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아리랑비' 인근을 지나는 스님들의 모습
▲ 토끼해라서 더 각별한 트레킹 코스 '토끼비리~고모산성'
신묘년(辛卯年)은 토끼해이다. 우리 산하 토끼와 관련된 지명은 얼마나 될까.
마을, 계곡, 섬, 산, 고개 등을 아울러 전국적으로 158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트레킹코스로 삼을 법한 곳을 꼽자면 경북 문경의 '토끼비리'가 제격이다.
토끼비리는 과거 선인들이 한양을 가던 영남대로의 일부분으로
최근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둘레길'과는 내력부터가 다르다.
경북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일원에 나 있는 토끼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흘러든 영강이 진남교반에 이르러 급하게 휘감아 돌아 나가는
오정산 자락 벼랑에 난 옛길이고 유래는 고려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927년(고려 태조 10)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길을 내게 돼 '토천(兎遷)'이란 이름을 얻었다.
'토끼비리'는 과연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비리'란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이르는 '벼루'의 사투리.
그만큼 만만치 않은 지형에 산길이 나 있다.
석현성에서 영강까지 3㎞ 남짓 짧은 이 길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물굽이 길에 다리 셋이 모여들어 멋진 풍광을 이뤄내
'경북8경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그곳에서 영강을 건너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또 반대 돌고개마을 쪽 성황당에서 고모산성의 날개성인 석현성 진남문의
왼편 성벽길을 따라가도 토끼비리와 이어진다.
진남교반 진남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휴게소 뒤편 산길 표지판을 따라 나섰다.
문경선 철로를 가로지르고 굽이치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자 영남대로 옛길이 나선다.
구절양장 토천, '토끼비리'의 시작점이다.
한사람이 다닐만한 폭의 토끼비리는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다녔던
수많은 선비들의 짚신발로 닳고 닳아 이미 바위돌이 반질반질하다.
과연 세월과 세대를 담아온 옛 길의 연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토천 옛길은 오정산 등산로 입구까지 가파른 벼랑의 구절양장 사다리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는 어룡산의 설경과 고부산성의 끝자락이 보이고,
발아래에는 눈밭과 얼음, 차가운 물길이 어우러진 진남교반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겨울철 토끼비리는 여느 트레킹코스에 비해 미끄러운 편이므로 아이젠이 필수다.
하지만 길이 급격히 좁아지며 가파른 지점에는 나무 데크를 만들어 놓았고,
시종 시야가 툭 트여 상쾌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고모산성
토끼비리 인근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기에 알맞다.
인근에 삼국시대에 쌓아올린 고모산성과 성황당, 주막거리, 1990년대까지
석탄을 실어 날랐던 문경선 철길 등 들러볼 만한 옛 자취가 쏠쏠하다.
진남루와 고모산성, 고모산성의 날개성인 석현성은 토끼비리와 이어져 있다.
진남루에는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었던 예천 삼강주막과 문경 영순주막을 복원한
초가 2채가 세워져 있다. 주막거리 뒤편에는 느티나무를 거느린 성황당이 서 있다.
성황당
성황당 왼편으로는 위풍당당한 고모산성이 이어진다.
4세기 신라시대에 쌓은 고모산성 정상에 서면 눈을 이고 있는 길 따란 성벽과
진남교반, 어룡산, 주흘산 등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 가족이 함께 걷기 좋은 길 '새재'
설경을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기기에는 문경의 대표 옛길 새재가 으뜸이다.
특히 선인들의 체취가 흠씬 묻어난 눈 덮인 새재 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시공을 초월해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조선 태종 때 뚫린 새재는 500여 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당시 일종의 고속도로였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추풍령과 새재, 죽령의 고개 중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열나흘 길 새재가 가장 빠른 코스였다.
특히 과거시험 보러 떠나는 유생들은 유독 새재 길만을 고집했다.
당시 횡행했던 일종의 징크스 때문이었다.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 수 있다'는 속설이 그것이다.
제1관문 주흘관
'새들도 날아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의 참 맛은 뭐니 뭐니 해도 고갯길 트레킹에 있다.
특히 요즘처럼 흰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기라도 하면 정취가 한껏 살아난다.
새재에는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
그리고 경상감사가 직인을 주고받았던 교구정터, 객사가 있던 조령원터 등
다양한 유적들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하나의 완벽한 역사 트레킹코스가 이어진다.
주흘관에서 옛길 여정이 시작된다.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을 비롯해
영봉 마패봉 조령산 등 문경새재를 둘러싼 명산의 설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성문을 지나면 조령산의 산세가 개성의 송악산을 빼닮았다고 해서 용사골에 들어선
드라마 '태조 왕건' 야외 세트장이 펼쳐진다.
2만평의 부지에 고려궁 백제궁 서민촌 양반촌 등 완벽한 역사속의 도시가 형성돼 있다.
세트장을 스쳐 지나면 조선시대 길손들의 숙박과 물물교환장소였던 조령원터와
여독을 풀던 주막이 이어진다.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 6.5㎞의 문경새재 길은 시가 흐르는 옛 길이다.
서거정 김종직 김시습 주세붕 이황 이이 류성룡 김만중 정약용…
한 시대의 묵객치고 한양 오가는 길목인 문경새재에서 시 한 수 남기지 않은 이 없을 정도다.
제2관문 까지는 객사였던 조령원, 교구정, '산불됴심'비 등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길가에는 낙동강으로 향하는 계곡물이 눈덮인 차가운 얼음 아래로 졸졸 흐른다.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제2관문인 조곡관은 주흘산을 배경으로 설경을 그린다.
기암괴석과 낙락장송, 그리고 맑은 계류가 한데 어우러진 곳에 자리한 조곡관은
새재의 세 관문 중에서도 풍광이 으뜸이다.
2관문에서 3관문에 이르는 새재 길은 한층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지나면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 바위',
장원급제길이 나서고 고개를 굽이돌아서면 문경새재의 마지막 관문이자 정상인
조령관이 흰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나타나고 성문을 넘어서면 충북 괴산이다.
낙동강 뱃길과 영남대로를 달려온 선비들은 조령을 넘어 충주 탄금대에 이르고
그곳에서 남한강 뱃길을 이용해 한양으로 향했다.
오르는데 쉬엄쉬엄 2~3시간 남짓, 왕복을 감안한다면 반나절을 잡아야 한다.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
→ 문경새재IC~새재
→ 문경새재IC~3번 국도 문경시청 방향 조령천 따라 4km~진남교반
▲ 미식거리 '약돌돼지'
문경의 대표 미식거리인 약돌돼지에는 게르마늄과 셀레늄 등을 함유한
거정석(약돌) 분말을 첨가한 사료로 사육해서 쫄깃한 육질에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다.
유명하다.
문경약돌돼지(삼겹살 1인분 9000원 150g, 오미자 고추장 불고기 9000원 200g
오미자석쇠구이정식 1만2000원), 문경한우등심(2만원, 150g)등을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산채비빔밥(8000원), 묵채밥(7000원), 간고등어구이정식(9000원)
송이버섯전골(2만원)등의 별미도 내놓는다.
세재 길을 걷다 보면 계곡을 따라 아름드리 솔숲이 펼쳐지는가 하면
완만한 흙길을 뒤덮은 하얀 눈이 기분 좋은 발걸음을 떼게 한다.
괜히 조선 시대 선비들이 시를 많이 지었던 곳이 아닐 정도로 풍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