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낮의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장렬하게 지표를 데웠다.무덥다.기상청에서는 올 여름 무더위가 평년에 비해 길어지고 기온도 높다는 예보를 발표했다.
여름이 길어지고 빨라지고 있다는이상기후의 현실이 곧바로 찾아 온것이다.
그 이면에 신록보다는 푸르다 못해 거뭍한 녹음이 깊은골을 듬섬듬섬 자리를 차지했다.설상가상 강렬한 햇살은 사람들의 움직임마져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여름이 찾아오니 무더위 값을 치르느라 지친 사람들이 산과 계곡을 찾아 한바탕 소동이다.산이든 계곡이든 곳곳에 이름난 명소들은 제다 이름값을 치르느라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 하기위한 더위와의 전쟁이라도 한 판 치를 셈이다.옛 고서 논어(論語) 옹야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孔子)가 말하길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지자요수智者樂水),어진자는 산을 좋아한다.(인자요산 仁者樂山)지혜로운자는 움직이고 지자동(智者動),어진자는 고요하다.인자정(仁者靜).
그래서 공자는 지혜있는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어진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장수 한다고 했다.
무더운 날씨탓에 물이든 산이든 지자(智者)든 인자(仁者)든 대수겠냐마는 그져 이 함 몸 시원함이 최고 일거라는게 명쾌한 대안이자 명석한 해답이 아닐런지 그 짧은 이해를 구하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오늘은 얼마전부터 약속했던 산과계곡,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산행지를 찾아 나섰다.산행지는 충북괴산에 위치한 등잔봉(450m)천장봉(437m)삼성봉(550m)이다.
세 곳의 봉우리를 돌아보고 산막이 옛길도 걸어보는 트레킹코스를 둘러볼 요량이다.
내륙의 깊은곳 충북괴산은 오지에 속한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할 수 없는 내륙지방이다.얼핏 생각에 바다가 없으니 답답함이 먼저 앞선다
.바다가 없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뭐 그리 대단히 불편할것도 없는 까닭이라 하겠지만 왠지 "자유스럽다" "망망대해" 라는 말이 무색하고 무거워 보이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충북 괴산까지는 꽤 먼 거리다.차로 열심히 달려도 3시간은 족히 걸린다.결코 녹록치 않는 거리다.새벽같이 일어나 전주시내를 경유하고 괴산에 도착한 시간이 10:40여분을 가리킨다.
벌써 이곳에 도착해 자리를 차지한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빼곡한 주차장을 더욱 가중 시켰다.형형색색의 산행객들과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 오지 같은 깊은 산중에 이렇듯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르는걸 보니 산막이 옛길이나 괴산호가 다른곳에 비해 결코 뒤쳐지거나 볼품없는 명소는 아니란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자 쏟아지는 뙤약볕은 더욱 강렬해진다.오늘 산행이 그리 만만치 않을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지는 싯점이다.
산행에 앞서 예까지 왔으니 괴산호와 산막이 옛길도 한 번 알아보고 가자.괴산호와 산막이 옛길은"필수 불가결"한 관계다.
괴산호가 없었으면 산막이 옛길도 없고 괴산호 역시 산막이 옛길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 유명세를 타지 못했을 거라는 편견이 나름 상상 지어진다.
오늘날 그 둘의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둘러봄에 그간의 오지라는 지역적 무관심에서 오는 소외감을 덜어내고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니 괴산은 오지에서 해방구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괴산호(槐山湖):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칠성면 문광면 일대에 걸쳐있는 인공호수로서 만수면적 17.5km2,길이15km이른다.
1952년 11월 남한강 지류인 달천을 가로질러 댐의 형성을 시작으로 1957년 2월 댐이 완공 되었다.댐의 영향으로 마을과 도로가 수몰되면서 충북지역의 특성상 산이 많고 골이 깊은탓에 협곡이 형성되어 어우러진 산수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물맑은 괴산호가 자리 한 곳이다.
산막이 옛길:산막이 옛길은 산막이 마을에서 유래한다. "산막이"란 이름그대로 "산이 막아섰다" 라는 뜻이다.즉 첩첩산중 산골에 적소(謫所)"귀양살이를 하는곳"에 가까운 오지중에 오지다.
조선중기 대학자이며 문신인 노수신(1515~1590)선생은 을사사화에 휘말려 일찌기 19년의 유배생활중 이곳 괴산에서 2년 여를 보낸 산막이 마을의 원조격 쯤 되는곳이다.
뒷날 유배가 풀리고 선조의 부름으로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 노수신 선생의 고난과 역경이 묻어난 인동초와 같은 삶을 산곳이다.
그 뒤 1957년 괴산댐이 생기면서 일대가 수몰되어마을과 길이 없어지자 이곳 사람들은 가파른 벼랑을 따라 십리길을 냈다.
그러기를 50년.2009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편도 3km 왕복6km구간에 걸쳐 데크로드를 깔고 전망대를 세워 정비를 한 까닭에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올 수 있는 가족의 쉼터로서 명실상부한 자리매김으로 탄생 됐다.데크로드를 따라 가다 보면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1968년 까지 호랑이 (표범)가 살았다는 호랑이굴을 비롯,소나무 출렁다리, 노루샘,매바위,여우비바위굴,옷벗은미녀참나무,앉은뱅이약수,얼음바람골,호수전망대등 사연많고 설화가 서려있는 곳곳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 잡는 안내판이 궁금증을 유발시킨한다.호랑이굴이다.
남한에서의 공식적인 기록으론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가 마지막 호랑이라고 전해져 오는데 근대에 들어서 1968년까지 호랑이가 이곳에 살았다는 근거는 사실 믿기 어렵고 인정하기 힘든 부분에 절로 고개가 갸웃 거려진다.
그만큼 호랑이가 살만큼 숲이 깊고 우거졌음을 비유했으리라 유추한다.괴산호는 국사봉,등잔봉,천장봉,삼성봉을 굽이굽이 돌다 껴안은 풍요한 젖줄과도 같은 곳이다.
댐이 생기고 나서 전력생산과 농업용수확보로 인한 수력발전소건설 이라는 대의적 명분에 희생양이 되버린 이 일대가 담수화가 되고 나서부터 생각지도 못한 풍광을 만들어 냈다.
그 여파로 인해 지금은 관광유람선이 괴산호를 중심으로 유유자적 물살을 가르며 지역적인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잃고 얻음에서 상호간 본전을 치른 셈이다.
또한 이곳에 들어서면 꼭 보고 가야 할 풍광이 또 하나 있다.바로 한반도 지형이다.등잔봉과 천장봉사이 굽이쳐 돌아가는 괴산호에는 호수가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한반도 지형과 닮은 명소가 있다.
강원도 영월이나 충북 옥천에 비교할 만큼은 아니어도 어렴풋이 한반도지형과 흡사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산행객들에겐 단골 포토죤으로 인증샷을 찍어대기 바쁘다.또한 골이 깊으니 숲에서 빗어대는 울림도 청정하다.
하루쯤은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울렁댄다.천장봉에서 바라보는괴산호의 물빛이 여름햇살에 더욱 빛날때쯤 다음 산행지는 벌써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그리움처럼 다가선다.
쪽빛바다도 떠오르고 강렬한 햇살에 눈부신 백사장도 마구 떠오르기 시작 한다.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바다를 봐야 할 모양이다.
시인묵객이 부럽지 않을 풍광에 호사스런 두 눈이 즐겁지만 산행이 채 끝나기도 전 벌써부터 내 몸속엔 파랑이 그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2013.6.18.괴산 산막이트레킹을 다녀 와서..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