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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시 풍속
(1) 정월
① 설
음력 1월 1일 설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원단(元旦)·원일(元日)·정초라고도 한다. 설은 오래 전부터 한 해의 출발점인 정월 초하루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 왔으며, '새롭게 출발한다', '근신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해가 시작되는 첫날은 모두 언행을 삼가고, 새해를 맞는 마음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 설옷 : 이날은 남녀 노소·빈부 귀천의 구분 없이 일손을 놓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이 날 입은 옷을 설빔 또는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 차례 : 화양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기 차례를 그믐날 저녁에 지낸다. 4대조까지 신주를 모셔둔 사당에서 지내며, 사당이 없는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대청에서 모신다. 원근의 자손들이 장손의 집에 모여 차례를 극진히 모시면서 새 해를 맞이한다.
이 날은 조상신뿐만 아니라, 가택신에게도 세찬이나 간단한 소찬을 갖추어 차례를 지내며, 또,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점이나 창고에서, 공장을 경영하는 사람은 공장에서,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 선상에서 따로 상을 장만하여 무탈과 번창을 빈다.
○ 음식 : 설날에 장만한 음식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절식은 떡국이며, 세주로 민가에서는 대개 약주 또는 청주나 탁주를 썼고, 강정 등 세찬도 장만한다.
○ 성묘와 세배 : 설날 아침 음복을 하고 나서, 자손들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한다. 차례와 마찬가지로 새로 장만한 음식을 묘 앞에 진설해 놓고 자손들이 조상께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특히, 당내친들은 함께 차례를 지내고 웃대의 산소부터 차례로 성묘를 한다.
성묘를 다녀오면, 집안 어른이나 이웃의 웃어른을 찾아가 세배를 한다. 옛날에는 세배를 다닐 때 동년배의 친척이나 친구들끼리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어른을 찾아 뵙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생자(生子)·득관(得官)·치부(致富)·소원 성취를 바라는 내용의 덕담을 건넨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복돈이라 하여 세배돈을 주며, 젊은이들에게는 세찬과 세주를 대접하기도 한다.
② 점보기
○ 토정비결(土亭秘訣) : 주지하다시피, 「토정비결」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함)이 만든 도참서(圖讖書)이다. 개인의 생년월일을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으로 나누어, 태세수에 나이를 합하고 이를 8로 나누어 남는 숫자를 첫 괘로, 월건수에 생월(生月)의 일수를 합하여 6으로 나누어 남는 수를 둘째 괘로, 생일에 일진수를 합한 수를 3으로 나누어 남는 수를 마지막 괘로 잡아 이를 차례로 놓고 연운(年運)과 월별 운의 길흉 화복을 점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정초가 되면 이런 풍속이 행해지고 있다.
○ 날씨점 (日氣占) : 설날 아침의 일기를 보고 그 해의 시절을 점친다. 천기점 혹은 날씨점이라고도 하며, 주로 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본다. 바람 한 점 없이 맑거나 구름이 누르스름하게 보이면 그 해 풍년이 들지만, 빨간빛을 띠면 가물고, 푸른빛을 띠면 가물거나 풍해가 있으며, 검은 구름이 가득하면 수재(水災)를 면키 어렵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농사일에 북풍을 좋은 것으로 여겼으나, 어촌에서는 남풍을 오히려 좋다고 믿었다.
○ 바늘 실꿰기 : 보름날 밤에 바늘에 실을 꿰어 보아 수험생의 합격 여부를 미리 알아본다.
○ 나무 새순 보기 : 나무의 눈을 보아 어느 쪽이 더 왕성한가를 보고 그해의 길흉을 점쳤다.
○ 잠 안 자기 : 섣달 그믐밤에는 잠을 자면 머리가 희어 진다거나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하여 일부러 아이들은 밖에서 논다.
③ 대보름
음력 1월 15일 대보름은 설날 추석날과 함께 우리 겨레가 즐겨온 큰 명절로 상원(上元)·상원절(上元節)·원소(元宵)·원소절(元宵節)·원야(元夜)·원석(元夕)·대망월(大望月)이라고도 한다.(7월 보름을 중원(中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많은 세시 풍속이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풍요와 생산력을 상징하는 달이 농경(農耕)과 관련이 깊기 때문인데, 달은 곡물 생산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지신의 신앙 체계에 들어 있는 천체로, 새해 첫 만월이 되는 대보름은 달과 관련된 갖가지 제의(祭義)를 행한다.
○ 차례(茶禮)와 음식 : 각 가정에서는 동이 뜨기 전에 4대 이전의 조상과 가택신(家宅神) 그리고 농신에게 제를 올린다. 때로는 차례상 앞에서 주부가 간단하게 비손하는 것으로 끝내기도 한다.
보름 별식은 오곡밥·약밥·복쌈·나물 등이다. 보름 전날 여러 가지 곡식을 넣어 잡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보름날에는 찹쌀·대추·밤·잣·팥 등을 섞어 시루에 쪄서 약밥을 짓고, 김이나 마른 취에 밥을 싸서 복쌈을 만들어 성주님에게 노적(露積) 쌓듯이 높이 쌓아서 올린 다음에 먹었다. 특히, 상원날 김을 먹어야 곡식이 잘되고 부자가 된다고 하여 김으로 만든 복쌈을 즐겼다. 호박고지·무고지·외고지·버섯·고사리 등을 말려 두었다가 나물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먹는다. 보름에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 당제(堂祭) : 보름날 밤이면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당(堂)이나 거목 혹은 거석에 제를 드려 일년의 농사나 어장의 풍성을 바라는 행사를 올린다. 대개는 보름에 지내지만 어느 부락에서는 가을에 지내기도 한다.
○ 불놀이 : 보름의 풍속중 가장 성했던 놀이는 불놀이다. 화양에서는 주로 불싸움과 잰부닥불 그리고 논밭 두렁 태우기를 했다.
