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다음카페에서 문답에 관심을 두고 내가 그간 알고 있는 서법에 대해 피력한 내용의 글들 입니다 지금도 그 내용을 보니 생소하지는 않네요
한번 읽어 보시고 새로운 이견이 있으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 ^*
..
나의 개인적인 자그만 의견 덧붙입니다
보통 隸書에서 가장 主가 되는 것은 橫劃으로 起筆을 반대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서 劃이 끝나는 곳에서 아래로 내리다가 위로 鋒을 모으는것이지요 일반적으로 解書의 파책을 경사짐이 없이 수평되게 鋒을 펴는 방법과 흡사하다 여겨집니다 이것이 波勢이고 예서의 筆勢이지요
解書의 策劃 및 파책을 좀더 연구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됩니다 짧은글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전에 해서만 써봐서 예서의 붓놀림(?) - 이라고 해야하나? - 의 느낌을 잘 모르겠어서요..
가장 기초적인고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좀 있음 만우절이 되네요..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秋史선생의 난치는방법을 참고하세요
秋史선생은 <君子文情帖>에서 난을 치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난을 치는 데는 마땅히 왼쪽으로 치는 한 법식을 먼저 익혀야 한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난숙(爛熟)하게 되면 오른 쪽으로 치는 것에 따라 가게 된다. 이것은 손괘(損卦)의 먼저가 어렵고 나중이 쉽다는 뜻인 것이다. 군자는....(중략)... 이 봉안(鳳眼)이니, 상안(象眼)이니 하여 통행하는 규칙은 이것이 아니면 난을 칠 수가 없으니, 비록 이것이 작은 법도이기는 하나 지키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다. 하물며 나아가서 이보다 큰 법도가 있겠는가.'
또 '난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隸書)를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난 치는 법은 그림그리는 법칙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만일 그림 그리는 법칙을 쓰려면 일필(一筆)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 [원본 메세지] --------------------- 안녕하세요^^ 저는 서예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사군자를 배우고 있는데요 어떻게 난을 쳐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용묵도 잘 안되고, 붓을 다루는것도 아직은 서툴고... 꽃을 그리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고.. 蘭에 대한 자료들을 좀 보고 싶은데 어떤 것들을 참고하면 좋을까요??
제 느낌을 몇자 적습니다 먼저 흔히들 말하고 있는 원필과 방필의 의미를 알아야겠지요 짧은 의미의 내용을 알아보면
방필(方筆), 원필(圓筆) 필획중에서 획형이 방형(方形)으로 생긴 것을 방필이라고 한다. 방필의 의미에는 동사적인 면과 명사적인 면이 있는데 방형으로 필봉을 운용하은 것을 방필이라고 하고 방필로 써놓은 필획도 방필이라고 한다. 원필은 원형(圓形)의 필획을 말하는데 방필과 상대적인 획형의 명칭이며 속으로 살찐 듯 강한 골격이 나타나지 않으며 둥글고 힘이 센듯한 느낌을 풍긴다. 전서는 모두가 원필로 이루어지며 예서에 이르러서야 방필과 원필을 혼용하게 된다. (잉크아트 자료실중에서)
단순히 생각하면 붓의 운필상 筆의 上下탄력을 최대한 이용한것이 원필이며 시작도 원필이면 끝남도 원필의 상태로 준(쪼그릴 준)을한상태로 끝나야겠지요 방필은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상기내용과는 달리 필의 의미가 붓의 상하 탄력과 비틀림의 탄력에의해 밖으로 표현되는 의미로 생각되어질수 있습니다 가령 예서와 같이 붓의 시작이 처음 꼬임으로 시작되었다면 획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다시 처음과 같이 붓이 돌아갈수 있도록 꼬임을 풀어 주는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하기위해서는 筆의 意味를 밖으로 표현하면서 筆鋒을 모아주어야지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 [원본 메세지] --------------------- 혜림님! 정말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서의 시작이 원필이라면 전서의 끝부분의 느낌은 예서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느낌이 들어야 할까요? 끝부분의 운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궁금합니다.
저의 私見에 귀기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서예에 대해 박식한 사람도 아니고 서예가 또는 아니며 그저 서예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체계적인 理論은 아니지만 그간의 나의 배움을 조금이나마 정리하여 나타낸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隸書의 節과 篆書의 節은 'ㄱ'자형과 같은 절곡부분이라 생각하고 질문에 小見을 붙일까합니다 먼저 전서의 절은 처음의 藏鋒 혹은 露鋒으로 이루어진 상하 수직의 붓의 탄력으로 절곡의 지점에서도 필의꼬임이나 선폭을 변화없이 유지해야 하며
예서의 절은 심하게 뒤틀려진 붓의 꼬임을 풀거나 더욱 꼬이게 함으로서 선폭의 변화를 준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꼬임의 현상으로 필의 의미가 외부로 방출되는것이 방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書란 느낌도 좋지만 엄연한 書의 法則 즉 신묘한 力學의 法則이 있어 이러한 붓의 성질을 알고자 하는것이 書를 배우는자세라 생각됩니다
붓의 奧妙한 움직임을 몇자 글속에 넣어서 설명하는자체가 조금 이상스럽네요 서예가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데....쩝
이상의 글은 제가 여지껏 느껴온 私見이니 개인적인 의견으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원본 메세지] --------------------- 전형재님 개인적인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예서는 필의 꼬임을 풀기 위한 필의 의미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예서의 절의 느낌과 전서의 절의 느낌이 다른점이 이것때문인가요? 전서는 어떤 느낌으로 절을 넣어야 할까요?
우리나라 서예의 발전이 여러 서예가와 좋아하는 여러 후학들의 노력에 이루어졌음을 누구도 배제하지는 않타고 봅니다 예전에는 배움에 있어 거리상 멀고 또한 특정인의 전수물인양 서론의 감추어진 비밀을 숨기듯이 지켜온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이러한 서론의 비책들이 마치 자기것인양 아니면 비책을 전수받은 모양인양 스스럼없이 복사하여 베포하는 그런 분위기 입니다 이러한 이론들이 어떻게 나왔으며 이러한 내용들이 참인지 분간 못할정도로 인터넷상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자기주장도 피력함이 없이... 마치 글은 있는데 작자 미상이거나 흔한 말로 두리뭉실한 철학으로 얼벼무려 그냥 그렇게 후배나 후학들에게 넘겨주기도 하면서... 정치에서 말하는 하나의 깃털이거나 몸은 있는데 실체(정신)는 없는것이죠 감언이설과 같은 말로 커다란 서예의 테두리안에 기초적인 서법을 매장(?)시키며 회피하는것과 같은거죠 우리는 지금도 서예를 하는한 중봉을 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藝를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저만치의 것이다 하면서도 중봉을 하라 가르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렇게 아무런 근거 없이 떠도는 서론에 대해 누군가 지적하며 다시 새롭게 태어날수 있도록 하는것이 서예를 배우는 한사람으로서의 자세라 생각되어 이글을 올립니다
--------------------- [원본 메세지] --------------------- 다음과 같은 말도 있군요...
'...따라서 실제로 필봉이 변하지 않고 필획의 한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서자들이 감각에 의존하여 무의식적으로 붓
을 제어하여 다만 기본적인 중봉행필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하는 '筆筆中鋒'의 진정한 함의이다. 따라서 어떤것이든 곧이 곧
대로 해석하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정확한 인식이란 기초위에서 오직 정확한 운필을 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 바르면(正) 뼈
가 서고(立骨), 치우치면(偏) 자태를 취한다(取姿)' 하는 것과 같다.....(중략) 따라서 '획 가운데 실같은 농묵이 중앙을 지난다' 라는
구절이나 '행필이 굽어 꺾어지는 곳에서도 偏側은 없다' 등등의 말들을 깊이 연구하고자 한다면 크게 잘못하는 일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이것은 옛날 사람들의 서론에 너무 집착하여 발 앞만 보고 길을 보지 못함을 경계한 말 같네요...참고가 되실런지...
먼저 一波三折이란 용어부터 확인해야 할것입니다 저는 서를 배우면서도 이러한 용어에 대해서는 아직은 생소합니다 듣긴하였지만 가르치기위한 한가지의 용어일뿐 운필법으로서의 중요성은 아래 인터넷상의 글대로 느끼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단지 배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겁니다
또한 이 용어는 파임 혹은 파책을 할때 운필하는것으로 藏鋒-준-頓 의 과정을 거쳐 붓의 방향을 전환시킬때의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후 이것이 간혹 한일자 설명에도 나오는 얘기도 들었지만...
三折이란 말은 붓의 방향 전환일뿐 획굵기의변화는 아닌것 같으며 황산곡의 范滂傳에서 나오는 한一자 혹은 파임등의 굴곡은 획의 線質을 분명히 하기위한 것이지 삼절의 의미는 아닌것 같습니다
참고로 파임에대한 그림 하나 올립니다
일파삼절(一波三折)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파(波)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折)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주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 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히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 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생략 인터넷자료) --------------------- [원본 메세지] --------------------- 안냐세요~~~ 솔향기입니다. 저는요.궁금한게 있어서 그러는데요...글씨를 쓸 때 일파삼절이란거 있잖아요? 획에서 그걸 꼭 지켜서 해야하나요? 남들이 써 놓은 글씨를 보면 절(붓을 꺾는 것)을 한 획과 하지 않은 획은 쉽게 구별이 가더라구요.. 해놓은 것은 어떤 힘 같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데 한간이나 한예서 및 심지어 육조묘지를 보더라도 절을 일부러 해놓은 것 같지는 않던데... 물론 황산곡의 글씨에서는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절을 심하게 해놓은 느낌을 받았읍니다. 그렇지만 또 손과정이나 미불 왕탁도 절을 해가며 쓴 것 같지는 않아보이더라구요.. 잘못 본건가... 혹시 습관과도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하자면 워낙 스승의 글씨를 많이 본 탓에 자기도 모르게 그길로 흘러 들어가 누가 물으면 '그냥 이건 당연히 이렇게 하는거 아닌가?'라고 오히려 묻는 사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서가의 습관적인 기법) 혹시 님도 글씨를 쓰는데 일파삼절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읍니까? 전예해행초에 골고루 같은 이미지를 풍기며 들어가 있다든가... 또는 예서나 북위 서체를 쓰면서 횡수획이 자기도 모르게 규칙적으로 반복되어지지는 않읍니까... 저는 이 습관이란게 무슨 대단한 병이라고 여기지는 않읍니다. 저도 일파삼절의 습관이 있으니까요. 이 꺾는다의 의미와 그 이유가 먼지 혹 아시는 분 계신는지..
中鋒에 대한 님의 의견 너무 감사합니다
배우고 있는 저로서 가끔 부닥치는 일이고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것 같아 이런 얘기를 끄냈습니다 書藝라는 용어의 테두리안에 書法의 意味가 퇴색되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운 감도 있고 더구나 배우려는 학문의 자세가 아닌것 같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 님의 고견을 듣고 같이 공감할 필요성이 있어 이렇게 올렸습니다
물론 바둑처럼 정석을 배우고 정석을 잊어버려라는 식의 말도 공감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書藝의 밑거름인 法은 잊지 말아야죠!!!
書의 궁극적인 목표는 붓을 마음과 같이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것이 아닐까요?
3.'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도 붓대를 곧게 세우는 것을 말하는 듯 하나 중봉의 개념에 대해 행필상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붓대나 붓털의 상태만 나열하고 있다. 왜냐하면 붓대도 바르게 붓 끝을 가운데 둔다는 것을 필방에서 풀먹여 걸어둔 붓이지 행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은 설명이기 때문이다.
