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반 메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외식업 경영을 조언해주는 직업인으로서도 큰 관심의 대상이다. 아마 중년에 접어든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국밥을 좋아할 것이다. 얼마 전 막국수로 유명한 <똑순이막국수>에서 황태육개장을 선보였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에 다녀왔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와 음식 철학을 익히 알기에 기대가 컸다.
최근에 미식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육개장 편을 방영했다. 아마 일반 시청자들도 육개장에 관심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 싶어 ‘육개장 전도사’로서 반가웠다. 방송에 소개된 식당 가운데 제일 맛있게 먹은 육개장은 <동경전통육개장>이었다. 나머지 식당 육개장들도 나쁘진 않지만 <동경전통육개장>이 육개장 본연의 맛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판단이다.
<똑순이막국수>에 도착하자마자 황태육개장(9000원)을 주문했다. 먼저 알타리 장아찌, 열무김치, 겉절이 세 가지 반찬이 나왔다. <똑순이 막국수>의 김치들은 언제 누가 먹어봐도 만족스럽다. 좋은 식당의 조건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맛있는 김치’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식당은 물론이고 센스 있는 중식당이나 일식당, 심지어는 양식당에서도 아주 가끔 맛있는 김치로 손님을 감동시키곤 한다.
잠시 후 커다란 뚝배기에 황태육개장이 나왔다. 한눈에 봐도 무척 푸짐해 보였다. 수저로 저어보니 소고기와 황태, 그리고 고사리, 대파, 콩나물, 무가 들어갔다. 메뉴 이름에서도 짐작하듯 이 육개장의 포인트는 황태다. 압력솥에 황태를 넣고 끓여 국물을 낸다. 국물은 육수로 쓰고 야들야들 부드러워진 황태 살을 고명으로 올린다.
황태의 원재료인 명태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서민들이 즐겨먹던 식재료이자 약용으로도 인식했던 일종의 약재였다. 인산(仁山) 김일훈 선생은 일찍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마른 명태는 연탄독, 지네 독, 초오, 부자, 천오 독, 주독(酒毒) 등 모든 독을 풀어주는 신비의 약이다’고 주장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생활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각종 독초나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일은 드물지만 주독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음주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직장인들은 영원한 주독의 포로들이다. 물론 인산의 주장을 주류 학계에서 수용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주당들에게 북어나 황태로 끓인 국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속풀이에 가장 뛰어난 해장음식이다.
속 다스려주고 술 부르는 야누스 같은 국물
황태육개장 국물은 황태육수를 미리 뽑아놓고 여기에 소고기 양지와 여러 재료들을 넣고 다시 끓여낸다. 황태로 끓인 국이라면 보통 뽀얀 사골국물을 연상하게 된다. 이 집은 사골을 넣지 않고 황태와 양지로만 국물을 내, 기름진 맛을 줄이고 담백한 맛을 강조했다. 두태 기름을 넣었지만 과하지 않다. 텁텁한 육개장 국물의 단점을 개선했다. 비교적 맑고 개운한 국물이다.
국물이 얼큰해 술안주용 술국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이 집은 술을 2인당 한 병씩으로 제한해 판매한다. 본격적인 술판을 벌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포장판매도 병행하므로 황태육개장을 포장판매로 구매해 집에 가지고 가서 맘껏 마시면 된다. 더구나 포장판매는 양을 넉넉히 준다. 1인분만 사도 두 세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 잔 하면 감기가 뚝 떨어질 것 같다.
뚝배기 한가운데 떠있는 달걀은 호수에 뜬 보름달을 연상시킨다. 호수와 달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 시문의 영원한 고향이다. 주당 이태백이 황태육개장을 봤다면 틀림없이 시 한 수 짓고, 술 한 잔 마시고, 국물 한 모금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음날 찾아와서 해장으로 한 그릇 주문했을 테고.
탕반의 한 가지 흠이라면 국밥을 담는 용기인 뚝배기다. 이 뚝배기를 오래 사용하면 미세한 금이 가고 이 틈새로 설거지할 때 세재가 오염된다. 이 집은 주인장이 이런 점을 미리 방지하려고 잔금이 가지 않는 소재의 뚝배기를 마련했다. 황태육개장은 주방 여건상 하루 100그릇만 한정으로 판매한다.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