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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동반자
김명규
인연 맺어 서른세 돌
긴 세월 한 몸 되어
온갖 풍상 이겨왔네
갈 길은 멀고
세월만 흘러가니
남은 풍상에
얼마나 시달려야 할까
갓 스물 청초했던 모습
풍상에 시달려
늙어가는 아내
애처로운 맘 한이 없네
아내와 함께한 인생길
흘러온 세월이 삼십삼 년
어느덧 내 인생도 육십갑자
살 부벼 함께한 세월이
영롱히 빛나는 보석이로구나
루비 속에 깊은 뜻을 담자
루비여 빛나라 담긴 내 맘
그대로 빛이 되어 발하라
찬란한 빛으로 루비여 빛나라
얼 굴
김 명 규
비단 같은 머릿결에서
살가로운 내음이 풍기고
까만 밤(夜)의 왕별처럼
흑진주 같던 두 눈동자가
조용히 반짝이던 얼굴
오똑하게 솟은 콧날에
아기의 입술같이 도톰한
입의 그윽한 미소가
언제나 같이 했던 그 얼굴
생각이 한없이 밀려드는
여러 겹의 형상(形象)들은
「파노라마」인 채 꿈틀대고
호수의 깊은 심연(深淵)을 보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서로의 마음이 흡수되던 기억들
누가 먼저 깜박일까
시합하던 그 눈싸움은
내 눈을 피로케 했지만
그 얼굴의 응시가
얼마나 좋았던가 몰라
개여울이 흐르는 조잘거림처럼
맑게 웃고 떠들던 얼굴
고속버스가 달리는 고속도로변에서
입 크게 벌리고 웃던 그 얼굴
행복의 솜사탕이 무진장으로
부풀던 그 기억의 얼굴이여
무 지 개
김 명 규
불타는 대지(大地)
열풍의 언덕 넘어
싱그러운 미소(微笑)가
가득했던 너
항상 내 안에
고운 무지개빛으로
마음을 이어 주었던
그 찬란(燦爛)함
애초의 미지 상태로
돌아가려 해도
비 온 뒤의 내 마음속에
영롱(玲瓏)히 서는 무지개
너의 그 영롱(玲瓏)한
일곱 빛깔이 나를 잡누나
은밀한 유혹
/윤행원
꽃의 자궁을 본다
황홀한 생식기를 본다
신비한 생명의 잉태를 본다
꽃술은 열매를 꿈꾸면서
은밀한 유혹을 한다
꽃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뿌옇게 내놓고 자랑한다
감출 것 없다는 꽃의 용기가 부럽다
화사한 꽃의 눈짓에
황홀한 생명의 꿈을 본다
찬란한 눈속임이 서럽다
꽃이여!
순진한 화려함이여
조촐한 생명을 나누는 자비여
아우성을 치지마라
너는 위대하다
생명의 찬란한 아픔 속에
아름다운 환희를 본다.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윤행원
얼마 전부터 가보기로 한 『솔수펑이 사람들』 김선화 작가의 고향을 찾기로 했다. 언제나 자잘한 스케줄로 꽉 짜인 일정이었는데 마침 며칠간의 한가한 여유가 생겨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이 구경, 저 구경 여행 삼아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계룡산 신도안의 가파른 고개를 넘게 된다.
신도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눈에 띄는 기념탑이 보인다. 일본의 잔혹한 압제에 준열하게 항거를 하다 희생된 사람들의 애국혼(愛國魂)이 깃든 광복단결사대 기념탑이다. 충청애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일제치하 광복단결사대 발원지인 이곳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큰나무그늘 의자에 앉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솔수펑이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대충 읽으면서 내가 돌아보고 싶은 지명을 메모했다.
중봉산 뒤에 있는 충렬사, 솔수펑이, 훌령골 산제당, 호남선 철도가 보이는 산의 계단식 밭, 주인공 미선이는 김선화 작가일 테고, 재민, 재호, 등의 일곱 남동생들, 듬직한 언니,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와 도인(道人) 공부를 하는 아버지 그리고 동네사람들….
