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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김태연 회장"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로 알려진...
실리콘 밸리의... 신화를 이룬... 재미 사업가 김태연 회장은...
1945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서...
1968년에... 가족과 미국 동부로 이민을 가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다가...
6개월만에 실패하고... 1985년에 LA 실리콘 밸리로 이사하여...
주) '라이트하우스'를 설립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였다.
1995년 연간 매출액... 5000만 불 달성하였고...
2001년에는... 매출 1억불을 달성하였다.
미국... 유망 100대 기업으로 선정 되었고...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는...
태연 김 쇼를... 1996년 이래로...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린시절의 아픔이 있었다.
아들을... 기다리는 집안에서... 정월 초하루에 딸로 태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던 것이...
마음 깊이... 한으로 남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것이 더 그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태권도를 하면서 외친다.
"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
아픔없는 사람없고... 눈물없는 사람 없다...
그것을...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더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 있다.
-livingwater-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괴롭고 힘들 때면 샤워실로 달려가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다짐했죠. ‘김태연. 지금 흘린 눈물과 함께 속상하고 아픈 것 다 흘려 보내는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누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면 전 속으로 그래요. 감사합니다. 저를 채찍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 1. 프로필
1946년 경북 김천 출생
1968년 도미
현 Light house 회장
Peak 회장
Northstar 회장
정수원 아카데미 원장
미주 태권도연맹 공인 8단
Susan Anthony상 수상
성공한 여성상 수상
태권도 타임즈 선정 올해의 지도자상 수상
미주 교민회의 Culture Living Treasure 상 수상
저서
“내면의 힘으로 다가서는 일곱 단계”
“사일런트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김태연”
미국의 CNN, CBS, NBC 등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하고 그들로부터 ‘한국이 낳은 여자 삼손’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있다.
백만장자, 세계 최초의 여성 그랜드 마스터,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노벨상 이상의 가치를 가진 ‘수잔 앤소니상’의 수상자, 태권도 공인 8단의 실력과 미국 100대 우량기업으로 미국을 정복한 김태연(54세).
이 화려한 문구들은 150cm에 43kg의 예쁘장한 얼굴의 아시아 여성인 그녀가 그동안 끊임없는 용기로 깨뜨렸을 차별과 금기의 벽은 그녀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작은 체구 어디에 활화산 같은 힘이 숨어있는 것일까.
. 새해 첫날 고추 없이 태어난 아이
- 이세리
‘나를 한 마리 나비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싶다. 송충이와 번데기라는 미숙한 과정을 거쳐 이젠 내 뜻대로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 한 마리 나비.’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무술을 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남을 의식해서 잘 보이려고 하거나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자꾸 신경 쓰다 보면, 자기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아요. 자아를 잃어버리고 마는 거죠.”
“내면의 힘을 일깨워라”라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의 도입부에서 말한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태어나듯, 번데기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우리도 나비처럼 자유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건 삶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다.
…번데기는 곧 나비의 ‘자아’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공포. 의심 같은 것에 가려져 아직 빛을 내지 못하는 자아가 있다. 나비가 되려면, 나비처럼 비상하려면 이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진정한 자아를 재발견해야 한다.
우린 모두 강하고 순수한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의식 세계를 ‘사일런트 마스터’라 부른다. 자신의 그런 세계를 재발견하는 것은 자기 삶을 더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취해야 할 중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내적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노력하라.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이룰 때까지 행로를 유지하면서 노력하라.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노력하는 동안 분명히 극복해 나가야 할 장애물과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장애물과 실수는 우리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그것들은 인내와 극복의 힘을 길러준다. 처음에는 약간의 희생과 두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진정한 의미에서 손실이 아니다. 희생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을 더욱 순수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과 실수는 패배가 아니다. 승리로 이끄는 밑거름이다. 사일런트 마스터가 보여주는 힘은 사랑의 힘이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 놀라운 잠재력을 가져다 준다. 또한 사랑은 우리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풀잎처럼 여러분 각자는 자신이 준 생명력을 갖고 있고, 각자의 꿈을 실현시킬 능력과 힘을 갖고 있다. 내 가장 큰 바람은 여러분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으로 ‘평화와 기쁨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의 유산과 교통사고 등 몇 번의 죽을 고비 속에서, 150센티미터에 43킬로그램의 작은 아시아 여성의 몸으로 북가주 최고의 태권도 도장과 기 에너지센터를 이끄는 그랜드 마스터로 자리잡기까지 겪어야 했던 시련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괴롭고 힘들 때면 샤워실로 달려가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다짐했죠. ‘김태연. 지금 흘린 눈물과 함께 속상하고 아픈 것 다 흘려 보내는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누가 저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면 전 속으로 그래요. 감사합니다. 저를 채찍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는 겁니다.
