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창고에 들어가서 내부를 관람헀습니다.
[사진 1346] 제 2창고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창고'라 불렸으며 자료를 보면 설탕, 소목을 보관하는 창고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1층에서 무역자료 및 제 2창고와 관련된 기초자료를 전시중입니다.
[사진 1347] 데지마에서 있었던 해외무역과 문화의 교류를 간략히 설명하는 안내판입니다.
데지마를 통해 일본은 네덜란드 및 아시아 여러 나라(우리나라, 중국, 동남아시아)와 무역을 했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데지마를 통해 일본 문화 및 물품이 서양으로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사진 1348] 초기에는 상인들간의 무역이었으나 나중에 토쿠가와 막부가 직접 관할한 일본-네덜란드 무역은 엄격한 통제하에 행해졌습니다.
사진은 나가사키항을 그린 당시 그림입니다. 가운데가 데지마입니다.
[사진 1349]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주 교역품 유통경로입니다.
[사진 1350] 일본에서 수출된 구리광석의 판매처 정리입니다. 가장 많이 간 곳은 벵골만 일대, 그 다음이 코로만델 제도, 수라트 순서로 이 세 곳이 3/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진 1351] 데지마를 통해 들어온 수입품의 시대별 변화를 전시했습니다.
토쿠가와 막부 초기에는 생사(누에고치에서 짜낸 실)가 주 수입품이었으나 중기 이후로는 설탕이 되었습니다.
[사진 1352] 향신료 실물입니다. 왼쪽 위부터 흑후추, 육계(계피), 육두구, 정향 순서입니다.
[사진 1353] 복원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지층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1354] 설탕과 관계된 내용입니다.
사진으로 찍은것 외에도 데지마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수출된 각종 물품(도자기 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물을 본 뒤 제 2창고를 나와 다음 구역으로 향했습니다.
[사진 1355] 제 3창고입니다. 외벽 손상이 심해서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1층에서 당시 창고 모습을 재현해 전시중입니다.
[사진 1356] 네덜란드 상회의 수석사무원용 주택입니다. 발굴공사 당시 수조와 배수구가 발견되었으며, 땅 속에서 수은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1층을 '난학(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들어온 서양 근대학문)관'으로 사용중입니다.
[사진 1357] '난학'에 대한 소개입니다.
[사진 1358] '에레키테르'입니다. 오른쪽 손잡이를 돌려서 바퀴가 돌아가면 전기가 발생합니다.
[사진 1359] 1865년에 지어진 신 석조창고입니다. 현재는 데지마의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상영하는 소극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진 1359에서 소개한 신 석조창고에 들어가 영상물을 감상했습니다. 영상은 일본어, 자리별로 3개 국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중 하나가 지원되는 헤드셋이 있었는데 작동되지 않는게 많더군요;;
영상물 감상 후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진 1360] 데지마의 '정문'입니다.
[사진 1361] 구 석조창고입니다. 이곳은 1956년에 복원되었으며 1층은 고고관(고고자료 전시), 2층은 데지마 복원사업 소개입니다.
[사진 1362] 현재 데지마는 주위 바다가 대부분 매립되어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사진의 붉은 네모가 데지마입니다.
[사진 1363] 토쿠가와 막부 후기(1820년대)의 데지마 소개입니다.
[사진 1364] 데지마 발굴조사의 목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사진 1365] 구 나가사키 내외클럽 건물입니다. 1899년 쿠라바 토미사부로('글로버 저택'의 소유주였던 무역상 토마스 글로버의 아들, 일본에서 태어남)를 발기인으로 해서
나가사키의 일본인과 외국인간의 교류를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1903년 영국인 프레데릭 링거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현재는 1층을 휴게소 및 체험전시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거류지 시대(1859년 네덜란드 상관 폐쇄 후 1866년 외국인 거류지로 지정됨)'의 데지마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1366] 데지마에서 행해졌던 당시의 당구입니다.
[사진 1367] 당시 당구의 게임방법 및 주의점입니다.
[사진 1368]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게임입니다.
[사진 1369] 위 게임의 게임판입니다.