4. 전형재 님의 의문사항에 대한 저의 생각은 중봉의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기초적인 설명으로 단순히 붓끝이 획의 중심에 둔다는 식으로는 중봉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에 비춘다면 일단 봉의 실체를 확인하는 고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모든 행필이 봉에 대한 철저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봉에 의해서 팔면이나 만호제력의 깊은 이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개념을 설정하는데는 다각도로 자세, 집필, 운완등을 철저하게 살펴야 하며 그 바탕에는 아주 큰 의식을 집중시켜서 곧 봉과 자신이 일치하게 될 때 비로소 중봉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저는 동양붓을 매개로 서예활동하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글씨를 쓰면 정말 기쁩니까? 의욕이 솟구칩니까?' 이런 류의 물음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 중봉의 맛배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먼저 붓을 잡을 때 손의 엄지와 식지의 윗부분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붓에 닿지 않을 정도의 작은 물잔에 물을 따라 올려놓고
호흡을 고른 후 그을 수 있는 가장 가는 선을 그으며 지면위를 돌아다닌다.
익숙해지면 선을 조금 굵게 하되 봉의 실체가 붓의 허리를 다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붓의 크기는 지름 18밀리미터 길이 100밀리미터 정도(보통 장봉)의 것이 적당하다.
이상 소견을 마치며 중봉에 대해 더 진지하고 솔직한 내용의 별도의 장을 마련해서라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원본 메세지] --------------------- 사견을 드립니다. 참고로 첨부하신 아트코리아 자료실(이하 자료실)의 내용에 덧붙여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중봉의 개념에 대해 짧은 시간과 지면으로는 의논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료실의 내용은 상당히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 같군요
다만 집필법과의 관계 또는 鋒의 실체에 대한 보충설명이나 접근방법 등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또는 동영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자료실의 내용에 대한 저의 의견은 이러합니다.
1.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집필과 운완의 문제로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와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이 오지 않게 된다'는 어떤 근거에서 표현된 것인지 전혀 분명하지 않으므로 차라리 현완이나 발등법류의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2. '팔목은 세우고 붓 끝은 똑바로 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 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끝이 오도록 한다' 는 견강부회로 중봉운필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 같습니다. '팔목을 세운다'라고 한 것은 내용만으로는 어떤 집필인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체구조상 설득력있는 설명인 아닌 듯 합니다. * 첨언하자면 서론에 자주 인용되는 '팔면출봉'도 엄밀하게 분석해보면 '팔면수봉'으로 바꾸어 씀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서 나머지는 다시 들를 때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실례합니다.
--------------------- [원본 메세지] --------------------- 書의 중봉의 개념에 대해 여러가지 異見들이 있어 관심있는분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중봉이란? 아래 표기된 것처럼 점이나 획의 중앙에 봉끝이 위치하는것이 중봉이라 했습니다 또한 편봉이란 붓끝이 한쪽으로 치우침을 말하는데(획의 일면은 붓끝이 닿고 일면은 붓털이 닿는) 이것이 상기 중봉이 개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상기중봉의 의미대로라면 획의 가운데에 필봉(붓끝)이 있어 획의 양쪽으로 붓끝이아닌 붓털(붓몸)이 닿는 것이되므로 이것 또한 편봉이 아닌지요?
書란 이론 또한 앞서면 안되겠지만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여러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중봉(中鋒)이란?(아트코리아 자료실에서)***
붓대를 곧바로 하고 붓 끝을 가운데로 오게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중봉(中鋒)이라고 한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 끝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치할 수 있게 된다. <서벌(書 筏)>에서도 '중봉을 운용할 수 있으며 퇴필로도 획을 둥글게 할 수 있고,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봉이 서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현재 서법에서도 중봉은 꼭 지켜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을 일으키고, 엎어지게 하고, 누르고, 당기고, 보내는 변화를 쉽게 할 수 있어 거기에 따라 나오는 점과 획에 다양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하고, 부드럽고, 굽고, 곧바 로 된 획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며 가로 세로의 획과 둥근 획도 마음먹은 대로 표현 할 수가 있다. 만약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 중봉으로 붓을 쓰려면 먼저 붓끝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자세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옛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살펴 보면, 팔목은 세우고 붓 끝은 똑바로 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 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끝이 오도록 한다. 붓을 움직임에 있어서 머무를 때에는 사로잡는듯하게, 나갈때는 내보내는듯하게, 거둘 때에는 긴장을 하는듯하게, 넓힐 때에는 열어주는듯하게 , 누를 때에는 내리는듯하게, 당길때에는 일어서는듯하게 하면 붓이 왕래하는 사이에도 붓끝은 항상 스스로 제자리에 돌아와 중봉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봉은 용필(用筆)의 관건이며 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 되며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과 풍채가 비약할 수 있다. 서예는 획의 변화를 중요시 하는데 중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변화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유지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먹에는 송진과 같은 끈적함이 있어 작용하는 붓호의 응집력과 붓의 호가 운행할때 준,頓하며 발생돠는 호의 탄력적인 힘만 견주어 잡는다면 문안하다 생각되네요?
쉽게 생각하면 붓을 헐렁하게 안잡고 五指의 감각을 최대한 느끼며 붓끝이 도망못가게 제어할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싶습니다
그런데 그힘이 만만치 않네요? 한번 느껴보세요 엄지의 손끝이 어쩌면 시려질수도 있습니다 굳은살 배길정도로.... 겁주는것 아닙니다 ㅎㅎ
--------------------- [원본 메세지] --------------------- 저는 지역이 옮겨져서 서실을 두군데 다닌 적이 있는데요. 두번째는 얼마 못 다녔는데요. 저의 붓 잡는 습관이 잘못 됐다고 하시더군요. 붓을 너무 세게 힘을 주고 잡는 다고 하더군요. 힘을 다 빼고 잡으라고 하시던데 적응이 잘 안됐던 게 생각납니다. 첫번째 서실에서는 그것을 잘못으로 지적 안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붓은 어느 정도 힘으로 잡아야 할까요? 궁금합니다.
글쓰는 자세에 대해서는 지방마다 특색이 있지요 어떤 연유로 그렇게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경험으로는 전남 순천(순천대학교) 중심으로는 바닥에서 가부좌를 틀고 글을 쓰고 경남 진주(경상대학교)에서는 한글은 의자에 앉아서, 한문은 서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경기는 대부분 의자에(편액 작품할 때는 서서 즉 20~30㎝이상의 글씨는 대부분 서서하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쓰는 자세는 집필법 또한 다양하듯이 글씨의 잘 쓰고 못씀에는 관련이 없다 생각됩니다
중요한건 붓의 성질(고놈의 성질 대단하죠 꼭 청개구리와 같이 이리 삐지고 저리 삐지고... 온순하게 다룰수 있다면야...)만 안다면 악필로 잡던, 왼손으로 잡던 필의 운필법에 쫓아 쓰면 훌륭한 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左手書로 유명한 劍如선생님,如初선생님등을 보더라도 이러한 글쓰는 자세방법에 대해서 개의치 않으신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 병환중이신 劍如선생님의 글쓰시는 모습은 밥상같은 책상 가까이 가부좌를 틀고 글쓰시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알수 있으니까요 비약하여 말한다면 수다맨이 말하는 연변총각의 과장된 말과 같이 발꼬락사이로 붓을 끼우고도 멋진 글을 쓸수가 있다는거죠
재밌지 않습니까?(너무 심했나?) 한번 도전해 보십시요!!!
먹은 진하게 갈아 쓰는 것이 배움의 기초라 생각됩니다
먹의 농도를 옅게 하면 발묵의 효과를 얻는다고하나 글에 힘이없고 초보자에게는 운필상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양호인 붓을 다루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응집력이 약해진 농도의 먹을 사용하면 더욱 약해진 붓의 탄력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결국 결구에 치우치게 되고 운필에는 신경이 거의 가질 않습니다
물론 각체의 성질상 빠름과 느림은 있어 먹의 농도를 이에 맞게 쓴다하나 먹빛이 진하면 선이 살아 있어 보기도 더욱 좋다고 생각됩니다
추획사(錐劃沙)와 인인니(印印泥)에 대한 다른 견해
추획사는 그 뜻과 같이 송곳으로 모래 위를 그어나갈때의 운필감각으로, 인인니는 용어의 뜻과 같이 진흙과 같은 일종의 인에 도장을 찍을때 처럼 조심스러움으로 붓을 운필하여야 한다는 의미라 봅니다
王虛舟(論書勝語의 著者)는 이것을 中鋒에 비유하였지만 당나라 저수량의 書論에 있는 글 처럼 '用筆은 마땅히 추획사(錐劃沙)와 인인니(印印泥)와 같이 해서 藏鋒으로 되면 書는 곧 침착하게된다' ('서론의 이해' 중문출판사)라고 해석, 즉 운필의 감각과 느낌으로 비유가 되지 않을까요?
단지 추획사나 인인니가 문득 떠오르는 형상의 이미지가 같다는 이유로 중봉과 비유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용어가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비유로 시작되었는지는 고증도 없고 당시 이러한 용어에 대해 당나라의 유명한 저수량조차 중봉이란 어떤개념의 비유도 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 点,側에 대한 저의 짧은 소견을 간략히 정리하여 드립니다 다른 의견이나 설명있으시면 답글로 답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네요
서예는 点과 線 즉 획의 가늘고 두터움과 장단(長短), 선의 강약(强弱)과 質 및 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등이 조화가 되어 미묘한 공간조형미를 창조하는 시각적인 예술입니다 이런 시각예술로서의 서예속에 비록 点은 작은것에 불과하지만 그 쓰임은 조형의 공간의 균형, 간결미, 생략(미)등의 용도로 쓰일만큼 다양합니다
点은 같은 중복되는 글자의 표시, 글자균형을 맞추기위한 공간배분의 点,한나라의 빠른 문서정리를 위한 초서나 장초에서 문자를 간소화시키기 위한点등 여러가지의 형태를 볼수 있습니다
현재는 点은 서예용어상 側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어느 서예학자는 ' 側은 点의 시작으로 永字 의 第一筆이었지만 지금은 点이라 부르지않고 側이라 부른다'라고 합니다
側의 종류는 앞서 보여준 형태로 크게 나눌수 있으며 기본적인 側劃의 형태는 勒劃인 한일자 첫머리의 말발굽같은 형태와 누에머리와 같은 한일자 後未의 형태를 합한것으로 짧은 필획이기는 하나 시작과 끝이 있고 필봉이 나가는 부분과 되돌아오는 부분이 있어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側획의 기본자를 먼저 가르쳐 주기도 하지요 님만의 고민이 아닌것 같네요 고민을 여럿이 나누면 덕이 될런지...?