신도안과 연산의 갈림길인 양정고개, 두계역, 대적골, 놋적골, 장자터, 시루봉 줄기, 신도안의 동문에 속하는 동문다리, 아들바위, 훌령골 쌍여우 언덕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곳은 세 남동생들과 오줌줄기 시합을 하는 밭 언덕배기다. 남자애들은 서서 오줌줄기를 뻗치는데 여자인 자기는 언덕위에서 오줌줄기를 뻗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언덕이 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호기심의 발로다.
작가의 글은 섬세하고 촘촘하다. 그리고 자기답게 살겠다는 결기가 굳다.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문학적인 향기가 가득하고 스토리가 재미있다. 저자의 치열한 삶과 문재(文才)가 번뜩이는 작품이다.
저자가 태어난 솔수펑이는 이미 계룡산 삼군본부에 징발당하고 군사체육시설 잔디밭이 되어 가 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우선 신도안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하고는 계룡시청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지도와 정보를 얻을까 해서다. 민원담당 직원에게 부탁을 하니 사무실 이곳저곳을 뒤지더니 지도 두 장을 가지고 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니 휴게실에는 민원인의 피로를 풀어주는 고급 안마의자가 세대나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 앉아 온몸 마사지를 즐기면서 잠간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나는 군인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신도안 면사무소로 갔다. 담당 직원한테 자세한 면 지도를 부탁하였더니 이번에 새로 나온 도로명과 주소가 상세하게 박힌 큰 지도책 하나를 준다. 가져도 되느냐고 물으니 가져가도 된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용남초등학교, 용남 중, 고등학교를 돌아봤다. 학교가 파했는지 학생들로 거리가 가득하다. 작가가 다닌 초등학교도 이 언저리라 했는데 지지리도 어려웠던 그때와는 달리 하나같이 허여멀건 잘 생긴 얼굴에다 몸차림이 모두가 넉넉해 보인다. 학생들은 재잘재잘 생기가 넘치고 세상은 많이도 변해서 모두가 풍족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을 하나하나 살펴 볼 참인데 아직은 막막하다.
서울에 있는 저자에게 전화를 하니 어떤 백일장 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이라고 하면서 깜짝 놀란다. 전화로 여기저기를 가르쳐 주지만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내 차엔 아직도 내비게이션 장치를 하지 않아 길이 더욱 어둡다. 작가의 동창친구가 유성구 세동1통의 통장을 맡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세동엔 김선화 작가의 시비(詩碑)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다. 그곳은 솔수펑이라 지칭되는 그녀의 고향마을 안터에서 뒷산 너머 마을인데,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노래한 시 ‘내 고향 상시동’이 나와 마을사람들에 의해 시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시비 세우는 날은 온 마을의 큰잔치가 대단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 저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지 말이 고분고분하다. 지금은 대전에 나가 볼 일을 보고 있어 마을에는 없다면서 우선 자기 동네를 찾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래도 가는 길이 알쏭달쏭하다.
우선 괴목정을 가보라는 저자의 말이 있어 그 곳을 먼저 찾느라 고개를 넘나들며 왔다 갔다 하는데 쉼터에 앉아있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물어 겨우 찾았다. 알고 보니 길가 버스정류장 이름에 괴목정이라고 붙어있다. 괴목정이란 이름은 나에게는 친숙한 지명(地名)이다. 내 고향 합천에도 괴목정이란 지명이 있다. 1597년(丁酉)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몸으로 초계에 있는 권율장군을 찾아오면서 잠깐 쉬고 있었던 곳이다.