뚜렷한 목적이 한가지 있거든요. ‘엄한 집안에서 새해 첫날 고추 없이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자랐지만 언젠간 빛나는 사람이 되리라. 지금은 어렵고 눈물이 나도 언젠가 고국에 돌아갈 때는 큰 선물을 가지고 돌아가리라.’ 이런 다짐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살았거든요.”
1946년 음력 1월 1일. 집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경북 금릉의 명망 있는 가문의 첫 자손이 태어나는 날.
그러나 곧 “이를 어쩌나, 이를 어째. 암만 봐도 고추가 없네, 고추가 없어요. 저 년이 김 씨 집안을 망칠 년이지. 조상님 전에 차례를 모시는데 방정맞게 가시나를 낳았으니…”
새해 음력 제사를 앞두고 아들을 기대하던 집안 어른들에게 아들이 아닌 죄로 천덕꾸러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미역국을 먹지도 못한 그녀의 어머니와 이후 술에 탐닉한 아버지에게 그녀의 출생은 언제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실망한 어른들의 구박은 말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외삼촌에게서 우연히 배운 태권도의 세계 몰두할 수 있었죠.”
“가시나가 무슨 태권도는… 바느질이나 잘하고 수나 잘 놓으면 되지. 말도 안 되는 얘기는 다신 꺼내지 마라.” “태연아 태권도는 힘든 무술이란다. 남자들도 배우기 어려운 거야. 다치기도 쉽고, 어쨌든 여자한테는 안 맞는 거야. 알겠니?”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건 한국전쟁 중이었다. 한국 전쟁 와중에 외가에서 지내던 어느날 새벽. 그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문에 구멍을 냈다. 내 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으로 거무스레한 옷을 똑같이 입은 사람들이 또렷이 보였다.
외삼촌 두 분이었다. 세상이 다 잠든 새벽녘에 그녀의 외삼촌 두 분이 무술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엔 그 무술이 아름다운 춤으로 보였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동작 하나하나가 올올이 잘 짜여진 모시처럼 정교하면서도 힘찬 곡선을 그려내는 춤… 함부로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그 ‘정체 모를 신비한 춤’을 훔쳐보면서, 그녀는 막연히 그녀가 이룰 꿈을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 무술을 당수도라 부르기도 하고 태극권 또는 태권이라고도 불렀다. 외삼촌들이 당수도 고단자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수련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거기엔 아리랑을 부르며 덩실거리는 어깨춤이나 장터에서 보았던 탈춤과는 다른 어떤 힘이 실려 있었다.
정교한 모양새가 간간이 내지르는 기합소리와 어우러져 힘찬 곡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듯 호흡도 가지런한 외삼촌들의 모습은 함부로 엿봐서는 안 될 것 같은 신비스러움이었다.
그녀는 행여 외삼촌들에게 들킬까 봐 얼른 창호지 구멍을 메우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일곱 살 어린 나이였던 그녀에게 한 가지 분명한 건 ‘저걸 꼭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날이 밝으면 외삼촌들에게 졸라야지. 외삼촌들은 날 귀여워 하시니까 분명히 들어주실 꺼야.” 날은 더디게 밝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싶은데 눈을 떠 보니 밖이 훤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마당은 아무 흔적도 없었고, 외삼촌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기 않았다. 외삼촌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날은 참으로 긴 하루였다고 술회한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외삼촌에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론 어른들께는 비밀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태권도는 오늘날처럼 통합된 형태와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수도 또는 공수도 등으로 혼동해 부르고 있었다.