불싸움은 깡통에다 불을 피워 돌리면서 이웃 마을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잰부닥불은 14일 밤에 마당에다 통대나 피마잣대 또는 고춧대 등을 모아 두고 불을 피우는 불놀이다. 타는 소리가 요란할수록 그 해 보리 농사가 잘 되며 악귀도 멀리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무병 기원의 뜻으로 자기 나이만큼 그 불을 뛰어 넘는다. 밤에 마당에 대나무를 놓아 폭죽을 하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하여 자지 않고 수세(守歲)를 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또한 논·밭둑에도 불을 놓아 쥐를 쫓고 풍흉을 점쳤다.
○ 복조리 : 보름날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복조리를 사서 방문 위나 방귀퉁이에 걸어 둔다. 복을 긁어 담는다는 의미에서 기인된 풍속으로, 여기에 동전을 넣어 두기도 한다. 그믐날 자정 이후에 복조리를 사서 거는 곳도 있다.
○ 귀밝이 술 : 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면 정신이 나고 귀가 밝아지며 한해 동안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고 한다. 이명주(耳明酒)·명이주(明耳酒)·치롱주(治籠酒)·총이주(聰耳酒)·유롱주(유籠酒)라 한다.
「경도잡기」·「열양세시기」·「동국세시기」 등에 소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요한 보름 풍속이었던 것 같다.
○ 부럼 : 보름날 밤에 호두·날밤·잣·은행 등을 소리나게 깨물어 부수면 일년 내내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 소에게 밥주기 : 14일 저녁이나 보름날 아침에 소에게 밥과 나물을 준다. 소가 무엇을 먼저 먹느냐에 따라 점풍(占豊)을 하는 것으로, 만약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지만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 짐승 거동 보기 : 보름날 새벽, 짐승의 거동을 보아 그 해의 운세를 예견한다. 즉, 소가 일찍 거동을 하면 풍년이 들 조짐이다. 새벽에 까치가 울면 풍년이 들고 마을과 집안이 태평하며, 까마귀나 참새가 울면 흉년이 들고, 마을과 집안이 시끄럽다. 개가 짖으면 도둑이 많다고 한다.
○ 새 쫓기 : 정월 14일 또는 15일 아침에 마당이나 들에 나가 새를 쫓는 시늉을 하면서 긴 막대기를 휘두른다. 그 해 새의 피해를 막아보려는 기풍(祈豊)이다.
○ 물 안 주기 : 보름날 남에게 물을 주지 않는다. 만약 보름날 남이 자기 집에 와서 물을 먹게 되면 농사철에 논에 물이 모자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달 점치기 : 보름날 달의 모습을 보고 농사점을 친다. 달이 떠오르는 자리, 색깔, 대소 등에 따라 그 해의 풍흉을 안다. 달빛이 희면 우량이 많고 붉으면 한발이 심하며, 진하면 풍년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이 남쪽으로 치우치면 해변에 풍년이 들고 북쪽으로 치우치면 산촌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 매성이 심기(부스럼 심기) : 정월 14일이나 15일 저녁에 삶은 팥을 자기 나이만큼 가지고 밭에 나가서 묻는다. 무병을 소원하는 액막이 풍습이다.
○ 방실 : 할머니가 첫 손자의 배내옷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집안의 수험생이 시험에 합격한다는 속설이 있다.
○ 더위 팔기 : 보름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도우(내 더위)"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더위를 파는 것이 되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방이 이를 알아차리고 대답 대신에 더위를 사지 않겠다는 뜻으로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하면 비겨서 서로 무사하게 된다고 한다.
○ 제웅 : 제웅이란 짚으로 허수아비 모양을 만들어 그 속에 직성(直星)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을 적어 넣고, 노자 동전 혹은 쌀을 함께 넣어 만든 형상을 말한다. 직성이 든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이것을 만들어 버린다. 남자의 직성은 11, 20, 29, 38, 47, 56세에 들고, 여자는 10, 19, 28, 37, 46, 55세에 든다고 한다. 직성이 들면 그 해 액운이 따르기 때문에 대물로서 바쳐지는 것이다. 제웅을 길에다 버리거나 혹은 도랑이나 개천에 버린다. 또는 물에 띄워 보내는 수도 있다.
○ 샘물 대기 : 샘물이 잘 나오지 않을 경우에 남의 집 샘물을 몰래 길어다 부으면 그 해 샘물이 마르지 않고 잘 나온다고 하여 부녀자들이 주로 14일 밤에 한다. 마을 단위로 하기도 하는데, 남의 동네에 들어가서 우물물을 길어 오면 그 동네의 정기를 빼오는 것으로 안다.
○ 꼰지대 세우기 : 자루에 곡식을 넣어 낱알 모양으로 만들고 보름 앞날 처마 밑에 세웠다가 이를 하드렛날 내려서 밥을 지어먹는다. 일종의 풍농 기원 행사다.
○ 진대 끌기
보름날 저녁 피마자의 진대(긴 대)를 끌면서 "진대 끌자 진대 끌자"를 외치며 마을을 돈다. 뱀 등 긴 짐승을 쫓기 위한 놀이다.
이밖에도, 정월 열 나흗날 오곡밥을 해서 숟갈로 나이대로 떠서 바다에 버리는 것으로 액막음을 하기도 하며, 보름날 아침이면 다섯 집의 밥을 얻어 와서 절구에 앉아 먹는 풍속도 있다.
④ 立 春
입춘은 천세력(天歲曆)에 정해져 있는데, 대개 양력 2월 4일경이지만, 음력으로는 정월의 절기로, 동양에서는 이날부터 봄으로 쳤다. 명절로 관념하지는 않았으나 이날 행해지는 몇 개의 풍속이 있다.