어느새 해도 뉘엿해서 저자의 고향마을은 다음날 찾아보기로 하고 계룡산 동학사 입구로 갔다. 여기서 일박을 할 참이다. 숲 속 경치 좋은 곳 아담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는 샤워를 하니 산뜻한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계룡산자락의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계룡산의 밤은 별다른 맛이다. 밤의 숲 속은 어둡고 그윽한데 환하게 비추는 둥근달은 여행운치를 더욱 돋운다. 단체 여행객들의 왁자지껄 노래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곤대는 정다움, 펜션에 머무는 가족들의 즐거운 얼굴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계룡산의 밤은 희열로 가득 익어간다.
숲에 가면 사람들은 느긋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숲의 선물이다. 모기장이 쳐진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자다가도 일어나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은은하다. 계룡산의 충만한 에너지가 온 몸을 가득 채운다. 울창한 숲 속 쾌적한 하룻밤은 아름답고 상쾌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영혼이 깃든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젖은 하루가 새삼 고마운 날이었다.
기억속의 나
성 명순
해저문 노을이 내게 다가왔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그 영상을 틀어 놓고
삼삼 오오 마실 오는 밤 바다에
물결치는 그대를 한때는 사랑했다.
도랑에 피어올리는 풀 꽃들
도란도란 정겨웠다.
하루를 그 아래 흐르는 물 소리에
귀 열고 실컷 그것들을 삼켜 버렸다.
봄을 여는 새 소리
여름내 갈고 닦은 쑥 향
여문 가을의 몸짓
귀뚜라미 소리가 풀섶에서 익었다.
아직 겨울이면 첫 눈 기다리는
그 마음 그 때와 같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세숫대야 같은 그리움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는 노력을 하지만
왜 이토록 지울 수 없는건지...
별똥 하나가 살그머니 알몸으로 그물에 빠졌다.
바람도 나도 숨소리조차 먹어 버렸다.
나의 우정
성 명순
나의 우정
너에게
모든 것 다 주어도
모자란 듯 한 이내 마음
안타까울 목마름이요.
너의 우정 영원토록
바다로, 바다로 안으리오.
너가 나 에게
남겨 준 거 없어도
초목을 기다리며
영원토록 마음에 두리라.
화암사 뜨락에 서서 秀岩을 보다
이 경렬
한 때 신열로 달뜨던 불덩이
깊게 깊게 가라앉힌 사랑을 본다.
깎이고 부서지던 상처
견디고 다듬는 세월의 흔적을 본다.
저렇듯 푯대처럼 높이 솟아도
아름답다. 하늘을 찌르는 오만(傲慢)은 없구나.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길을 만나다
이 경렬
길이 없으니
비로소 자유롭구나.
신갈나무 밑을 지나도 되고 단풍나무 사이를 지나도 되고 이따금 까마득 절벽도 올라보고 얼키설키 덤불도 헤쳐나가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도 하며,
시냇물에 발 담그며 한 모금 물도 마시고 산바람 청량한 바위 끝에 앉아 발 아래 근경이든 원경이든 마음대로 보다가 이따금 멈춰서서 풀향기에 젖기도 하며
일찍이 길인 길만 걷다가
알겠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길인 듯 걸어야 하는구나.
백년계곡에 들면 숲의 말을 엿들을 수 있다
이 경렬
되었다. 이만큼이면
손을 내밀어도 내밀지 않아도
마주잡을 수 있음을 알지 않느냐.
조금 가까이 가거나 물러서거나 해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 걸지 않느냐.
서로의 간격에 바람이 지나는 틈이 있어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따스함을 보내면 이 틈이 길이 되어
벼름벼름 맑은 향기로 돌아오지 아니하던가.
되었다. 이만큼이면
제주도의 아침을 꿩이 연다
임 종삼
‘꿩! 꿩!’
‘푸드득 푸드득!’
성산일출봉의 새벽을 꿩이 연다. 제주도의 아침을 장끼가 연다. 검은 잿빛의 탐라도의 어둠을 힘찬 날갯짓으로 털어낸다.