[사진 1370] 역시 주사위 놀이입니다. 나가사키부터 에도(토쿄)까지 네덜란드 상인들이 토쿠가와 막부에 갔던 것을 모티브로 한 게임입니다.
[사진 1371] 배드민턴입니다.
[사진 1372] 배드민턴입니다.
[사진 1373] 당시 데지마를 통해 수출되던 구리입니다.
[사진 1374] 트럼프를 변형시킨 카드로 추정됩니다.
[사진 1375] 당시의 서양식 가구입니다.
2층에서는 설탕과 관련된 특별전이 개최중이어서 설탕공예품 및 당시 설탕이 데지마를 기점으로 큐슈 내부를 이동한 루트와
각각 도시별로 설탕과 관련된 요리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없습니다;;
1층에 있던 식당에서 점심으로 토루코(터키)라이스를 먹었습니다. 입장권을 살 때 할인쿠폰을 주더군요^^
토루코라이스는 나가사키가 원산지인 요리로 파스타, 밥, 돈까스가 어우러진 요리입니다.
[사진 1376] 토루코라이스입니다.
점심식사 후에도 데지마 관람은 계속되었습니다.
[사진 1377] 데지마 모형입니다.
[사진 1378] 구 데지마 신학교 건물입니다. 1878년 영어학교로 문을 열어 1883년 성공회 신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1893년 증축되었으며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신학교라고 합니다.
현재는 1층에서 기획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1379] 외관입니다.
[사진 1380] 당시 기획전시 내용은 일본 기독교 역사였습니다. 구 데지마 신학교, 데지마 교회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진 1381] '포교와 번영'이란 소제목입니다.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진 1382] 위 사진은 선교사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아래 동상은 누군지 모르겠군요;;
[사진 1383] 소제목은 '탄압'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집권 후 토쿠가와 막부에서도 행해진 기독교 탄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진 1384] 기독교 신자들에게 가해졌던 박해때 사용된 형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 1385] 이런 박해로 인해 일본의 기독교는 지하로 잠복했습니다. 성모화 대신 '마리아관음(관음보살상으로 보이게 만든 마리아상)'을 만들어 쓸 정도였습니다;;
[사진 1386] '부활'이란 소제목입니다.
[사진 1387] '조화'
구 데지마 신학교를 나와 데지마 안을 걸었습니다.
[사진 1388] 1966년 지정된 '데지마 나무'입니다.
[사진 1389] 1859년 데지마의 네덜란드인 상관이 폐쇄된 이후 1866년에 외국인 거류지가 되었는데, 당시의 지번경계석입니다.
[사진 1390] 석재 문기둥입니다.
[사진 1391] 1823년 나가사키에 도착했던 독일계 네덜란드인 지볼트(네덜란드 상선의 의사였습니다)가 가져갔던 식물을 라이덴 대학교 식물원에서 키웠는데,
그 중 현재도 있는 일부가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을 기념해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하며 그 식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사진 1392] 1964년, 우라카미가와 하구에서 인양된 철제 대포입니다.
[사진 1393]
[사진 1394] 지볼트와 같이 일본에 온 에드베르트 캠퍼와 튠베리 기념비 설명판입니다.
[사진 1395] 기념비입니다.
데지마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첫댓글 데지마의 세부적인 내용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개그 소재로는 딱인것 같은데요 .. 데지마.. 대지마.. ㅋㅋㅋ
ㅋㅋㅋㅋ 그렇기도 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 동안 데지마가 무엇인지, 어떤 곳인지 몰랐었는데 이 글로 인해 이해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150년전의 기록을 이렇게 생생하고도 깔끔하게 보존시키고 깨끗하게 전시하는군요.
막부 말기 천황파와 막부파간의 전쟁이 있기 훨씬 이전의 상황이 이렇게 잘 묘사되다니
놀랍습니다. 나가사키의 역사적 중요성이 바로 이 글안에 있어서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나가사키가 외부와의 창구 역할을 했던 기간이 꽤 길다보니 많은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들른곳은 데지마와 글로버원 정도인데 나중에 가게되면 이번에 못간곳들도 가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