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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새해 인사를 하는데, '그 복'이란 뭘까요? 자료를 한번 찾아봤어유.
복이란 말은 흔히 ‘아주 좋은 운수’,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란 뜻으로 사전에서 풀이되고 있다.
복이 이처럼 ‘운수’나 ‘행운’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은 복이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天運)에 의해서 저절로 돌아가는 기수(氣數:길흉화복의 운수)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 복은 ‘아주 좋다’거나 ‘오붓하다’는 말에서 풍기고 있는 것처럼 필요한 것이 허실(虛失) 없이 두루 넉넉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복이란 한자는 원래 ‘시(示)’와 ‘복畐’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시’는 하늘[天]이 사람에게 내려서 나타낸다는 신의(神意)의 상형문자이고, ‘복’은 복부가 불러 오른 단지의 상형문자라 한다.
‘복’의 한자 어원도 역시 복의 뜻이 가지는 두 함축, 곧 사람의 힘을 초월한 운수라는 뜻과 오붓하고 넉넉하다는 뜻의 함축을 풀이해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아주 좋은 운수’가 무엇이며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혹은 사회나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풀이가 나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다만 복이란 사람의 삶에 관련된 선악·행복·불행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에는 장수를 누림(壽), 가멸함(富), 건강하고 마음 편안함(康寧), 심성의 후덕함(攸好德), 임종을 성취함(考終命)을 다섯 가지 복(五福)으로 보았다(書經 洪範九疇). 그런가 하면 장수함(壽)·가멸함(富)·귀함(貴)을 복이라 이르기도 하였다(韓非子).
한편 우리 나라의 속설에는 아내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요, 이가 튼튼한 것도 복이라 일컫고 있다. 이처럼 복의 개념은 그 외연적(外延的) 의미도 일정하지가 않고 내포적(內包的) 의미도 분명하지만은 않으나, 한국사람들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복을 빌면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비록 한국사람들이 실제로 복을 받으며 태어나서 복을 누리며 살고 간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복을 비는 가운데 태어나서 복을 비는 마음속에서 자라나 복을 비는 뭇 상징 속에 둘러싸여 복을 빌며 살다가 다시 복을 비는 마음속에서 죽어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복은 한국인의 삶을 그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가장 끈질기고 가장 보편적인 동기이다.
그런데 복은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의식에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음으로 해서 거리를 두고 대상화해서 인식하기는 어려웠고, 지금까지 별로 인식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언제나 더불어 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복을 비는 마음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서 되돌아보면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그리고 우리들의 가까운 의식주 생활에 얼마나 많이 복을 비는 말과 그를 조형화한 상징들이 산재하고 있는지 쉽게 깨닫게 된다.
- 말의 쓰임새 -
낱말로서의 복은 ‘복이 있다.’, ‘복이 찾아온다.’, ‘복이 달아난다.’의 경우처럼 주어로서도 쓰인다. 하지만 그보다는 ‘복을 받는다.’, ‘복을 누린다.’, ‘복을 타고난다.’, ‘복을 심는다.’, ‘복을 기른다.’, ‘복을 아낀다.’ 등 목적어로서 쓰이는 경우가 더욱 흔하게 눈에 띈다. 그밖에도 복은 ‘복스럽게 생겼다.’, ‘복이 많게 보이더라.’ 등과 같은 수식 형용구로도 쓰이고 있다.
복이란 글자가 들어간 한자의 숙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복지(福祉)·복조(福祚)·복락(福樂)·복력(福力 : 복을 누리는 힘)·복분(福分 : 운수가 좋은 천분)·복상(福相 : 복스럽게 생긴 모습)·복수(福數 : 복스러운 운수)·복운(福運)·복수(福手 : 복 있는 사람)·복인(福人)·복승(福僧)·복장(福將) 등이다. 이상은 복자가 머리에 오는 경우이다.
그 다음 복자가 나중에 오는 숙어들의 보기를 들면 먼저 복을 동사의 목적어로 삼은 기복(祈福)·초복(招福)·발복(發福)·축복(祝福)·석복(惜福)·음복(飮福) 등이 있고, 다시 복을 수식 형용하는 다복(多福)··만복(萬福)·소복(小福)·박복(薄福)·지복(至福)·청복(淸福) 등의 숙어도 있다.
그밖에도 복과 같이 붙어 다니는 개념으로서 두자가 흔히 같이 쓰이고 있는 수복(壽福)·복록(福祿)·복덕(福德)·화복(禍福) 등의 복합어도 있다.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복이란 말의 실용 예를 들어보면 신년 정초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는 인사말, 그리고 편지를 끝맺을 때 ‘댁내에 큰복이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하는 경구 등이 가장 흔히 눈에 띄는 보기들이다.
그밖에도 좋은 일을 하면 ‘복이 돌아온다.’고 말하고, 궂은 일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라고 말한다. 생김새가 좋은 사람을 보면 ‘복스럽게 생겼다.’, ‘복이 있어 보인다.’라고 말하고,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복 없게 생겼다.’라고도 말한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개화기 이후에도 복음(福音)·복지(福地)와 같은 번역어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복지사회(福祉社會)와 같은 개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 서민생활에서는 복덕방(福德房) 출입이 잦은 ‘복부인’이란 말이 1970년대 이후 유행하더니, 1980년대에는 주택복권·올림픽복첨(福籤:복권) 등의 말이 일상용어 속에 새로 자리잡고 있다.
- 의식주 생활과 복의 상징 -
복의 조형적인 상징은 복자 및 복과 관련된 길상문자(吉詳文字)와 함께 한국인의 전통적인 의식주 생활의 여러 군데에서 숱하게 눈에 띈다.
먼저 의생활과 관련된 것부터 살펴보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맨 먼저 그를 싸주는 강보(襁褓)에 흔히 수놓은 글자가 복자이고 갓난아이의 베갯모(베개의 양쪽 마구리의 꾸임새)에도 복자를 수놓은 것을 자주 본다.
