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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기 짝 없는 짓을 하고 있는 산띠아고 까떼드랄
7개의 루트를 통해서 입성하여 '꼼뽀스뗄라'를 받아든 뻬레그리노스의 다음 행선지는?
대별하면 내국인(에스빠뇰), 까미노와 인접한 유럽인, 상거가 있는 유럽인과 대륙을 달리하는
원지인 등이 각각이다.
오전 일찍 도착한 순례자와 오후 늦게 온 그들도 더러는 다르다.
내국인 중 오전에 도착한 대부분은 고향행 열차와 버스에 오른다.
인접 유럽의 뻬레그리노스는 당일로 귀국길에 오르기도 하나 대부분은 일박한 후 귀국하거나
여행(관광?) 또는 다음 루트(까미노)에 들어간다.
거의 모든 원지인은 일박 후 여행길에 오르고 극히 일부가 다음 루트를 시작한다.
나는 마지막 경우의 후자에 속하나, 다른 점은 알랭 팀이 원하는 재회를 위해 천금 같은 1박을
더 할애한 것이다.(Santiago de Compostela에서)
그랬음에도, 어이없는 불발로 비게 된 자리에 볼프강이 듦으로서 무위(無爲)는 면하게 되었다.
양측 모두가 함께 재회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자정이 넘도록 수선스럽던 응접실까지 적막해진 심야에 정원과 응접실을 드나들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녁에 든 잠에서 깬 때가 09시 30분경.
노르떼 길은 이미 완료했으므로 지금까지(2011년과 이번 통틀어서)의 까미노에서 가장 늦게
기상한 시간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한여름용 외에는 모든 것을 챙겼다.
폭염의 남쪽 끝으로 가면서 봄 가을용품까지 지니고 다니겠는가.
파밀리아라 하나 성수기를 맞아 비좁고 북적대는 오스딸에 장기간 맡겨놓을 수도 없고.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우체국의 '15일 보관제도'를 활용하기에는 내 체력(15일동안에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대한 확신이 없고 까미노와 지역우체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기 때문이었다.
가을철에 필요한 것은 그 때 현지 구매할 요량으로 모두 우체국에서 집으로 보냈다.
전번에도 그랬듯이 탁송비에도 미치지 못할 것들이지만 애용하던 것을 이런 이유로 아무데나
버리는 행위, 소위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정(情)이라는 것이 인격체 간에만 존재하는가.
우체국을 나와 오브라도이로 광장(Praza do Obradoiro)에서 니콜을 다시 만났다.
오후에 볼프강과 함께 만나게 될 것으로 여겼는데 그녀도 갈 곳이 어지간히 없는가.
함께 정오 미사가 시작될 까떼드랄(Catedral/Cathedral/大聖堂)로 갔다.
첨탑과 내부의 수리 공사로 어수선하지만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것은 입장의 저지였다.
백팩을 메고 있는 것이 입장 저지의 이유다.
일요일 미사 외에 주중 매일 정오에 갖고 있는 미사는 오로지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행사다.
이미 도착하여 숙소를 정한 뻬레그리노스는 그곳에 백팩을 두고 올 수 있지만 지금 막 도착한
그들이 백팩을 어찌하란 말인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것을 아무 데나 내려놓아야 하는가.
유럽이 선진 사회라 하나 백팩 뿐 아니라 자기 몸을 떠난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 것이 아니다.
한 눈을 잠시만 팔아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도둑맞는) 나라에서 무수한 순례자들이 크고
무거운 짐을 어디에 두고 들어가란 말인가.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순례자라면 등에 메고있는 것이 당연한 백팩을 이유로 참석을 거부하는
황당하기 짝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교회.
4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모든 짐과 함께 입장했다)
그 때보다 합리적, 긍정적 발전은 커녕 되레 퇴락했으며 하도 어처구니없는 모순이기 때문에
이같은 미사에 참석하려고 시비곡직을 가리느니 등지는 쪽이 낫다는 것이 이심전심이었다.
우리는 점심거리로 식성에 맞는 빵과 기타 먹거리를 각기 사들고 알라메다 공원으로 갔다.
꿩 대신 닭인가 닭 대신 꿩인가,
재회한 볼프강도 알레마네스렸다
16c에 알타미라 백작(Condes de Altamira)이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기증한 토지에 개발
되었으며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녹지공간이란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 공원이 개발될 때는 당시의 세 가지 사회 계층이 따로 이용하도록 구분
설계되었었다는(우측은 낮은 계층, 중앙은 귀족, 좌측은 교사, 성직자, 기타 숙련된 전문가가
이용하도록) 곳으로,
우리는 좌우, 어느 쪽에 있어야 하는가.
그 무렵(16c)에는 우리 땅에도 그런 데가 있었다.
십대로(十大路) 중에 양반네의 거드름과 멸시가 오죽 참지 못할 고통이었으면 그들을 피해서
멀리 우회한 천민길이 있었을까.