초서를 쓸때 이렇게 많은 용어들이 나올지 상상도 못했네요 요즘 초서를 써도 해서를 써도 도무지 운필이 안되어 애꿎은 집필 운필만 나무람니다 집필 운필법을 초월한 현대 서예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네요
작품은 비평 혹은 법의 기준으로 평가 받는것이 아니라 현사회적 흐름에 순응함에 평가 받음이 오히려 정확한것이 아닐런지요? 공모전에 이미 만들어진 작품과 작가에 우리는 너무나 많이 적응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미 왕희지의 서체니 구양순체니 안진경의 필법이니 필세니 하는 서예의 필법은 요사이 보기힘들고 현대서예와 같은 평면적이고 조형적인 공간감, 헌신적인 서예에 대한 공헌도(?)로 서예는 평가받고 있는듯한 인상입니다
요즘 정말 모를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최소한의 법을 지키고자 오늘도 한일자를 내리 긋습니다
푸념한번 해보았습니다 덥고해서... ^^**
오랜만에 답글을 올립니다
일반적인 여러 서론보다 제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다 생각되어 두서없이 몇자 적습니다
예서는 여러 서체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맛과 옛스런 풍치가 있어 누구나 한번은 꼭 써보겠다는 마음이 이는 글씨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 이루어 지지도 않는것이 예서입니다 당해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현실에서는 예서보다는 육조체의 글를 먼저 연습 혹은 배우고 익히고나서 예서를 공부하시는것이 오히려 편할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배우는 예서서첩중에는 예기비, 조전비,사신전후비,장천비,을영비,공주비등 한비를 비롯하여 등석여의 예서등의 서체를 접할수 있으나 초보자로서는 역시 등석여의 예서체가 적격인것 같습니다
이현사에서 발행한 등석여작품집에는 글자사진이 크게나와서 붓의 필의를 느끼며 공부할수 있어 좋은것 같고 사신전후비는 글씨체는 그리 작지는 않으나 횡획과 적획처리부분이 어렵고 조전비는 글씨자체는 아름다우나 너무 연약하여 흉내내는 글씨가 될까 염려스럽고 예기비는 어느정도 예서의 연륜이 생겨야 겨우쓸정도로 힘찬 예서입니다
예서에 접하는 방법에는 전서로부터, 혹은 육조로부터 시작하는 방법과 직접 예서를 접하는 방법이 있으나 저는 처음 말했듯이 육조체를 먼저 접하고 예서를 나중에 공부하심이 좋을듯합니다 이유는 방필 즉 육조체의 글씨를 통하여 붓의탄력과 꼬임에 먼저 익숙해야한다 생각됩니다
이상 저의 생각 몇자 간추려 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저의 짧막한 답변에 대해 이렇게 관심과 염려를 주심에 고맙습니다
제가 올린 싸이트에 개제된 기초서법에 관한 내용은 한문 붓글씨를 배우는 기초과정으로
황자원체의 결구바탕으로 쓰여진 것(南田선생님 글씨)이며 제가 관련한 시립대 연묵회 회원 ,柴溪硏書會 회원들의
서예배움의 기초가되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는 기본적인 서법이라함은 영자 팔법중에 있는 늑획,노(수)획,적획,탁획,책획,약획,파임,
측획의 8가지 쓰는 법을 말하며 서예를 처음 접하거나 연륜이 없는 초심자에게는 안진경체니,구양순체니 하는
방법의 설명이 오히려 혼돈이 생길까 염려스럽습니다
또한 안진경 구양순의 결구에 ?다 보면 書法이라는 중요한 과정의 배움을 놓치게되고 모양새만 흉내내는
서체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싸이트에 들어 있는 내용상의 자료는 어느체에 관계없이 필법에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보여주는것이지
어느 누구체로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은 아닙니다
기초적인 서법 즉 획에 대한 서법이 충실해야 각자의 톡특한 개성을 살린 서체를 구사할수 있으며 모양에 따른
결체만을 중요시하면 식상한 글씨로 변할수 있습니다
예로 고려시대의 한석봉 글씨와 조선후기의 김정희 글씨비교로 알수 있고
또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왜 추사가 그리 비판하는 이유로도 알수 있습니다
서예에는 법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의법과 같죠
그런데 요즘 이런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의 법마저도 위협받고 있죠 ^^!!
누군가가 그랬죠
세기의 종말이 오면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저는 말합니다
늑획 한자라도 열심히 쓰겠다고 ^^*
추: 자료에 대해 의문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성의껏 답해 드리겠습니다
여러 의견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어느영화제목의 ㅁㅁㅁ 길들이기의 말처럼 붓 길들이기에 한번 힘써 보십시요
옛선인들보다 20 여년 뒤늦게 붓을 잡아 당대 명필이 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과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한다면 書法에 충실하여 붓의 운필 즉 모아진 붓끝을 최대한 폈다 오무렸다를 자기 마음대로 할수 만 있다면 이것이 앞서 말씀하신 松亭선생님의 法古創新의 기본적인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예에 대한 좋은 말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중에 공감 되는 말씀도 있으나 개인적인 이견도 있기에 제가 아는 범위에서 글을 올립니다
먼저 필봉에 대한 3분필은 필의 중심인 筆心으로 부터 鋒까지의 3등분한것으로 작품 혹은 비문의 획의 굵기를 판단케하는 기준이 되어 줍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가령 안진경 마고선단기의 탁본의 글씨는 몇호 정도의 붓으로 2분필을 사용하여 글을 썼다고 판별할수 있지요
또한 1호 붓의 1분필과 6호붓의 2분필의 선의 굵기가 같다 하더라도 자세히보면 선의 질감이 다르게 느낄수가 있습니다
글씨가 가늘다 해서 골이 있는것이 아니고 글씨에 살이 있다해서 붓의 부호로 썼다고는 볼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명한 추사의 현판글씨 혹은 마애비와 같은 큰 글씨가 붓의 봉과 부호로 골과 육을 형성하면서 씌여졌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글씨에 살이 있던 없던 그것은 영원한 우리의 숙제인 中鋒과 관련된 線質의 문제인것 같고....)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한일자를 한번 써 보십시요 그 획이 굵고 가늘던간에 지면과 닿은 붓의 봉이 획의 위아래의 선을 고스란이 쓸고 갔는가를 ...
위삭이 말하는 골육의 많고 적음은 획의 線質이 있고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저는 생각됩니다
여기까지 저의 생각을 말해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결론이 항상 같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서예란 선생님에게로부터 배웠건 혼자 터득을 했건 간에 스스로가 얻은 생각의 념이 다른 생각조차 할수 없도록 배타심만 갖게 하는줄도 모릅니다 나의 의견이 자기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이것이 틀렸다 아니다 할수 없는것도 서예입니다
단지 저는 서예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보다 정도에 근접하는 길을 제시하고 같이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여 이 서예세상의 문답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서예에 관한한 아마추어이지만 저뿐만 아니라 실제 서예를 전공 관여하시는 분들도 많은 참여를 하여 서예이론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봉에 대한 3분필은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서예란 무엇인가-중문출판-에서는 붓의 필단에서 봉까지를 3등분하여 1,2,3분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님이 말씀하신 筆心으로부터 鋒까지를 3등분한 것으로 이를 설명하면 한일자 설명시 藏鋒- ?- 頓- 提- 頓行- 頓- ?- 收筆(이 설명은 각 서예를 가르치는 분들 마다 틀리므로 저의 배움에 기초하여 말씀드립니다)순으로 2단계인 ?(쪼그릴 준)에 의해 분필의 사용범위가 정해집니다
이 ?으로 획의 굵기가 정해지며 님이 말씀하신 혈을 공급한다는 먹의 저장구실을 하며 붓의 탄력과 굵기가 정해진 획의 단면에 봉이 일정한 간격이 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線質 즉 획의 단면을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봉이 나열되어 획의 상하로 봉이 지나감을 말합니다 이것이 편봉과 구별되는 중봉의 이론으로 저는 배웠습니다
봉이 획의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 또한 편봉으로 획의 상하가 붓의 터럭 즉 부호에 의해 그어지므로 획의 線質이 불분명하여 님이 말씀하신 칼鋒의 의미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즉 붓의 끝을 鋒이라 하며 이 의미로 글을 쓴다함은 끌로 나무를 새기듯이 예리하게 파내는 것을 말함으로 나무나 돌 새김에도 中鋒의 의미를 받아들여 획의 단면을 V형이 아닌 平지게 글을 새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中鋒의 개념은 하나이며 원필과 방필이 있다하여 다르게 설명되어지지는 안습니다 단지 中鋒이란 말의 뜻과 같이 획의 가운데에 봉이 지나감을 말하면 원필과 방필로 구분될수 있으나 제가 말한 중봉의 개념이 아니며 단지 편봉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로 들은 한일자 설명은 장봉부터 시작하여 수필에 이르기까지 획이 먹과 지면과의 경계선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하나의 봉이 쓸고 지나감이 곧 중봉의 개념이라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리 하여야만 화선지에 나타난 선의 분명함과 매끈함과 힘찬 봉의 필이 나타남이 아닌지요? 이것이 선인들이 말하는 골육의 많고 적음이요 살이 있고 말랐다고 표현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상의 것들이 저의 소견이지만 서예를 처음하시는 분들이나 어느정도 연륜이 갖춘분들도 한번은 정말 고뇌를 갖고 생각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필력을 제기하신 분의 말과 같이 많은 세월를 허송스럽게 배우지 말야야 하기 때문이죠
다시 토론에 참여해 주심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답변에 대한 위의 내용에 대하여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힘 닿는데 까지 얘기 해 드리겠습니다만, 한번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많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리플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筆心이란 筆鋒부터 筆管에 이르는 중심선이 아니라 붓을 최대한 펼수있는 붓의 허리위치를 말합니다 또한 분필이라 함은 그냥 작다는 뜻으로 붓을 사용하는데 하나의 기준을 삼기위함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건축하는 사람이라 90년도 초 지방을 돌며 공사를 하던중 대학내의 서예반(순천대학과 경상대학)을 기웃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호남과 영남에서의 서예공부하는 방식 -집필과 자세등- 서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서예는 지방마다의 고유의 특색이 있고 이것이 틀리다 맞다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붓에 관한 용어도 서로 말씀하고 있는 의미조차 틀리시니 오해의 소지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요
또한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토론하는 자체는 문명적인 혜택을 받아서 고마움을 느끼지만 막무가네로 근거없이 떠도는 서예이론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위복사 배포하는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쾌감만을 느낍니다
서예의 이론보다는 서예의 실기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무엇보다도 서예의 기초적인 이론 즉 집필 및 자세 운필법등이 먼저 알아야만 곧은 글씨를 쓸수 있다 생각됩니다
앞으로 서예세상을 통해서 현재 서예계에 물의를 빗고 있는 사건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서예에 관한 용어자체도 정화(?- 통일이 맞겠죠^^*)시켜봄이 어떤지 생각이 드네요
필두(붓필, 위두)는 말이져~ 붓의 호를 보면여 筆頭에서 내려오면서 볼록한 위치(이하로는 점점 가늘어짐)를 말하거든요. 보통 그 이하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요^^ 호의 부분적 설명한 것이라고 해요. 필심은 모든 이론에서 호의 중심과 선에서는 획의 중심을 말하는 것이 보통... 그래서 마음심(중앙)을 쓰져^^
초등학생을 가르치기가 여간 어려우실겁니다 중학생 이상은 여러 소리없이 조용조용 지도를 하면 되는데 초등학생들 정말 천방지축이죠 한번은 얼리고 또 한번은 큰소리 치고...^^* 그래도 아이들 만큼 순수한이는 아마도 없을겁니다 그 맛에 초등학생을 대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먼저 아이들에게 한자의 흥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림 비슷한 놀이 선긋기 놀이- 직선그리기 동그라미 그리기 별표그리기 우물정자, 네모그리기등 그림과 관련한 모양을 보여주며 붓에 대한 거부감을 먼저 잊게하는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이 하는 집필이 아니라 악필 즉 손바닥으로 붓대롱(필관)을 감싸 쥐고 엄지는 대롱위를 향하게 하면 힘이 없는 아이도 제법 붓다루기에 수월함을 느낄겁니다
또한 현완법을 하도록 계속적인 지도를 하는것도 잊지 말아야죠 서체는 전서체으로 쓰여진 글씨면 좋고 호태왕비의 비문을 각자 8자씩 나누어 임서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입니다
화선지는 구궁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 있어 이것을 필방에서 구입하여 쓰시면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이상을 자주 반복케 하면 훗날 아이들이 서예에 대한 거리감은 사뭇 줄어들죠
임서로 작품을 한다는것이 그리 쉽지마는 않을겁니다 임서를 함에 있어 원작품의 서예가가 추구하는 의식의 단면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도록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마 월간서예세계(보지는 않았지만)의 두 작품은 서로의 다른 시각 혹은 감각에서 임서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먼저 임서작품평에 앞서 임서(臨書)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간략한 임서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창작은 모방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즉 임서는 모방이다. 곧 비,첩을 똑같이 흉내내는 것으로 미술 작품의 기본이 되는 데생과도 같은 것이다. 비, 첩에 담겨있는 문자의 형태나 필법 그리고 작가 의식 등을 살펴 그 공통 분모를 터득하는 것은 서예를 배우는 기본이며 또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비, 첩은 역사의 값진 유산이며 그 당시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결정체여서 임서에 힘쓰는 것은 곧 수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 작가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으로 가는 첩경인 셈이다.