일반사회에서도 아이들의 돌옷, 부녀자의 한복에는 복자를 수놓거나 복자무늬의 옷감이 이용되었고, 궁중에서는 왕비나 비·빈의 원삼(圓衫), 공주의 활옷[花衣], 당의(唐衣) 등에 역시 복자 무늬를 수놓거나 복자 무늬가 든 감을 쓰곤 하였다.
비단 갓난아이의 강보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염집의 침구에는 요·이불·베개에 두루 복자 무늬가 든 감이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베갯모의 수 글자에는 복자와 복에 관련된 길상문자가 많이 눈에 띈다.
오복을 기원하는 의생활에서의 조형적 상징은 특히 전통사회의 안방에서의 부인네들 살림살이 주변에 널리 깔려 있다. 반짇고리·바늘겨레·자[尺] 등 바느질과 관련된 물건에도 복자가 자리잡고 있고, 특히 장신구에 있어서는 복자나 복을 상징하는 박쥐[蝙蝠(편복):의 한자어가 복과 같은 소리를 낸 데서 유래]는 가장 흔히 쓰이는 장식 주제가 되었다.
부인의 관모류에는 화관(花冠)이나 족두리 혹은 전모(氈帽)에 복자와 복과 관련된 길상문자를 수놓기도 하고 붓으로 적기도 하였다. 궁중에서나 반가(班家)에서 길사(吉事)가 있을 때 옷을 정장한 부녀들이 옷고름·안고름·허리띠 등에 매단 노리개류에는 복과 관련된 수(壽)·부(富)·귀(貴)의 세 글자를 엷은 구리판에서 오려내어 술(絲線) 세 줄에 달고 그 위를 매듭으로 장식한 문자삼작(文字三作),노리개가 있다.
또 오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도금(鍍金)한 박쥐를 아래위의 매듭 사이에 꿴 편복삼작(蝙蝠三作) 노리개가 있다. 그밖에도 복주머니가 있고 복자가 그려진 신발이 있으며, 복자무늬의 감으로 지은 여러 갈래 여러 가지의 옷가지들이 퍼지고 있었다.
식생활에 있어서는 음식류·식기류 등에 다같이 복과 관련된 상징조형이 널리 사용되었다.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한중록>을 보면 궁중에서도 왕세자가 “……두 살에 글자를 배워서 육십 여자를 쓰시고, 세살에 다식(茶食)을 드시매 수(壽)자·복(福)자 박은 것을 골라 잡수시고……”라는 기록이 눈에 띈다.
그러한 다식을 만들기 위해서 복자·수자를 새긴 다식판(茶食板)이 남아 있고 복떡·복희병(福喜餠)을 만들기 위해서 복자와 희자를 새긴 떡살 또한 널리 퍼져 있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민속에서 김쌈을 먹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한다. 복날에는 들깻잎으로 쌈을 해서 먹는데 그것도 복쌈이라고 일컫는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쌀을 씻는 조리를 새벽에 파는데, 그것을 사면 한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복조리(福笊籬)라고 일컫는다. 복자나 복과 관련된 길상문양을 그리거나 새긴 식기류로는 찬합·주발대접·수저·수저집·소반·번상·전골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도 복스럽게 먹는다고 칭찬하는가 하면 복이 달아나겠다고 꾸짖기도 한다. 제사를 마치고 제관이 제사에 쓴 술이나 제물을 먹는 것은 음복(飮福)한다고 말한다.
주생활에 있어서는 장롱·반닫이·삼층장·문갑의 가구류, 창문·벽걸이 등의 장식물에 복자와 복을 상징하는 길상문양 등이 자주 등장한다.
집터를 고를 때도 지덕(地德)이 좋은 복지(福地)를 찾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따르는 것은 복을 많이 누릴 수 있는 복가(福家)를 짓고자 하는 바램에서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을 옮길 때에는 다시 방위(方位)를 따지고 이사 날짜를 택일하는 것 역시 복가를 찾는 마음의 표현이다.
한편 방안 장식용으로 그려진 민화(民畫)는 관가의 것이건 민가의 것이건 그 중심적인 화제(畫題)가 복을 비는 표상들이다. 십장생도(十長生圖)의 그림이나 길상문자를 채색, 변형해서 회화화한 병풍 등이 보기이다.
여염집의 기둥이나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비는 춘방(春榜:입춘서)에서 흔히 보게 되는 것이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복자가 든 글귀이다.
- 이름 짓기와 복 -
복을 비는 마음은 한국인이 지은 여러 이름에도 나타난다. 사람에 대한 작명(作名)으로는 복동(福童)·만복(萬福)·수복(壽福)·복수(福壽)·현복(賢福)·복실(福實)·복녀(福女)·복희(福姬)·복란(福蘭)·복순(福順) 등이 복자가 이름 속에 든 흔히 보는 이름이다.
복바위·아들바위(三神바위)·복고개·복고치(福高峙)·복샘[福泉]·장수샘[長壽泉] 등은 자연물에 붙인 기복의 명칭이다. 그밖에도 동리이름·가게이름·암자이름 등에 역시 복자가 든 이름을 숱하게 보게 된다.
- 문학작품에 나타난 복 -
문학작품에서는 궁중문학이나 서민문학에 복이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한글창제 후 처음으로 나라에서 편찬하여 우리말 노래를 실은 ≪용비어천가≫는 그 제1장이 “해동 육룡이 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조선조의 궁정기사 작품인 <한중록>을 보면 혜경궁 홍씨가 처음 궐내에 들어가 인원왕후(仁元王后)를 뵐 때 왕후는 “아름답고 극진하니 나라의 복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한편 세자빈으로 책빈된 홍씨의 친정 부친은 “……백면 서생이 일조에 왕실에 척련(戚聯:척속)하게 되니, 이것은 복의 징조가 아니라 화의 기틀이 될까 한다.”고 오히려 복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궁중에 들어가면……말씀을 더욱 삼가서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소서.”라고 타이르고 있다.
