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말씀 산책
아내는 충남대학교병원 재활/관절염 센터에 입원한 지 9주 만에 조기퇴원하기로 했다. ‘조기’란 아직 앉고, 서고, 걷는 것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퇴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아내는 고관절과 무릎 사이의 대퇴골과 어깨 관절의 골절로 입원한 지 5일 만에 대퇴골 수술을 하고 어깨뼈는 골다공증으로 얼마동안 두고 자연치유가 되기를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나는 아내가 수술을 마친 다음날까지 간병을 하고 있었으나 간병인을 두어야 한다는 주위 사람의 강권에 못 이겨 수술 후 이틀째부터는 간병인을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간병인이 구정 전후 5일간과 유급휴가 2일, 병가 2일 등을 요구해 징검다리 간병을 해서 불편하여 퇴원 전 8일은 아예 간병인 없이 지내기로 했다. 따라서 3주 넘게 내가 간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입원생활이 어떤 것인지 많이 알게 되었다. 처음 6주는 6인실, 나머지는 4인실이었는데 입원실이란 환자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각가지 성격의 환자가 각종 병을 가지고 보호자와 함께 들어와서 수술하기까지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다음 날 수술을 해야 한다고 금식을 시켰는데 “나 밥 줘! 배고파!” 하고 밤 내 소리 지르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11시까지 뉴스를 듣거나 mp3 음악을 큰 소리로 듣는 보호자, 또 코 고는 사람, 밤내 대소변을 받아내는 간병인…, 그런데 신기하게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 관용하고 불평 없이 지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전신마취로 수술 후 얼마 동안 그 후유증으로 섬망(譫妄)현상이 있어 주변 상황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어 보였다. 누가 찾아오면 그 때는 알아보는데 금방 잊어버렸다.
여보, 나 지금 뉴욕에 있어. 당신은 어디 있어?/ 나는 계룡의 우리 집에 있지./ 빨리 와. 보고 싶어./ 그래 잘 자고 있어. 내일 아침에 갈 게./ 어떻게 올 거야?/ 내 차 운전하고 가지./ 그 차로 뉴욕까지 올 수 있어?
아내는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아 불안 했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 되면 치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던 그냥 인정해 주어야 한단다. 이런 상태기 때문에 아내는 초기엔 6인실에도 잘 적응하였다. 그러나 점차 의식이 분명해지자 병원 음식과 단체생활에 적응하기를 힘들어 했다. 6인실에서 6주 4인실에서 3주를 지냈는데 4인실로 옮기자 소음도 줄고 실내에 TV도 있어 세상 뉴스도 보고 드라마 시청도 해서 좀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TV 채널도 마음대로 택할 수도 없고 남쪽에 자리를 차지한 환자는 햇볕 때문에 문을 열어 놓고 있는데 북쪽에 있는 아내는 춥다고 늘 불평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술환자를 받는 병실에서 재활 병실로 옮긴 뒤로는 매일 재활운동을 해야 하는데 아내는 그것이 힘들어 견디어 내지 못한 것이다. 다른 환자들은 재활운동으로 점차 나아지는 자신을 보며 원기가 왕성해져서 다음 순서의 기능운동을 하려고 줄을 서 기다리는데 아내는 겨우 빈자리를 찾아 지도자가 운동을 하자고 하면 너무 힘들다고 싫어하였다. 뼈가 굳어지면 다음에는 못 걷게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재활운동을 하기 위해 입원해 있는데 운동을 거부하면 무엇 때문에 입원에 있어야 하는가? 아내는 평소에 운동을 안 해 근육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것을 나는 안다. 병원 음식이 압에 맞지 않아 힘을 얻지 못하고 운동은 너무 벅차서 집에서 재활 운동을 하고 입에 맞는 음식으로 기력을 되찾아 주려고 병원의 이해를 얻어 미리 퇴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입원 생활로 나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첫째는 교인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것이다. 간병인이 이렇게 많은 음식물로 사랑을 받는 환자를 자기는 평생 보지 못했다고 감탄할 정도였다. 입원한 이틀째가 주일이었는데 아내가 교회에 빠지자 90대 나이를 반이나 지난 노 권사가 전화를 해 왔다. 집에도 전화를 안 받는데 무슨 일이냐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골절로 입원 중이라고 했더니 다음날 오후 놀랍게도 그 노 권사가 사골을 고았다면서 그것을 들고 병실에 나타났다. 놀라서 어떻게 이곳을 찾아 왔느냐고 물으니 서대전사거리 전철역까지 와서 택시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것이었다. 총기도 좋고 사랑으로 힘이 넘치는 권사를 보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가는 길은 모셔다 드린다고 했는데 굳이 사양하고 귀가 했다. 그런데 구정 전날 또 오셨다. 이번에도 김치를 담고 도가니탕을 끓인 무거운 병을 들고 오셨는데 서대전사거리 전철역 바로 앞 삼성아파트에서 버스를 내려 택시를 기다렸는데 구정 전날이어서 택시가 없어 걸어 왔는데 길을 건너면서 전철 지하도를 거쳐서 오느라 내려가고 올라오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이번에는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다. 차가 없으니 이번에는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했는데도 굳이 사양하셨다. 가는 길은 짐이 없으니 걸어서 버스정류소까지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버스정류소까지 만이라도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는데 또 반대했다.