○ 춘축(春祝)·춘련(春聯) : 입춘일에는 각 가정에서 대문이나 기둥 등에 입춘축(立春祝)을 써서 붙인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이 풍속을 소개하고 있는데, 입춘축(立春祝)은 대개 글귀가 정해져 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입춘 대길(立春大吉) ·건양 다경(建陽多慶)
·국태 민안(國泰民安) ·가급 인족(家給人足)
·소지 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 만복래(開門萬福來)
·부모 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 만세영(子孫萬世榮)
·천증세월 인증수(天增歲月人增壽) ·춘만건곤 복만가(春萬乾坤福萬家)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 ·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도 글을 잘 하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춘축을 마련해 붙이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상중에 있는 집에서는 하지 않는다.
○ 점보기
·보리 뿌리점(麥根占) : 입춘날 아침, 농가에서는 보리를 뽑아 그 뿌리의 갯수나 색깔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뿌리가 세 개 이상이 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두 개면 평년, 하나면 흉년이 들 징조라 한다.
·입춘치 : 입춘 날씨를 보고 1년 농사를 점치는 일기점이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면 입춘치한다고 한다. 입춘치를 하면 그 해 며루의 해가 있다고 한다.
(2) 2월
① 하드랫날
음력 2월 1일을 하드랫날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날도 절일(節日)로 쳐서 차례를 지냈다고 하나, 지금은 몇 가지 민속 현상만이 남아 있다.
보름 전날 세웠던 낟가릿대(유지지)에서 벼이삭을 내려다가 흰떡을 만들고 콩으로 소를 넣어 송편을 만들어 머슴들에게 나이만큼 먹인다. 이 날을 속칭 머슴날이라고 하여 음식을 장만해서 머슴들에게 대접하는데, 20살 되는 성인 머슴들에게는 진새를 올려 주기도 했다. 우황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붉은 천으로 소뿔을 감아 둔다.
이 날 먹는 음식으로는 칡과 콩이다. 칡을 먹으면 무병하다 하며, 콩을 볶아 먹으면 노래기나 좀 등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새나 쥐가 곡식을 축내는 일이 없어진다고 한다.
② 2월 함네(영등, 2월 함쎄)
영등은 바람을 관장하는 풍신인데, 영등할머니가 음력 2월 초하룻날 내려 왔다가 2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다시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할머니가 두 딸을 데리고 내려오면 일기도 온화하고 걱정되는 일이 없지만, 며느리를 데려 오면 일기도 불순하고 일대 풍파가 일어난다고 한다. 또, 며느리와 함께 오면 풍년이 들고 딸과 함께 오면 흉년이 든다는 일설도 있다.
그래서 농가와 어촌에서는 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바람 올린다고 하여 영등할머니와 그 며느리에게 제를 올린다. 부엌이나 장독대에 황토를 쌓고 거기에 5색 헝겊을 단 대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물그릇을 올려놓는다. 정성에 따라 매일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집도 있고 날을 걸러 하는 집도 있다. 그러나 2월 함쎄가 처음 내려오는 초하루와 올라간다는 스무날은 떡을 해 놓고 정중하게 모신다. 그해 바람이 순조로워야 바닷일이 잘 되기 때문에 극진히 지낸다.
한편, 산에 가서 황토를 파다 문 앞에 뿌리고, 쑥떡·찰떡·동그래미떡·수수떡·서숙떡 등을 해서 '2월 함쎄'한테 놓을 것부터 설짝(대바구니)에 담아 둔다. 또 부엌에 물을 떠놓고, 대나무 끝을 잘라 와서 거기에다 헝겊을 꼽고 저녁에 밥을 차려 둔다. 떡은 이날 먹지 않고 그냥 둔다.
(3) 春 節(3 - 5월)
① 삼짇날
음력 3월 3일을 '삼짇날' 혹은 상사일(上巳일) 또는 중삼일(重三日)이라고 한다. 이 날,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고, 나비가 날아들며, 진달래가 만발한다. 제액(除厄)의 의미로 동천에 나가 제비 맞이, 화전 즐기기 등으로 하루를 즐긴다.
처음으로 보는 제비에게 절 세 자리를 하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줄였다가 다시 여미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며,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그 해 처음 보면 만사가 태평하지만, 흰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상복을 입거나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한다. 또, 날씨가 따뜻하여 주로 부녀자들은 계곡에서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었다.
또, 길하다고 해서 꿩알 줍기도 한다. 사람들은 꿩을 천신(天神)의 사자(使者)로 여겼다. 화양에서는 도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었다.
② 청명(淸明)·한식(寒食)·곡우(穀雨)
청명은 황경(黃經)15ㅇ에 도달한 양력 4월 5일경으로, 한식 전날이나 바로 한식날이 된다. 농가에서는 청명에 즈음하여 비로소 봄일을 시작하므로, 이 날에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식은 동지 후 백오일 째 되는 날로, 청명절과 같은 날 들기도 한다. 중국 진나라의 개자추 전설(介子推傳說)에서 유래된 한식은, 중국에서는 냉절(冷節) 또는 숙식(熟食)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4대 명절의 하나로 인식하여 지금까지도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니는 습속이 있다.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官公吏)들에게 공가(公暇)를 주어 성묘하도록 하였으며, 민가에서는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올린다.
아직도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한식을 큰 명절로 쇠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명절이라는 관념보다는 산소를 돌보고 나무를 심는 날로 여긴다.
곡우절에는 물과 관련된 풍습이 있다.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만들며, 물을 맞고 약수를 먹는다. 또, 곡우물이라 하여 자작나무에 상처를 내어 그 물을 받아 마신다.
③ 초파일
원래, 불탄일은 양력 5월 15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로 관념한다. 이 날, 절에 찾아 가서 제를 올리고 연등 하는 풍속이 있다.
초파일의 연등회는 오늘날에도 성대하게 벌어지는 의식이며, 주로 아녀자들이 절에 찾아 가 집안 식구들의 무병과 성공을 염원하는 불공을 드린다. 옛날 민가에서도 남보다 크고 높게 등간(燈竿)을 자녀의 수대로 세우고 거기다가 등을 달아 기도를 했으며, 서당 앞에도 긴 장대를 세우고, 학동(學童)들이 등을 달기도 했고, 배를 가진 가정에서는 배에 등을 달거나 횃불을 피워 풍어를 빌었다고 한다.
