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성공회는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이 특이하던데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걸까요?
1.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 중 굉장히 독특한 방법으로 시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형제 교단(천주교, 개신교) 분이라면 뭔가 생소하게 들렸을것입니다.
2. 성공회에서는 Anglican Chant에 시편을 맞춰 부르는 전통이 있죠.
말 그대로 잉글랜드 교회에서 비롯된 형식이기 때문에 앵글리칸 찬트라고 부릅니다.
14개의 마디로 구성된 4성부 화성진행인데 첫 마디에 여러 음절이 들어가고
그 다음 마디부터 각각 한 음절의 단어가 삽입되어 마무리 됩니다. (주보 뒷면의 악보나 아래 사진 참조)
3. 결론적으로 시편을 운문형식으로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부르기 위해 발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담으로 개신교 찬송가에도 앵글리칸 찬트가 있는데 634장(모든 것이 주께로부터)과 636장(주기도문)입니다.
4. 중세 시대에는 잉글랜드 교회에서도 단선율 전통곡조로 시편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성공회 성가 41~47장)
이 단선율(그레고리오) 성가가 영국 땅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과 상황은 꽤 길고 복잡해서 다음에 말씀드릴께요.
5. 1480년대부터 이탈리아에선 기존 단선율 전통 성가 곡조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넣어 부르는 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팔소보르도네(Falsobordone) 형식이라고 하고 1597년 토마스 몰리라는 작곡가에 의해 영국에도 처음 소개됩니다.
6. 1600년대 초반에 이 형식이 아주 폭발적으로 번져나가면서 영국 전역에서 너도나도 전통곡조에 화음을 넣어보고
어떤 작곡가는 아예 시편곡조를 새로 쓰기도 했답니다. (제임스 클리포드, 에드워드 로우 등)
하지만 아직 마디수와 리듬이 고정되진 않아서 정리되지 않은 약간 번잡한 모습이 기록됩니다.
7. 마침 1600~1750년을 바로크 시대라고 부르는데 화려한 화성진행과 장식음이 특징이었습니다.
1600년대 중반부터 바로크 음악 특유의 반복적인 리듬형식을 선호하게 되고,
영국의 성공회 음악 또한 여기에 강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8. 1600년대 중반 헨리 퍼셀과 존 블로우라는 영국 바로크 음악의 레전드 격인 두 작곡가가 등장하는데
이 두 분이 시편노래 형식을 7마디로 고정하여 다량의 곡조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앵글리칸 찬트”라는 단어도 이 때 처음 등장합니다.
9. 1700년대가 되서야 기존 7마디 시편에 또 다른 7마디가 덧붙혀져 현재 우리가 부르는 14마디로 고정되었죠.
7마디를 단일찬트(Single Chant) / 성공회 성가 48장 참조
우리가 가장 많이 부르는 14마디를 이중찬트(Double Chant) / 성공회 성가 49~53장 참조
그리고 한국에선 전혀 부르지 않는 21마디를 삼중찬트(Triple Chant)가 존재합니다.
10. 1800년대 빅토리아 여왕시대는 그야말로 성공회 합창음악의 레전드 시절입니다.
대성당 부속 음악 학교에서 소년 성가대가 양성되고, 성가대의 모습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갖추어졌으며
찬트 곡조도 어마어마하게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시대입니다.
11. 가장 전통적인 성공회 성가대 배치는 Chancel을 중심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고 앉는게 맞습니다.
(Chancel : 성소(聖所) / 간석교회로 치면 십자고상과 제대 사이의 공간)
성공회 성가대는 각 좌석의 고유명칭이 있는데 북쪽 좌석을 선창자(Cantor)쪽 좌석라고 해서 칸토리스(Cantoris).
남쪽 좌석을 주임사제(Dean)쪽 좌석이라고 해서 데카니(Decani)라고 부릅니다.
앵글리칸 찬트 악보에도 CAN, DEC로 표기하여 어느 쪽 좌석이 불러야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서울주교좌성당 성가대석이 제대 뒤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도 이 전통 때문입니다.
12. 앵글리칸 찬트는 지휘법과 기보법, 악보기호 역시 독특한데 기존 박자젓기로는 도저히 지휘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앵글리칸 찬트 곡조는 약 3,000개 정도로 추정되고,
우리 대한성공회 성가에는 6개의 곡조가 수록되어 불려지고 있습니다. (성가 48~53장)
글/사진 : 지휘자 김민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