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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 이론
교재: 현대문학이론개관 제9장 p272_ p298
2012,2 24, 금 14:00 배재대학교, 배재학당,
발표자 : 강정화 (시인, 문학박사)』
1. 탈식민주의의 개념
탈식민주의 비평은 함축된 의미를 사용하지만 포스터구조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움직임이다. 반식민주의 담론으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에 대한 투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투쟁의 역사는 길며, 그러한 작업은 어디에서나 일어났고 반식민주의 운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토대가 되어왔다.
특히 그것은 1947년 인도 독립과 1950년 이후 제3세계의 독립투쟁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좌파의 새로운 태도가 되었으며, 대도시 지식인과 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등장했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1961)은 이 운동에 기본정신을 제공한 중요 저작이고, 포스트구조주의 해체론과 철학적으로 관련된 불확정성, 탈중심성의 특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등장한 ‘국민 문학’이라는 매우 문제 많은 이데올로기적 범주는 여기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는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에 의한 정치적 예속 상태인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정치적 예속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문화적, 경제적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포괄한다. 정치적으로는 탈식민화된 주권국이지만 문화적, 경제적으로는 서구, 특히 미국의 지배 아래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고 식민지 독립이후 서구와 비서구의 빈부격차가 식민지 시대보다 더욱 심화되어가는 현실에서 볼 때, 식민주의는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며 반식민주의 투쟁은 여전히 미완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빌애쉬크로프트 외 2인의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에서는 ‘탈식민주의’를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를 포괄하는 통칭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 탈식민화인데, 이는 식민지시대 이후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회복하거나 문화적 화합을 제안하는 방법이고, 둘째, 지배자의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며, 셋째, 중심문화의 언어를 바꾸어서 재구성하는 방법이며, 넷째, 지배자의 언술에 의해 성화(聖化)된 텍스트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쓰면서 지배자들의 언술의 모순과 허구성을 폭로하는 방법을 말한다.
자크 테리다는 서구 형이상학을 서구의 문화를 반영하고 재정립하는 백인의 신화로 규정한다. 즉 ‘백인 자신들의 신화’ ‘인도 유럽어족의 신화’ 라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바흐친의 대화주의,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푸코의 권력과 지식에 대한 주장들도 역시 탈 혹은 반식민주의적 사고에 의해 배척의 대상이 되며, 서구적 이성의 보편화 역시 역사 서술의 책략에 불과하여 료따르의 ‘포스트모던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린다 허천은 개개의 목적과 정치적 당면 문제를 구분함으로써 문제를 규명하려 했다. 그녀는 탈식민주의적이고 여성적인 담론이 무엇보다도 먼저 거부되었음을 지적하고 소외된 주체성을 회복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의 작업, 즉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서구적 문화와 비서구 여성의 경우도 서구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로 특정 짓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한 것은 서구적 사고로서 개인적이고 국가적인 자기 정당화의 억압된 서술과 특정한 형식의 주체성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은 또한 탈식민주의 비평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친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해 탐구되고 제기된 ’동양주의‘의 관점이기도 하다.