*임서의 종류: 임서에는 형임(形臨), 의임(意臨), 배임(背臨)이 있다.
'형임(形臨)'은 글자의 형태와 모양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가장 초보 단계이다.
'의임(意臨)'은 운필, 필세 등을 체득하여 그 글씨가 가진 공통분모 곧 비, 첩이 지닌 정신을 배우는 단계이다.
'배임(背臨)'은 그 글씨의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다 외워서 비, 첩을 떠나 그 풍으로 연습하는 단계이다.
아무리 형임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창작성이 배어 있다. 그대로 배끼 듯 한다 할지라도 시대 환경과 용구와 재료 등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사상과 감정이 달라서 아무래도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임서를 할 때에는 창작하는 것같이 하고 창작할 때에는 임서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듯이 임서 속에서도 자기만의 모습과 언어가 표출된다.
임서의 단계에서 의임, 나아가 배임을 할 정도이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기의 면목이 생김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임서의 중요성:
고전 임서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를 속서(俗書)라고 한다. 그림에서 데생 과정과 마찬가지로 임서의 과정 없이 글씨를 쓰는 것은 기초 없이 고층 건물을 짓는 격이다.
임서는 초심자에서부터 대가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된다. 임서를 통하여 초심자는 점, 획과 결구 그리고 장법을 터득하며, 설령 경지를 이룬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속하고 방종한 운필로 굳어지기 쉬운 타성을 버리기 위해서 자주 임서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글씨는 물론, 마음과 정신을 법으로 조명하고 수렴하는 수단으로 임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서예를 전공하지않고 학교동아리에서 글씨공부를 한다니 없는 시간에 배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때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배울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때문이죠^^* 학교때 수업 농땡이 좀 피우고....ㅎㅎ
서예를 배우려는 사랍 모두가 육조체의 고상함 즉 미인중에 백치미를 가진 미인이 더욱 아름답다고나 할까 아뭏튼 이런 모습의 결구에서 호감을 사는 서체일겁니다 처음과 나중의 날카로운 필세와 획이 가늘었다가 파임과 같이 펴야하는 운필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 육조체를 대하시는 분은 먼저 구양순 혹은 저수량의 해서필세를 먼저 공부한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의 늑획을 확대하여 공부하시면 어느정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육초체공부는 장맹룡비,용문20품(이현사 출판 상하권), 장현(장흑녀)묘지명,찬용안비,찬보자비 및 금농서등이 있으나 찬보자비의서는 많은 육조글씨와 예서를 공부하고 임서했음은 하는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글씨한자한자마다의 고상한 기품이 필법을 무시한 결구형태로 마무리될까하는 우려때문입니다
학교동아리의 서실에서 배울수있는 기간에는 세가지 서체를 한번쯤은 맛이라도(책 전임)하고 졸업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옛선인들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국전지와 같은 크기의 화선지는 없었을 것이고 겨우 짧은 폭의 두루마기식의 종이이었을거라고 추정되며 이러한 화선지에 붓으로 먹물을 묻혀 글을 썼다고 가정하면 종이위에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글씨를 썼을때 왼손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먹물이 있는 글씨가 있어 여간 불편하지 않을수가 없었을 겁니다
2) 글씨를 만든사람이 오른손잡이로 추정되며 한자는 우측변보다 좌측변쪽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고 우측변쪽은 파임과 같이 길고 짧게 변화가 심하여 다음줄의 글씨를 쓸려면 정리가 되지않는 글짜임이 되어버릴 겁니다
이런 이유로 왼쪽방향으로 썼을거라 생각되어 愚答하여봅니다^^*
동양에서는 집을 지을때 주로 나무목재를 세우거나 통나무집과 같이 쌓아두면서 면과 공간을 만들었지만 서양에서는 나무를 제재한 판재 혹은 블록과 같은 면자재를 사용하여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이렇듯 동서양의 생활문화 즉 생활사상의 출발이 다른데 손끝에서 표현되는 예술의 감흥이 다른것은 당연하다 봅니다
또한 동양에서는 공간(면)을 나눔에 있어 먼저 백을 재서 흑으로 나눈다 했습니다 서양과 같이 황금비율을 이용한 면의구성이 아니라 선의 굵고 가늘음 색의 짙고 옅음으로 면의 깊이를 더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더욱이 재료를 사용하는 도구에서 조차 서양유화붓과 같은 짧은 붓털은 면구성하기가 좋은 반면 서예쓰는 붓과 같이 가늘고 길다란 붓은 면구성에 앞서 선구성에 적합하며 다루기 힘든 만큼 정신적인 이상도 깊게 글씨이나 그림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작금의 예술은 컴퓨터로 인하여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사상마저도 급물살 타듯이 빠르게 표현되어 hansm님의 말씀 그대로 동서양의 구분이 어렵고 장르조차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온 것 같습니다
서예 또한 고전서예와 현대서예와 맞물려 진정한 線의 예술에 한몫?을 한다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기준은 점점 얄팍해져 가고 그것조차 겨우 있으나 거대한 물결앞에 맥없이 통합되어 가버릴 듯한 염려속에 그저 저나름대로의 한가닥 희망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그냥 푸념이지요 저의 짧은 식견으로 내다본 동양예술에 포함된 서예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표현입니다 ^^
서예의 예술적인 면이 아닌 다른 면에서 보면 붓글씨를 쓰는 묘미는 아마도 붓을 다룸에 있어 붓을 마음대로 통제할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에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러한한 것은 어릴적부터 붓을 다루었거나 대대로 내려오는 서예의 비법을 전수받지 않고서는 아니되며 약관이 되어서야 겨우 붓을 만져나 볼 정도의 나이에 붓을 마음껏 다루기란 무척 어려울겁니다
스포츠에서도 기본적인 자세를 습득하고 나서 고난도의 기술을 연마할수 있다고 하죠 아마 서예도 글씨를 쓰는 기본적인 몸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며 집필법 및 운필법등의 기본기를 습득해야 될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붓의 역학적인 움직임과 관련하여 비틀림으로 인한 붓의 탄력과 먹을 필두에 모을수 있는 모세관 현상과 응집력등의 기초적인 과학적인 지식과 접목하여 공부하다보면 조금 더 흥미롭게 자신만의 서예이론을 체계화 할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아져 있는 붓끝을 서양의 파렛트 붓과 같이 납작하게 맘먹은대로 펼수 있는 능력과 붓끝을 모아야 할 때 붓의 역학적인 성질을 이용하여 평편하게 펴진 봉의 끝을 한올 끝까지 모우고, 방필의 획과 같이 날카롭게 원필의 획과 같이 부드럽게 표현할수 있어야 하는 서예의 공부 방법입니다
이러한 것은 앞서 말한 기초적인 서법과 글씨를 쓰는 자세법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꾸준히 쓰고 연구하는 학문의 자세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첩대로 되지 않는것을 안다는자체가 많이 배움을 터득한것 같네요 글씨자체가 서첩과도 상이한데 이것 조차 느끼지 못하는것이 더욱 답답한것 아닐까요? 조금씩 조금씩 하세요 언젠가는 글씨가 많이 변해져 있을겁니다
서예는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옆에 선생님이나 먼저 배우신 선배님들의 도움이 기초과정에서는 반드시 필요하지요 한획을 서첩과 비슷하게 그었다 하더라도 그획속에 내포되어 있는 법칙을 이해함이 없이 공부한다는 것이 정말 위험스런 일일겁니다
책속에 나와있는 글쓰는 자세법은 하나의 기본적인 자세를 예시한것입니다 실제 이렇게해서 글을 쓰기란 무척 어렵죠 글씨를 처음 대하는 분이라면 먼저 선배나 선생님들의 서예하시는 모습을 항상 눈에 익숙하도록 여러번 보아두십시요 서예하는 모습만 보아도 서예공부는 되는것입니다^^^*
서예교재는 서점에 즐비하게 있습니다 많다 하더라도 자신에 맞는 서첩을 구하기란 어려울겁니다
먼저 가볍게 황자원 92법(중국서적,2~3천원이면 사지않을까요?)을 중심으로 결구와 서법을 이해하고 이후 당해서인 안진경(안씨가묘비,안근례비,마고산선단기,화찬비등) 구양순(구성궁예천명)우세남(공자묘당비)유공권(현비탑비)등을 기초과정으로 해서 공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십시요^^*
서예를 시작함에 있어 처음의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든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통성이 있는 서법조차 처음 시작한 중국에서 조차 찾기 어렵고 왕희지의 필법조차 여러 갈래의 소리가 많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서예를 배움에 있어서는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와 스스로의 공부과정에서 깨달은 지식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여 배움에 정진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질문하신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 간추려 보았습니다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에게 붓을 벼루에 다듬어 쓰라는 이유는 먼저 봉을 뾰족한 형태로 모아 가지고 쓰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붓에 먹을 묻혀 처음에는 상기의 형태와 같이 되나 획을 긋고 난뒤는 아무래도 붓이 모아져 있지는 않을겁니다 이러한 형태의 붓을 다음획에 연이어 쓰면 획은 아마도 이상한 형태의 의도되지 않은 전혀 다른 형태의 획으로 될것입니다 물론 장봉의 의미를 알고 있음에도 마음대로 획을 모을 수가 없을 정도 일겁니다 이런 이유로 매번 획을 그을 때 마다 벼루에 붓을 다듬어서 붓끝을 모아 쓰라고 하시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초보의 입문을 끝내고 나면 붓에 먹을 한번 묻혀 10센티이상의 글자 한자 혹은 두자정도의 글씨를 쓸수 있게 연습을 하셔야만 됩니다
붓의 선택에 있어 초보자에게 적당한 붓은 호의 크기와 재료를 견주어 1~3호(16~20mm의 단면을 가진붓??)의 장봉붓과 및 양호(대개 시중에 파는 것이 필심가운데에 인조모가 있다는데…)를 가진 어느정도의 탄력을 가지고 있는 강모와 연모가 섞인 겸호붓이 좋겠습니다 족제비털과 같이 탄력이 강하거나 양털로 만든 너무 유연한 붓은 초보자에게 붓의 탄력을 가르키기에는 무리인듯 싶습니다
처음 글씨를 쓰시는 분들은 먼저 비문의 외형적인 글씨보다는 글씨속에 감추어져있는 필법을 우선 배워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붓으로 획을 만드는 과정과 획이 모여 자를 이루는 미적인 결구와 자와 자의 공간을 배치하는 심미안적인 공간의 배분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 쌓아 나가야 됩니다 처음부터 비문의 글자와 흡사하게 쓴다하여 자마다 그렇게 쓴 이유와 획에 대한 필법을 설명치 못하면 아니 배운 것 보다 못하지 않을까요 아마 가르치시는 이러한 이유를 감안하여 기본적인 결구의 구성과 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르게 쓰신 것일겁니다
글씨를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가짐이 흐뜨러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번의 습관이 80세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아기들이 젓가락을 잡을때와 같이 한번 습득한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기 어려운 상태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서예에서 말하는 나쁜버릇이라 함은 먼저 누구나 겪는 서예의 자세로 운필상의 현완법 및 집필법등에서 잘못 가르침을 받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아래 운필내용에서 설명드린 것 처럼 매상 습관적으로 하기가 무척 어려운것입니다 서예를 공부를 할 때 선배나 선생님들의 글쓰시는 모습과 운필 집필등을 생각하면서 연습을 하셔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래전 다음카페에서 문답에 관심을 두고 내가 그간 알고 있는 서법에 대해 피력한 내용의 글들 입니다 지금도 그 내용을 보니 생소하지는 않네요
한번 읽어 보시고 새로운 이견이 있으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 ^*
..