④ 단오(端午)
단오는 우리 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꼽아 왔다. 한자 표기로 단오(端五)라고도 쓰며, '중오(重五)' '중오절(重午)', '단양(端陽)', '오월절(五月節)'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순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한다.
단오날은 삼짇날과 함께 물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즉, 여자들은 창포(菖蒲) 물로 머리 감고 세수를 하며, 창포 삶은 물을 먹는다. 창포 뿌리를 깎아 수복(壽福) 두 글자를 새긴 비녀를 꽂으며, 창포 이슬을 받아 화장도 한다.
단오가 되면 익모초나 쑥을 찧어서 즙을 내 마시고 음식도 해 먹는다. 단오날에는 백초가 약이라고 하여 무슨 풀이든 여러 종류의 풀을 베어 말리기도 하고, 또는 방을 뜨겁게 한 후 방에 풀을 깔고 그 위에 자리나 가마니를 덮고 누워 찜을 하기도 한다.
(4) 하절(夏節 6월-8월)
① 유두(流頭)
음력 6월 15일이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즉 유두일이다. 이 날 떡과 수박, 오이, 참외 등 새로 나온 과일로 간단하게 용신제(龍神祭) 또는 농신제(農神祭)를 논이나 밭에서 지내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한다고 한다. 만약, 이날 들에 나가 일을 하게 되면 그 고랑의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하여 하루를 쉰다.
유두일의 음식으로는 유두면(流頭麵)·수단(水團)·건단(乾團)·연병(連餠) 등이 있다. 밀가루 반죽에 5색 실로 꿰어 찬 유두면은 벽사(벽사)의 효염이 있다고 한다.
② 삼복(三伏)
삼복은 여름철 가장 더운 초·중·말복을 함께 이른 말이다. 초복은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이 되고, 중복은 넷째 경일(庚日)이며, 말복은 입추 뒤의 첫 경일이다. 복날에는 '복달임'이라 하여 닭이나 개를 잡아 그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다.
③ 칠석(七夕)·백중(百中)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전설에서 유래된 칠석은 음력으로 7월 7일이다. 이 날 칠석 다례라하여 올벼를 사당에 천신한다. 또, 간단히 떡과 나물을 준비하거나 혹은 정화수만으로 장독대나 우물가에 단을 만들고 집안이 잘되기를 빌며 고사를 지낸다. 이 날은 비가 온다는 날이지만, 햇볕이 나면 책이나 옷을 말렸다.
7월 보름은 백중이다. 백종일(百種日)·백중절(백中節)·망혼일·(亡魂日)·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고래로 정월 대보름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예축 행사가 벌어지고, 농가에서는 여름 농한기에 들어 하루를 쉬며 논다. 사찰에서는 과일과 나물 백 가지를 갖추어 부처님께 재를 올리며, 불자들은 방생에 참여한다.
백초 부락에서는 이날 "진세"를 했다.
(5) 추동절(秋冬節 9월-12월)
① 추석(秋夕)
팔월 보름 추석, 한가위, 중추(仲秋) 등으로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추석이 되기 전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우거진 잡초를 베어서 깨끗하게 벌초를 하고, 추석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풍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화양에서는 설 때와 마찬가지로 추석 전날 차례를 지내는데, 이 때는 신곡을 거두어 이로써 조상께 천신(薦新)하고, 여러 가택신에게도 신곡 헌례(新穀獻禮)한다. '올벼심니'도 이 즈음에 하는 추수 감사의 풍습이었다. 차례는 새로 난 쌀로 송편을 빚고, 온갖 과일을 장만하여 조상께 올리는데, 어느 명절보다도 풍성하게 장만하여 지낸다.
저녁에는 친척과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달구경을 하거나 간단한 놀이를 하며 지낸다. 만일 이 날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②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이라고 한다. 이는 양수(陽數)가 둘 겹쳐 있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명절로 여겨 왔는데, 조선 시대에는 3월 3일과 함께 노인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정확한 제사 날짜를 모르는 임자 없는 조상은 이날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화양 각 가정에서는 여순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제사를 이날 많이 지내고 있다.
삼짇날 날아 온 제비가 이날 다시 강남으로 떠난다고 한다. 옛날에는 중양절에 노란 국화잎으로 술을 담그고 떡을 빚어 먹었다 하나, 오늘날에는 명절시하지 않고 다만 길일(吉日)이라고만 간주하고 있다.
③ 상달
10월을 상달이라고 하며, 15일을 하원(下元)이라 한다. 이 달에 날을 받아(대개는 午日) 성주제, 시제, 김장담그기 등을 한다. 성주굿을 해서 복을 청하는 집도 있으며, 또한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이 때를 기하여 성주동이, 제석오가리, 철융단지 등에 신곡 헌례를 하고, 이미 들어 있던 쌀을 살펴서 길흉사를 점치기도 한다.
이 달의 시식으로는 만두·강정·쑥국·쑥단자·열구자(悅口子) 등이 있다.
④ 동지(冬至)
양력 12월 22일경으로, 음력으로는 11월이 '동짓달'이다. 동지는 작은설(亞歲)이라고 하며, 고대 역법에서는 설날로 간주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전해진다. 팥죽의 붉은 색에 축귀력(逐鬼力)이 있다 하여, 조상이나 성주에게 제사를 올리고, 대문, 부엌, 벽, 마당, 담장 등에 뿌린다.
⑤ 납일(臘日)·제석(除夕)
납일은 1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을 신에게 보고하는 날로,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로 음력 섣달 중순쯤이며, 옛날 궁중에서는 납향(臘享)이라 하여 사냥을 해서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런 풍속으로 인하여 지금도 납일에는 돼지고기를 먹는 집안이 있다.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際夕) 또는 제야(際夜)라 한다.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날이기 때문에, 사당에 세배를 하고, 집안을 대청소해서 깨끗하게 하며, 부채가 있으면 모두 청산한다. 또, 웃어른을 찾아가 일 년 안부를 살피며 절을 하는데, 이것을 묵은 세배라고 한다.