2. 탈식민주의 학자들
(1) 에드워드 사이드. 1935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출생, 영문학자, 문학과 문화비평가, 사회평론가, 그의 저 서『오리엔탈리즘』(1978)은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으며, 후속 연구자 들은 다시 저자의 사상적 진화에 도움을 줌으로써 그는 마침내 20세기 서구 인문학 의 지형을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사이드는 동양주의의 세 영역으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 번째,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4000년간의 역사와 문화적 관계, 두 번째, 19세기부터 시작된 동양의 언어와 문화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학적 훈련, 세 번째, 멀리 있는 동양에 대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이미지들, 정형화된 유형, 그리고 일반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양주의’는 ‘서양’과 ‘동양’ 사이에 문화적으로 구성된 구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연구가 그러하듯 피할 수없이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탈식민주의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 점은 사이드가 『다시 생각해 본 동양주의』(1986)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치 즉 힘에 대해 고려하는 입장과, 전술이 이미 깊이 개입 되어있는 그러한 상황에서 비지배적이며 비강제적인 지식이 어떻게 생산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사이드의 작업은 제3세계 관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작용하는 문화적 재현 행위의 기능을 규명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그람시)와 아도르노의「부정적 변증법」과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권력으로서 담론에 대한 푸코의 분석을 원용한다. 그는 비판적인 탈중심화된 의식을 가질 것을 주장하며 또한 지배 체제를 붕괴시키는 집단적 자유주의적 목적을 수용할 수 있는 학제간의 공동 작업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이드 자신의 동양주의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빈약하고 문제의식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1983의)란 에세이에서 그는 말하는 행위는 세계 내에 존재하고 텍스트는 비평가의 정신 속에서 단지 모호한 존재로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최근의 비평이 이해의 ‘한계성’ 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이드에게 텍스트를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었다. 와일드는 모든 존재를 하나의 경구로 요약할 수 있는 그러한 문체의 이상적 세계를 창조하려 했던 것이다.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핵심에 대해 사이드는 에세이의 진정한 역사적 상황에 관한 흥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사이드는 현재 지배적 담론에 의해 용인된 조건 하에서만 와일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적 담론은 다시 현재의 문서보관소로부터 비개성적으로 생산된다고 하며,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어떠한 권위도 주장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지배력 있는 담론」을 생산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2)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 1942, 인도 캘컷다 출생, 캘커다 대 졸업, 1967년 미국코빌대 영문학 석,박사 학위 취득. 91년도부터 뉴욕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 데리다의『그라마톨로지』(1976)를 영역, 서구 문단에 등단. 이후 20여년 『포스트식민주의 비판』(1999),『분과 학문의 종말』(2003),
『다른 여러 아시아들』(2008)을 저술하고 탈식민화의 행보를 가로막는 지식인 이데올르기와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지구화에 대항하는 그로벌 남반구 아동교육에 투신 중이다.
스피박은 해체론의 교훈을 충실이 따르면서, 어려운 정치론을 다시 한 번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비평가다. 그는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76)의 변역자이자 그 책의 중요한 서문의 저자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이론을 끌어들인 엄격하게 ‘반근본주의적’이고 혼성화된 절충 주의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그들은 서로를 위기로 몰고 가는 방식을 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제3세계 여성’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편리하게 주변적이거나 어색한 특별 초대 손님으로, 그러나 방문 중인 미국 교수로, 때로는 벵갈인 중산 계급 망명자로, 때로는 미국의 학문적 삶의 유명인사 중심 체계에서 성공담의 주인공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전기적이고 직업적인 혹은 이론적인 입장을 단순하게 혹은 단일하게 규정하거나 중심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말로 하면 스피박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해체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탈식민주의 비평은 개별적인 인간의 주제 - 비평가 자신들을 포함하여 - 에 있어서의 정체성의 문제를 보다 넓은 민족적 역사와 운명의 관계에서 주목한다. 그러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인종, 계급, 성별의 시간적 불일치와 모순적인 요소들을 자기 자신의 주제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스피박의 글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녀는 관심지역인 서구나 인도의 문학적 전통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신식민주의 지역에서의 탈식민주의의 지식인의 ’상황’ 을 추적한다. 서구 자유주의에 의해 강요된 ‘폭력적 구조와의 투쟁’이라는 전술이다. 이것은 제3 세계 혹은 제 3 세계 여성이라는 명명이 어떻게 제 1 세계 사람들이 가진, ’다루기 쉬운 타자‘ 에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후자의 분석의 인상적인 예가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위 비판』에 있는『제인 에어』, 『드넓은 싸가소 바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그녀의 분석에서 나타난다. 그녀는 영미 페미니즘의 고전적 작품으로 간주되어 오던『제인 에어』에서 제국주의가 일반적으로 인식에 가한 폭력의 알레고리를 찾아내어 이 작품의 주인공이 영국 소설의 여성주의적, 개인주의적 영웅이 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그 정의에 따르자면 억압된 침묵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신식민주의의 상황에서는 스스로 발언하거나 자기 정당성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한계를 ‘텍스트성’의 해체론적 개념을 받아들인 결과로 볼 수 있다. 비록 스피박이 데리다에 있어서의 이 텍스트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언어의 텍스트성이라기보다는 흔적과 조건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 하지만, 탐구하는 주체가 항상 특정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해체론적 문제의식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생산 서술’과 관계된다. 그러나 스피박은 전 지구적 해결책의 일시적 유예를 요구하는 마르크스주의를 명백한 정치철학이 결여된 비판철학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에 있어서의 생산 양식 서술과 계급 개념 역시 경직된 개념은 아니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저작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근본주의적 해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권화된 서구의 지적 주체에 대한 해체로까지 확대된다고 하겠다. 한 예로서 ”실제 비평 선집“ 10장의 살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에 대한 그녀의 해석을 참고하면 된다.