나의 개인적인 자그만 의견 덧붙입니다
보통 隸書에서 가장 主가 되는 것은 橫劃으로 起筆을 반대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서 劃이 끝나는 곳에서 아래로 내리다가 위로 鋒을 모으는것이지요 일반적으로 解書의 파책을 경사짐이 없이 수평되게 鋒을 펴는 방법과 흡사하다 여겨집니다 이것이 波勢이고 예서의 筆勢이지요
解書의 策劃 및 파책을 좀더 연구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됩니다 짧은글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전에 해서만 써봐서 예서의 붓놀림(?) - 이라고 해야하나? - 의 느낌을 잘 모르겠어서요..
가장 기초적인고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좀 있음 만우절이 되네요..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秋史선생의 난치는방법을 참고하세요
秋史선생은 <君子文情帖>에서 난을 치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난을 치는 데는 마땅히 왼쪽으로 치는 한 법식을 먼저 익혀야 한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난숙(爛熟)하게 되면 오른 쪽으로 치는 것에 따라 가게 된다. 이것은 손괘(損卦)의 먼저가 어렵고 나중이 쉽다는 뜻인 것이다. 군자는....(중략)... 이 봉안(鳳眼)이니, 상안(象眼)이니 하여 통행하는 규칙은 이것이 아니면 난을 칠 수가 없으니, 비록 이것이 작은 법도이기는 하나 지키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다. 하물며 나아가서 이보다 큰 법도가 있겠는가.'
또 '난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隸書)를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난 치는 법은 그림그리는 법칙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만일 그림 그리는 법칙을 쓰려면 일필(一筆)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 [원본 메세지] --------------------- 안녕하세요^^ 저는 서예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사군자를 배우고 있는데요 어떻게 난을 쳐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용묵도 잘 안되고, 붓을 다루는것도 아직은 서툴고... 꽃을 그리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고.. 蘭에 대한 자료들을 좀 보고 싶은데 어떤 것들을 참고하면 좋을까요??
제 느낌을 몇자 적습니다 먼저 흔히들 말하고 있는 원필과 방필의 의미를 알아야겠지요 짧은 의미의 내용을 알아보면
방필(方筆), 원필(圓筆) 필획중에서 획형이 방형(方形)으로 생긴 것을 방필이라고 한다. 방필의 의미에는 동사적인 면과 명사적인 면이 있는데 방형으로 필봉을 운용하은 것을 방필이라고 하고 방필로 써놓은 필획도 방필이라고 한다. 원필은 원형(圓形)의 필획을 말하는데 방필과 상대적인 획형의 명칭이며 속으로 살찐 듯 강한 골격이 나타나지 않으며 둥글고 힘이 센듯한 느낌을 풍긴다. 전서는 모두가 원필로 이루어지며 예서에 이르러서야 방필과 원필을 혼용하게 된다. (잉크아트 자료실중에서)
단순히 생각하면 붓의 운필상 筆의 上下탄력을 최대한 이용한것이 원필이며 시작도 원필이면 끝남도 원필의 상태로 준(쪼그릴 준)을한상태로 끝나야겠지요 방필은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나 상기내용과는 달리 필의 의미가 붓의 상하 탄력과 비틀림의 탄력에의해 밖으로 표현되는 의미로 생각되어질수 있습니다 가령 예서와 같이 붓의 시작이 처음 꼬임으로 시작되었다면 획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다시 처음과 같이 붓이 돌아갈수 있도록 꼬임을 풀어 주는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하기위해서는 筆의 意味를 밖으로 표현하면서 筆鋒을 모아주어야지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 [원본 메세지] --------------------- 혜림님! 정말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서의 시작이 원필이라면 전서의 끝부분의 느낌은 예서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느낌이 들어야 할까요? 끝부분의 운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궁금합니다.
저의 私見에 귀기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서예에 대해 박식한 사람도 아니고 서예가 또는 아니며 그저 서예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체계적인 理論은 아니지만 그간의 나의 배움을 조금이나마 정리하여 나타낸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隸書의 節과 篆書의 節은 'ㄱ'자형과 같은 절곡부분이라 생각하고 질문에 小見을 붙일까합니다 먼저 전서의 절은 처음의 藏鋒 혹은 露鋒으로 이루어진 상하 수직의 붓의 탄력으로 절곡의 지점에서도 필의꼬임이나 선폭을 변화없이 유지해야 하며
예서의 절은 심하게 뒤틀려진 붓의 꼬임을 풀거나 더욱 꼬이게 함으로서 선폭의 변화를 준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꼬임의 현상으로 필의 의미가 외부로 방출되는것이 방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書란 느낌도 좋지만 엄연한 書의 法則 즉 신묘한 力學의 法則이 있어 이러한 붓의 성질을 알고자 하는것이 書를 배우는자세라 생각됩니다
붓의 奧妙한 움직임을 몇자 글속에 넣어서 설명하는자체가 조금 이상스럽네요 서예가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데....쩝
이상의 글은 제가 여지껏 느껴온 私見이니 개인적인 의견으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원본 메세지] --------------------- 전형재님 개인적인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예서는 필의 꼬임을 풀기 위한 필의 의미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예서의 절의 느낌과 전서의 절의 느낌이 다른점이 이것때문인가요? 전서는 어떤 느낌으로 절을 넣어야 할까요?
우리나라 서예의 발전이 여러 서예가와 좋아하는 여러 후학들의 노력에 이루어졌음을 누구도 배제하지는 않타고 봅니다 예전에는 배움에 있어 거리상 멀고 또한 특정인의 전수물인양 서론의 감추어진 비밀을 숨기듯이 지켜온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이러한 서론의 비책들이 마치 자기것인양 아니면 비책을 전수받은 모양인양 스스럼없이 복사하여 베포하는 그런 분위기 입니다 이러한 이론들이 어떻게 나왔으며 이러한 내용들이 참인지 분간 못할정도로 인터넷상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자기주장도 피력함이 없이... 마치 글은 있는데 작자 미상이거나 흔한 말로 두리뭉실한 철학으로 얼벼무려 그냥 그렇게 후배나 후학들에게 넘겨주기도 하면서... 정치에서 말하는 하나의 깃털이거나 몸은 있는데 실체(정신)는 없는것이죠 감언이설과 같은 말로 커다란 서예의 테두리안에 기초적인 서법을 매장(?)시키며 회피하는것과 같은거죠 우리는 지금도 서예를 하는한 중봉을 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藝를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저만치의 것이다 하면서도 중봉을 하라 가르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렇게 아무런 근거 없이 떠도는 서론에 대해 누군가 지적하며 다시 새롭게 태어날수 있도록 하는것이 서예를 배우는 한사람으로서의 자세라 생각되어 이글을 올립니다
--------------------- [원본 메세지] --------------------- 다음과 같은 말도 있군요...
'...따라서 실제로 필봉이 변하지 않고 필획의 한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서자들이 감각에 의존하여 무의식적으로 붓
을 제어하여 다만 기본적인 중봉행필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하는 '筆筆中鋒'의 진정한 함의이다. 따라서 어떤것이든 곧이 곧
대로 해석하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정확한 인식이란 기초위에서 오직 정확한 운필을 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 바르면(正) 뼈
가 서고(立骨), 치우치면(偏) 자태를 취한다(取姿)' 하는 것과 같다.....(중략) 따라서 '획 가운데 실같은 농묵이 중앙을 지난다' 라는
구절이나 '행필이 굽어 꺾어지는 곳에서도 偏側은 없다' 등등의 말들을 깊이 연구하고자 한다면 크게 잘못하는 일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이것은 옛날 사람들의 서론에 너무 집착하여 발 앞만 보고 길을 보지 못함을 경계한 말 같네요...참고가 되실런지...
먼저 一波三折이란 용어부터 확인해야 할것입니다 저는 서를 배우면서도 이러한 용어에 대해서는 아직은 생소합니다 듣긴하였지만 가르치기위한 한가지의 용어일뿐 운필법으로서의 중요성은 아래 인터넷상의 글대로 느끼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단지 배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겁니다
또한 이 용어는 파임 혹은 파책을 할때 운필하는것으로 藏鋒-준-頓 의 과정을 거쳐 붓의 방향을 전환시킬때의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후 이것이 간혹 한일자 설명에도 나오는 얘기도 들었지만...
三折이란 말은 붓의 방향 전환일뿐 획굵기의변화는 아닌것 같으며 황산곡의 范滂傳에서 나오는 한一자 혹은 파임등의 굴곡은 획의 線質을 분명히 하기위한 것이지 삼절의 의미는 아닌것 같습니다
참고로 파임에대한 그림 하나 올립니다
일파삼절(一波三折)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파(波)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折)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주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 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히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 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생략 인터넷자료) --------------------- [원본 메세지] --------------------- 안냐세요~~~ 솔향기입니다. 저는요.궁금한게 있어서 그러는데요...글씨를 쓸 때 일파삼절이란거 있잖아요? 획에서 그걸 꼭 지켜서 해야하나요? 남들이 써 놓은 글씨를 보면 절(붓을 꺾는 것)을 한 획과 하지 않은 획은 쉽게 구별이 가더라구요.. 해놓은 것은 어떤 힘 같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데 한간이나 한예서 및 심지어 육조묘지를 보더라도 절을 일부러 해놓은 것 같지는 않던데... 물론 황산곡의 글씨에서는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절을 심하게 해놓은 느낌을 받았읍니다. 그렇지만 또 손과정이나 미불 왕탁도 절을 해가며 쓴 것 같지는 않아보이더라구요.. 잘못 본건가... 혹시 습관과도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하자면 워낙 스승의 글씨를 많이 본 탓에 자기도 모르게 그길로 흘러 들어가 누가 물으면 '그냥 이건 당연히 이렇게 하는거 아닌가?'라고 오히려 묻는 사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서가의 습관적인 기법) 혹시 님도 글씨를 쓰는데 일파삼절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읍니까? 전예해행초에 골고루 같은 이미지를 풍기며 들어가 있다든가... 또는 예서나 북위 서체를 쓰면서 횡수획이 자기도 모르게 규칙적으로 반복되어지지는 않읍니까... 저는 이 습관이란게 무슨 대단한 병이라고 여기지는 않읍니다. 저도 일파삼절의 습관이 있으니까요. 이 꺾는다의 의미와 그 이유가 먼지 혹 아시는 분 계신는지..
中鋒에 대한 님의 의견 너무 감사합니다
배우고 있는 저로서 가끔 부닥치는 일이고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것 같아 이런 얘기를 끄냈습니다 書藝라는 용어의 테두리안에 書法의 意味가 퇴색되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운 감도 있고 더구나 배우려는 학문의 자세가 아닌것 같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 님의 고견을 듣고 같이 공감할 필요성이 있어 이렇게 올렸습니다
물론 바둑처럼 정석을 배우고 정석을 잊어버려라는 식의 말도 공감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書藝의 밑거름인 法은 잊지 말아야죠!!!
書의 궁극적인 목표는 붓을 마음과 같이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것이 아닐까요?
3.'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도 붓대를 곧게 세우는 것을 말하는 듯 하나 중봉의 개념에 대해 행필상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붓대나 붓털의 상태만 나열하고 있다. 왜냐하면 붓대도 바르게 붓 끝을 가운데 둔다는 것을 필방에서 풀먹여 걸어둔 붓이지 행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은 설명이기 때문이다.
4. 전형재 님의 의문사항에 대한 저의 생각은 중봉의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기초적인 설명으로 단순히 붓끝이 획의 중심에 둔다는 식으로는 중봉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에 비춘다면 일단 봉의 실체를 확인하는 고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모든 행필이 봉에 대한 철저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봉에 의해서 팔면이나 만호제력의 깊은 이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개념을 설정하는데는 다각도로 자세, 집필, 운완등을 철저하게 살펴야 하며 그 바탕에는 아주 큰 의식을 집중시켜서 곧 봉과 자신이 일치하게 될 때 비로소 중봉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저는 동양붓을 매개로 서예활동하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글씨를 쓰면 정말 기쁩니까? 의욕이 솟구칩니까?' 이런 류의 물음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 중봉의 맛배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먼저 붓을 잡을 때 손의 엄지와 식지의 윗부분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붓에 닿지 않을 정도의 작은 물잔에 물을 따라 올려놓고
호흡을 고른 후 그을 수 있는 가장 가는 선을 그으며 지면위를 돌아다닌다.