⑥ 윤달(閏月)
윤달(閏月)은 부정이 없는 달이다. 평상시에는 재해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도 윤달에 하면 아무 탈도 없다. 그래서 가옥을 개수하거나 신축하고, 수의(壽衣)를 만들고, 토석을 움직이는 등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 속담에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궂은 일은 모두 윤달에 해치운다.
2) 민속놀이
(1) 매구와 마당밟기
농악은 농부들 사이에 옛날부터 전해 온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이자 향토 음악이다. 농악은 학술 용어로 정립된 것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매구'라 일컬었으며, 풍장·굿·풍물 등으로도 부른다. 매구는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에,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되어, 지금은 각종 명절이나 동제·걸립굿·두레굿과 같은 의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놀이요 음악이 되었다.
농악대는 대체로 영기(令旗)2·농기(農旗)1·나팔2·상쇠·부쇠·종쇠·징·수장고·부장고·수북·부북·수법고·부법고·3법고∼8법고·창방(양반광대)·포수·농군·가장녀·무동 3인 등으로 편성된다. 특히, 꽹과리를 치는 상쇠가 악대를 총지휘하며, 꽹과리와 더불어 징·장구·북 등 사물(四物)은 필수적이다.
농악 놀이에는 8자놀이·십자형 놀이·좌우치기 놀이·사통백이 놀이·여덟법고 놀이·밀법고 놀이·법고 놀이·12발 상모 돌리기·무동 놀이·상모 돌리기 등이 있다.
농악은 그 기능에 따라, 마을의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행하는 당굿, 정초에 집집마다 들러 고사굿을 해주는 마당밟기, 마을을 돌며 고사굿을 해주고 돈과 쌀을 걷는 걸립(乞粒)굿, 두레패들이 여름 김매기를 할 때 작업의 능률을 올려주기 위한 두레굿, 단순히 구경꾼을 위하여 연행하는 판굿 등으로 나누어진다.
마당밟기는 정월 초에 액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서낭대를 앞세우고 매구를 치며 집집마다 들러 고사굿을 하는 의식적인 놀이다. 당산굿과 샘굿을 치고 난 다음, 문굿·마당굿·조왕굿·터주굿·마굿간굿·칙간굿 등 구석구석을 돌며 굿을 한다.
① 용주리 매구
화양의 농악은 당산제 후에 성하다. 특히, 용주리 용주 부락의 매구가 유명하다. 용주 부락에서는 매년 음력 설날을 맞이하여 초이튿날부터 1월 보름날 사이에 매구(농악놀이)를 치며 동네 주민이 함께 즐겼으며, 1980년대 초부터 매구놀이를 하는 해도 있고 하지 않는 해도 있다. 매구놀이(농악) 시작은 마을 회관에서 시작하여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마당밟기를 하는데 집집마다 소찬이나마 술과 안주, 그리고 헌금도 내놓는다. 또, 매년 추석절에는 용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체육 대회를 개최하여 주민 화합을 다지고 있다.
② 백초 마을의 진중 농악
본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진중 농악은 임진왜란 때 좌수영에 소속된 장병들이 왜적을 맞아 싸우면서 포를 쏴 적을 무찔렀을 때 고시(鼓施)를 알리는 농악을 쳐 임진왜란과 이 충무공을 연상케 하는 농악이다. 일반 농악은 오체질굿, 오방진굿, 짝바름굿, 십자행굿, 풍년굿 등으로 전개되지만 이 진중 농악은 행군굿, 훈련굿, 진중굿, 만만세굿의 순으로 전개되므로 농악의 가락과 율동이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이 고장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전라 좌수영의 본영이며 삼도수군 통제사의 본영이었다. 특히, 구국 제민했던 이충무공 등 이 고장을 무대로 크게 활약했던 선조들의 그 빛나는 얼을 오늘까지 전통적으로 이어받아 왔기 때문에 이 농악도 그 역사와 함께 전승되어 왔다.
임진왜란 당시 고화양진이었던 이곳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민속이 흘러 왔었다. 현재는 각종 가장(범, 토끼, 여우, 곰, 소)을 곁들인 농악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수도 농경(水稻農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민속 현상으로, 우리 나라 전역에 퍼져 있다. 이 놀이는 협동심이 대단히 중요시된다. 줄다리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날 행하나, 하드랫날, 단오, 추석 때 하는 곳도 있다.
경기 요령은, 짚으로 새끼를 굵고 길게 꼬아, 양편으로 늘어서서 그 줄을 자기 편 쪽으로 잡아당기면 된다. 마을대 마을끼리 하는 경우도 있고, 한 마을에서 남녀로 나누어 편을 짜는 경우도 있다.
줄다리기는 민속 종교적인 의미도 있는데,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의 마을은 그 해 풍년이 들고 무병무재하다고 한다. 이긴 편의 줄을 썰어서 논의 거름으로 쓰면 그 해 풍년이 들고, 배에 싣고 가면 폭풍을 만나지 않으며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속설도 있다. 남녀 대항전을 펼칠 경우,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 때문에 일부러 남자들이 져준다.
* 서촌 줄다리기
조선조부터 마을 앞 화양 천변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줄다리기를 하였다 한다. 이 때는 지역민 전체가 화양천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눠서 줄다리기를 하였다 하는데, 한편이 보통 2-300명이 참가하였다. 줄은 원줄에 작은 줄을 붙여 가지에서 당기는 습속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3) 윷놀이
윷놀이는 나무 조각 넷을 가지고 노는데, 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윷놀이는 가장 오래된 우리 民俗의 하나로서 놀이이면서 동시에 설날에는 그 해의 길흉을 점치는 주술 행사이기도 했다.
