴했습니다. 그후 다이애나는 유치원 교사도 하고 한 때는 파출부 생활도 했답니다. 그러던 중 찰스 황태자의 사교 클럽에서 찰스의 눈에 들어 황태자비가 되었습니다.
초호화 결혼, 그의 일생은 이제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신혼이 시작되면서부터 그의 삶의 힘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왕실의 격식에 익숙하지 못한 다이애나는 왕실에 적응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다이애나를 찰스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이전의 여자친구였던 카밀라 라는 여자와 교제를 계속했습니다. 자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것과 왕실의 부담과 찰스의 외도가 다이애나를 점점 힘들게 해서 결국은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와 이혼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왕가의 특권 엄청난 인기와 보석 찬란한 의상과 금세기 최고의 신데렐라 자리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교통사고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 9월 5일 밤 가난한 빈민들의 곁에서 맨발에 샌달을 신은 모습으로 남루한 수녀 복을 입고 전 재산 우리 돈 1백 25원을 남기고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남기고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테레사 수녀입니다. 테레사는 다이애나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조금도 누리고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다 팔아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테레사의 마음에 있는 사랑입니다. 테레사가 가지고 있었던 사랑은 그가 비록 일평생 남루한 수녀 복 세 벌 밖에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다이애나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보석과 명예 권세 인기 물질 모든 것은 그에게 조그만 행복도 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의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어도 내 마음에, 나의 삶의 주변에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식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권세 명예 인기가 있어도 내 삶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언15:17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절대 거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열심히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는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서양 어린이동화에 하나님이 천사를 이 세상에 보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 보라 하셨습니다. 골짜기에 핀 꽃 한 송이 찾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웃음을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찾았습니다. 몇 년 후 끝까지 변치 않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서는 똥, 오줌을 가려주고 자라면서 온갖 말썽을 피워도 참고 돌봐주며 훌륭한 성인이 될 때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다하며 참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러 한 사랑과 인내가 없이 생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참지 않습니다.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오래 참으면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부모자식관계,형제관계,이웃관계에서 쉽게 판단하고 언어나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허물을 덮고 오래오래 참으며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을 기대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입니다. 기다려 줄줄 알고 용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유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부부관계에서, 부모자식 관계에서 남편이 아내와 자녀들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면 가정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 아내가 남편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남편은 집에 빨리 들어오고 싶어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인 가정을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가 상호간 율법과 의무의 관계가 되어서 서로 판단하고 심판하면 둘 사이는 살벌하고 냉정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서로 용서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하면 잘못을 회개하고 사랑을 느껴 변화 받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냉정하고 딱딱합니까? 아니면 부드럽고 따뜻합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이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그리워하며 찾아 방황하지만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대해 줍니까? 오직 의무와 경쟁의 관계만 있고 용서와 긍휼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세상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온유하게 우리를 대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안습니다.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관계에서는 이웃이 잘되면 투기하게 됩니다. 서로 이해관계에 있기 때문에 남이 잘 되면 내가 손해난다고 생각하고, 또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투기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해 관계 속에서 생존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사랑하는 상대가 잘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해 주며, 잘되면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아량이 있을 때 이 사람은 사랑의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서로 경쟁적인 관계 있을 때는 서로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상대를 칭찬해 주되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어찌하든지 상대를 돋보이게 하고 자랑해 주는 것이지 상대에게 열등감, 좌절감을 갖도록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경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교만하고 오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겸비하여 자기를 낮추고 나타내지 않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장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사랑은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를 낮춥니다. 자기를 겸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높여주고 사람 앞에 돋보이게 하셨고, 예수 님은 자신을 감추고 아버지만 높이신,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라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때는 무례한 언어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삼가하고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기쁨을 갖게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항상 예의를 지켜야 하며, 무례히 하면 사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형제간에도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참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합니다. 자기 유익보다는 상대의 유익을 추구해서 자기의 먹을 것, 입을 것을 먼저 취하지 않고 상대를 도와줍니다. 태종 왕의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효녕(일부러 미친체 함), 양녕(왕 자리 양보하고 집을 나감), 충녕(세종대왕) 효녕과 양녕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율법적인 인간관계 속에서는 의무관계가 손상되면 견제하고 까다롭게 따지면 성을 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에서는 항상 용서와 불쌍히 여김이 따르기 때문에 잘못을 안타까와하지 견제하거나 성내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돌로 맞아 죽게 된 여인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수가성 우물가에서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사는 여자를 만나셨어도 그를 정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 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사람들이 잘못을 깨닫고 변화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의 삶에서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본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방의 선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악한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자식이나, 애인에 대해 악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악한 것을 마음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탐욕은 인간을 불의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탐욕이 마음에 들어오면 어떠한 불의와 부정도 다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므로 상대에게 손해가 가는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임으로 마귀의 지배하에 있으면 항상 거짓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가운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갖고 살므로 당연히 진리를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이 아니고 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강한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곧 예수 님이십니다(요14:6) 진리는 곧 기쁨입니다(빌3:1,4:4)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독일인들에 