익숙해지면 선을 조금 굵게 하되 봉의 실체가 붓의 허리를 다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붓의 크기는 지름 18밀리미터 길이 100밀리미터 정도(보통 장봉)의 것이 적당하다.
이상 소견을 마치며 중봉에 대해 더 진지하고 솔직한 내용의 별도의 장을 마련해서라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원본 메세지] --------------------- 사견을 드립니다. 참고로 첨부하신 아트코리아 자료실(이하 자료실)의 내용에 덧붙여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중봉의 개념에 대해 짧은 시간과 지면으로는 의논하기가 쉽지 않으며, 자료실의 내용은 상당히 치밀한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 같군요
다만 집필법과의 관계 또는 鋒의 실체에 대한 보충설명이나 접근방법 등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또는 동영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자료실의 내용에 대한 저의 의견은 이러합니다.
1.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집필과 운완의 문제로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와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이 오지 않게 된다'는 어떤 근거에서 표현된 것인지 전혀 분명하지 않으므로 차라리 현완이나 발등법류의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2. '팔목은 세우고 붓 끝은 똑바로 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 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끝이 오도록 한다' 는 견강부회로 중봉운필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 같습니다. '팔목을 세운다'라고 한 것은 내용만으로는 어떤 집필인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체구조상 설득력있는 설명인 아닌 듯 합니다. * 첨언하자면 서론에 자주 인용되는 '팔면출봉'도 엄밀하게 분석해보면 '팔면수봉'으로 바꾸어 씀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서 나머지는 다시 들를 때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실례합니다.
--------------------- [원본 메세지] --------------------- 書의 중봉의 개념에 대해 여러가지 異見들이 있어 관심있는분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중봉이란? 아래 표기된 것처럼 점이나 획의 중앙에 봉끝이 위치하는것이 중봉이라 했습니다 또한 편봉이란 붓끝이 한쪽으로 치우침을 말하는데(획의 일면은 붓끝이 닿고 일면은 붓털이 닿는) 이것이 상기 중봉이 개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상기중봉의 의미대로라면 획의 가운데에 필봉(붓끝)이 있어 획의 양쪽으로 붓끝이아닌 붓털(붓몸)이 닿는 것이되므로 이것 또한 편봉이 아닌지요?
書란 이론 또한 앞서면 안되겠지만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여러 의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중봉(中鋒)이란?(아트코리아 자료실에서)***
붓대를 곧바로 하고 붓 끝을 가운데로 오게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중봉(中鋒)이라고 한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 끝이 항상 점과 획의 중앙에 위치할 수 있게 된다. <서벌(書 筏)>에서도 '중봉을 운용할 수 있으며 퇴필로도 획을 둥글게 할 수 있고,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중봉이 서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만, 현재 서법에서도 중봉은 꼭 지켜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중봉으로 글씨를 쓰면 붓을 일으키고, 엎어지게 하고, 누르고, 당기고, 보내는 변화를 쉽게 할 수 있어 거기에 따라 나오는 점과 획에 다양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하고, 부드럽고, 굽고, 곧바 로 된 획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며 가로 세로의 획과 둥근 획도 마음먹은 대로 표현 할 수가 있다. 만약 팔을 붓대에 기울인다면 중봉을 운용하는데에 지장이 있어 평평한 획을 그을 때 붓 끝이 글자의 중심에 오지 않게 된다. 중봉으로 붓을 쓰려면 먼저 붓끝이 중앙에 위치하도록 자세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옛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살펴 보면, 팔목은 세우고 붓 끝은 똑바로 하여 붓의 사면에 힘이 균등히 가게 하여 항상 글자의 중앙에 붓끝이 오도록 한다. 붓을 움직임에 있어서 머무를 때에는 사로잡는듯하게, 나갈때는 내보내는듯하게, 거둘 때에는 긴장을 하는듯하게, 넓힐 때에는 열어주는듯하게 , 누를 때에는 내리는듯하게, 당길때에는 일어서는듯하게 하면 붓이 왕래하는 사이에도 붓끝은 항상 스스로 제자리에 돌아와 중봉을 유지할 수가 있다. 중봉은 용필(用筆)의 관건이며 붓이 똑바로 서야만 골(骨)이 서 있게 되며 획이 풍부하게 되어 정신과 풍채가 비약할 수 있다. 서예는 획의 변화를 중요시 하는데 중봉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떠한 변화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초보자는 반드시 중봉을 유지하면서 글씨를 쓰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먹에는 송진과 같은 끈적함이 있어 작용하는 붓호의 응집력과 붓의 호가 운행할때 준,頓하며 발생돠는 호의 탄력적인 힘만 견주어 잡는다면 문안하다 생각되네요?
쉽게 생각하면 붓을 헐렁하게 안잡고 五指의 감각을 최대한 느끼며 붓끝이 도망못가게 제어할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싶습니다
그런데 그힘이 만만치 않네요? 한번 느껴보세요 엄지의 손끝이 어쩌면 시려질수도 있습니다 굳은살 배길정도로.... 겁주는것 아닙니다 ㅎㅎ
--------------------- [원본 메세지] --------------------- 저는 지역이 옮겨져서 서실을 두군데 다닌 적이 있는데요. 두번째는 얼마 못 다녔는데요. 저의 붓 잡는 습관이 잘못 됐다고 하시더군요. 붓을 너무 세게 힘을 주고 잡는 다고 하더군요. 힘을 다 빼고 잡으라고 하시던데 적응이 잘 안됐던 게 생각납니다. 첫번째 서실에서는 그것을 잘못으로 지적 안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붓은 어느 정도 힘으로 잡아야 할까요? 궁금합니다.
글쓰는 자세에 대해서는 지방마다 특색이 있지요 어떤 연유로 그렇게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경험으로는 전남 순천(순천대학교) 중심으로는 바닥에서 가부좌를 틀고 글을 쓰고 경남 진주(경상대학교)에서는 한글은 의자에 앉아서, 한문은 서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경기는 대부분 의자에(편액 작품할 때는 서서 즉 20~30㎝이상의 글씨는 대부분 서서하고...) 앉아 글을 쓰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쓰는 자세는 집필법 또한 다양하듯이 글씨의 잘 쓰고 못씀에는 관련이 없다 생각됩니다
중요한건 붓의 성질(고놈의 성질 대단하죠 꼭 청개구리와 같이 이리 삐지고 저리 삐지고... 온순하게 다룰수 있다면야...)만 안다면 악필로 잡던, 왼손으로 잡던 필의 운필법에 쫓아 쓰면 훌륭한 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左手書로 유명한 劍如선생님,如初선생님등을 보더라도 이러한 글쓰는 자세방법에 대해서 개의치 않으신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 병환중이신 劍如선생님의 글쓰시는 모습은 밥상같은 책상 가까이 가부좌를 틀고 글쓰시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알수 있으니까요 비약하여 말한다면 수다맨이 말하는 연변총각의 과장된 말과 같이 발꼬락사이로 붓을 끼우고도 멋진 글을 쓸수가 있다는거죠
재밌지 않습니까?(너무 심했나?) 한번 도전해 보십시요!!!
먹은 진하게 갈아 쓰는 것이 배움의 기초라 생각됩니다
먹의 농도를 옅게 하면 발묵의 효과를 얻는다고하나 글에 힘이없고 초보자에게는 운필상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양호인 붓을 다루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응집력이 약해진 농도의 먹을 사용하면 더욱 약해진 붓의 탄력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결국 결구에 치우치게 되고 운필에는 신경이 거의 가질 않습니다
물론 각체의 성질상 빠름과 느림은 있어 먹의 농도를 이에 맞게 쓴다하나 먹빛이 진하면 선이 살아 있어 보기도 더욱 좋다고 생각됩니다
추획사(錐劃沙)와 인인니(印印泥)에 대한 다른 견해
추획사는 그 뜻과 같이 송곳으로 모래 위를 그어나갈때의 운필감각으로, 인인니는 용어의 뜻과 같이 진흙과 같은 일종의 인에 도장을 찍을때 처럼 조심스러움으로 붓을 운필하여야 한다는 의미라 봅니다
王虛舟(論書勝語의 著者)는 이것을 中鋒에 비유하였지만 당나라 저수량의 書論에 있는 글 처럼 '用筆은 마땅히 추획사(錐劃沙)와 인인니(印印泥)와 같이 해서 藏鋒으로 되면 書는 곧 침착하게된다' ('서론의 이해' 중문출판사)라고 해석, 즉 운필의 감각과 느낌으로 비유가 되지 않을까요?
단지 추획사나 인인니가 문득 떠오르는 형상의 이미지가 같다는 이유로 중봉과 비유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용어가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비유로 시작되었는지는 고증도 없고 당시 이러한 용어에 대해 당나라의 유명한 저수량조차 중봉이란 어떤개념의 비유도 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 点,側에 대한 저의 짧은 소견을 간략히 정리하여 드립니다 다른 의견이나 설명있으시면 답글로 답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네요
서예는 点과 線 즉 획의 가늘고 두터움과 장단(長短), 선의 강약(强弱)과 質 및 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등이 조화가 되어 미묘한 공간조형미를 창조하는 시각적인 예술입니다 이런 시각예술로서의 서예속에 비록 点은 작은것에 불과하지만 그 쓰임은 조형의 공간의 균형, 간결미, 생략(미)등의 용도로 쓰일만큼 다양합니다
点은 같은 중복되는 글자의 표시, 글자균형을 맞추기위한 공간배분의 点,한나라의 빠른 문서정리를 위한 초서나 장초에서 문자를 간소화시키기 위한点등 여러가지의 형태를 볼수 있습니다
현재는 点은 서예용어상 側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어느 서예학자는 ' 側은 点의 시작으로 永字 의 第一筆이었지만 지금은 点이라 부르지않고 側이라 부른다'라고 합니다
側의 종류는 앞서 보여준 형태로 크게 나눌수 있으며 기본적인 側劃의 형태는 勒劃인 한일자 첫머리의 말발굽같은 형태와 누에머리와 같은 한일자 後未의 형태를 합한것으로 짧은 필획이기는 하나 시작과 끝이 있고 필봉이 나가는 부분과 되돌아오는 부분이 있어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側획의 기본자를 먼저 가르쳐 주기도 하지요 님만의 고민이 아닌것 같네요 고민을 여럿이 나누면 덕이 될런지...?
