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정책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방안
- 본 연구보고서는 사단법인 시화노동정책연구소가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의 연구에 결합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의 양해를 얻어 보고서 전체를 게재한다.
- 공단정책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방안_인쇄본.pdf
제1장 들어가며: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집단화된 생산공간으로서의 공단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근대적인 공업체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직주분리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생활환경의 질적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의 결과물로서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을 분리해 공장을 집단화하는 생산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트래포드파크(Trafford Park Estate)를 시작으로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의 중앙공단(Central Manufacturing District), 이후 일본, 유럽 등지로 확산된 공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까지 급격하게 전파되기에 이른다(유영휘, 1998: 19-21).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공단개발이 시작됐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파괴된 조건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수출품을 생산하는 구로공단을 개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70년대 중화학공업 중심의 국가산업단지 개발, 1980년대 농공단지 개발, 1990년대 일반산업단지 개발기를 거쳐 현재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공단이 가동되고 있다.
그 가운데 노동시장 및 산업경제 측면에서 공단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크게 증가해왔다. 2014년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수는 2,510만여 명이며 그 중 제조업 취업자는 441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2014년 말 공단의 고용인구가 모두 208만여 명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취업자 열 명 중 한 명은, 혹은 제조업 종사자 두 명 중 한 명은 공단에서 자신의 삶을 가꿔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우리나라 제조업 총생산액이 1,495조 원, 공단의 생산액이 1,032조 원(제조업 총생산액 대비 69.0%)이었고, 2014년 우리나라 수출총액이 5,727억 달러, 공단의 수출액이 4,464억 달러(수출총액 대비 77.9%)였음을 감안하면 산업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공단이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거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노동조합의 낮은 대표성 문제와 중소사업장이 밀집해있는 공단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 속에서 금속노조는 2006년 15만 산별노조 출범과 함께 지역-공단조직화를 미조직사업의 주요 전략으로 제시했고, 이후 2011년 1지부1공단 전략조직화로 그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미조직사업의 핵심사업으로서 공단조직화에 대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특히 2010년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 국면과 함께 활성화된 공단조직화 사업은 다양한 조직화전략들(사업단 활동, 공단기초실태조사, 지역조직화, 지역협약, 지역․공단의제 등)을 도출하면서 3기 전략조직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공단조직화 사업은 일국적 차원에서 작용하는 제도의 효과를 상대적으로 간과했던 한계를 갖고 있었다. 즉, 공단이라는 공간과 그 속의 노동자들을 주요한 조직화 대상으로 보고 많은 활동들을 전개해왔지만, 노동자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단정책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공단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개발과 발전은 정부가 주도하는 법제도적 변화로부터 출발하며 이것을 시초로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처우가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변화라는 현상적 측면에 주로 집중해왔을 뿐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공단정책의 변화가 갖는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해오지 못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수출산업단지였던 구로공단은 오늘날 IT․비제조업 중심 공단으로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 속에서 상업 및 유통자본이 다수 침투해 들어왔고, 높아진 지가와 임대비용을 계기로 부동산 투기가 확대됐으며, 지역노동시장은 파편화되고,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해졌다. 이러한 현상적 문제들은 1990년대 말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구로공단 첨단화 계획과 도시첨단산업단지제도, 관련 법제도의 변화가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것은 곧 노동조합이 공단조직화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각 지역의 업종이나 노동시장 특징 등에 대한 분석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공단정책을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2015년 「노후거점산업단지의 활력증진 및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공단을 대상으로 한 구조고도화사업이 전국적으로 급격하게 확대․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향후 공단의 변화를 예상하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한 분석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이 연구에서는 공단정책의 변화과정 및 문제점과 앞으로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해갈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공단정책의 변화와 공단 구조고도화로 귀결되고 있는 오늘날 공단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실제 구조고도화 시범사업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며, 이에 대한 노동친화적 공단정책 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보고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2장에서는 먼저 우리나라 산업단지의 현황과 특징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를 비교하면서 공단 조성시점별로 산업-생산기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공단정책의 변화과정과 오늘날 공단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단 구조고도화의 내용 및 문제점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변화해오고 있는 공단관련 법제들은 2015년 「노후거점산업단지의 활력증진 및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종합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의 공단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제3장에서는 경북 구미1공단, 인천 남동공단, 경기 반월시화공단, 전북 익산공단 네 곳의 국가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진행된 구조고도화 시범사업의 내용과 문제점을 각종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2009년 4월 제1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산업단지 리모델링 및 관리시스템 개선>의 일환으로 노후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이 제안되고, 그 해 12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위의 4개 국가산업단지를 구조고도화 시범단지로 선정하면서 시작된 구조고도화 사업은 현재 노후거점산단 경쟁력 강화 및 혁신산단이라는 이름으로 그 대상과 내용을 계속해서 확대․추진해가고 있다. 다만, 각각의 공단마다 추진되어 온, 혹은 추진되고 있는 구조고도화 사업의 내용은 다소 상이한데, 여기에서는 네 곳 구조고도화 시범단지에서 실제 어떤 내용으로 구조고도화가 진행됐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가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앞선 분석결과들을 바탕으로 노동친화적인 공단정책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공단정책이 노동친화적인 성격을 담기 위해서 어떤 방향성과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정책이나 의제들이 필요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연구는 공단정책이란 주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 처음 다루는 연구인 까닭에 제언된 내용들의 구체성과 타당성, 적합성이 충분치 못하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는 향후 각각의 지역, 공단 상황에 맞게, 그리고 노동조합 내부의 관심과 숙의를 통해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보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