윷은 지금도 남녀가 좋아해서 명절 때만 되면 가족들간에 흥행되고 있다. 말판은 십자형 둘레의 20개점과 건너지른 종횡 10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윷은 둥근 나뭇가지를 동갈라 1/2한 4木이나 때로는 꼬막 껍질로 대용한다. 윷의 호칭은 도·개·걸·수(윷)·모 등 4개이며, 이들은 각각 돼지[豚], 개[犬], 양(羊), 소[牛], 말[馬]을 상징한다.
화양 지역에서는 주로 밤윷이나 고막 윷으로 논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밤나무 싸리나무나 탱자나무를 한 치 크기로 잘라서 반으로 쪼갠 다음 이것을 작은 종지기에 담아서 손가락을 합하여 종지를 막고 흔들다가 윷판에 던져 읽는다. 또, 고막 껍질을 손안에 넣고 흔들어 던진다. 윷판은 대개 멍석을 사용하며, 넉동을 먼저 내는 쪽이 이긴다.
(4) 연날리기
연 날리기는 대개 음력 12월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까지 계속되는데, 그 종류만도 대단히 많다. 가장 흔한 것으로는 방패연과 가오리연이다.
방패연은 창호지의 1/2 혹은 1/4 크기로 자르고, 중앙을 접어서 구멍을 낸 후 시누대를 가늘게 깎은 살을 '米'자형으로 바른다. 머리에는 복판에서 따낸 종이로 물들여서 반으로 접어 머리를 만든다. 풀칠한 곳이 마르면 머릿귀를 살짝 잡아 당겨 조임실을 맨다. 아래 중앙에 꼬리를 붙이고, 양쪽 에 풍지를 붙인 후 연각을 잡아 먹줄을 맨다.
가오리연은 사각 반듯한 종이에 세로로 연살을 직선이 되도록 붙이고 가로로 현으로 연살을 또하나 붙여, 앞줄보다 뒷줄을 약간 길게 해서 먹줄을 붙이면 된다. 연실은 얼레에다 감았으며, 연 날리기에는 액막이, 연 싸움, 편지 보내기 등이 있다.
(5) 널 뛰기와 그네 뛰기
널뛰기는 정초를 비롯하여 단오나 한가위 등 큰 명절 때 하는 여성의 놀이다. 너비 한 자, 길이 열 자쯤 되는 두터운 판자 가운데 밑에 짚단이나 가마니 같은 것을 뭉쳐 고여 놓고, 양쪽 끝에 사람이 서서, 한 사람이 뛰었다가 내려디디는 반동으로 반대쪽 사람이 뛰어 오르는 것을 반복한다.
그네는 주로 부녀자들이 단오나 추석 때 타고 놀았다. 그네는 동네 어귀에 있는 큰 나무 가로 뻗은 가지에 그네줄을 매고 한 사람이나 또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뛴다.
(6) 씨름
씨름은 샅바나 띠를 넓적다리에 매어 이를 서로 잡고 힘과 재주를 부려 상대편을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민속놀이로, 한자로는 각저(角抵), 각력(各力), 각희(角戱), 상복(相복)이라 한다.
경기 종류는 샅바를 잡는 요령에 따라 왼씨름·오른씨름·띠씨름 등 세 가지가 있는데, 왼씨름은 샅바를 오른족 다리에 끼고 어깨를 왼쪽에 대고 하는 씨름이며, 오른씨름은 왼씨름의 반대다. 띠씨름은 허리에다 띠를 매고 그것을 잡고 한다. 오늘날에는 왼씨름으로 통일되다시피 하였지만, 옛날에는 이 지역에서는 주로 오른씨름이었다.
씨름은 단오날·추석·중양절·칠석날·백중날 등 주로 풍속일에 남자들이 하는 놀이다. 경기 방식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편의 허리 샅바와 다리 샅바를 양손으로 잡고 서로 들고 걸고 감고, 두르는 기술로 상대의 어느 부분도 먼저 땅에 닿게 하면 이긴다.
(7) 기타 오락(娛樂)
①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부녀자들의 놀이로, 중요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1966.2.15). 이 놀이는 전남 남해안 일대와 도서 지방에 널리 분포 전승되고 있는 집단 놀이로서 한가위 밤이나 정월 대보름날 밤에 놀아 왔으나 화양에서는 그리 성하지는 않았다.
② 돈치기
주로 어린이들이 정초에 많이 하는 놀이이다. 노는 방법은 두어 가지가 있다.
동전을 벽에 부딪혀 상대방의 동전과 일정한 거리에 이르면 돈을 따는 놀이로 대개 한 뼘의 거리로 재기도 하고 지푸라기나 나무를 잘라 기준을 삼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 겨울철에 양지 바른 골목에서 일정한 거리에 구멍을 파놓고 엽전(葉錢)이나 동전(銅錢)을 던져 그 속에 들어간 것을 따먹기도 하고, 구멍밖에 있는 것을 목자로(편편한 돌)맞혀 차지하는 형태의 돈치기도 있다.
이 놀이는 집중력과 거리의 측량 및 투척 요령을 알게 하고, 개성 신장이란 측면에서는 큰 도움을 주지만, 자칫 투기심을 조장할 염려도 있다.
③ 꼰놀이
'꼰'이라는 말의 어원은 확실히 알 길이 없으나, 각 지방에 따라 고누·고니·꼬니·꾼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한자어로는 지기(地碁)라 한다. 놀이하는 요령이 비교적 쉽고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즐겼던 전통 놀이였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꼰은 각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특징이 있으며, 말판의 모양에 의하여 우물꼰·줄꼰·곤질꼰·자동차꼰·호박꼰 등이 있다.
어디서든지 말판만 그릴 수 있는 장소면 놀이하는 데 지장이 없다. 간단하면서도 바둑이나 장기처럼 묘수가 있으며, 쉽사리 승부를 점칠 수 없다.