2011년 4월 9일 오후 6시, 제주도 여행에 나섰다. 가족과 함께 떠난 오늘의 목적지는 성산일출봉이다.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3천 원 정도의 길이지만 늦었다. 30분 정도의 거리에 3만 4천원의 비용이 든다.
성산일출봉 아랫마을은 맛집과 민박집으로 가득했다. 전복과 오분작이를 넣어 만든 요리가 주류를 이룬다. 전복탕은 12,000원이고 오분작탕은 10,000이고 해물탕은 8,000원이었다. 전복탕과 오분작탕을 주문하였다.
두 가지 음식 맛은 일반 해물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라면 해물탕에 전복이나 오분작이 각기 3개씩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관광지이어서 음식 값은 대체로 비싼 편이다. 그러나 빈 방이 많은 민박집은 3만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아침 4시 30분, 자리에서 일어나 성산일출봉 등산에 나섰다. 야간산행의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손전등이 필수이겠지만 도시의 불빛으로 계단을 오르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아침 4시 48분 경,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계단에 불이 들어 왔다. 성산일출봉을 관리하는 직원이 출근하였나보다. 이제부터 입장하는 손님은 2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오전 5시, 성산일출봉에 이르러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분화구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어둠의 저편에서 난데없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꿩! 꿩! 푸드득 푸드득!’
장끼가 울었다. 둥지처럼 아늑한 성산일출봉의 분화구에 터 잡은 꿩이 새벽을 연다. 꿩들의 울음소리는 한곳만이 아니다. 분화구의 동, 서, 남, 북, 중앙에서 들렸다. 대여섯의 장끼가 제 영역을 지키면서 간헐적으로 울어댔다. 수원의 새벽은 까치가 여는데 제주의 새벽은 꿩이 연다. 오랫동안 잊었던 꿩의 울음소리가 고향 친구의 목소리처럼 반갑다.
오전 5시 30분경, 부지런한 사람들이 성산일출봉을 향해 무더기로 올라온다. 일출 시간에 늦을 세라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다. 그러나 오늘의 일출은 그리 시원하지 않을 것 같다. 수평선에 낮은 구름이 내려앉아 수평선을 뚫고 오르는 힘찬 일출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산 아래에서 보는 것이 나을 듯싶어 일출봉을 내려왔다.
오전 6시 10분경, 바닷가 언덕에서 성산 일출을 맞이하였다. 성산 일출봉을 붉게 물들이는 탐라도의 아침은 고요하였다.
아침 식사로 옥돔구이와 해물탕과 전복죽을 주문하였다. 건조시킨 옥돔구이는 짠맛이 강하고 내장이 많이 든 전복죽은 느끼하였으나 해물탕은 무난하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오조리 해녀의 집으로 향하였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나이든 할망 해녀가 해삼, 전복 소라를 한 바구니에 담아 횟감으로 팔았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유채꽃과 무꽃이 드문드문 피었는데 부근에 솜방망이, 가시엉겅퀴도 벌써 꽃봉오리를 올렸다. 잎사귀에 가시가 있는 가시엉겅퀴는 제주도의 특산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성산일출봉을 다시 올랐다.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객의 2/3는 중국인이었다. 본토인과 대만인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대만인으로 보였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제주도는 지금 세계 7대 자연문화유산 도전하는 중이다. 001-1588-7715를 걸어 전화 투표를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제주도의 자연환경은 오래도록 잘 보전될 것이다
성산일출봉을 돌아 내려와 올레길 2구간을 따라 바닷가를 걸었다. 이 마을에 사는 상군 해녀가 갓 건저 올린 해조류를 발에 널어 햇볕에 말린다.
“이거 다시마인가요?”
나는 최근에 인기 좋은 해조류 이름을 생각하여 물었다.
“미역이에요. 꼬들꼬들해요.”
“아하, 곰피라는 물미역이군요.”
나는 며칠 전에 먹어보았던 곰보처럼 구멍이 송송 난 곰피라는 물미역을 떠올렸다.
“물질이 힘드시지요?”