광해군시대에 인목대비(仁穆大妃)의 나인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계축일기 癸丑日記>에 “……다행히 그 난에서 벗어나셔서 복이 있으신가 보더라.”,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어진 일을 하여도 복을 못 얻을까 두려워하는 법인데 하물며 사특한 일을 하여 어찌 복이 올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는 등의 대목이 보인다.
숙종시대의 민비폐비사건(閔妃廢妃事件)을 서술한 <인현왕후전 仁顯王后傳>에도 “국모는 만민의 복이라……”, “두분 대비께서 극진히 애중하게 여기시어 국가의 복이라 축수하시고……” 등의 복이란 말의 어용(語用)이 눈에 띈다. 궁궐 안에서도 복을 비는 마음은 여느 여염집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벼슬이 대제학·판서에 이르렀던 조선조 숙종대의 양반 문인 김만중(金萬重)이 쓴 <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에도 “한림상공은 오복이 구비한 상이요…”, “이러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하는 따위의 복에 관련된 구절이 눈에 띈다.
서민문학의 경우 가령 판소리 <심청전>을 보면 심봉사가 “다만 독녀 딸이라도 오복을 점지하여……”하며 딸의 복을 비는가 하면, 딸 심청은 삼신상을 차려놓고 “소녀 아비 허물일랑 이 몸으로 대신하고 저의 아비 눈을 밝게 하여 천생연분 짝을 만나 오복을 갖게 주어……”하며 아비의 복을 비는 대목 등 도처에서 복이란 말의 실용 예를 볼 수 있다.
나아가서 서민문학의 작품들에는 막연하게 추상적인 복을 비는 경우보다는 복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들어 빌고 있는 표현이 많아서 한국적인 복의 개념의 외연과 내포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그러한 고전 문학작품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음속으로 희구하고 있는 복의 표상은 중국의 ≪서경≫이나 ≪한비자≫에서 거론되고 있는 ‘오복’의 복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이란 그처럼 어려운 한문 전적을 들추어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비는 것이 아니다. ‘유호덕(攸好德)’이나 ‘고종명(考終命)’과 같은 어려운 문자 속은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나 ‘수’·‘복’·‘강녕’과 같은 한자조차 못 읽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무릇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다 같이 빌고 있는 것이 복이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구별 없이 설날의 새해 인사말로 나누는 복, 사사로운 편지 사연을 끝맺으면서 흔히 마지막의 경구로 비는 복 등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복의 한국적인 의미함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일상적인 서민생활의 문맥에서 희구하고 있는 기복내용을 서민문학작품의 경험적인 실용 예에서 추출, 범주화해보는 것이 지름길이 된다.
여기에는 우리 나라 어문학의 유산 가운데서도 가장 평민적인 민중예술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복을 비는 축원문 내용이 복의 표상을 들추어 내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된다. 가령 <심청전>을 보면 심봉사가 첫국밥을 지어 삼신상에 올려놓고 다음과 같이 딸의 복을 빌고 있다.
“……다만 독녀 딸이라도 오복을 점지하여 동방삭의 명을 주고 석숭(큰부자)의 복을 내려, 대순증자 효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수복을 고로 태여 외 붇듯 가지 붇듯 잔병 없이 잘 자라나 일취월장시킵소서.” 한편 심청이는 “……소녀 아비 허물일랑 이 몸으로 대신하고 아비 눈을 밝게 하여 천생연분 짝을 만나 오복을 갖게 주어 수복 다남자를 점지하여 주옵소서……”라고 축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축원에 이어 주인공이 온갖 고초를 겪다가 마침내는 복을 누리게 되는 해피엔딩의 줄거리를 가지는 판소리 작품에서는 그러한 복의 명세를 나열해놓고 있어 역시 복의 표상을 밝혀주고 있다.
예컨대 <춘향전>의 경우를 보면 “……이때 이판(吏判)·호판(戶判)·좌우영상 다 지내고 퇴사 후 정렬부인과 더불어 백년동락할 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이녀를 두었으니 개개히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壓頭:남을 누르고 첫째 자리를 차지함)하고 계계승승하여 직거일품(職居一品)으로 만세유전하더라……”고 끝을 맺고 있다.
한편 <흥부전>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흥부 내외는 부귀다남(富貴多男)하여 향수(享受)를 팔십하고 자손이 번성하여 개개 옥수경지(玉樹瓊枝:옥처럼 아름다운 나뭇가지) 같아서 자산이 대대로 풍족하니 그 뒤 사람들이 흥부의 어진 덕을 칭송하여 그 이름 백세에 민멸(泯滅)치 아니하더라.”
위의 몇 가지 보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서 희구한 복의 구체적인 표상은 수(동방삭의 명, 백년동락, 향수를 팔십하고), 그를 위한 강녕(수복을 고로 태여 외 붇듯, 가지 붇듯 잔병 없이), 귀(이판·호판·좌우영상 다 지내고, 직거일품으로), 그에 따른 공명(그 이름 백세에), 자식복(수복 다남자를 점지하여, 삼남이녀를 두었으니 개개히 총명하여, 내외는 부귀다남하여)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더욱 크게 묶어서 분류하면 수·부·귀·다남의 네 범주가 전통적인 복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 수의 복 -
우선 오래 산다는 것을 복으로 여긴다. 수는 그 자체가 삶의 성취요 큰 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나이가 회갑이 되면 수연(壽筵)이라 하여 오랜 삶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베풀어왔다. 그를 위해 오랜 삶을 축하하는 말(壽詞), 오랜 삶을 축하하는 술(壽酒), 오랜 삶을 축하하는 시(壽宴詩)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만수산 만수봉에 만수정(井)이 있더이다/그 물로 빚은 술을 만수주라 하더이다/진실로 이 잔 곧 잡으시면 만수무강하오리다.” 하는 따위이다.
