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였다. 해미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배고픔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실제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리틀 헝거(Little Hunger)’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이다. 처음에는 이 대사가 단순히 인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 두 종류의 배고픔이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느꼈다.
보통 우리는 ‘배고픔’이라고 하면 먼저 물질적인 부족을 떠올린다. 돈이 부족하거나,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생각한다. 하지만 <버닝>을 보면서 나는 정신적인 배고픔 역시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육체적인 배고픔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비교적 분명하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으면 되고, 적어도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에 대한 배고픔은 다르다. 사람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도 여전히 공허함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혹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배고픔은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미는 이러한 ‘그레이트 헝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고,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특히 해미가 노을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순간의 해미는 매우 자유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넓게 펼쳐진 하늘과 노을, 그리고 그 안에서 홀로 춤추는 해미의 모습은 그녀의 자유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이 세계 속에서 얼마나 작고 외로운 존재인지 느끼게 했다. 이 장면은 단순히 해미의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느끼는 공허함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이미지 자체로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나 사랑, 여행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이나 삶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종수 역시 비슷한 공허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잘 알지 못하고, 해미를 좋아하지만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또한 벤을 보면서 강한 열등감과 불안을 느낀다. 반대로 벤은 돈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벤 역시 다른 형태의 공허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그가 왜 반복적으로 자극적인 행동이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떤 ‘그레이트 헝거’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말하는 장면도 이런 공허함과 연결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버닝>이 단순히 가난이나 계급 차이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인간이 항상 무언가를 부족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물질이 부족한 사람은 물질을 원하고, 물질적으로 충분한 사람 역시 의미나 사랑, 자극, 존재감을 계속해서 원할 수 있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져도 또 다른 욕망이 생긴다는 점에서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타오르는 불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인 ‘버닝’도 단순히 무언가를 태운다는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욕망과 공허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해미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종수는 질투와 분노와 혼란 속에서 살아가며, 벤 역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감정을 대사로만 설명하지 않고, 넓은 공간, 침묵, 노을, 인물 사이의 거리와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보여 준다. 그래서 <버닝>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라기보다, 인간의 욕망과 존재의 공허함을 관객이 직접 느끼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단순히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육체적인 배고픔은 음식으로 채울 수 있지만, 정신적인 배고픔은 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버닝>은 바로 그 끝없는 배고픔을 이야기와 이미지 모두를 통해 보여 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