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서의 2박3일
- 2007년의 여름휴가 -
개동
낮이라도 너무 적막하고 스산한 느낌이 드는,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등골이 오싹할 만한 이야기 거리 몇 개는 만들고도 남음 직한 풍경이다.
지금도 새벽이면 교실 옆으로 멧돼지떼가 출몰한다니 심장이 어지간해서는 그곳에서 하루를 버티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충청북도 동량면 지동리에 있는 이미 폐교가 된 옛 지동초등학교다. 원래는 저 아래 충주호의 한가운데에 마을과 함께 자리 잡았던 이 학교는 충주댐 건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근처 옥녀봉 기슭에 네 칸짜리 교실이 되어 패잔병처럼 쫓겨 온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폐교의 딱지가 붙고 말았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곳을 휴가지로 택한 것은 2년째 그곳에서 혼자 살아가며 사람을 좋아하고 늘 기다리는 사람 좋은 그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폐교를 충북 교육청으로부터 임대받아 '생태학교' '건강교실' 민족무예인 '경당'등을 운영하며 적막하고 스산한 그곳을 지켜오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가족이 있으나 자녀의 학교, 부인의 직장 문제 등으로 함께 내려올 수가 없어서 몇 년 전부터 생홀아비 신세다.
그러나 마지막 날 간단한 치료와 건강관리 요령을 듣긴 했지만 2박3일의 휴가 기간을 '생태'나 '건강' 그리고 '민족무예'를 배우러 간 것은 아니다.
또한, 평소에는 개인적으로 만나러 간 일도 있었지만 이번에 그곳을 찾은 것이 그 한 사람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20여 년 전, 내가 세계관을 바꿔 나갈 때 함께했던 옛 동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번 이상 나라에서 제공하는 숙식의 혜택을 받아본 경험들이 있는 즉,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불사르던 옛 동지들이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나는 그들과 만 3년을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형제애보다 더 진한 동지애를 만들었었고 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나이가 많아 선배요, 형이라 불리지만 후배들 보기는 늘 부끄럽다.
이제 아이들 숫자가 더 많아진 우리는 3년 전부터 연례행사처럼 그곳을 찾는다. 조직이 와해된 지금은 모임이라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먹고 마시는 것이 일과지만 우리는 항상 혈육을 만난 듯 반갑고 아이들은 2박3일을 형제, 자매들처럼 정겹게 지낸다.
산이 있고 물이 있는 그곳을 찾는 이유가 어쩌면 아이들을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고만고만한 아이들만 20여 명이다 보니 어디 마땅한 데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중한 시간을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만 교통편도 여의치 않은, 서울이나 인천. 충남, 그리고 경기 서부인 우리 집에서도 150여 키로나 되는, 하루에 버스 세 번 다닌다는 첩첩산중인 그곳을 택할 리는 없다. 단 한 가지 동지로 맺어진 인연은 세월이 흐른다고 쉽게 잊히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다.
3년째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폐교 지킴이, 우리 중의 하나인 그가 이곳에 있는 한,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특별한 이유가 없이도 우리는 내년 이맘때면 이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떠나던 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던 하늘이 다음날은 일기예보와는 달리 한여름의 열기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살판난 것은 아이들이었다.
차를 몰아 유원지를 찾았으나 어젯밤 내린 집중호우에 물이 너무 더럽고 깊어 아이들에게는 위험하기도 했다.
다시 나와서 상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유원지 바깥인 데도 청소비 조로 1인당 300~500원을 요구했다. 유원지 입구에서 수백 미터의 거리는 되는데 오토바이를 몰고 따라와 영수증을 내민다. 이곳도 유원지에서 속한단다. 그러나 일일이 따지자니 이미 물에 발을 담그고 깔깔대는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가 않아 조금 전 나오면서 환불받았던 요금을 고스란히 다시 바쳐야 했다.
대부분은 그렇게 대응하다 보니 합법을 위장한 갈취가 성행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야트막한 냇가에 몰아넣어진 아이들은 어른들의 뒤틀린 심사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그야말로 이글거리는 불볕 아래서도 지칠 줄을 몰랐다.
바닷가가 고향이던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위험하다고 통제만 받았지 누구 하나 수영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이처럼 부모가 데려와 지켜주는 가운데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정말 부러웠다.
아이들의 해맑음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주거니 받거니로 야영(野營)을 즐겼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을 빼면 어른들의 휴가는 사실 낮보다는 밤이 더 즐겁기 마련이다. 술 마시는 사람으로서는 뙤약볕에서 안주를 구워 낮술에 취하느니 풀벌레 소리와 밤의 적막을 즐기며 마시는 것이 어쩌면 더 운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침보다 먼저 일어나는 산새들의 지저귐에 산도 기지개를 켜고 폐교도 우리들 때문에 비로소 사람 냄새가 난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너머로 최고 수심이 200미터라는 충주호가 폭우에 떠밀려온 잡쓰레기로 몸살을 하고 있다.
이번에 집중호우가 없었고 날이 좋았더라면 작년에 누치를 건져와 함께 구워 먹었던, 나이 들어 고향을 떠나기도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충주호 어부가 된 83살의 박 영감님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이 귀갓길의 아쉬움이었다.
첫댓글 개동 시인님! 옛 동지들을 만나신 기쁨 컸겠습니다... 생홀아비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그 분 또한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견 부럽기도 하구요... ^^*
그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새롭고 활기가 돋습니다. 사명인듯 그곳을 지키는 그 동지는 정말 대단 하지요.
정말 옛동지들과의 만남 그리고 오랫만의 회포들이 가슴설레게 하는 폐교에서의 휴가 멋지십니다 부럽습니다 ㅎㅎ
아~~정말 풋풋한 정이 느껴지는군요.....가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