물론 수를 누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서 오래도록 산다는 것이다. 장수를 비는 마음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기원한다거나 저승에서 ‘무한’한 삶을 누린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수라고 하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현세적인 개념,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이요, 그것을 초월한 ‘영원’이나 ‘무한’의 개념 같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한국적인 복의 세목 가운데서 수가 첫째로 꼽힌다는 것은 수를 위해서는 여느 다른 것들은 희생이 되어도 감내할 수 있다고 하는 속담들에서 드러난다.
가령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아도 사는 세상이 낫다.’는 따위이다. 무슨 일이 있건 어떤 꼴을 당하건, 땡감을 따먹을 만큼 가난해서 ‘부’를 못해도, 혹은 개똥이나 말똥에 굴러넘어질 만큼 천해서 ‘귀’를 못해도, 그저 오래오래 이 세상에 살아 ‘수’만 하면 된다는 현세긍정주의가 이들 속담에는 표백되고 있다.
‘이승’이나 ‘이 세상’이란 말은 결국 목숨을 지녀 누리는 세계, 생명의 세계라는 말이다. 따라서 수의 개념에는 현세긍정주의와 함께 자명한 이치로 생명긍정주의가 전제되고 있다.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느니, ‘죽은 석숭(石崇)이 산 개만 못하다.’느니, 혹은 ‘소여(小輿)·대여(大輿)에 죽어가는 것이 헌 옷 입고 볕에 앉았는 것만 못하다.’는 한국의 속담들은 바로 그러한 생명지상주의를 통속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보기들이다.
이러한 현세긍정주의·생명지상주의의 입장에서 보는 죽음은 가해자요, 삶은 피해자이다. 죽음은 재해처럼 덮치고, 삶은 죽음을 ‘당한다’고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조차 목숨의 수를 깎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무정세월’이라 느끼고, 그래서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사람을 뒤쫓고 있는 강박감이 한국인의 사생관과 시간관의 바탕에는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부의 복 -
수를 비는 마음이 그처럼 죽음에 쫓기고 있는 목숨이 죽음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오래오래 이승의 삶을 누리려는 소망에서 나온 것이라면 부를 비는 마음도 일차적으로는 가난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벗어나서 푸짐하게 이승의 삶을 누려보자는 소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생과 사, 수와 요(夭)가 짝이 되는 것처럼, 부는 빈(貧)과 짝이 된다. 수복을 비는 배경에는 유아사망률이 높고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40세도 넘지 못했던 전통사회의 흔한 단명·요절(夭折)이 있었던 것처럼 부복을 비는 배경에도 역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전통사회의 보편적인 빈곤현상이 깔려 있었다.
박지원(朴趾源)의 소설 <허생전 許生傳>을 보면 서울의 가난한 선비가 돈 1만금을 빌려서 전국의 과일을 매점해 두었다가 열배 값을 받고 되판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작품에서 주인공 허생이 “겨우 1만금으로서 나라가 기울었으니 그 얕고 깊음을 알 수 있구나(以萬金傾之, 知國淺深矣).” 하고 넋두리하고 있는 것처럼, 지난 세기말까지 전통사회의 개인생활이나 국가경제는 빈곤하였던 것이다.
서민문학인 판소리의 사설에는 그러한 가난에 대한 한(恨)이 도처에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흥부전>에서 흥부의 아내는 “지빈무(至貧無:지독히 가난함)의 이내 형세, 금옥 같은 애중자식 헐벗기고 굶주리니 그 아니 가련한가, 세상에 주린 사람 뉘라서 구원하며……이 세상에 답답한 일 가난밖에 또 있는가.” 하고 넋두리하고 있다.
부의 복을 빈다는 것은 우선 이처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소극적인 동기에서 나온 소망이다. ‘가진 돈이 없으면 망건 꼴이 나쁘다.’고 느꼈고, ‘돈이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이 있으면 금수강산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가난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했던 것이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부를 소망했던 것이다.
부를 비는 마음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일차적 소극적 동기에서부터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추구하려는 이차적·적극적 동기로 발전한다. 현실적으로 보다 더 많은 재물을 바라는 마음은 가난한 사람에게나 부자에게 있어서나 매한가지(마찬가지)이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처지가 바뀌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하는 탐(貪)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나라 고전문학에서의 부의 정형화(定型化)된 묘사에는 모든 것을 선별 없이 다 갖추어대는 일종의 망라주의·나열주의의 표현이 흔히 눈에 띈다.
가령 <옹고집전>을 보면 석숭(石崇)의 부자와 도주공(陶朱公)의 성세를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주인공이 누리는 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의 마당 꾸밈새를 이렇게 적고 있다. “앞뜰에 노적이요 뒤뜰에 잠옥이라, 울 밑에 벌통 놓고 오동심어 정자삼고, 송백심어 차면하고 사랑앞에 연못 파고, 연못 위에 석가산을 무어놓고, 석가산 위에 일간 초당을 지었으되 네 귀에 풍경이라…….”
또 <춘향전>의 춘향어미가 이도령을 사위로 맞아들일 것을 생각하고 주효를 차려내오는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장광설이 이어진다. “주효를 차릴 적에 안주 등을 볼짝시면 굄새도 정결하고 대양판 가리찜, 소양판 제육찜, 풀풀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메추리탕에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 채로 어스비슥 오려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치다리, 적벽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밤·찐밤·잔송이며 호도·대추·석류·유자·준시·앵두·탕기 같은 청술레를 칫수 있게 괴었는데, 술병치레 볼짝시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엽락금정 오동병과 목이 긴 황생병·자라병·당화병·쇄금병·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천은 알안자·적동자·쇄금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구비함도 갖을시고……” 가장 좋은 것을 빠짐 없이 두루 망라한다는 이러한 부에 대한 소망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나타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의 물질주의는 수의 현세주의와 함께 한국적인 현실주의의 두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의 소망이 추구하는 무선별의 망라주의는 물질적인 대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때로는 그를 넘어 정신적·신앙적인 차원의 세계에까지 번져가기도 한다. <심청전>을 보면 심봉사 아내가 일점 혈육 없음을 개탄하고 온갖 재물과 정성을 들여 공들이는 사설이 펼쳐진다.