“아니요. 물질은 재미있어요. 물밖에 일이 힘들어요. 다듬고 널고 말리고 하는 일이 오히려 힘들어요. 햇볕 좋은 날에만 말릴 수가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제주도는 바람 불고 흐린 날씨가 많았다. 오늘은 모처럼 바람도 자고 햇볕도 좋은 날이었다.
용암이 잘게 부서져 쌓인 모래밭은 잿빛이었다. 파도가 곱게 부서지는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걷다가 발바닥을 문지르기 좋은 곰보돌과 멍게 껍질 들을 주우며 걸었다. 사구로도 불리는 언덕배기에 오르자 트럭 한대가 서 있다. 트럭을 등지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점심을 들고 있었다. 그 중 나이 많은 어른이 손짓하여 나를 부른다.
“잠깐 이리 오세요. 차 한 잔 들고 가세요.”
두 사람은 바닷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환경미화원이었다. 그 중 한 분은 얼마 전까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산일출봉을 외국인에게 안내하던 문화 해설사였다. 이제는 65세가 넘어 환경미화원으로 직종을 바꾼 분이었다. 정길수씨는 우리에게 성산일출봉의 또 다른 상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정길수 씨가 건네준 생강차 한 잔을 마시며 강의를 들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일제는 제주도의 곳곳에 참호를 팠다. 미국의 군함이 지나가면 참호에 숨겨두었던 침투정으로 은밀히 접근하여 자폭하는 전략이었다. 일제의 해군대장 ‘나가즈’가 그 임무를 띠고 제주도 해안가에 수백 개의 참호를 구축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에도 가로 6m×세로3m×깊이30m의 참호 21개를 팠다. 해식 동굴처럼 보이는 바위굴은 전쟁의 아픈 흔적이었다. 이제까지 몰랐던 사실을 눈으로 보고 들으니 일제의 만행이 다시금 몸서리쳐졌다.
올레길 2코스가 끝나는 어귀에 칼국수집이 성업중이었다. 성게알칼국수를 주문하였다. 노란성게알을 넣어 끓인 칼국수는 제주도의 또 다른 별식이다.
바닷가에 조랑말 두 필을 매어놓고 말 타기 체험을 권유한다. 말 타기보다 관심있는 것은 망아지다. 이제 막 배꼽이 떨어진 망아지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파릇한 풀을 뜯어주니 맛나게 먹는다.
유채 밭,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유채꽃이 강렬하다. 입장료를 받는다. 1인당 1,000원이다. 하긴 농사짓는 일보다 낫겠다. 제주도의 기묘한 돌을 세워 분위기를 띄운 유채밭도 있고 귤나무와 초가집을 세워 분위기를 살린 유채밭도 있었다.
오후 3시경,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탔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친 제주도의 풍경이 차창 밖으로 이어진다. 때때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묘지다. 묘지에도 사각으로 아늑한 돌담을 쳤다.
오후 4시경, 제주민속박물관에 들렀다. 민속박물관 입구에 놓인 거대한 돌덩이가 인상 깊다. 화산폭발로 생긴 기기묘묘한 돌을 가져다 전시하였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뜨거운 용암이 고목나무를 통째로 덮쳐 생긴 화산암이다. 고목나무는 타고 없어지고 나무의 그림자가 화산암 속에 고스란히 박혔다.
벚꽃이 만발한 민속박물관 옆의 공원이 화려하다. 많은 시민들이 나와 산책을 한다. 직박구리들이 벚꽃에 앉아 꽃잎을 따먹기에 시끄럽다.
