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상절 해설 및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서문 석보상절 해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世宗) 28년(1446년) 3월에 왕비(王妃)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가 죽자 그 명복을 빌고 대중을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시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首陽大君 : 후에 世祖)에게 명하여 편찬한 석가모니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一代記)를 연대별로 상세히 엮은 불경(佛經)이다. ‘석보(釋譜)’는 석가의 일대기, ‘상절(詳節)’은 중요한 것은 상세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다는 뜻이다. 보물 제523호다. <월인석보서(月印釋譜序)>에 의하면 (수양대군이) 중국 남제(南齊)의 승우(僧祐;444∼518)의 ≪석가보(釋迦譜)≫와 당(唐)의 도선(道宣;596∼667)의 ≪석가씨보(釋迦氏譜)≫를 합하여 ≪석보상절≫을 편찬하는데 참고하였으며, 동년 12월에는 김수온(金守溫)으로 하여금 ≪석가보(釋迦譜)≫를 증수(增修)하도록 하였다. 이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는 석가보와 석가씨보를 토대로 하여 여기에 법화경(法華經),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경(藥師經) 등 여러 경전을 더하여 석가의 일대기를 우리나라 나름대로 엮었다.
≪석보상절≫은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세종 29년(1447) 7월에 정음(正音;訓民正音))으로 번역된 최초의 한글 산문체 문학작품이다.
수양대군이 주재(主宰)하고 안평대군과 신미(信眉) 스님, 승문원(承文院) 교리(校理)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편찬하였다.
세종 29년(1447년) 7월부터 늦어도 세종 31년(1449) 2월 사이에 초주 갑인자(甲寅字)로 간행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간행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서(釋譜詳節序)」가 세종 29년으로 되어 있고, 권9의 표지 안에 “정통14년2월초4일 가선대부 황해도도관찰출척사겸해주목신신(正統拾肆年貳月初肆日 嘉善大夫黃海道都觀察黜陟使兼海州牧臣申)”이라고 쓴 간기(刊記)가 있어 1447년(세종 29)에서 1449년(세종 31)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순서는 팔상도(八相圖)․도솔래의(兜率來儀 : 석가가 도솔천에서 내려옴)ㆍ비람강생(毘藍降生 :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남)ㆍ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대문으로 나가 봄)ㆍ유성출가(踰城出家 : 성을 넘어 출가함)ㆍ설산수도(雪山修道; 설산에서 도를 닦음)ㆍ수하항마(樹下降魔 : 나무 밑에서 악마의 항복을 받음)ㆍ녹원전법(鹿苑轉法 : 녹야원에서 설법함)ㆍ쌍림열반(雙林涅槃 : 쌍림에서 열반에 듦)으로 되어 있다. <석보상절>은 한국 최초의 번역불경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뿐 아니라, 당시의 불교를 조직화한 것으로 조선 초기의 불교학 수준을 말해 주며, 국문으로 된 최초의 산문작품으로서 다른 불경 언해서(諺解書)의 문체와는 달리 그 문장이 세련되고 유려(流麗)하여 후대의 산문과 소설에 전범(典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풍부한 어휘와 이에 따른 어법ㆍ음운ㆍ표기법 등은 15세기 중엽의 국어연구 및 한자음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함께 최초의 국문활자본이라는 점에서도 서지학적(書誌學的) 가치가 크다. 최초의 번역불경이며,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국문활자본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분량은 현전하는 권24의 내용으로 미루어 모두 24권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현재 초간본은 권6ㆍ9ㆍ13ㆍ19ㆍ23ㆍ24의 6책이 전하고 있으며 복각된 중간본도 권3ㆍ11의 2책만 전한다. 