“명산 대천 신령당, 고묘 총사 석왕사에 석불보살 미륵님전 노구마지 당 짓기라 칠성불공 나한불공 백일산제 제석불공 가사시주 연등시주 창호시주 신중 마치다리 적선 길닦기와 집에 들어 있는 날도 성주, 조왕 터주 제신 가까스로 다지 내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힘든 나무 부러지랴.”
이렇게 공을 들여 늦게 본 딸이 자라나 이번에는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아버지가 눈을 뜨리라는 말을 듣고 그 공양미를 마련하게 해달라고 다음과 같이 빈다. “상천일월 성진이며 하지 후토 성왕 사방지신, 제천제물 석가여래 팔금강보살 소소감응 하옵소소…….” 불교의 갖가지 불공이며 시주가 무교(巫敎)의 여러 귀신·잡신 섬기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나열되고 있다.
이러한 축원내용은 거기에서 현세적인 삶을 위한 무교와 불교의 융화를 보기도 하고, 혹은 모든 외래의 고등종교를 기복 종교화하는 우리 나라의 무속적인 기층문화를 보기도 하는 등 풀이가 가능하다.
그와 함께 그러한 다신론적 내지 범신론적 축원내용은 좋은 것은 두루 갖추고자 하는 한국적인 부의 추구가 물질적인 대상에서 신앙적인 대상으로 전위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 귀의 복 -
한국인의 복에 관한 표상 가운데서 특히 한국적인 특색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귀의 개념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식과 자손들을 위해서 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귀골로 생겼다.’, ‘귀격으로 생겼다.’, ‘귀태가 있다.’는 말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귀에 솔깃한 찬사가 된다.
상대방을 높이는 데에 가장 흔히 쓰이는 손쉬운 표현도 귀자를 얹히는 일이다. 상대방이 개인인 경우에는 귀공·귀관·귀체, 집안인 경우에는 귀댁·귀문, 회사나 학교인 경우에는 귀사·귀교, 나라인 경우에는 귀국·귀방이라 하는 따위이다. 사람이나 사람들의 모임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나온 부품도 역시 귀자를 붙여 높임을 받는다.
가령 남의 글을 귀간·귀서·귀찰·귀한·귀함이라 하는 것이 그 보기이다. 사람과는 관계없는 물건도 소중한 것은 귀중품이고 쇠붙이도 비싼 것은 귀금속이라고 일컫는다. 무릇 높은 것, 높여야 하는 것, 드문 것, 흔하지 않은 것, 공경받는 것, 공경해야 하는 것이 ‘귀’이다. 또한, 고귀한 것, 희귀한 것, 존귀한 것이 ‘귀’이다.
그 점에서는 귀란 비록 그에 이르는 길이 쉽지는 않으나, 그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가치개념이다. 사람도 누구나 노력을 하거나 학식을 쌓고 덕망을 쌓으면, 남의 공경을 받고 높임을 받는 고귀한 인격, 존귀한 인격이 될 수가 있다.
이처럼 보편적·개방적인 가치개념으로서의 ‘귀’가 한국인 복의 표상에 있어서는 높은 지위, 높은 벼슬, 곧 관작(官爵)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의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왕조사회의 독자들에게 대리체험과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우상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그러한 우상화를 위하여 거의 정형화되고 있는 서술의 하나가 계계승승 높은 벼슬을 하였다는 ‘명문거족출신형’이다.
조선시대의 가정소설을 보면 <창선감의록>·<사씨남정기>를 비롯해서 <숙향전>·<옥단춘전>·<양산백전>·<박씨전>·<홍계월전> 등이 모두 등장인물의 벼슬치레에 관한 서술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본다.
심지어 조선조 일대의 기인(奇人)이요 반항아요, 반역죄로 처형된 허균(許筠)이 쓴 소설로 금서가 되었던 <홍길동전>조차도 주인공의 우상화를 위한 위와 같은 정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화설 조선국 세종조 시절에 한 재상이 있으니 성은 홍이요 명은 모이라, 대대 명문거족으로 소년등과하여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매 물망이 조야(朝野:조정과 민간)에 으뜸이오……” 이처럼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귀’가 높은 벼슬로 이해되고 있었으며, 높은 벼슬을 했다는 것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치기준으로 일반적인 승인을 얻고 있었던것이다.
이러한 귀의 개념은 전통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관 형성에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수나 부의 개념과는 달리 귀는 여러 가지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가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수를 하는 데에는 오래 사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부를 하는 데에도 많은 재산을 모으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귀를 하기 위해 관작을 차지한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 가운데의 하나에 불과하다. 예나 지금이나, 또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오래 사는 것을 수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돈이 많은 것을 부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는 달리, 때에 따라 곳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벼슬을 하는 것을 귀로 보지 않을 수는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이지함(李之菡)과 같이 “귀하기는 벼슬하지 않는 것보다 더 귀함이 없다(貴莫貴於不爵).”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본시 다양한 가치관의 전개 가능성을 안고 있는 귀의 개념이 기복의 구체적인 표상에 있어서는 높은 벼슬을 하는 것으로만 일방적으로 이해되어왔다. 그것은 사람을 그가 차지한, 또는 차지하지 못한 벼슬에 따라 높혀 보고 낮추어 보는 인간관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관작의 고하, 또는 관작의 유무가 사람을 평가하는 배타적인 기준이 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사람이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하는 뜻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입신’이다, ‘청운의 뜻’이다 하는 말은 모두 벼슬을 해서 이름을 떨쳐보겠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그것은 출세주의 인생관을 궤도화하여 놓고 있다고도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사회조직·사회질서·사회생활의 여러 구석에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의식을 심어 놓기도 하였다. 그 반면에 관작을 하는 것을 귀로 보는 가치관은 한국사회의 높은 향학열·교육열을 낳게 한 중요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전통사회에 있어서 관작을 하려면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등용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나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를 보면 정월 초하루에는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을 하시오.’ 하는 인사말이 덕담이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수가 내 목숨의 복이요, 부가 내 권속의 복이라고 한다면 귀는 내 가문의 복이다. 귀를 하겠다는 첫 번째 동기는 그 점에서는 나라를 위해서라기보다도 가문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족보는 이러한 가문의식의 가시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를 축으로 하는 동심원의 세계가 내 목숨의 복을 비는 ‘수’, 내 권속의 복을 비는 ‘부’, 내 집안의 복을 비는 ‘귀’로 확대되면서 다시 다음 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자손의 번성함을 비는 다남자의 기원으로 연결된다.