소림권법에서도 남권이니 북권이니 파를 가르듯, 태권도도 뿌리는 같으나 전수하는 사범들의 기량과 무술관의 차이에 따라 자세나 기본기, 손발을 쓰는 수법 등이 조금씩 달랐다. 혹독한 훈련이 계속되면서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성한 곳이 없었다. 난 피멍이 든 다리를 감추느라 늘 바지만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열 네 살에 마침내 도복에 검은 띠를 두르는 날이 왔다. 하늘을 곧게 가르며 머리 위까지 박차는 앞차기와 용이 꿈틀거리듯 힘있게 곡선을 그리는 돌려차기를 완벽하게 시연할 수 있었다.
검은 띠를 따고 난 후 그녀는 더 심오한 무술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세상의 배척, 심하게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남자들이 갈고 닦는 것이 상식인 태권도를 열 네 살짜리 계집아이가 검은 띠의 경지까지 수련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면서도, 금녀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온 파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의 반대도 대단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그녀는 진정한 자아에 대해, 그리고 그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서서히 눈을 떠 가고 있었다. 달리 말해 그녀는 이미 바느질이나 하고 음식이나 하는 평범한 여자와는 다른 길로 접어든 셈이었다. 그녀는 태권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보통 여자들이 취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나타난 사람. 김호라는 기의 권위자였다. 그는 신비에 가득한 고대 무술의 대가였다. 그분이 지니고 있는 신기는 불가의 선과 오천 년 동안 비밀스럽게 맥을 이어 온 한민족의 ‘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스승과의 인연은 그 후 10년 넘게 이어진다. 스승은 그녀의 상을 범상치 않게 여겼던 터. ”장차 뭇사람들을 가르칠 큰 스승이 될 것이다.” 후에 그 예언은 이루어진다.
그 스승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고대 무술’이었다. 이를 테면 배달겨레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후 오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무술이었다. ‘무예도보통지’ 같은 전래의 문헌에 그 윤곽이 그려져 있는, 고구려시대의 수박도나 태껸과 오늘날의 태권도의 원형으로 짐작되는 그 무엇이 바로 그분이 말하는 고대 무술의 실체였다.
그렇게 산사에서 온 그분을 모시고 무술뿐 아니라 기의 세계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그분은 그녀가 오늘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도록 전통 무술의 오묘한 깊이는 물론이고 범상한 사람들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기의 세계를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동작을 통해 우주의 순환 원리와 맞닿아 있는 몸 고유의 조화로움과 힘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그녀에게 호흡을 통한 자기 조절의 정수를 가르쳐 주었다. 이른바 명상법이라고 하는데 동트기 직전의 숲이 보여주는 고요함처럼 마음을 한없이 가라 앉히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마침내는 내 자신의 내부에서 퍼져 나오는 깊은 울림과 떨림을 깨닫는 수련이었다.
그것은 곧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해 내는 과정이었고 흔히 부르는 직관이나 영감이라고 부르는 잠재의식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명상법에 익숙해져 가며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과 분노, 증오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적과 이기기에 앞서 네 안에서 너울거리는 두려움과 나약함을 먼저 이겨야 할 것이다.” 스승님은 결국 ‘나를 이겨야만’ 진정한 대가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결국 자기를 이기려는 노력을 통해 심안이 열리면서 아름다움과 자비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도의 명상 훈련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이 ‘지혜의 소리’를 ‘사일런트 마스터’라고 일컫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신비한 체험이 참으로 운명처럼 그 때 그녀의 앞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명상법을 통해 그녀는 지혜의 눈이 떠지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태권도도 다르게 인식되었다. 처음 외삼촌에게 태권도를 배울 때는 단순히 동작이 주는 아름다움에 반했었고 그 동작에 실려있는 어떤 힘에 매료되었었다. 어린 눈에 비친 태권도는 무술이었으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태권도를 무도로 인식하게 했다.
그때부터는 동작 하나하나를 연마해 갈 때도 우주의 삼라만상과 조화를 생각했고 힘의 원천인 자연계의 기와 내 속의 기를 합일 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태권도는 단지 신체단련의 수단을 넘어서 명상과 기 수련을 심화 시켜 주는 징검다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천여고를 어렵게 졸업한 그녀는 여전히 천덕꾸러기였고 태권도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당시 그녀의 태권도 실력은 이미 4단이었다.