권사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이제 며칠 못 살 지도 몰라요./ 왜요?
권사는 자기 이야기를 했다. 가끔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파서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하고 놀랐는데 얼마 후 그 징상이 사라졌는데 얼마 전에는 잠을 자려 하는데 또 가슴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고 사라지다 또 아픈 현상이 오래 계속 되어서 이제는 죽으려나보다 하고 속옷과 새 옷을 갈아입고 죽을 준비를 하고 누워 있는데 숨겨 놓은 돈이 생각나서 그 돈을 꺼내어 요에 깔고 누군가 내 장사를 잘 치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잠들었는데 안 죽고 살아났다는 것이다.
권사님, 그럴 때는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119를 부르십시오./ 이 나이에 내가 수술을 받아 살기나 하겠소? 수술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깨어나지 못하거나 치매환자가 되어 살아 있으면 무얼 하겠소. 나는 심장마비로 죽는 것이 소원이오.
나는 그분은 떠나보내고 병실에 돌아와 아내를 살려 보겠다고 죽음 직전에 있는 권사님이 찾아 온 것이 너무 고마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라는 말이 성경에는 있는데 아내와 권사님은 분명 예수님의 제자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또 궁금한 것은 물어보는 천국 문 앞에서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 장로의 부부는 구정에 병실로 떡국을 끓여 가져 왔는데 그 때 아내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나박김치와 군고구마만 먹던 것을 기억하고 그 부인 장로는 그 뒤로도 계속 나박김치와 군고구마를 가져왔다. 퇴원하기 5일 전에도 구역예배까지 시간이 있어 들렸다고 또 같은 것을 가져왔다. 아내는 구정부터 퇴원까지 계속 그 김치 국물만 찾았다. 나는 젊은 자매 장로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애경사에 잠깐 들려 보는 것으로 형식적인 사랑의 표시를 대신해 온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진정 행함으로 사랑을 보인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오랫동안 우리를 감동시켰다.
3월 7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이때는 남동생과 여동생 내외가 방문했다. 남동생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새벽 일찍부터 행신역으로 나와 KTX로 서대전역으로 왔고 여동생 내외는 인천에서 차를 운전하여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함께 생일 케이크를 놓고 촛불을 키고 한 방에 있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받아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 황당한 이벤트에 놀란 이웃에게 케이크를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먼 길을 달려온 이 형제들의 선한 행위가 이웃들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면 얼마니 좋을까하고 한 순간 생각했다.
입원생활은 힘들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는 퍽 유익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동안 넘치는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빚은 갚을 의무가 있다. 우리가 다시 회복되어 덤으로 얻은 여생을 살게 된다면 이제는 사랑의 빚을 갚는 일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댓글 훈훈한 병실의 소식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주님의 치료하시는 손길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깊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사시는 사랑의 간증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만을 붙들고 간증을 통해 가르쳐주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는 교훈을 느끼게 하시는 소중한 말씀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늘 감사합니다.
믿음은 행함인데 입으로만 사랑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이야기 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