의해 강제 감금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비록 구름이 끼어 태양이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그 구름 뒤에는 찬란한 햇빛이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암담하지만 이 현실 위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노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신 것을 아는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그들이 선하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로마서 8:28에"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건강도, 질병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합력하여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고 이와 같은 믿음을 내 이웃에게고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합력하여 유익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고통만,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결과는 좋아진다는 것을 믿고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을 저 버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고난에는 의미가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내가 헐벗고 굶주리며 당하는 고통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견디지 못 합니다. 생을 포기하고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미만 있으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미를 잃어버리면 삶은 포기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계신 것을 알게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는데 이것은 다윗에게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고난도 견딜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흑암에서 빛을 발할 수 있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가져올 수 있으며 죽음에서 삶을, 추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동물은 아닙니다.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밥은 육체의 양식이요, 사랑은 마음의 양식입니다. 아니 전인격의 양식입니다. 밥이 절대로 정신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영혼이요, 영혼을 가진 육체이기 때문에 밥과 사랑의 두 가지 양식이 다 필요합니다. 밥이 부족할 때 우리의 육체는 영양불량의 병에 걸립니다. 따라서 사랑이 부족할 때 우리의 인격은 애정 결핍에서 오는 병에 걸립니다. 애정이 너무 결핍되면 냉정하고 이기적이고 비뚤어진 인간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 대해서 복수심이 생기고, 폭력 충동의 노예가 되어 반사회적인 범죄자가 되기 쉽습니다. 애정이 너무 과다하면 독립심이 적어지고, 의존심이 강한, 나약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의 결핍도 병나게 하고 사랑의 과잉도 병나게 합니다. 고아가 왜 범죄자로 전락하기 쉽습니까? 인격의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애정의 양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성격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행복하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떠나서 행복을 말하는 것은, 나무를 떠나서 열매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몸의 주성분을 이루는 것처럼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을 이룹니다. 소금에서 짠맛을 빼면 소금이 아니고, 사탕에서 단맛을 빼면 사탕이 아니고, 고추에서 매운 맛을 빼면 고추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서 사랑을 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사랑하면 관심이 있습니다.
화초를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소독을 해주고, 풀을 뽑아 줍니다.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과 관심은 정비례합니다.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관심이 크고,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관심이 적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면 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사실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면, 문학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갖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면, 나라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집니다. 나라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도 깊은, 그리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은 본체만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체만체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관심의 정도가 사랑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가정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내 교회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입니까? 내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기울입니까?
사랑하면 책임감이 있습니다.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Responsibility'라고 합니다. 이 말은‘대답한다’(Respond),‘응답한다’는 뜻입니다. 책임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부를 때 내가 대답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몸이 아파서 엄마를 찾으면 어머니는 곧 대답합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가든지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옵니다. 책임은 부르는데 대한 대답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깊은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건강에 대한 책임, 생활에 대한 책임, 교육에 대한 책임, 결혼에 대한 책임, 미래에 대한 책임을 느낍니다. 사랑과 책임은 비례합니다.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는 지를 보면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무책임, 책임 회피, 책임 전가 입니다.
사랑하면 존경받습니다. 사랑은 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자유를 존중하고 아내의 인격과 생각과 개성을 존중합니다.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느냐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인격을 존경합니다. 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니고 이타주의입니다.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예: 미국재판과 할아버지와10불)
우리가 합창을 할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해야만 합창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하든지 나만 노래하면 된다고 소리를 지르면 합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말하자면 큰 합창단과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경할 때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고, 화평한 가정이 되고, 화평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서로가 존경하는 데에 화평이 있습니다.‘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화평하면 만사가 잘 됩니다. 서로가 존경할 때입니다.‘교화만사성(敎和萬事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평안하면 만사가 잘 되고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사랑하면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사랑은 이해를 심화시키고, 이해는 사랑을 심화시킵니다. 사랑이 없을 때 이해심이 부족하고, 이해심이 적으면 사랑도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理解)라는 말은‘이치로 푼다’는 뜻입니다. 원리원칙을 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이해라는 말을‘understand'라고 하는데 이 어원은 밑에(under) 선다(stand)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밑에서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갓 시집을 온 새색시가 처음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삼층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제가 시집와서 처음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잘 지으려고 정성을 다했는데 그만 3층 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비록 3층 밥이지만 이 식탁에 복을 주셔서 우리 시부모님이 3층 밥일지라도 맛있게 드시고 건강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앞으로는 더 잘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 기도를 시어머니가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못들은 척 하고서 안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뒤에 며느리가 밥상을 들고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밥상을 받으면서 자기가 대표로 식사기도를 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며느리가 시집을 와서 처음으로 지은 밥상을 받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비록 3층 밥을 지었다할지라도 온 가족이 맛있게 먹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시집와서 처음 밥을 지었을 때는 다 타버린 불탄 밥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며느리는 그것보다 나은 3층집을 지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복 주셔서 이곳에 3층집을 짓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 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며느리는 잔뜩 긴장해 있다가 시어머니의 사랑 어린 기도소리를 듣고서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습니다.