<다음에 계속> ∴ 그랜드마스터 김태연 2 - 나비의 탄생
23세 되던 해에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아버지의 폭력을 못이긴 남동생의 자살은 가족들이 도망치듯 이민길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꼬박 하루를 날아 도착한 곳은 동부의 보스턴.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괴롭고 아팠던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온 땅이었기에 묘한 기대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뉴잉글랜드에 새 터전을 마련하고 식당과 주유소등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거듭하고 비록 하루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속에서도 그녀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태권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My name is Tae Yun, Kim. I want to be your friend.” 라는 피켓을 든 채 미국인의 이웃집을 찾아 다니던 한국 여성이 바로 그 시절의 김태연이다. 그녀는 곧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태권도 실력은 그녀가 미국사회에 터전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한 달 동안을 쉬지않고 교장을 찾아간 끝에 미국 고등학교의 태권도 교사자리를 얻는다.
그녀의 삶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무술은 무술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를 가르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정신 수양의 높은 경지를 이루기 위한 무도라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 ‘Have a date flower”라는 식으로 미국적 사고로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 나름의 인성교육이 효과를 보면서 그녀는 체육 교사 뿐만이 아닌 도덕 교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녀는 당시 60년대 말에서 70년대의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방황을 하는 미국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약과 섹스, 폭력에 절어있던 10대들에게 그녀의 놀랄만한 태권도와 정을 통해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그녀의 명성도 올라갔다.
그녀에겐 5남 2녀의 자식들이 있다. 양자와 양녀로 그들에게 김태연은 가정의 따뜻한 정을 주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불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개 사제의 관계에서 모자간으로 발전하였다. 태권도 가족인 그녀 가족의 단수를 합치면 무려 30단이다.
몸은 미국인이지만 속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철저히 한국식으로 김치와 고추장을 먹으며 자란 그녀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Mom! We have an American body outside, inside Korean.”
그녀는 30년 이상 태권도를 가르쳤다. 그녀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의지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인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그녀가 받은 어떠한 상보다 더 빛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받은 무수한 상들보다 소중히 여긴다.
태권도는 1년도 되지않아 그녀가 미국인들과 같은 어깨높이로 사는 법을 그녀의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라이트하우스와 피크를 미국 100대 우량기업으로 성장시키고 500여명의 제자가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정수원을 키운 것은 그들과 함께 였다.
버몬트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의 심장부 산호세로 갔을 때 그녀는 ‘사막 한 가운데 떨어진 물고기’였다고 회상한다. ‘그 뜨거운 모래판에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물고기.’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끼니마다 수제비와 고구마로 배를 채우며 산호세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간다. 그녀가 회사운영으로 고생할 때의 교훈을 들려준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난 다시 한번 농부의 교훈을 되새겼다. 지혜로운 농부는 씨 뿌릴 때를 놓치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도 안다. 피를 뽑아 줄 때는 피를 뽑고, 벌레를 잡아 줄 때는 벌레를 잡아 주고, 논물이 넘치지 않도록 적당한 때를 봐서 물꼬를 터놓기도 한다. 그리고 차분히 수확할 때를 기다린다.”
결국 현재 모토롤라, 시게이트, AT&T, 삼성전자 등 세계의 유명 업체들이 그녀 회사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미국 내 100대 우량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녀 회사의 이름은 라이트 하우스이다. 말 그대로 등대이다. 항해하는 선박이 등댓불을 보고 길을 잃지 않듯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일에 그녀의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터였다. 그러기 위해 사업체만이 아닌 태권도장은 필요했다.
정수원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갈고 닦아 정신의 조화와 안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정수원은 단순히 태권도의 형과 격파술 등의 외형적인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태권도를 가르치되 정신수양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기를 가르치고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도장과는 달랐다.
1987년에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연령층의 문하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무인의 길’이라는 비디오를 제작한다. 심공(心功), 형(形), 내공(內功)의 세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것이다.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방법은 자연과의 호흡을 통해서 무술정신의 실체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을 수련의 도량으로 삼아 온 것은 정수원의 오랜 전통이다. 그녀는 ‘최후의 주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건물 안에서는 태권도의 신체적 원리와 자기조절의 수양법에 대해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말한다.