초서를 쓸때 이렇게 많은 용어들이 나올지 상상도 못했네요 요즘 초서를 써도 해서를 써도 도무지 운필이 안되어 애꿎은 집필 운필만 나무람니다 집필 운필법을 초월한 현대 서예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네요
작품은 비평 혹은 법의 기준으로 평가 받는것이 아니라 현사회적 흐름에 순응함에 평가 받음이 오히려 정확한것이 아닐런지요? 공모전에 이미 만들어진 작품과 작가에 우리는 너무나 많이 적응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미 왕희지의 서체니 구양순체니 안진경의 필법이니 필세니 하는 서예의 필법은 요사이 보기힘들고 현대서예와 같은 평면적이고 조형적인 공간감, 헌신적인 서예에 대한 공헌도(?)로 서예는 평가받고 있는듯한 인상입니다
요즘 정말 모를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최소한의 법을 지키고자 오늘도 한일자를 내리 긋습니다
푸념한번 해보았습니다 덥고해서... ^^**
오랜만에 답글을 올립니다
일반적인 여러 서론보다 제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다 생각되어 두서없이 몇자 적습니다
예서는 여러 서체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맛과 옛스런 풍치가 있어 누구나 한번은 꼭 써보겠다는 마음이 이는 글씨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 이루어 지지도 않는것이 예서입니다 당해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현실에서는 예서보다는 육조체의 글를 먼저 연습 혹은 배우고 익히고나서 예서를 공부하시는것이 오히려 편할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배우는 예서서첩중에는 예기비, 조전비,사신전후비,장천비,을영비,공주비등 한비를 비롯하여 등석여의 예서등의 서체를 접할수 있으나 초보자로서는 역시 등석여의 예서체가 적격인것 같습니다
이현사에서 발행한 등석여작품집에는 글자사진이 크게나와서 붓의 필의를 느끼며 공부할수 있어 좋은것 같고 사신전후비는 글씨체는 그리 작지는 않으나 횡획과 적획처리부분이 어렵고 조전비는 글씨자체는 아름다우나 너무 연약하여 흉내내는 글씨가 될까 염려스럽고 예기비는 어느정도 예서의 연륜이 생겨야 겨우쓸정도로 힘찬 예서입니다
예서에 접하는 방법에는 전서로부터, 혹은 육조로부터 시작하는 방법과 직접 예서를 접하는 방법이 있으나 저는 처음 말했듯이 육조체를 먼저 접하고 예서를 나중에 공부하심이 좋을듯합니다 이유는 방필 즉 육조체의 글씨를 통하여 붓의탄력과 꼬임에 먼저 익숙해야한다 생각됩니다
이상 저의 생각 몇자 간추려 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저의 짧막한 답변에 대해 이렇게 관심과 염려를 주심에 고맙습니다
제가 올린 싸이트에 개제된 기초서법에 관한 내용은 한문 붓글씨를 배우는 기초과정으로
황자원체의 결구바탕으로 쓰여진 것(南田선생님 글씨)이며 제가 관련한 시립대 연묵회 회원 ,柴溪硏書會 회원들의
서예배움의 기초가되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는 기본적인 서법이라함은 영자 팔법중에 있는 늑획,노(수)획,적획,탁획,책획,약획,파임,
측획의 8가지 쓰는 법을 말하며 서예를 처음 접하거나 연륜이 없는 초심자에게는 안진경체니,구양순체니 하는
방법의 설명이 오히려 혼돈이 생길까 염려스럽습니다
또한 안진경 구양순의 결구에 ?다 보면 書法이라는 중요한 과정의 배움을 놓치게되고 모양새만 흉내내는
서체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싸이트에 들어 있는 내용상의 자료는 어느체에 관계없이 필법에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보여주는것이지
어느 누구체로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은 아닙니다
기초적인 서법 즉 획에 대한 서법이 충실해야 각자의 톡특한 개성을 살린 서체를 구사할수 있으며 모양에 따른
결체만을 중요시하면 식상한 글씨로 변할수 있습니다
예로 고려시대의 한석봉 글씨와 조선후기의 김정희 글씨비교로 알수 있고
또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왜 추사가 그리 비판하는 이유로도 알수 있습니다
서예에는 법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의법과 같죠
그런데 요즘 이런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의 법마저도 위협받고 있죠 ^^!!
누군가가 그랬죠
세기의 종말이 오면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저는 말합니다
늑획 한자라도 열심히 쓰겠다고 ^^*
추: 자료에 대해 의문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성의껏 답해 드리겠습니다
여러 의견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어느영화제목의 ㅁㅁㅁ 길들이기의 말처럼 붓 길들이기에 한번 힘써 보십시요
옛선인들보다 20 여년 뒤늦게 붓을 잡아 당대 명필이 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과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한다면 書法에 충실하여 붓의 운필 즉 모아진 붓끝을 최대한 폈다 오무렸다를 자기 마음대로 할수 만 있다면 이것이 앞서 말씀하신 松亭선생님의 法古創新의 기본적인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예에 대한 좋은 말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중에 공감 되는 말씀도 있으나 개인적인 이견도 있기에 제가 아는 범위에서 글을 올립니다
먼저 필봉에 대한 3분필은 필의 중심인 筆心으로 부터 鋒까지의 3등분한것으로 작품 혹은 비문의 획의 굵기를 판단케하는 기준이 되어 줍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가령 안진경 마고선단기의 탁본의 글씨는 몇호 정도의 붓으로 2분필을 사용하여 글을 썼다고 판별할수 있지요
또한 1호 붓의 1분필과 6호붓의 2분필의 선의 굵기가 같다 하더라도 자세히보면 선의 질감이 다르게 느낄수가 있습니다
글씨가 가늘다 해서 골이 있는것이 아니고 글씨에 살이 있다해서 붓의 부호로 썼다고는 볼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명한 추사의 현판글씨 혹은 마애비와 같은 큰 글씨가 붓의 봉과 부호로 골과 육을 형성하면서 씌여졌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글씨에 살이 있던 없던 그것은 영원한 우리의 숙제인 中鋒과 관련된 線質의 문제인것 같고....)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한일자를 한번 써 보십시요 그 획이 굵고 가늘던간에 지면과 닿은 붓의 봉이 획의 위아래의 선을 고스란이 쓸고 갔는가를 ...
위삭이 말하는 골육의 많고 적음은 획의 線質이 있고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저는 생각됩니다
여기까지 저의 생각을 말해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결론이 항상 같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서예란 선생님에게로부터 배웠건 혼자 터득을 했건 간에 스스로가 얻은 생각의 념이 다른 생각조차 할수 없도록 배타심만 갖게 하는줄도 모릅니다 나의 의견이 자기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이것이 틀렸다 아니다 할수 없는것도 서예입니다
단지 저는 서예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보다 정도에 근접하는 길을 제시하고 같이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여 이 서예세상의 문답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서예에 관한한 아마추어이지만 저뿐만 아니라 실제 서예를 전공 관여하시는 분들도 많은 참여를 하여 서예이론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봉에 대한 3분필은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서예란 무엇인가-중문출판-에서는 붓의 필단에서 봉까지를 3등분하여 1,2,3분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님이 말씀하신 筆心으로부터 鋒까지를 3등분한 것으로 이를 설명하면 한일자 설명시 藏鋒- ?- 頓- 提- 頓行- 頓- ?- 收筆(이 설명은 각 서예를 가르치는 분들 마다 틀리므로 저의 배움에 기초하여 말씀드립니다)순으로 2단계인 ?(쪼그릴 준)에 의해 분필의 사용범위가 정해집니다
이 ?으로 획의 굵기가 정해지며 님이 말씀하신 혈을 공급한다는 먹의 저장구실을 하며 붓의 탄력과 굵기가 정해진 획의 단면에 봉이 일정한 간격이 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線質 즉 획의 단면을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봉이 나열되어 획의 상하로 봉이 지나감을 말합니다 이것이 편봉과 구별되는 중봉의 이론으로 저는 배웠습니다
봉이 획의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 또한 편봉으로 획의 상하가 붓의 터럭 즉 부호에 의해 그어지므로 획의 線質이 불분명하여 님이 말씀하신 칼鋒의 의미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즉 붓의 끝을 鋒이라 하며 이 의미로 글을 쓴다함은 끌로 나무를 새기듯이 예리하게 파내는 것을 말함으로 나무나 돌 새김에도 中鋒의 의미를 받아들여 획의 단면을 V형이 아닌 平지게 글을 새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中鋒의 개념은 하나이며 원필과 방필이 있다하여 다르게 설명되어지지는 안습니다 단지 中鋒이란 말의 뜻과 같이 획의 가운데에 봉이 지나감을 말하면 원필과 방필로 구분될수 있으나 제가 말한 중봉의 개념이 아니며 단지 편봉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로 들은 한일자 설명은 장봉부터 시작하여 수필에 이르기까지 획이 먹과 지면과의 경계선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하나의 봉이 쓸고 지나감이 곧 중봉의 개념이라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리 하여야만 화선지에 나타난 선의 분명함과 매끈함과 힘찬 봉의 필이 나타남이 아닌지요? 이것이 선인들이 말하는 골육의 많고 적음이요 살이 있고 말랐다고 표현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상의 것들이 저의 소견이지만 서예를 처음하시는 분들이나 어느정도 연륜이 갖춘분들도 한번은 정말 고뇌를 갖고 생각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필력을 제기하신 분의 말과 같이 많은 세월를 허송스럽게 배우지 말야야 하기 때문이죠
다시 토론에 참여해 주심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답변에 대한 위의 내용에 대하여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힘 닿는데 까지 얘기 해 드리겠습니다만, 한번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많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리플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筆心이란 筆鋒부터 筆管에 이르는 중심선이 아니라 붓을 최대한 펼수있는 붓의 허리위치를 말합니다 또한 분필이라 함은 그냥 작다는 뜻으로 붓을 사용하는데 하나의 기준을 삼기위함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건축하는 사람이라 90년도 초 지방을 돌며 공사를 하던중 대학내의 서예반(순천대학과 경상대학)을 기웃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호남과 영남에서의 서예공부하는 방식 -집필과 자세등- 서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서예는 지방마다의 고유의 특색이 있고 이것이 틀리다 맞다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붓에 관한 용어도 서로 말씀하고 있는 의미조차 틀리시니 오해의 소지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요
또한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토론하는 자체는 문명적인 혜택을 받아서 고마움을 느끼지만 막무가네로 근거없이 떠도는 서예이론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위복사 배포하는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쾌감만을 느낍니다
서예의 이론보다는 서예의 실기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무엇보다도 서예의 기초적인 이론 즉 집필 및 자세 운필법등이 먼저 알아야만 곧은 글씨를 쓸수 있다 생각됩니다
앞으로 서예세상을 통해서 현재 서예계에 물의를 빗고 있는 사건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서예에 관한 용어자체도 정화(?- 통일이 맞겠죠^^*)시켜봄이 어떤지 생각이 드네요
필두(붓필, 위두)는 말이져~ 붓의 호를 보면여 筆頭에서 내려오면서 볼록한 위치(이하로는 점점 가늘어짐)를 말하거든요. 보통 그 이하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요^^ 호의 부분적 설명한 것이라고 해요. 필심은 모든 이론에서 호의 중심과 선에서는 획의 중심을 말하는 것이 보통... 그래서 마음심(중앙)을 쓰져^^
초등학생을 가르치기가 여간 어려우실겁니다 중학생 이상은 여러 소리없이 조용조용 지도를 하면 되는데 초등학생들 정말 천방지축이죠 한번은 얼리고 또 한번은 큰소리 치고...^^* 그래도 아이들 만큼 순수한이는 아마도 없을겁니다 그 맛에 초등학생을 대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먼저 아이들에게 한자의 흥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림 비슷한 놀이 선긋기 놀이- 직선그리기 동그라미 그리기 별표그리기 우물정자, 네모그리기등 그림과 관련한 모양을 보여주며 붓에 대한 거부감을 먼저 잊게하는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이 하는 집필이 아니라 악필 즉 손바닥으로 붓대롱(필관)을 감싸 쥐고 엄지는 대롱위를 향하게 하면 힘이 없는 아이도 제법 붓다루기에 수월함을 느낄겁니다
또한 현완법을 하도록 계속적인 지도를 하는것도 잊지 말아야죠 서체는 전서체으로 쓰여진 글씨면 좋고 호태왕비의 비문을 각자 8자씩 나누어 임서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입니다
화선지는 구궁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 있어 이것을 필방에서 구입하여 쓰시면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이상을 자주 반복케 하면 훗날 아이들이 서예에 대한 거리감은 사뭇 줄어들죠
임서로 작품을 한다는것이 그리 쉽지마는 않을겁니다 임서를 함에 있어 원작품의 서예가가 추구하는 의식의 단면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도록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마 월간서예세계(보지는 않았지만)의 두 작품은 서로의 다른 시각 혹은 감각에서 임서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먼저 임서작품평에 앞서 임서(臨書)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간략한 임서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창작은 모방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즉 임서는 모방이다. 곧 비,첩을 똑같이 흉내내는 것으로 미술 작품의 기본이 되는 데생과도 같은 것이다. 비, 첩에 담겨있는 문자의 형태나 필법 그리고 작가 의식 등을 살펴 그 공통 분모를 터득하는 것은 서예를 배우는 기본이며 또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비, 첩은 역사의 값진 유산이며 그 당시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결정체여서 임서에 힘쓰는 것은 곧 수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 작가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으로 가는 첩경인 셈이다.