- 다남자의 복 -
수·부·귀에 이어 다남자를 빌게 됨으로써 복의 표상은 당대의 복에서 차대(次代)의 복으로 새로운 차원을 열게 된다. 다남자의 기복을 통해서 복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시간의 차원으로 진입해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양성 가운데서 오직 한쪽의 성, 남성만을 선호하는 이 다남자의 희구는 바로 그럼으로 해서 역설적으로 한국인의 복의 성립과 완성, 복의 운영과 수성을 위해서 비로소 여성을 끌어들이고, 여성들의 참여와 역할에 큰 비중을 주게 된다.
수는 처음부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당자만의 복이기 때문에 젖혀놓고 본다면 가족집단의 공동체적인 복으로서의 부와 귀는 전통사회에 있어서는 다같이 남성들의 역할에 그 성취가 책임지워지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남자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득남의 복은 일차적으로 여성들의 역할에 그 성취의 책임이 전가되어 왔다.
전통사회에서 시집을 가고서도 아이를 못 낳는 여성, 아이는 낳아도 아들을 못 낳는 여성의 설움과 아픔은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의 판소리문학에 다음과 같이 표백되고 있다.
“……무삼 죄가 진중하여 일점혈육이 없었으니 육친무족(六親無族) 우리 신세 선영향화 뉘라 하며 사후 감장 어이하리……”는 퇴기 월매가 성가라는 양반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되 사십이 가까워 오도록 한 점의 핏줄을 보지 못하여 수심에 빠져서 하는 넋두리이다.
“옛 글에 있는 말씀 불효삼천에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였으니 자식 두고 싶은 마음 뉘 없사오니까, 소첩의 죄가 응당 내침 즉 하오나……”는 자식이 없어 억울한 한을 품은 심봉사 앞에서 곽씨부인이 하는 넋두리이다.
부부 사이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이렇듯 진중한 죄요 억울한 한이요, 불효삼천에 무후위대라 여겨졌던 것이다. 이처럼 다남자의 복을 빌던 전통가정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는 것이지 부부간의 애정이 아니었다. 더욱이 옛날의 혼인이 당사자들끼리의 선택에 의한 연애관계의 결실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부모들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중매혼인 경우, 며느리를 고르는 시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들을 낳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모보다는 아들을 왕성하게 낳을 수 있는 ‘자왕상(子旺相)’이 며느리를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여속고 朝鮮女俗考≫를 보면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여 지아비가 아내를 내칠 수 있는 일곱 가지 조목을 들고 있다. 첫째는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舅姑), 둘째는 아들 못 낳음(無子), 셋째는 음함(淫行), 넷째는 투기함(嫉妬), 다섯째는 나쁜 질병가짐(惡疾), 여섯째는 말많음(口舌), 일곱째는 도둑질함(盜竊)이다.
여자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내침을 당하는 것이 칠거지악 중 두 번째 조목이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아내의 절실한 소망이 아닐 수 없었다.
민속에서는 돌부처 코를 떼어 가루를 내어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미신이 있어 아낙네들은 석불이나 마애불을 찾아가 그 돌 코를 깎아 돌가루를 먹기도 하였다. 코를 남성의 성기로 유감(類感)한 데서 나온 이 절실한 기자(祈子) 풍습은 오늘날 도처에서 발견되는 무비(無鼻) 석불의 유래로 알려지고 있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전통사회에서는 여자의 궁극적인 소임이요 소망이었다는 것은, 위로는 군왕의 비빈(妃嬪)에서부터 밑으로는 여염집의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한중록>을 보면 혜경궁 홍씨가 왕자를 낳자 영조는 크게 기뻐해서 “네 몸에서 이런 경사가 있으니 나라에 대한 공이 측량 없다.”라고 치하를 하고 있다.
‘효자는 백행지 원이라’ 백가지 행복의 근원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여자에 있어서는 ‘평생의 큰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아들을 바라는 마음, 이른바 후사를 잇겠다는 사속관념(嗣續觀念)은 동양에서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또한 보편적인 문화현상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특히 조상을 공경하고 분향하며 제사지내는 일을 높이 친 유교의 근본 숭상제도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가문의식·족보제도가 아들을 바라는 다남자의 복을 더욱 부추기게 했던 것이다. 분석적으로 본다면 복에 관한 한국인의 전통적인 표상은 수·부·귀·다남자의 네 범주로 갈라진 듯이 보이나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복의 네 눈이 하나의 그물 속에 서로 꼬리를 물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데에 복의 구조가 가지는 제합성이 있다. 수를 위해서는 부가, 부를 위해서는 귀가, 그리고 다시 귀를 위해서는 다남자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수·부·귀다남자는 동심원(同心圓)의 원환(圓環)의 수레바퀴를 돌고 또 돌리고 있었다.
