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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건 대피소? 구미시 송정동 송정지하도는 본디 민방위 대피소랍니다. 그런데 이곳에 구미상록학교가 있다고요? 처음엔 많이 놀랐어요. 바로 이곳에 못배운 설움을 이겨내며 뒤늦게 배움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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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게 죄가 아니라, 방법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현재의 상황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나약한 자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내 영혼의 노래' 정태하<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정태하, 그가 꾸리는 학교에 가다종이에 손수 뽑아준 정태하 교장의 수기 마지막 글귀를 몇 번이고 되뇌어 봅니다. 뜨거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씨앗을 뿌리며 알차게 거두는 이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뜨거움에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몇 해 앞서, 나와 같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하 기자님을 알게 되었어요. '대구.경북 투어' 때 알게 되어 만나지는 못하고 쪽지로만 인사를 나누었던 분이었지요. 바로 구미에서 가난하고 힘든 환경 때문에 남만큼 배우지 못한 학생들한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이 지역에 작은 등불이 되어 애써 봉사하며 살아온 정태하씨는 구미 상록학교 교장이기도 합니다.
경북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가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구미상록학교 교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오르는 데는 참으로 많은 어려움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그 뒤에는 말없이 그를 지켜주고 꿋꿋하게 믿어주며 힘이 되어 주었던 그가 사랑하는 아내, 황향숙씨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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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상록학교 우리가 찾아갔을 때, 때마침 잔치 준비로 바쁠 때였습니다. 교육부에서 주는 큰 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좋은 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려고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상록수의 채영신, 교장선생님 사모님이 손수 잔치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학교 안 풍경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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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하 기자님을 인터뷰하다! 구미상록학교는 지금 송정지하도와 바로 그 앞 건물 3층에다가 마련한 교실과 사무실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시민기자이기도 한 정태하 교장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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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송정동 송정지하도에 있는 구미상록학교에 찾아 갔을 때 매우 놀라웠어요. 본디 구미시에서 '민방위대피소'로 쓰는 곳인데, 이 학교의 좋은 뜻을 받아들여 돈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해준 곳이라고 해요. 땅 밑이라서 조금은 퀴퀴한 냄새도 나는 듯하지만, 교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제법 학교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답니다.
벽마다 이곳 학생들이 쓴 시화가 곳곳에 걸려있고, 그 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가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어요. 배움에 목마른 사람들, 못 배운 설움에 애써 다독이며 살아야 했던 힘겨운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글이었어요. 그야말로 삶에서 우러나온 좋은 글이라서 누구보다도 반가웠답니다. (저는 늘 그렇게 얘기합니다. 삶이 배어나지 않는 시는 절대 좋은 시가 아니라고….)
"여보, 제가 식모살이라도 해서 뒷바라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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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행복합니다 여기에 참 아름다운 사연들이 있습니다. 비록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었지만 참고 열심히도 살아왔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두꺼운 돋보기를 코 언저리에 얹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한 자 한 자 옮겨 봅니다. (구미상록학교 김정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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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무실에 마주보며 앉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 뭉클했답니다. 어릴 적부터 가난과 배우지 못한 설움을 안고 신문배달, 구두닦이, 술집종업원까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배워야 한다는 뜻을 품고 구미향토학교라는 야간학교에 다니게 된 건 다름 아닌, 아내의 격려와 부추김이 없었다면 감히 시작도 못할 일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야간학교에 나간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남몰래 숨어서 다녔다고 했어요.
그런 남편한테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남의 집 식모살이라도 해서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며 그의 팔을 이끌고 등록을 시킨 것이지요. 어느 신문사 사무실 한 쪽에서 금오공대생으로 이루어진 자원봉사 선생님 다섯과 학생 셋이서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늦은 나이에 굳어진 머리로 새롭게 공부를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배움터로 쓰고 있던 사무실을 비워주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어렵게 되찾은 배움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이때도 그의 아내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여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옥상에다가 조립식 가건물을 지어서 우리가 직접 야간학교를 운영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오랫동안 공부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뜻밖에도 아내의 제안을 따라 살림집 옥상에다가 자기 돈을 들여서 야간학교로 쓸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무허가 건축물을 지었다고 누군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어이없게도 철거를 당하고 맙니다. 참으로 서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원남동사무소 2층 회의실을 내준 덕분에 거기에다가 꺼져가던 등불을 다시 밝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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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상록학교 교실 교실이 여러 개 있었어요. 한글반.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노래교실,컴퓨터강좌까지 여러 분야로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65명이나 되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한 마음으로 나와서 돕고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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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학교 학생에서 교장으로그렇게 다시 시작한 구미향토학교는 뒷날(1993년)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이름을 본떠 구미상록학교 간판을 내걸고 구미시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을 한데 모아 가르치고 검정고시를 거쳐 자랑스러운 졸업장을 손에 쥐게 해주는 매우 귀한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정태하 교장 스스로도 이곳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까지 졸업을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말없이 뒷바라지 해주며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준 그의 아내는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세운 이 배움터에서 이들 부부는 상록수에 나오는 박동혁과 채영신이 되어 등불을 밝히며 봉사하면서 지금까지 985명이나 되는 많은 졸업생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던 이 학교에 자원봉사 선생님만 65명,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들만 180명이나 된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여 들어오신 87세 김영희 할머니를 비롯하여,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나이 많은 학생들이 중심이라고 합니다. 또 지난 2008년부터는 '경상북도 교육청 대안학교'로 지정되어 정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맡아 인성교육과 정규교과 과목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이뿐 아니라, 법무부 김천 교도소 수용자들의 교정교화 활동까지 하고 있으니, 이 지역에서 참으로 훌륭한 일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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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반 학생 김영희 할머니(87) 한글반에는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어르신들이 함께 배우고 있답니다. 그 가운데에 김영희 할머니는 8학년7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인데 배우려는 열정은 어떤 젊은이 못지 않답니다. 더구나 어르신들한테는 한글 뿐 아니라, 생활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버스 타기, 은행업무 보기, 따위를 손수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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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으로 뽑히다또 지난 17일에는 교육부 주최 '전국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으로 뽑혀 귀한 상도 받았답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꾸준히 등불을 밝혀온 이들 부부와 돈 한 푼 받지 않고 나와서 가르쳐주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희생과 애씀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이 값진 열매를 맺지 못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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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유진 구미시장님의 축사 공부를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모인 곳이니, 공부 효과는 100%라는 말씀을 해주시며 이곳 구미상록학교가 전국 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으로 뽑힌 걸 축하해주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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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기관으로 뽑힌 걸 축하하는 자리에도 남편과 함께 가봤는데, 참으로 놀라웠어요. 배움의 꽃을 피우고 있는 어르신들과 여러 선생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여러 기관 단체장들도 함께 축하를 해주었답니다.
