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 |
맹자집주대전 권지 7 (孟子集註大全 券之 七)
맹자와 그의 제자 또는 당시 사람들과 문답한 것을 제자인 만장(萬章) 등이 기록한 맹자(孟子)에 주자가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경문은 대자로 각하고, 주문은 행을 바꾸고 대자로 각했으며, 주석은 소자쌍행으로 각해서 쉽게 구별이 되게 하였다. 책머리에는 사기(史記)의 맹가열전(孟軻列傳)이 수록되어 있다. 후한의 조기(趙岐)가 주석하여 맹자장구(孟子章句) 7편을 상하로 나누어 14 편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이 체제가 보편화되었다. 양혜왕편(梁惠王篇), 공손축편(公孫丑篇), 등문공편(滕文公篇), 이루편(離婁篇), 만장편(萬章篇), 고자편(告子篇), 진심편(盡心篇)의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맹자에는 수미일관한 논조, 설득력있는 논리의 전개와 박력있는 문장으로 공자의 가르침이 더욱 확대되었다. 맹자는 인의를 강조하였고, 왕도정치를 말하였고, 민의에 의한 혁명을 긍정하기도 하였다. 송대의 주희는 조기가 훈고에 치중해 맹자의 깊은 뜻을 놓쳤다고 비판하고 성리학적 관점에서 맹자집주(孟子集註)를 편찬하였다. 이 주자의 신주석은 주자학이 관학으로 채택되었으므로 원대 이래 공식적인 해석서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주자는 이 사서(四書)에 혹문(或問)도 저작하여 논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맹자를 배울 적에 대부분 이 주자의 집주를 교재로 삼았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저명한 사상가로 이름은 가(軻), 자는 자여(子輿)이며, 산동성 비현(邳縣) 사람이다. 자사의 문인으로부터 공부를 배웠고, 박학다식하여 전적에 정통하였다. 맹자는 인의의 도, 성선의 설을 실천하는 선왕의 도와 왕도의 정치를 실현하려고 양(梁), 제(齊), 송(宋)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제후에게 유세하였으나 끝내 그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강학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도설(道說)을 이어 유도를 진흥시키고 이단을 배척하기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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