혹은 수·부·귀·다남자라고 하는 술어적인 표현을 주어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자아·가족·가문·후사로 바꾸어 본다면 거기에는 ‘나’라고 하는 동심원의 축(軸)을 중심으로 해서 ‘집’이라고 하는 수레바퀴가 나의 아들로 해서 집의 대(代)를 잇는 궤도를 달려가는 원환의 순환구조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복의 구심적인 핵이 ‘나’라고 한다면 그의 원심적인 궤도는 ‘집’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 화복천정과 복인복과 -
전통적인 한국인의 삶을 그 밑바탕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본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복으로 보아왔느냐 하는 복의 내포적·외연적 의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어왔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심층적인 행동 동기나 한국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복이란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용을 살펴보면 ‘어떻게’를 들추어주는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복을 빈다.’라고 말한다. 기복·축복·초복(招福) 등의 한자숙어도 같은 뜻이다. ‘발복(發福)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운이 틔어 복이 닥친다.’는 뜻이다.
앞에 든 말투는 사람이 기도나 축원을 함으로써 복을 불러들인다는 것이요, 뒤의 말투는 복이 스스로 때가 되어 찾아온다는 뜻이다.
전자에 있어선 복은 사람의 행위에 타동되는 목적어가 되고 있고, 후자에 있어선 복이 스스로 자동하는 주어가 되고 있다. 한쪽에는 ‘인위’에 의해서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기대가 함의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한쪽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운명’에 의해서 복은 ‘주어지는 것’이라는 해석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복에 관련된 여러 어용의 실례를 보면 복을 어떻게 누리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이해주는 위와 같은 인위론과 운명론이 다 같이 무성함을 알 수 있다. 먼저 운명론적인 어용의 실례부터 살펴본다.
복이란 사람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나타난다는 뜻의 한자숙어로는 복분(福分)·복상(福相)·복수(福數)·복운(福運)·복수(福手) 등이 있다.
복이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뒤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다복하게 혹은 박복하게 타고난다고 믿는 이러한 운명론의 또 다른 표현이 우리말의 팔자타령이다.
팔자(八字)는 사람이 출생한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간지(干支)의 여덟 글자로, 바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의 이 간지팔자가 그 사람의 복·화·생·사를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부모가 반 팔자’, ‘팔자도망은 독 안에 들어도 못한다.’는 속담은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린다는 팔자타령이다. ‘쪽박을 쓰고 벼락을 피해’, ‘뒤로 오는 호랑이는 속여도 앞으로 오는 팔자는 못 속인다.’라는 속담은 팔자도망을 꾀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그의 불가함을 재강조하는 팔자타령이다. 고전문학작품 가운데에는 복의 운명론을 주장하는 구절들이 많이 눈에 띈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에 보면 “사람이 세상에 나매 수요장단과 화복길흉은 천정(天定)한 수니……” 또는 “매사가 다 천정(天定)이요 인력으로 못하니……” 등의 대목이 보인다. 이른바 화복천정설(禍福天定說)을 가르치는 말귀이다.
<인현왕후전>에도 “화와 복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또는 “예로부터 홍안박복과 성인의 궁액(窮厄:재액으로 고생함)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터인즉……” 등의 대목이 눈에 띈다.
서민문학에서는 <흥부전>의 “애고 답답 설움이야, 이 노릇을 어찌할꼬, 어떤 사람 팔자 좋아……부귀공명 누리면서……” 하는 흥부의 신세타령이 화복천정설의 직설적인 표현이다.
복에 관련된 어용이나 구문(構文)에는 복의 운명론만이 아니라 인위론을 시사해주는 실례도 많이 있다. 예컨대 ‘복선화음(福善禍淫)’이라는 말은 착한 사람에게는 복이, 궂은 사람에게는 화가 돌아간다는 말이다.
착한 사람이 된다,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인위의 영역이라고 본다면, 운명과 의지의 관계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인사(人事)’가 어느 정도 ‘천명(天命)’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여기에 표백되어 있다.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고 하는 속담도 하늘이 복을 내리는 성사에 사람의 모사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복의 표상에 있어 일반적인 특징은 복이 설혹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할 경우에도 그러한 하늘의 뜻이 맹목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다. 복을 주고 화를 주는 것이 눈이 어두운 운명의 자의(恣意), 무동기의 또는 무상(無償)의 조화(造化)가 아니라는 믿음이다.
한국적인 복 사상의 밑바탕에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복을 받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인복과(福因福果)’라는 말이 그러한 믿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서 ‘복인’은 좋은 일, 착한 일을 가리킨다. 좋은 일이 원인이 되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복인복과이다.
아마도 이것은 복 사상에 미친 불교의 영향이라 추측된다. 이처럼 화복을 맹목적인 하늘의 무동기·무상의 소여(所與:주어진바)가 아니라 인위의 행실에 대한 인과응보로 보려 했던 믿음은 복의 절대적인 운명론의 지배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윤리적·실천적 동기 부여에 길을 터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복이 있고 없음이 비록 팔자소관이요 천정의 운수라고는 하나, 착한 일을 되풀이해서 복인을 쌓게 되면 언젠가는 복과가 돌아와서 이른바 ‘팔자고침’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사나운 운수를 어려운 일로 대신해서 면제받는다는 이른바 ‘팔자땜’이란 말에도 표백되고 있다. 복전(福田)·팔복전(八福田)이란 개념도 복인복과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복전’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와 부모를 공양하고 빈자를 불쌍히 여기는 선행의 결과로 복덕이 생긴다는 뜻에서 그 복인이 되는 삼보·부모·빈자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팔복전’도 역시 불가에서 나온 말로 복을 심는 팔인(八因)이 있는 밭, 곧 불전(佛田)·성인전(聖人田)·승전(僧田)·화상전(和尙田)·아자리전(阿闍梨田)·부전(父田)·모전(母田)·병전(病田)의 여덟 가지 밭을 가리키는 말이다.