(3) 호미 K. 바바 직. 인도 봄베이 생, 봄베이대학, 영국옥스퍼드대학 석, 박사 취득, 사이드, 스피박과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이론가로서, 데리다, 라캉, 푸코 등 서구탈구조주의 이론가의 영향을 받음, 프린스대학과 펜실바니아대학 초빙교수를 거쳐 2002년 현재 하바드대학 영문과 교수임.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에서 고현철은 탈식민주의 시학이 근대에 확립된 서양 중심주의에 대한 전복과 탈근대적 상황에서 동서양의 대등한 공존을 모색하는 시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적인 불꽃이 밀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 호미 바바의『탈식민주의 문화이론』(나병철 역)은 소수인의 문화가 어떻게 후기 제국주의적 정체성을 뿌리 채 뒤흔드는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해 당장 이용 가능한 탁견을 제시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중에서 대안적인 가능성에 대한 왕성한 감각에 있어서 호미 바바에 필적할 사람은 없다. 호미 바바가 제시하는 대안적인 가능성이란, 항구적인 변이와 미완결성의 상태에 있는 문화로서, ‘혼성성’ 과 ‘사이에 낀 상태’가 근심이나 향수 없이 포용될 수 있는 세계의 제시다. 바바의 글쓰기는 복합적이고 밀도 있는 층을 형성하며, 시에서 수사학으로 선회하는 과정 자체가, 그처럼 친숙한 코디네이트들의 해체를 실행할 수 있다고 테리 이글론이『가디언』에서 기술한 바 있다. “특히 오늘날의 정체성들이 형성되고 변형되는 복합적인 방식들을 조명하는 데 성공한 경이롭고 풍부한 에세이 모음이다”라고 케이스 앤셀 피어슨도 ‘고등교육 서플리언트 신문’에서 이를 언급한 바 있어 호미 바바의 글들은 탈식민주의 문학이론 중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근원적인 것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위치』는 문화비평 영역에서 그의 정수가 되는 논문들을 모두 모은 것이라고 앨리슨 퍼래닉도 말한다. 오늘날의 논쟁들에 대한 광범위한 참조와 대담한 이론화, 그리고 현대적 텍스트들에 대한 섬세하고 혁신적인 재해석과 함께, 이 논문들은 문화이론에서의 전략적인 중재를 제시한다고 하겠다. 이 논문들은 일급의 학자로서 호미 바바의 위상을 강화하고 높여줄 것이라고 스튜어트 홀이 말한 바 있다.