*임서의 종류: 임서에는 형임(形臨), 의임(意臨), 배임(背臨)이 있다.
'형임(形臨)'은 글자의 형태와 모양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가장 초보 단계이다.
'의임(意臨)'은 운필, 필세 등을 체득하여 그 글씨가 가진 공통분모 곧 비, 첩이 지닌 정신을 배우는 단계이다.
'배임(背臨)'은 그 글씨의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다 외워서 비, 첩을 떠나 그 풍으로 연습하는 단계이다.
아무리 형임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창작성이 배어 있다. 그대로 배끼 듯 한다 할지라도 시대 환경과 용구와 재료 등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사상과 감정이 달라서 아무래도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임서를 할 때에는 창작하는 것같이 하고 창작할 때에는 임서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듯이 임서 속에서도 자기만의 모습과 언어가 표출된다.
임서의 단계에서 의임, 나아가 배임을 할 정도이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기의 면목이 생김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임서의 중요성:
고전 임서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를 속서(俗書)라고 한다. 그림에서 데생 과정과 마찬가지로 임서의 과정 없이 글씨를 쓰는 것은 기초 없이 고층 건물을 짓는 격이다.
임서는 초심자에서부터 대가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된다. 임서를 통하여 초심자는 점, 획과 결구 그리고 장법을 터득하며, 설령 경지를 이룬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속하고 방종한 운필로 굳어지기 쉬운 타성을 버리기 위해서 자주 임서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글씨는 물론, 마음과 정신을 법으로 조명하고 수렴하는 수단으로 임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서예를 전공하지않고 학교동아리에서 글씨공부를 한다니 없는 시간에 배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때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배울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때문이죠^^* 학교때 수업 농땡이 좀 피우고....ㅎㅎ
서예를 배우려는 사랍 모두가 육조체의 고상함 즉 미인중에 백치미를 가진 미인이 더욱 아름답다고나 할까 아뭏튼 이런 모습의 결구에서 호감을 사는 서체일겁니다 처음과 나중의 날카로운 필세와 획이 가늘었다가 파임과 같이 펴야하는 운필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 육조체를 대하시는 분은 먼저 구양순 혹은 저수량의 해서필세를 먼저 공부한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의 늑획을 확대하여 공부하시면 어느정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육초체공부는 장맹룡비,용문20품(이현사 출판 상하권), 장현(장흑녀)묘지명,찬용안비,찬보자비 및 금농서등이 있으나 찬보자비의서는 많은 육조글씨와 예서를 공부하고 임서했음은 하는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글씨한자한자마다의 고상한 기품이 필법을 무시한 결구형태로 마무리될까하는 우려때문입니다
학교동아리의 서실에서 배울수있는 기간에는 세가지 서체를 한번쯤은 맛이라도(책 전임)하고 졸업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옛선인들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국전지와 같은 크기의 화선지는 없었을 것이고 겨우 짧은 폭의 두루마기식의 종이이었을거라고 추정되며 이러한 화선지에 붓으로 먹물을 묻혀 글을 썼다고 가정하면 종이위에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글씨를 썼을때 왼손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먹물이 있는 글씨가 있어 여간 불편하지 않을수가 없었을 겁니다
2) 글씨를 만든사람이 오른손잡이로 추정되며 한자는 우측변보다 좌측변쪽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고 우측변쪽은 파임과 같이 길고 짧게 변화가 심하여 다음줄의 글씨를 쓸려면 정리가 되지않는 글짜임이 되어버릴 겁니다
이런 이유로 왼쪽방향으로 썼을거라 생각되어 愚答하여봅니다^^*
동양에서는 집을 지을때 주로 나무목재를 세우거나 통나무집과 같이 쌓아두면서 면과 공간을 만들었지만 서양에서는 나무를 제재한 판재 혹은 블록과 같은 면자재를 사용하여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이렇듯 동서양의 생활문화 즉 생활사상의 출발이 다른데 손끝에서 표현되는 예술의 감흥이 다른것은 당연하다 봅니다
또한 동양에서는 공간(면)을 나눔에 있어 먼저 백을 재서 흑으로 나눈다 했습니다 서양과 같이 황금비율을 이용한 면의구성이 아니라 선의 굵고 가늘음 색의 짙고 옅음으로 면의 깊이를 더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더욱이 재료를 사용하는 도구에서 조차 서양유화붓과 같은 짧은 붓털은 면구성하기가 좋은 반면 서예쓰는 붓과 같이 가늘고 길다란 붓은 면구성에 앞서 선구성에 적합하며 다루기 힘든 만큼 정신적인 이상도 깊게 글씨이나 그림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작금의 예술은 컴퓨터로 인하여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사상마저도 급물살 타듯이 빠르게 표현되어 hansm님의 말씀 그대로 동서양의 구분이 어렵고 장르조차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온 것 같습니다
서예 또한 고전서예와 현대서예와 맞물려 진정한 線의 예술에 한몫?을 한다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기준은 점점 얄팍해져 가고 그것조차 겨우 있으나 거대한 물결앞에 맥없이 통합되어 가버릴 듯한 염려속에 그저 저나름대로의 한가닥 희망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그냥 푸념이지요 저의 짧은 식견으로 내다본 동양예술에 포함된 서예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표현입니다 ^^
서예의 예술적인 면이 아닌 다른 면에서 보면 붓글씨를 쓰는 묘미는 아마도 붓을 다룸에 있어 붓을 마음대로 통제할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에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러한한 것은 어릴적부터 붓을 다루었거나 대대로 내려오는 서예의 비법을 전수받지 않고서는 아니되며 약관이 되어서야 겨우 붓을 만져나 볼 정도의 나이에 붓을 마음껏 다루기란 무척 어려울겁니다
스포츠에서도 기본적인 자세를 습득하고 나서 고난도의 기술을 연마할수 있다고 하죠 아마 서예도 글씨를 쓰는 기본적인 몸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며 집필법 및 운필법등의 기본기를 습득해야 될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붓의 역학적인 움직임과 관련하여 비틀림으로 인한 붓의 탄력과 먹을 필두에 모을수 있는 모세관 현상과 응집력등의 기초적인 과학적인 지식과 접목하여 공부하다보면 조금 더 흥미롭게 자신만의 서예이론을 체계화 할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아져 있는 붓끝을 서양의 파렛트 붓과 같이 납작하게 맘먹은대로 펼수 있는 능력과 붓끝을 모아야 할 때 붓의 역학적인 성질을 이용하여 평편하게 펴진 봉의 끝을 한올 끝까지 모우고, 방필의 획과 같이 날카롭게 원필의 획과 같이 부드럽게 표현할수 있어야 하는 서예의 공부 방법입니다
이러한 것은 앞서 말한 기초적인 서법과 글씨를 쓰는 자세법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꾸준히 쓰고 연구하는 학문의 자세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첩대로 되지 않는것을 안다는자체가 많이 배움을 터득한것 같네요 글씨자체가 서첩과도 상이한데 이것 조차 느끼지 못하는것이 더욱 답답한것 아닐까요? 조금씩 조금씩 하세요 언젠가는 글씨가 많이 변해져 있을겁니다
서예는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옆에 선생님이나 먼저 배우신 선배님들의 도움이 기초과정에서는 반드시 필요하지요 한획을 서첩과 비슷하게 그었다 하더라도 그획속에 내포되어 있는 법칙을 이해함이 없이 공부한다는 것이 정말 위험스런 일일겁니다
책속에 나와있는 글쓰는 자세법은 하나의 기본적인 자세를 예시한것입니다 실제 이렇게해서 글을 쓰기란 무척 어렵죠 글씨를 처음 대하는 분이라면 먼저 선배나 선생님들의 서예하시는 모습을 항상 눈에 익숙하도록 여러번 보아두십시요 서예하는 모습만 보아도 서예공부는 되는것입니다^^^*
서예교재는 서점에 즐비하게 있습니다 많다 하더라도 자신에 맞는 서첩을 구하기란 어려울겁니다
먼저 가볍게 황자원 92법(중국서적,2~3천원이면 사지않을까요?)을 중심으로 결구와 서법을 이해하고 이후 당해서인 안진경(안씨가묘비,안근례비,마고산선단기,화찬비등) 구양순(구성궁예천명)우세남(공자묘당비)유공권(현비탑비)등을 기초과정으로 해서 공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십시요^^*
서예를 시작함에 있어 처음의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든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통성이 있는 서법조차 처음 시작한 중국에서 조차 찾기 어렵고 왕희지의 필법조차 여러 갈래의 소리가 많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서예를 배움에 있어서는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와 스스로의 공부과정에서 깨달은 지식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여 배움에 정진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질문하신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 간추려 보았습니다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에게 붓을 벼루에 다듬어 쓰라는 이유는 먼저 봉을 뾰족한 형태로 모아 가지고 쓰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붓에 먹을 묻혀 처음에는 상기의 형태와 같이 되나 획을 긋고 난뒤는 아무래도 붓이 모아져 있지는 않을겁니다 이러한 형태의 붓을 다음획에 연이어 쓰면 획은 아마도 이상한 형태의 의도되지 않은 전혀 다른 형태의 획으로 될것입니다 물론 장봉의 의미를 알고 있음에도 마음대로 획을 모을 수가 없을 정도 일겁니다 이런 이유로 매번 획을 그을 때 마다 벼루에 붓을 다듬어서 붓끝을 모아 쓰라고 하시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초보의 입문을 끝내고 나면 붓에 먹을 한번 묻혀 10센티이상의 글자 한자 혹은 두자정도의 글씨를 쓸수 있게 연습을 하셔야만 됩니다
붓의 선택에 있어 초보자에게 적당한 붓은 호의 크기와 재료를 견주어 1~3호(16~20mm의 단면을 가진붓??)의 장봉붓과 및 양호(대개 시중에 파는 것이 필심가운데에 인조모가 있다는데…)를 가진 어느정도의 탄력을 가지고 있는 강모와 연모가 섞인 겸호붓이 좋겠습니다 족제비털과 같이 탄력이 강하거나 양털로 만든 너무 유연한 붓은 초보자에게 붓의 탄력을 가르키기에는 무리인듯 싶습니다
처음 글씨를 쓰시는 분들은 먼저 비문의 외형적인 글씨보다는 글씨속에 감추어져있는 필법을 우선 배워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붓으로 획을 만드는 과정과 획이 모여 자를 이루는 미적인 결구와 자와 자의 공간을 배치하는 심미안적인 공간의 배분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 쌓아 나가야 됩니다 처음부터 비문의 글자와 흡사하게 쓴다하여 자마다 그렇게 쓴 이유와 획에 대한 필법을 설명치 못하면 아니 배운 것 보다 못하지 않을까요 아마 가르치시는 이러한 이유를 감안하여 기본적인 결구의 구성과 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르게 쓰신 것일겁니다
글씨를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가짐이 흐뜨러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번의 습관이 80세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아기들이 젓가락을 잡을때와 같이 한번 습득한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기 어려운 상태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서예에서 말하는 나쁜버릇이라 함은 먼저 누구나 겪는 서예의 자세로 운필상의 현완법 및 집필법등에서 잘못 가르침을 받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아래 운필내용에서 설명드린 것 처럼 매상 습관적으로 하기가 무척 어려운것입니다 서예를 공부를 할 때 선배나 선생님들의 글쓰시는 모습과 운필 집필등을 생각하면서 연습을 하셔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댓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