“ 창의력은 긍적적인 기 에너지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삶을 창조하기위해서는 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현실적으로 이루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기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쳐놓은 장애물 때문에 기 에너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의 기를 발견하고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기를 발견하고 기와 연결되면 외면적으로 낙천적이고 활달한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고 내면적으로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 놀라운 내면의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가 배양되고 스스로 결정하는 의지가 강해지며 비록 실패에 부딪쳐도 그걸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녀는 마스터 테스트라는 자아발견 이벤트를 만들었다. 정수원 사범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스터 테스트의 첫 관문은 한 움큼의 쌀과 사과 한 개, 한 모금 정도의 물이 담긴 수통을 건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으로 열흘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무술실력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눈을 가린 채 유단자들과 대련하는 방법, 손을 등 뒤로 묶은 뒤 유단자와 대련하는 방법, 다음엔 격파력 테스트로 벽돌 여덟장을 팔꿈치로 격파하기, 열 겹의 유리를 정권으로 깨기, 다섯 장의 얼음벽돌 깨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두 사람이 쏜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내는 고도의 테스트가 치러진다. 마지막으로 기 수련의 정도를 시험하기위한 고난도 테스트는 오토바이 바퀴살을 양 팔꿈치에 꿰고 그것으로 양동이를 들어올린 후 떡갈나무 숯이 이글거리는 불 판 위를 걷는 시험이다.
송충이와 번데기라는 미숙한 과정을 거쳐 이젠 자신의 뜻대로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게 된 한 마리 나비로 깨어나는 절정의 순간이다.
그녀는 세계최초의 여성 그랜드 마스터이다. 또한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고 1978년 국제태권도대회 시 연맹 측에 건의해 여성 부문을 만든 장본인이다. 1978년 국제태권도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여성이 태권도 한다는 데 야유하던 사람들에게 쩌렁쩌렁한 고함소리로 말한다. “ 여긴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를 겨루는 신성한 자리입니다.” 곧 야유소리는 환호로 변한다. 세계태권도연맹 최초의 여성 마스터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1991년 5월. 태권도의 역사에서 기록이 된, 세계적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태권도 타임즈에서는 표지인물로 그녀를 선정한다. 최초의 여성 표지였다.
1994년 12월 30일. 세계무술마스터협회에서 그녀에게 그랜드 마스터를 인정서를 보내기에 이른다. 1995년 1월 7일 미주 무덕관 형제회에서 준 최고지도자상은 무술분야에서 노벨상 이상의 권위를 가진 상이다. 그렇게 그녀는 세계가 인정하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그랜드 마스터는 수련생들이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고, 발견된 내면의 힘을 이용해 달라진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목표이자 그녀가 가르치려는 것 전부라고 한다.
그녀는 미국정부로부터 무수한 상을 받았다. 게다가 중요한 봉사활동 3관 왕이기도 하다. 수잔 앤소니 상은 미국 여성들에게 여성의 인권을 위해 땀 흘리고 불우한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데 미국 내에서 이 상은 노벨상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상으로 그녀에겐 아주 소중한 상이다.
또한 마약퇴치운동에도 참여하여 조지 부시대통령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한다. 그녀에게 뜻 깊은 상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인 공동체 사회로부터 받은 ‘Cultural Living Treasure’이다.
우리는 귀하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하면서 이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수원의 무술의 창시자로서 귀하는 세계적인 공헌자이며, 기 에너지의 마스터로서 귀하는 강인한 빛입니다. 귀하는 또한 작가로서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웠으며, 하이테크 컴퓨터 회사의 회장으로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귀하는 우리의 젊은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며, 한국의 딸로서 새롭고 더 나은 미래를 이끄는 희망입니다. 귀하는 ‘Cultural Living Treasure’ 입니다.
같은 핏줄에게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값진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다. 예수도 그의 고향에서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난 한국인이야. 난 한국인이니까 내가 세운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녀가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악물며 되뇌었던 말이다.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나 라이트하우스 회장 김태연이라는 이름보다 모국을 사랑하는 한국인 김태연으로 남고 싶어한다.
그런 그녀에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가 각 언론매체를 타고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특히 이 땅의 여성들은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보고 싶어했다.
많은 한국의 여성들은 ‘김태연 다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용기를 가지고 사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을 하고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녀 삶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용기인 것이다.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로 말이다. 수줍게 피어있던 달맞이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었다.
" 고난 당한것이 내게 유익이라! " (시 119:71)
첫댓글 회장님







감동입니다.
방문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