④ 낫치기놀이와 갈퀴놀이
낫치기 놀이는 꼴 베는 어린이들이 낫을 던져 꽂히기를 내기하는 놀이다. 풀을 한아름씩 베어다 쌓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낫을 던져 꽂힌 사람이 그 풀을 가져가는 것이다. 낫을 던지는 데도 기술과 요령이 필요한데, 이 놀이에서 이긴 사람은 편하게 풀 한 짐을 얻을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다시 풀을 베야 한다.
갈퀴놀이는 가을철에 주로 나무꾼들이 낫치기 놀이처럼, 겨울철 땔감으로 그만인 낙엽을 얼마간 긁어모아 놓고 갈퀴를 던져 그것을 따먹는 놀이다.
⑤ 돌놀이(사방차기, 비석차기, 곤자치기)
돌을 가지고 하는 놀이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사방차기, 비석차기, 곤자치기 등이 있다.
사방차기는 넓은 마당이나 한길 같은, 굴곡이 적고 평평한 곳에 놀이할 모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제각기 납작하고 손바닥만한 차기 좋은 크기의 돌을 가지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부터 시작한다. 처음에 돌을 1에 놓고 깨금발로 차서 2→3→4→5→6→7번을 돌아오면 되는데, 발로 차다가 선에 돌이 닿던가 칸 밖으로 나가면 실격이 되고 다음 사람이 하게 된다. 다음은 2, 3에 돌을 던져 놓고 차서 7번까지 먼저하는 쪽이 이긴다. 사각형 안에 ×자를 그려 넣는다든지 어느 칸은 눈을 감고 돌을 던져야 한다든지 하는 규정도 있다.
비석치기는 어느 정도의 거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세워 놓고 작은돌(먹자돌)을 던져 비석을 쓰러뜨리는 놀이다. 비석을 맞추는 방법에는 ① 배치기(그냥 먹자를 던져서 맞춘다), ②엎어치기(돌을 엎어쥐고 던져서 맞춘다) ③ 발등걸이(발등에 돌을 얹어서 세발을 뛴 다음 비석을 쓰러뜨린다) ④ 오금걸이(오금 사이에 돌을 끼우고 왼발로 뛰어가 오금을 펴면서 돌을 친다) ⑤ 사타구니 치기(돈을 사타구니 사이로 던져서 맞춘다) ⑥ 쇠경치기(눈을 감고 목표물을 맞춘다) ⑦ 물동이 이기(먹자돌을 머리에 이고 가서 맞춘다) ⑧ 가슴치기(가슴에 돌을 얹고 가서 비석을 쳐 넘어뜨린다) ⑨ 등치기(등에다 돌을 얹고 가서 뒤로 돌아서서 넘어뜨린다) 등 다양하다.
곤자치기는 아주 작은 사금팔이로 목자를 만들어 엄치와 중지로 그 목자를 튕겨 가며 하는 돌놀이다.
⑥ 제기차기
제기차기는 겨울철에 행하는 놀이다. 제기는 엽전이나 구멍이 뚫린 주화를 얇고 질긴 한지나 비단에 접어서 싸고 양끝을 구멍에 꿰어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만든다. 때로는 질경이를 여러 잎 합쳐서 만들기도 한다.
차는 방법에는 외발차기, 발 들고차기, 양발차기 등이 있고, 놀이의 방법에는 상대방이 던진 제기를 멀리차기, 높이 차기, 차올린 제기를 입으로 받아 물기, 제기를 머리에 얹기 등이 있다.
⑦ 똥딱게(자치기)
자치기는 길이 30cm 가량의 긴 막대기로 끝을 비스듬하게 깎은 10cm 가량의 짧은 막대를 쳐서 그 거리를 긴 막대로 재어 승부를 내는 놀이다. 이 놀이 방법도 다양하다.
① V자 모양의 구멍 위에 작은 막대를 가로 걸쳐놓고 큰 자로 이를 떠서 날린다. 이때 수비측이 날아오는 작은 자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받으면 "죽는다"고 해서 실격된다. 그러나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자가 떨어진 자리로부터 구멍을 향해 던진다. 이때 날아오는 작은 자를 공격자가 들고 있는 큰 자로 되받아 치기도 하는데, 작은 자가 떨어진 자리로부터 구멍까지의 거리를 재어 많을수록 좋다. 이때 공격자가 나름대로 가늠하여 "몇 자"라고 외치면 수비측이 타당하다고 인정될 때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나 만약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재자고 제의하여 들고 있는 큰 자로 정확히 잰다.
② 작은 자를 왼손에 들어 땅으로 떨어뜨리면서 오른손에 든 큰 자로 힘껏 때린다. 이때 공격자가 못 때리거나 수비측이 손으로 받아 버리면 실격된다. 거리를 재는 방법은 ①의 요령과 같다.
③ 한 손에 큰자와 작은 자를 같이 들고서 먼저 작은 자를 공중으로 던져 떨어질 때 큰 자로 받아친다. 실격 여부와 거리를 재는 방법은 ①과 같다.
④ 작은 자를 왼손에 큰 자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의 작은 작 한쪽 끝을 큰 자로 가볍게 때려 한바퀴 돌린 다음 이를 되받아 친다. 이때의 실격 여부와 거리를 재는 방법도 ①과 같다.
⑤ 구멍 속에 작은 자를 비스듬히 넣어 걸쳐 한쪽 끝을 지면 위에 나오게 하고 큰 자로 가볍게 선단을 때려 공중에 뜨게 한 후 큰 자로 되받아 친다. 이때도 실격 여부와 거리를 재는 방법은 ①과 같다.
⑥ 구멍 속에 ⑤의 경우처럼 작은 자를 놓고 큰 자를 든 손을 가랑이에서 밑으로 넣어 가볍게 때려 공중에 뜨면 큰자를 든 손을 재 빨리 가랑이에서 빼 가지고 되받아 힘껏 때린다. 실격 여부와 거리 재는 방법은 ①과 같다.