가족들 얼굴에도 평온함이 깃 들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수저를 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역시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야. 어머니의 소원대로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3층 집을 지어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시아버지도 흐뭇한 듯이 한 마디 거드셨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비록 우리가 3층집이 아니고 단층집에 산다 할지라도 우리 가족들에게 이와 같이 사랑이 풍성한데 남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어? 우리 가정이야말로 제일 행복한 가정이야!" 그렇습니다 사랑은 서로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나눕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아까워서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주는가를 보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적게 사랑하면 조금 주고, 깊이 사랑하면 많이 줍니다. 사랑하는 것과 주는 것은 정비례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 정성을 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면 주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요, 축복이요, 만족입니다. 주고 나서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 나는 그만큼 적어집니다. 물리학적, 경제학적 원리로 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경우에는 주고 난 다음에 내가 더 풍성해졌다고 느끼고, 더 부유해졌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주면 줄수록 나는 기쁘고 풍성함을 느낍니다.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입니다. 받겠다는 의식과 의지를 떠나서 그냥 자꾸만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사명감에 삽니다. 화가는 정성과 정열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고, 조각가는 조각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창조적인 자기표현입니다. 등산가가 왜 땀을 흘리고 고생하면서 산에 오릅니까? 운동선수가 왜 운동경기에 몰두합니까? 기업가가 왜 기업에 집념을 가지고 임합니까? 학자가 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독서와 연구에 전념합니까? 창조적 자기표현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표현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내 마음껏 창조적 자기표현을 할 때 삶의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표현을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인생의 깊은 의미와 가치는 개성에 있습니다. 자기 개성에 있습니다. 자기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이 내가 나답게 사는 길이요, 인생을 인생답게 사는 것입니다. 시인이 시를 쓰지 못 할 때 불행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 불행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쓰지 못할 때 생의 의미가 없습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보람된 일을 하는 데에 있습니다. 가치가 있는 일, 의의가 있는 사업, 훌륭한 목표에 열중하고 몰두 할 때 거기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소꿉장난에 열중할 때, 소년소녀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놀이에 정신이 팔렸을 때, 조각가가 작품 활동에 심혼을 쏟을 때, 학자가 연구에 전심전력할 때 운동선수가 운동에 전력투구할 때, 성도들이 교회봉사에 전념할 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를 위해 죽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생각이냐고 물을 때 나는 이것을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라고 말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밖에서 볼 때는 그가 고생하며 모략과 중상을 당하고 비난을 받으며 살았지마는 그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사명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위해서’가 없을 때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허무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허무주의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허무주의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표의 상실이요, 삶의 무의미감입니다. 인생의 가치 상실이요, 방향 상실입니다. 도시의 고독한 군중의 물결에 휩쓸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립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할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고, 보람있게 사는 길이고, 행복하게 사는 길인가?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런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술과 도박과 향락과 유흥으로 허무한 기분을 얼버무리면서 그날 그날의 생을 불성실, 무책임, 무기력 속에 살기 쉽습니다. 이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가슴속에 사랑이 가득 차고, 마음속에 사명이 가득 차고, 생활 속에 창조의 정열이 넘칠 때 절대로 허무주의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게까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던 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만이 인간 삶의 바퀴를 잘 굴러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부귀, 영화, 공명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할 뿐인 것입니다. 사랑이 첨가되어야 비로소 빛을 내고 아름다와지며 의미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섬기고 사는 것만이 영원하고도 유일한 가치요, 기쁨이요, 소망이요 또한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성숙 구도에 대해 원리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유치할 때에는 내가 사랑받으니까 남을 사랑한다. 그러나 성숙하게 되면 내가 사랑하여 비로소 사랑을 받는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고, 사랑 받는 것이 뒤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원인이요, 사랑 받는 것이 결과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유치한 사람은 그 사랑하는 동기가 이렇습니다.‘I love you, Becouse I need you’내가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필요가 사랑의 근거로 나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I need you, Becouse I love you’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수준에서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사랑 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평이 많습니까? 높은 차원에서 보세요. 사랑해서, 끝까지 사랑해서 사랑 받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향기 없는 꽃과 같고, 꽃이 없는 화원과 같습니다. 인생에서 사랑을 제거하면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처럼 허무하고 황량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3-18)
오늘 주신 말씀은 십자가사랑의 복음입니다. 방언이나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을 해서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산을 옮길 정도의 큰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아니합니다.
교만하거나 무례하지도 아니하고 사랑은 제 생각만 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고, 의가 아닌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바른 것을 기뻐하고 범사에 참으며, 범사에 믿으며, 범사에 바라며, 범사에 견딥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이 말씀은 사랑에 관한 최고의 문장입니다. 가장 깊은 철학입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종교와 철학이 모두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은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합시다. 서로 사랑하는 동서화목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댓글 사랑이라,,,,,오래된 이야기제????
서로 사랑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