정태하 교장의 고향 선배인 정석기씨는 37년 전, 본인도 고등학교를 야간학교에 다녔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시작하여 최고학원까지 졸업하고 현재 육군 장군이라는 직위까지 오른 분이었어요. 배움에 목말라하는 이들의 참된 거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남유진 구미 시장님도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는데,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모여서 함께 배우니 그 효과는 100%가 아니겠습니까? 아울러 이곳 사람들은 평생교육 참여자이고 동시에 그 수혜자이기도 합니다."배움의 등불을 밝혀 언제나 푸른 소나무가 되기를...정태하 기자님한테 아니, 교장 선생님한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될 때가 언제인지 물었어요.
"한글도 깨우치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글을 읽고, 손수 은행에 가서 통장도 만들고 스스로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다녀오는 일을 할 땐 참으로 뿌듯합니다. 어르신들은 지금껏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맘 놓고 은행에도 못가고 버스도 옳게 못 타고 다녔어요.(실제로 이런 실습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표 끊고 극장가기, 버스타기, 은행에서 통장 만들고 예금하고 출금하기 따위) 그런 분들이 스스로 하는 걸 보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땐 선생님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고 함께 기뻐한답니다. 또, 대안학교 학생들이 졸업할 땐 참말로 고맙지요. 이 아이들이 여기에 처음 올 때는 공부는 커녕 출석조차도 안했어요. 그러면 일일이 찾아가서 데려다놓고, 그러면 또 도망가고…. 그러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한 일 년이 지난 뒤에는 아이들도 마음잡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렇게 해서 졸업할 때엔 졸업식장이 온통 눈물바다가 됩니다. 그렇게 힘들게 하던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서 나한테 자기를 붙잡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땐,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오랜 세월, 힘겨운 일들을 모두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고 희생하며 애쓴 분들한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자기도 배우지 못한 설움을 이기지 못해 뒤늦은 나이에 다시 배우고,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우며 많은 이들한테 배움의 길을 열어준 이들이 있기에 곳곳에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 저마다 작은 등불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농촌계몽운동을 하며 삶을 바쳐왔던 소설 <상록수>의 박동혁과 채영신처럼 정태하(53), 황향숙(52) 이들 부부 또한 언제나 푸르게 우뚝 솟아있는 소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소나무 그늘에 깃들어 있는 여린 꿈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더 이상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구미 땅에서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게 저 또한 퍽이나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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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하 교장 가족사진 사진 오른쪽이 바로 정태하 기자님이세요.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과 같이 올곧은 뜻으로 말없이 힘을 북돋우어주며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밀어주었던 아내, 이날도 잔치를 돕느라고 앞치마를 두른 채 바쁘셨어요. 뒤에는 두 아들, 가운데엔 정 교장의 고향 선배 정석기 장군님, 이분 또한 야간학교를 다녔던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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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상록학교는? |
◎ 1987년 4월 구미향토학교 창립 ◎ 1993년 10월 구미상록학교로 교명 변경(설립자 정태하) ◎ 2004년 2월 비영리법인 고유번호 513-82-62115호 등록 ◎ 2005년 4월 제6호 경상북도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 시설로 등록 ◎ 2005년 6월 정태하 학교장 자랑스러운 신한국인 선정 대통령상 수상 ◎ 2008년 5월 경상북도 교육청 대안학교 선정 ◎ 2009년 9월 경상북도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 2009년 12월 교육부주최 전국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 선정 ◎ 2009년 현재까지 985명의 국가검정고시 합격자 배출
지금 구미 상록학교는 국가나 시에서 70%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뜻있는 분들의 후원으로 꾸리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주머닛돈을 내놓아 꾸리고 있습니다.
후원하는 분들이 많은 지 여쭈었더니, 지금 현재 1만원 계좌로 23분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네요. 좋은 일을 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을 듯 하더군요. 따듯한 마음을 나눠주실 분들의 손길도 기다립니다. 후원 해주실 분들은 기자에게 쪽지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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