이 같은 순서와 방법으로 놀이가 진행되는데, 둘이 하는 경우, 공격자가 실격되면 공수가 바로 바꾸나, 여럿이 하는 경우는 전원이 실격되어야 바뀌게 된다.
⑧ 팽이치기
팽이는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 운동을 하는 일종의 완구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둥글고 짧은 나무의 한 쪽 끝을 도토리 모양으로 깎고 아래 뾰쪽한 부분에는 닳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못이나 구슬을 박아 채로 치는 팽이요, 다른 하나는 좀더 뾰쪽하게 깎고 중심부에다 쇠로 된 심봉(心棒)을 끼우고 여기에 노끈을 칭칭 감아 돌리는 팽이다. 다같이 윗 부분에는 원형으로 여러 가지 색칠을 한다. 팽이채는 40∼50Cm 정도의 막대기 끝에 닥나무 껍질이나 질긴 노끈을 달아서 만들며, 팽이줄은 고무줄이나 노끈을 이용한다. 재래식 팽이는 대개 집에서 나무를 손수 깎아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상품화되었다.
팽이치기에도, 서로 자기의 팽이를 채로 돌리다가 신호에 따라 동시에 상대방의 팽이를 향해 힘껏 때려 부딪히게 하여 넘어지게 하는 '팽이 싸움', 신호에 의하여 자기의 팽이를 팽이채로 힘껏 때려 누구의 것이 오래도록 도는가를 내기하는 '오래돌리기', 미리 그어 놓은 일정선상에서 신호에 따라 동시에 자기 팽이를 채로 때려 누구의 팽이가 멀리가서 멈추지 않고 도는가를 겨루는 '멀리치기' 등 놀이의 방법이 다양하다.
⑨ 숨바꼭질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노는 놀이의 하나다. 먼저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해서, 그 술래가 기둥이나 전보대 같은 술래의 집에 붙어서 눈을 감고 10여 초간 숫자를 세고 있으면 그 동안에 다른 아이들은 달아나 숨는다. 눈을 뜬 술래는 숨은 아이들을 찾아내야 하는데, 찾아 낸 다음 집을 짚으며 그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 그가 술래가 된다.
⑩ 줄넘기
세 사람 이상이면 할 수 있는 소녀들의 놀이다. 5-7m 정도의 새끼를 양쪽에서 한 사람씩 잡고 원을 그리며 돌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줄이 닿지 않게 그 안으로 들어가 뛴다. 한 번 뛰고 급히 빠져 나오는 수도 있고, 정해진 수를 헤아리고 나오는 수도 있으며, 한 사람만 뛰는 경우도 있고, 두 사람 이상이 한꺼번에 뛸 수도 있다. 이 때 줄이 몸에 걸리면 그 사람은 줄잡이 된다.
⑪ 고무줄놀이
이 놀이는 해방 후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것으로, 지금도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볼 수 있다. 고무줄을 양쪽에서 늘여서 잡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은 그 고무줄을 동요에 맞추어 춤을 추듯 넘는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고무줄 높이를 발목으로부터 머리 위까지 차츰 올리는데, 그 단계에 따라 이기고 짐이 결정된다.
⑫ 수건 돌리기
소년 소녀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있으면 술래는 수건을 가지고 그 주위를 빙빙 돌다가 누군가의 뒤에 살짝 놓고 능청스럽게 돈다. 이 낌새를 알아차린 사람은 그 수건을 들고 앞 술래를 쫓는다. 잡히지 않으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된다. 자기 뒤에 수건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술래에게 잡히면 그 사람은 벌칙을 받는다.
⑬ 공똘
여자아이들이 밤 만한 크기의 돌 다섯 개를 가지고 평평한 곳에서 하는 놀이다. 노는 요령은, 한 사람이 처음에는 다섯을 판에 굴려서 1개를 들고 하나씩 집어 올리고, 다음에는 2개씩, 다음에는 하나와 셋, 다음에는 한꺼번에 넷, 그 다음은 다섯 개를 손안에 넣었다가 하나를 던져 올려 그 사이 나머지 넷을 판에 놓고 하나가 떨어지기 전에 네 개를 한꺼번에 집는다.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공기를 손안에 넣었다가 던져 올려 손등으로 받았다가 다시 손안에 넣는다. 손등으로 받은 공기를 다 잡을 경우만 점수가 올라가며, 이 때 실수를 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실수를 하면 상대방에게 공똘(공기)을 넘겨주어야 한다.
⑭ 봉사놀이
술래는 눈을 수건으로 가린 채 양손을 벌리고 젓고 다니며 조롱하는 사람을 잡는다. 나머지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봉사야 날 잡아라'를 외친다. 잡힌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봉사는 옷맵시 몸매를 더듬어서 이름을 댄다. 맞히면 술래가 바뀌지만 맞히지 못하면 계속해서 봉사가 되어 잡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한다.
⑮ 말타기
서당 마당이나 마을 양지 바른 곳에서 여러 남아들이 모여서 두 편으로 갈라 한 편은 말처럼 엎드리고, 또 한 편은 올라타는 놀이다. 말을 만든 편의 한 사람은 마부가 되어 벽을 기대고 앞을 보고서고 나머지는 마부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꽂고 앞사람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연이어 엎드린다. 탄 편은 차례로 뛰어 오른다. 마부와 탄 사람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는 편이 말이 된다.
? 기타
이밖의 놀이로도 외나무다리 건너기, 그림자 밟기 놀이, 나이 먹기 놀이, 구슬치기, 말타기, 엿치기, 칼싸움, 외다리 씨름(닭씨름), 팔씨름, 글자숨기기, 모래집 짓기, 다리 세기, 보리피리 불기, 물방게치기, 소꼽놀이, 땅따먹기, 말둑치기, 찐, 3.8선, 실뜨기, 봉사놀이 등등 많이 있었으며, 지금도 이어지는 놀이가 있다. 또, 소뿔 싸움이나 닭싸움 등 짐승들을 가지고 노는 민속 놀이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