십대로(옛길)를 걷는 중에 남아있는 그 흔적에서 그들의 한맺힌 신음이 들리는 듯 환청을 느낀
적이 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까떼드랄 측의 처사를 성토하며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공원을 빠져나오려 할 때 불쑥 나타난 볼프강.
오후 어느 때쯤에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려 했는데 전혀 의외였다.
그도 나처럼 몬떼 도 고소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조금 전에 도착하였단다.
내가 바아몬데에서 소브라도까지 당일에 주파함으로서 그와 하루의 간격이 생긴 것인데 알랭
네와 달리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이뤄진 우리의 재회가 어찌나 반가운 일인지.
나도, 그도, 니콜도 마치 청소년들 처럼 온몸으로 기뻐했다.
꿩 대신 닭인가 닭 대신 꿩인가.
아직 숙소를 정하지 못한 볼프강은 아무 조건 없이 나와 같은 집에 묵고 싶단다.
셋이 함께 내 숙소(Hostal Roots & Boots)로 갔다.
몰려드는 투숙 희망자들을 사절하느라 진땀 빼는 성수기.
그래서 고맙지 않겠지만 비수기라면 무척 고맙고 반가운 일일 것이다.
떠났던 사람이 되레 하나 더 달고 왔으니까.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말(馬)처럼?
간밤에도 새옹지마를 반추하며 마음을 달랬는데.(작은 일에 一喜一悲하지 않아야 한다고)
니콜은 볼프강의 숙소(Roots & Boots) 위치를 확인하고 떠났다.
그들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독일어에 백지인 나는 모르지만(어떤 약속을 했을 것이겠지만).
우리는 숙소에서 300m쯤 되며 조금 전에 재회한 장소인 알라메다 공원으로 다시 갔다.
접선 또는 산책 장소로는 북적대는 오브라도이로 광장보다 나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공원이다.
볼프강의 제의로 공원 건너편 작은 광장의 노천탁자에서 맥주를 마실 때 향후 5개월의 계획을
알고 싶어 한 그.
남은 4개 까미노(다시 걸을 뽀르뚜 길과 쁠라따 길, 잉글레스 길과 쁘리미띠보 길)의 대략적인
일정을 들려주었다.
아뿔싸, 볼프강도 알레마네스(獨逸人)다.
냉철한 이성, 알레만의 본성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가.
관심 없는 일반인은 모르는 일을 챙기고 있는 그.
그의 경력에 이 분야 종사가 있는가.
"180일 중 90일 체류"라는 쉥겐 조약을 걱정하고 있으니까.
걸리는 것은 목의 가시 처럼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규명이 돼야 하는 알레마네스의 천성.
나는 네이버 메일함을 열어서 한 편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바라대학교 총동문회장이며 대학인순례자협회 회장인 JAF 박사가 내게 보낸 e-메일이다.
"I am happy you have no problem to stay in Spain forever!!"(죽을 때까지 있어도 된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 문제를 JAF 박사와 논의하였고, 스페인에 도착해서 이 문제(체류 기간
연장)부터 풀고 까미노(노르떼 길)에 진입했으니까.
JAF 박사 팀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지는 몇 사람이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현장에서 목도하면서 감겼했으므로 잘 알고 있다.
나에 비하면 자기는 영 맨(young man)이라는 이 독일영감(wolfgang)도 나를 건성건성(care
lessly)인 것 같으나 두려울(terrible) 정도로 퍼펙트(perfect/완벽한)한 노인이란다.
맥주값이 각기 3€ 안팎에 불과하지만 자기가 지불하겠다고 고집을 세우는 그에게 양보했다.
일본 시코쿠 헨로에서는 연장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예절이라고 늘 내가 우겼지만.
철저한 더치페이(dutchpay) 세계에서도 이제껏 내게만은 예외를 적용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언제나 알레마네스였다.
이번 노르떼 길에서도 대소다과를 불문하고 알레만 외에는 아무도 자기네의 공동생활 문화인
더치페이에 상처(?)를 내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쎄나(cena/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역시 그의 제의로 까떼드랄 북쪽 지근에 자리한 식당 세미나리오 마요르(Seminario Mayor/
호텔 Hospedería San Martín Pinario 내에 있는 restaurante/알베르게와 同名異家)로 갔다.
산띠아고에 초행인 볼프강이 4번째나 되는 나보다 지역 사정에 밝았다.
백지 상태로 도착하여 빈 칸을 하나씩 채워가는 나와 달리 알레만 답게 필요한 일체를 충분히
숙지하여 온 그가 나를 앞서는 것이 당연하리라.
정장의 남녀가 대종을 이루고 우리 둘 외의 뻬레그리노스 차림은 눈에 띄지 않는 넓고 화려한
식당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10€의 저가 정식(定食)임에도 품위가 떨어지지 않는 분위기와 음식이다.
이처럼 우수한 식당을 까미노 가이드북들이 왜 하나같이 눈 감고 있는지.
하긴, 가이드북이라는 것이 제목과 발행자 이름이 다를 뿐 모두가 거의 복사본 수준이니까.
화려한 호텔 내의 식당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체를 모르는 알베르게족(peregrinos)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닌지.