복인을 복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처를 공양하면 밭에서 먹을 것을 거두어들이듯 복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다. 복을 밭에서 거두어들인다는 이러한 생각은 옛글에 있어 복을 곡식처럼 ‘심는다’, ‘기른다’는 표현, 또는 곡식처럼 ‘아낀다’는 표현을 낳고 있다.
<한중록>에는 “아이를 부디 잘 기르되 의복을 검소히 하는 것이 복을 아끼는 도리라.”, “검박을 숭상함은 재물을 아낌이 아니라 복을 기르는 도리오이다.”하는 말투들이 보인다. 화복은 이렇게 보면 한갓 팔자의 소관이 아니라 복을 심고 기르고 쌓고 아끼는 사람의 행실, 사람의 성품에 무관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행실, 어떠한 성품이 복과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복을 ‘어떻게’ 누리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고전문학에서 이에 관련된 구체적인 예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자고로 후복(後福)할 사람은 초년고생을 겪게 되는 법이라.”, “모친께서는 첫 복록을 일가 친척에 골고루 나누어주고 집에는 한 되의 쌀도 남겨두지 않으셨으매……”, “아름답고 극진하니 나라의 복이라.”,
“말씀을 더욱 삼가서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소서.”, “검박(儉朴:검소하고 질박함)하는 것이 복을 아끼는 도리라.”, “이것은 왕비로서 드문 일이니 저희들 평생 조심하고 부지런함을 힘입어서 길이 복을 누릴 듯이 기특하게 여겼더라.”, “이것이 모두 당신의 본질이 지극히 착하시기 때문에 자손이 대신하여 복을 누리는 줄 알고 또한 심중에 위로 받고 기뻐하더라.”(이상 한중록).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어진 일을 하여도 복을 못 얻을까 두려워하는 법인데 하물며 사특한 일을 하여 어찌 복이 올까 믿을 수 있겠습니까.”(계축일기). “원컨대, 세 자매는 자녀를 교훈하여 덕을 쌓고 복을 심어 후손까지 영화가 미치게 하소서.”(인현왕후전). “한림 상공은 오복이 구비한 상이요, 겸하여 유씨 대대로 적덕이 많사오니……”, “이러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앙화(殃禍:적악의 과보로 받는 재앙)를 받는 법이로다.”(이상 사씨남정기).
이상의 몇 가지 예를 보더라도 이미 복을 누리게 될, 또는 앞으로 복을 누리게 되리라 기대되는 사람의 성품과 행실이 정형화되어 밝혀지고 있다. 우선 ‘후복’·‘초년고생’이라고 하는 개념에는 찰나주의·순간주의적인 향락에서 벗어나서 복과라고 하는 복인의 보상을 뒤로 미룬다는 금욕적·자기절제적 동기가 함의되어 있다.
그리고 이처럼 ‘미래’로 유예된 내지는 연기된 보상을 위해서 ‘현재’에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름답고 극진함’이요, ‘삼감’이요, ‘검박’이요, ‘조심하고 부지런함’이요, ‘참함과 어진 일’이요, ‘덕을 쌓는 것’ 곧 적선(積善)·적덕(積德)이다. 이 역시 금욕적·자기절제적인 덕목이다.
- 현대사회와 복 -
복은 전근대적인 농경문화시대에 있어서 한국인의 삶을 동기지운 행복관이다. 그 바탕에 깔린 근본사상은 ‘수’의 생명지상주의·현세긍정주의, ‘부’의 물질주의·현실주의, ‘귀’의 출세주의·입신양명주의, ‘다남자’의 가문주의·대가족주의 등이다.
절대적인 빈곤에 묻혀 있던 전통사회에서 이러한 복 사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던 요(夭)·빈(貧)·천(賤)·무후사(無後嗣)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탈출동기에서 잉태된 것으로 여겨진다.
보다 더 오래 살고, 보다 큰 재산을 모으고, 보다 높은 벼슬을 하고, 보다 많은 아들을 가지고자 하는 복의 추구는 ‘양(量)’의 선을 추구하는 물량주의의 윤리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 단순히 팔자소관이 아니고 적덕·적선의 복인을 쌓은 결과라고 본 데서 복 사상의 도덕적·실천적 계기가 있다. 산업화를 이룩함으로써 절대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고, 민주화를 이룩해서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가 인정되는 현대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복의 개념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요인도 드러난다.
‘귀’의 개념 속에 함축된 관존민비의 사상과 ‘다남자’의 개념 속에 함축된 남존여비의 사상 등이 그것이다. 거기다가 소아사망률이 격감하고 오히려 ‘인구폭발’의 우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는 다남자의 복이란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행복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오래 사는 것과 그저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수’와 ‘부’의 행복관도 자칫하면 향락주의나 금전만능주의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
그에 덧붙여 수·부·귀·다남자가 모두 내 목숨의 복, 내 권속의 복, 내 가문의 복, 내 후사의 복이라는 점에서 복 사상의 바탕에는 개인주의·가족주의·자아중심주의의 일면이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도 있다.
거기에는 나(私)를 초월하는 공(公)의 지평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 사상은 자칫하면 나라보다 집안이나 나를 우선하는 지사무공(至私無公)의 이기주의로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수·부·귀·다남자의 복사상이 가지는 긍정적인 가치는 생명지상주의·인간주의·현실주의·성취주의·가족주의 등의 덕목이라 생각된다.
근대화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이룩한 고도성장의 문화적인 요인으로서 흔히 유교의 전통이 거론되고도 있으나, 그러한 해석은 유교의 전통이 더욱 강력하게 살아 있던 조선조 전통사회에서의 경제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이룩한 고도성장의 요인은 유교적인 구속에서부터도 해방된 복의 추구에서 찾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복 사상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기여한 가장 큰 실천적 기능은 생명의 절대긍정, 현실의 절대긍정에 바탕을 둔 ‘생존의 윤리’와 ‘살아남기(survival) 위한 윤리’에 있다고 풀이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문화와 한국역사에 뿌리를 내린 ‘평화주의’에 상통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