권6ㆍ9ㆍ13ㆍ19의 4책(보물523호)은 초간활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권23ㆍ24의 2책은 초간활자본으로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권11의 1책은 16세기 중엽의 중간목판본으로 1959년 임휴사(臨休寺)의 주지 원현(元玄)의 속가(俗家)에서 발견되어 영남대학 심재완(沈載完) 교수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다. 권3의 1책은 중간목판본으로 1979년 아주대학 천병식(千炳植)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권6·9·13·19는 1955년 한글학회에서《한글》지 (誌) 통권(通卷) 111∼121호의 부록으로 15회에 걸쳐 영인하여 실었고, 권11은 1959년 어문학회(어문학자료총간(語文學資料叢刊))에서, 권23·24는 1967년 동악어문학회에서 영인했다. 권1과 2는 초간본으로 갑인자(甲寅字)로 찍었는데, 권1에는 권수(卷首)에 ‘교정(校正)’의 주인(朱印)이 찍혀 있고, 책 속에서 잘못 식자(植字)한 것, 또는 초고에서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교정하여 난외에 정오를 표시한 것이 보여 교정본임을 알 수 있다. 권3은 갑인자의 복각본이다. 복각한 사실에 대해서는 1495년(연산군 1)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내탕금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불서(佛書)를 간행했는데, 그 가운데에 『석보상절』 20부가 들어 있음이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과 『반야심경언해(般若心經諺解)』에 붙은 학조(學祖)의 발문에 나타나므로, 혹 연산군 원년에 간행된 것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석보상절 서(釋譜詳節 序) 석보상절 서 : (서(序)는 글을 만든 뜻을 자세(子細)히 써 후인(後人) 사람에게 알으키는 것이라.) 부처님(佛)은 삼계에서 가장 높은 분으로서 중생(衆生)을 널리 제도(濟渡)하시니 무량(無量) 공덕(功德)이 그지 없어 못내 헤아릴 수 없이 공(功)과 덕(德)으로 인천(人天)이 능히 다함없이 찬탄하느니라. 인간 세상에서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 출생하신 곳과 종신((終身)하신 곳의 출처를 선명하게 알리노라 비록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역시 팔상(八相)을 넘지 못하고 중지하느니라.근간(近間)에 여러 가지 일어난 일로 인하여 추천(推薦:죽은 사람에게 공덕을 베풀어 명복을 비는 일)을 겸하여 여러 경에서 가려내어 각별히 한권의 책을 만들어 "석보상절"이라 이름 하였노라. 이미 언문이 만들어 졌으니 차제에 언문에 의거하여 만들고 세존께서 成道(성도)하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시초와 종신하신 곳의 자취를 넣어 놓았다.또한 정음(正音)으로 번역하고 해설을 더하여 만들어 놓았으니사람마다 쉽게 깨달아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소망을 이루기를 바라노라
註解(주해): * 三界(삼계):色界(색계),欲界(욕계),無色界(무색계)이며
* 八相(팔상)은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겪으신 일이다즉 첫째,兜率來儀(도솔내의:도솔천에서 내려 오신 뜻과 둘째,毘藍降生(비람강생:람비니에서 탄강하여 출생하신 일, 셋째,四門遊觀(사문유관:사문을 거닐며 관찰하신 일, 넷째,逾城出家(유성출가:유성을 넘어 출가하신 일, 다섯째, 雪山修道(설산수도:설산에서 불도를 수행하신 일, 여섯째, 樹下降魔(수하항마:보리수 나무 밑에서 악마를 항복 시킨일, 일곱째,鹿苑轉法(녹원전법:녹야원에서 설법하신 일, 여덟째,雙林涅槃(쌍림열반:쌍림에서 열반하시고 중지하신일을 八相(팔상)이라 하느니라
* 釋譜詳節(석보상절)이라 이름 지은 것은 釋(석)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譜(보)는 평생의 계보이며, 상(祥)은 시초에 탄강하시여 종신하실때 까지 설법하신 것을 상세히 쓴다는 것이고, 節(절)은 중요하지 아니한 말은 덜어서 쓴 글이란 뜻이다
* 三寶(삼보)는 佛法僧(불,법,승)이다즉 佛寶(불보)는 자신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남도 깨닫게하여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함으로세상의 귀중한 보배와 같으며 法寶(법보)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소중하여 세상의 보배와 같으며 僧寶(승보)는 佛法(불법)을 전수하는 스님이다스님은 중생들에게 善根(선근)을 심어서 善行(선행)하여 복밭이 됨으로 스님은 보배와 같은 것이다 正統 十二年 七월 二十五日 首陽大君 諱序(정통 12년 7월 25일 수양대군 휘서)< 세종 29년이며 서기 1447년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