내용은 뻬레그리노스에게 딱 인데도 외관 때문에?.
앞으로 최소 3회는 산띠아고에 다시 와야 하는데 숙소(Roots & Boots) 외에도 든든한 식당이
단골로 추가되었으니 다행한 일 아닌가.(볼프강도 내가 산띠아고에 도착할 때쯤 되면 e-메일
에서 식당 Seminario Mayor에 혼자 갔는지 여부를 물어왔다)
역코스 뽀르뚜 길 전야의 한 소동
돌아온 숙소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베드(bed)가 있을 리 없고, 비좁은 룸을 나온 뻬레그리노스
로 응접실과 정원, 식당까지도 모두 풀 상태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씨에레(cierre/close) 시간을 앞두고 펠리뻐 부부가 응접실로 왔다.
우리도,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다른 문을 통해 들어섰다.
그 순간, 실내의 시선들이 우리에게 집중했다.
우리가 최고령이라 그랬을 텐데, 펠리뻬는 마치 이 분위기를 바랐다는 듯 한 데 모아진 시선들
을 향해서 나를 소개하겠다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현재 81세로, 이미 프랑스 길과 피스떼라 - 무히아 길, 뽀르뚜 길과 아라곤 길, 프랑스 길을 거
의 다시 걸어 마드리 길을 걸었고 이번에 노르떼 길을 마친 꼬레아노 할아버지라고.
이어서, 볼프강이 내 홍보대사 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오후에 맥주 마시면서 들은 대로 "내일 뽀르뚜 길의 끝 리스보아를 향해 떠나면 쁠라따 길과
잉글레스 길, 쁘리미띠보 길 등 장장 3.000km의 대장정을 10월에 마치게 될 것"이라고.
2번의 방문, 7개월여 만에 까미노의 7개 메인 루트를 완주하게 되는 아이언맨(鐵人)이며 몸은
작으나 거인이라고.
이로 인해서 장내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불특정 세계인들이 스스로 모인 자리에서 개인이나 팀, 남녀, 노장청 가릴 것 없이 나와 함께
한 사진을 갖고 싶다 해서.
순서를 정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명사, 인기인(연예 스포츠 등)과 함께 한 사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지망생들, 심지어 기성 정치인까지도 막강한 힘을 가진 거물 실력자와 한자리 한 사진을
가지려고 혈안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 수단은 소위 합성사진이다.
이런 짓은 대개 과시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모인 지구촌인들은 단지 뻬레그리노스다.
그들에게 나도 같은 뻬레그리노일 뿐이다.
그럼에도 왜 자리를 함께 한 사진 한장 갖기를 그토록 바란 것일까.
그들은 자기와 함께 한 나, 그 사진 속의 한국 늙은이를 워라고 소개할까.
그들의 말대로 내가 진정 자기네의 롤모델(role model)이라는 것이 이유일까.
국내에서 우리가 자화자찬(自己陶醉)에 빠져있는 것과 달리 태반은 한국을 모른다.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에 당한 나라들의 축구팬들과 한국에서 서럽게 일한 노동자들과
관계된 사람들은 한국을 알지만 매우 부정적이다.
까미노의 사람들도 꼬레아를 알지만 꼬레아노의 이미지는 대개 몹시 고약하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여 호황을 누리면서도 사정 없이 비꼰다.
한국인을 일컬어 하는 말 '꼬레아노 무초 모니'는 돈을 분별 없이 펑펑 써댄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들의 롤모델이 된 것은 꼬레아노와는 전혀 무관하다.
대부분의 말은 자기도 나처럼 걷게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간직하려는 것이라고.
모든 까미노 루트에서 나와 함께 사진찍기 바라는 뻬레그리노스는 무수했다.
때로는 초상 사용료 달라는 농담에도 커피 또는 맥주로 응답했으며, 모든 알베르게가 예약을
거부하고 선착순인데도 주객이 합심하여 우대했다(후착자에게 2층 벙크의 하층)
일본의 시코쿠헨로(四國遍路)에서는 걷고있는 헨로상(순례자)에게 돈(100엔~1.000엔,때로는
수천엔까지)을 주는 이들이 있다.(까미노에도 고령자들이 종종)
동행하고 싶으나 몸이 여의하지 않기 때문에 노자를 보태줌으로서 동행으로 갈음한다는 것.
사진도 작고 빳빳한 종이 한장에 불과하나 그 안 주인공의 도움으로 뜻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신념을 준다면 소유욕(?)을 비판해서는 안될 것이다.
루고(Lugo/Galicia지방)에서는 페이스북에서 한 여인(Gwendy Hernández de Penabad)의
친구 요청을 받았다.
루고대학교(Primitivo 길)에서 문 닫을 시간에 임박해 헌신적인 도움을 준 청년 알렉산더(Alex
anter)의 어머니다.
볼프강이 말한 것이 내 계획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그 "계획의 성패 여부는 야훼에게 있다"는 것이 기독교 성서(구약 잠언16: )의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겨우 5분의 1 남짓 이뤘을 뿐이므로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2번째 장정(620km)의 전야!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