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근대 미술의 한 경향으로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태양 광선에 의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상의 순간적인 색채를 포착해서 밝은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대기를 표현하기위해 자연히 풍경화를 많이 그렸으며, 때때로 밤의 조명이 찬란한 거리의 풍경이나 카페 등의 소재도 즐겨 그렸다.

위 모네의 작품 [소풍]을 보면 그가 얼마나 빠른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 빠른 붓질은 세세한 묘사를 생략케 하였으며, 두터운 붓질의 원인이 되었다. 순간의 빛이나 물의 흐름 등을 포착하고자하는 인상주의의 요수가 담겨진 그림이다.
그들은 사물에는 각각 고유색(local color)이 있다는 종래의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빛이 물질에 반사되어 그것이 눈에 들어올 때 색이 보인다는 것을 분석하여 화면에 구체화 시켰다. 그런데 인상주의가 고유색의 부정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해석하여 과학적인 시각으로 작업에 임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단 그것만이 인상주의를 말하는데 있어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상주의가 관념의 미술에서 해석의 미술로 전환한 바탕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조류처럼 과학적 탐구에 의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상주의는 그것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으며,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그간의 미술이 보여 왔던 관념적인 붓질에서 감각적인 붓질로의 변환이라는 점이다. 19세기 이전의 미술은 양식화의 미술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화면에서의 행위이다. 20세기 미술에 와서야 붓질의 행위, 즉 액션의 중요함이 많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행위의 근본 시발점은 인상주의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상주의는 표현 양식상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하는 특성이 있고, 또 야외의 빛을 해석하는 데 있어 동시간대의 빛을 포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인상주의의 화면이 늘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게하지 않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작가는 작가에게 주어진 상황마다 여러 가지의 화법으로 화면이 구성되어 지는 것이다.

[무희. 1876] 에드가 드가 작. 파스텔. 이 작품은 드가의 그 유명한 무희 시리즈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파스텔로 그려진 이 그림은 일면 대단히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손과 발의 표현이라든지 배경의 처리에 있어 그야말로 속사로 그린 듯 섬세하지 않게 처리되어 있다. 드가의 데생력은 정평이 나있지만 순간적인 인상의 포착을 위해 여러 부분을 생략을 하거나 단순화 하였다. 이것이 인상주의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주관적인 표현법의 발단이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적 분석이라는 말로만 설명되어 질 수 없는 요소이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후기 인상주의를 낳는 결과가 되었다.(주지하다시피 후기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반발로 인해 생긴 형식은 아니며, 인상주의의 기법에 개인의 내면적 성향을 더한 유파로 인상주의를 한층 발전시킨 양식으로 볼 수 있다. 고흐와 세잔이 새로운 조형의 해석과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양식을 개발한 그 이면에는 인상주의의 탐구에 대한 해석이 충분히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의 인상주의는 과학적 탐구의 형식적 바탕을 기조로 하되, 개인적인 성향의 붓질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 개성적인 성향의 붓질은 다양한 계파의 인상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물론 더욱 더 과학적으로 탐닉해 들어간 점묘파(신인상주의)라는 양식도 있었지만 분명 인상주의는 미술의 양식상 최초로 개개인의 개성을 확립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유파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인상주의를 말하는 것에 ‘순간적인 빛의 포착’이라는 양식의 해석만 누누이 강조해왔을 뿐 그러한 행위의 다양성을 통해 개인의 특성을 구체화 시켜왔던 점의 평가 등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화면의 빠른 붓질로 인한 질감의 다양한 모습과 두꺼운 물감의 두께표현은 미술사의 패러다임 이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인데, 그것의 중요함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르장티유의 보트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에두아르 마네 작. 이 작품은 [올렝삐아]와 [풀밭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이다. 마네가 최초의 인상주의 작가로 인정된 것은 고유색의 부정이라는 인상주의의 기법에 비롯된 것이지만, 그의 화법이나 붓질은 어떤 유파에 관계없이 개성적인 양식을 획득하고 있다.
그림은 엄밀히 말해 허상(虛像)이다. 허상이라는 말은 평면위에 입체적인 느낌 혹은 실재의 상을 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 평면의 규칙을 철저히 깨닫고 어떻게 표현하여야 (평면에) 진짜처럼 보일까 하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한다. 어쨌든 평면에 실상의 느낌을 표현하기위한 기본은 ‘평면은 한 없이 평면’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평면이 입체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 평면은 평면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허상의 사실감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상주의 이전 시대들이 요구한 미술의 패러다임이었고, 인상주의가 출현함으로 해서 이 패러다임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것이 인상주의 작가들이 표현했던 캔버스위의 질감이며, (동기의식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두터운 붓질의 질감이나 돌출해 나온 두꺼운 물감의 표현은 화폭에서의 평면성(허상)을 해방시켰던 것이다.(물론 화폭에 종이 따위를 붙였던 피카소의 꼴라주는 더 나아간 실재로의 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인상주의가 붓질이나 물감의 두께로 인해 평면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인상주의가 이루어낸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인상주의는 그로인해 주관적인 세계관의 확립이라는 예술사적 성취를 이루어 내었으며, 다양성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인상주의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에도 광범위하게 표현되어졌다. 문학에서는 장면이나 성격, 정서 따위를 표현할 때 사실적인 수법을 버리고 주관적 인상을 대담하게 묘사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는 미술에서의 관념을 탈피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음악 역시 전통적인 화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색을 나타내던 것으로, 악기마다 각각 다른 악음(樂音)의 색채감을 중시하여 순간적인 감정이나 분위기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현대적인 의미에서 개성이라는 것의 시작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