거대한 돌하르방이 맞이하는 제주민속박물관에는 탐라인의 유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제주도민의 지난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유물로 남았다. 해녀들이 쓰던 도구며 돌밭을 일구던 따비, 탐라인이 즐겨 먹던 음식,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이은 지붕 들이 그것이다. 이어 살펴본 것은 수상과학관, 낯 설은 아열대 해양의 물고기 표본을 전시해 놓았다. 아열대 해양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어류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수원보다 10일 정도 빠른 제주도의 봄이 한창이다. 제주공항으로 이어지는 벚꽃 가로수길이 화사하다
백일조(百一租)
임종삼
2011년 1월 3일자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신년 특집으로 실었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는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다. 반대로 ‘가장 불행한 도시’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Huntington)이다. 2009년 갤럽이 미국인 35만 명을 대상을 한 ‘행복지수’ 조사 결과에서 볼더는 1위, 헌팅턴은 최하위(162위)였다.
볼더시 시청 청사에 모인 50여명의 주민이 3D 영상 시청용 안경을 착용하고 화면을 주시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산자락에 건물 건설을 허용해야 할까요. 3D 시뮬레이션 사진을 보고 의견을 주십시오.”
지난 12월 22일 만난 시청 직원 새라 헌틀리씨는 '볼더는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반드시 주민을 참가시킨다. 시의원 3명 이상이 모이면 이 모임에 반드시 주민을 참석시키도록 법으로 정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볼더의 공청회는 매달 약 3회, 정책을 설명하는 ‘학습 모임’이 3회 정도 별도로 열린다.
헌팅턴의 경제 몰락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인들의 소모적 논쟁’이다. 광업 도시로 꽤 번성하던 헌팅턴의 발목을 잡은 ‘이스트 헌팅턴 다리’ 건설 지연 사건은 정치적 분쟁으로 도시가 큰 피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다. 1964년 다리 건설안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시의회에서 예산 확보 방안 및 다리 위치에 관한 치열한 분쟁이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고 주지사가 세 번 바뀐 1985년에야 다리가 완성됐다. 헌팅턴 지역의 역사학자 제임스 카스트로는 “기나긴 막장 드라마가 같다.”고 정치인들의 소모적 분쟁을 평했다.
2010년 여의도 국회폭력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올해의 사진’에 뽑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대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말싸움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엇 하나 제대로 성취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세월만 보낸다. 이는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들이 뽑은 대한민국 국회위원을 보는 이미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단군 조선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족한 삶을 산다. 대부분의 가정에 자가용이 있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매일 샤워를 한다. 대한민국은 가진 자의 세상이라고 치부한다. 이는 부유의 선순환이다. 양화는 악화를 구축한다.
그러나 한반도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정은 남한과 같지 않다. 국가 정책에 이견을 제기하며 반대하는 정당이 없다. 여당 야당도 없고 말싸움하는 집단도 없다. 모든 정책은 조선로동당에서 신속히 결정되며 과감히 집행된다. 그런데도 단군 조선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궁핍한 삶을 산다. 대부분의 가정에 자가용이 없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지 못한다. 이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성을 갖는다. 여야가 극심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대한민국 국회는 공회전을 한다고 보인다. 그런데도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여당의 정책을 반대하고 여당의 독주를 막는 시위가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호를 순항케 한다는 사실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도 파도처럼 일어난다. 대통령의 우유부단을 질타하는가 하면 장군들의 무기력한 근무태도를 맹렬히 나무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날로 번창한다.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언론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분명 국민에게 있고 5천만 국민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러나 북한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누구하나 당의 최고 권력이 하는 일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아니 감히 이견을 달지 못한다. 폭풍이 불어오는 바다로 배를 몰아도 누구하나 제지하지 못한다. 오로지 당심으로 거침없는 길을 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은 모두가 타인이다. 주인은 위대한 수령 동지 장군님 한 사람이다.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이 고용한 타인일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분명 인민에게 없다.
이즈음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성금을 모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남한에서는 배부른 아이들이 국가급식을 남기고 북한에서는 국가급식이 적어 배고파 쓰러지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주인 의식이다.
이 운동의 주체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운동을 주도하고 성금을 관리할 기관은 신문, 방송 등의 언론사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운동에 참여 하지 않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이 운동에 반대하는 국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된 자로써 감히 가문의 명예를 걸고 개인의 명예를 걸고 이끌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세계대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은 낱말이 나란히 등재되길 희망한다.
․십일조(十一租, tithe), 개신교에서는 십일조라는 성금이 있다. 십일조는 헌상의 형태로 잘 알려진 것으로서, 보통 교회 단체를 지원할 목적으로, 납부하는 수입의 10분의 1이다. 오늘날 십일조는 일반적으로 자발적으로 납부하며 현금, 수표, 주식으로 낸다. 반면 역사적으로 십일조는 농작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냈다. 이러한 조세는 이미 고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중세를 거쳐 근세 초기에까지 존속하였다.
․백일조(百一租), 대한민국에서는 백일조라는 성금이 있다. 백일조는 헌상의 형태로서, 보통 둘로 나누어진 민족의 평화통일이나 자력갱생을 지원할 목적으로, 납부하는 수입의 100분의 1이다. 오늘날 백일조는 일반적으로 자발적으로 납부하며 현금, 수표, 주식으로 낸다. 백일조는 역사적으로 농작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냈던 십일조에서 유래하였다. 백일조는 이데올레기의 마지막 분단 국가였던 대한민국에서 부활하여 평화통일을 이루는 성금 운동이 되었다.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두 발 자전거에서 내려섭시다.
임종삼
세계는 지금 저탄소 녹색성장을 화두로 내세웁니다. 물과 공기와 땅을 보전하는 녹색성장이야말로 미래사회의 원동력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끊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참담하다고 경고합니다. 끝없는 욕망은 과잉생산을 낳고 과잉생산은 과잉소비를 낳고 과잉소비는 과잉폐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고합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반만년 역사의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서 반은 버리고 입을 것이 넘쳐나서 반은 버립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풍족하게 지내는 것은 우리의 2세가 살아갈 미래의 자연 자원을 앞당겨 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행복한 터전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의 지표는 이제 국민총소득만으로 비교할 일이 아닙니다. 2만 달러, 3만 달러로 비교하는 물질 지수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물질 지수가 아닌 행복지수나 문화지수로 삶의 지표를 다시 세워야만 생각합니다.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주는 행복지수 등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도 저탄소 녹색성장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기업은 전기자동차의 개발을 모색하고, 개인은 전원생활로의 귀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그 사슬을 쉽게 끊지 못합니다.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금세 쓰러지고 마는 두 발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못합니다.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옷과 더 좋은 음식에서 눈을 돌리지 못합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구호뿐인 메아리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물질문명 중심 사회의 개선책은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두 발 자전거에서 미련없이 내려서야 합니다. 양적 성장의 팽창이 아니라 질적 성장의 수축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수축이 어렵다면 팽창이라도 멈추어야 합니다. 팽창을 거듭하다 마침내 ‘뻥!’ 터지고 마는 물질문명 중심의 고무풍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빗속의 질주
손 선 아
천둥번개가 번쩍이며
착하게 살아오지 않은 인생을
곱씹게 만드는 비에 젖은 하루
사십 칠세 중년여자의 귀빠진 날
자상한 남편의 배려로
맛난 음식의 포만감에 젖어
행복이 이런 것인가
나른하게 되짚으며
빗속의 정취 있는 드라이브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곳곳을
차로 누비며
눈 속에 담는 작업은
새삼스럽지만
삶의 또 한 귀퉁이를
따뜻하고 촘촘히 부여잡는
일이다
빗속의 드라이브는
내가 받은
가장 기꺼운
선물이다.
<< 밥심 >>
손 선 아
늙을 수록 밥심으로 산다는
노모의 젖은 목소리에
내 맘도 흠씬 잦아든다
힘든 시기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벌이에 나섰다
우리 집은
돼지우리가
무색할 지경이어도
내 일터는 반들반들 닦으며
남의 돈 벌기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득한다
사는 게 고행인 요즈음
건강이라도 챙기려
밥을 보약 삼아
밥심으로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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