호미 바바는 탁월한 섬세함과 기지를 지닌 독자이자 비범한 힘을 지닌 이론가로서 매우 진귀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가 다양한 세대, 장르, 문화들 사이의 교역에서, 그리고 식민지적인 것과 탈식민지인 것, 모더니즘적인 것과 포스트모던적인 것 사이의 교섭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술회한 바 있다. 또 프린스 대학의 토니 모리슨도 문학이론과 문화이론의 사상들 중에서 바바의 이론이 가장 선구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한 바 있고, 탈식민주의와 포스트모던에 대한 어떤 종류의 토론에서도 호미 바바를 참조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 한 바 있다.
3. 인종과 종족성
‘이민 혹은 유민의 경험은 현대 사회의 중심적인 것이다‘ 라고 마리 길레스피는 1995년에 쓰고 있다. 두 영역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조짐 속에 통합된 민족적 정체성을 탈식민주의 이론에 사용되는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중 영국 문화사학자인 스튜어트 홀에 의해 사용된 잡종성의 개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는 흑인의 경험을 유민 경험으로 이론화 할 수 있게 하여 ’권력과 저항의 대화‘, ‘거부와 승인의 대화’를 유럽 문화의 지배와 대비시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유민의 경험은 본질, 혹은 순수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 이질성과 다양성의 차이와 함께 존재하는 ‘정체성’의 개념에 의해, 즉 잡종성에 의해 규정된다. 홀의 에세이인 『최소의 자아』(1988), 『새로운 종족성』(1996)은 정치적으로 무저항적인 의미와 전통적이고 반동적인 민족주의적 종족성 개념, 이 두 가지의 종족성 개념과, 정치화된 종족 정체성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 흑인의 정치적 문화‘에 대한 폴 길로이의 분석은 흑인 주체성의 ’이중 의식‘에 집중하면서, 현대 유민의 정체성의 핵심적 경험인 ’서구에 살고 있으나 서구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종족성을 강조 한다.
종족 정체성에 대한 홀의 재정의와 ‘유민적 미학’, ‘유민적 지식인’에 대한 그의 설명은 문화 연구의 다른 영역에 관련된 작업들 (벨 훅스, 1991, 길로이 1993, 머써 1994)을 동반하는데, 이들은 종종 다른 문화적 재현 행위들, 특히 영화와 음악과 함께 문학을 포함시킨다 (문학을 우위에 두는 것은 아니다).
‘현대 흑인의 정치적 문화’에 대한 폴 길로이의 분석은 흑인 주체성의 이중성 혹은 ‘이중 의식’에 집중하면서, 현대 유민적 정체성의 핵심적 특징은 “서구에 살고 있으나 서구의 구성원이 될 수 없음”의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홀과 마찬가지로 길로이는 ‘현대의 영국 흑인’은 “(최소한 둘 이상의) 거대한 문화적 집단 사이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 문화적 집단들은 모두 그들을 형성했고 이제는 새로운 지형을 띠게 되는 현대 세계의 진행 과정을 통해 급격하게 변화시켜 왔다”고 말하고 있다.
정체성이라는 문제 설정의 틀은 코넬 웨스트에 의해서도 다루어진다. 웨스트는 (소수 집단) 포스트모던적인 문화적 주체 (과거와 현재로부터 이탈되어 이질적인 생산물을 혁신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파편화된 주체)의 형성에 대한 핵심적인 이론가이다. 그는 스튜어트 홀, 폴 길로이와 함께 문화적 차이의 담론을 창출하려는 욕구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은 종족성적 불변성에 대해 투쟁하며 성, 종교, 계급의 문제를 통합시키는 보다 넓은 소수 집단 담론을 대표한다.
1980년대를 통해서, 라틴 아메리카계 여성, 미국 토착민,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 비평가들의 가시성과 점증하는 정치적 자신감으로 인해 이러한 문학 작품들, 특히 경계를 지우고 장르를 혼합하는 것을 추구하는 글로서의 문학 작품들의 변별성이 주장되고 탐구되게 되었다.
인종 (그리고 사실상, 연령, 계급, 종교, 국가)은 인종적, 문화적 표현들이 성적 차이의 ‘지도 속으로 편입’되는 경우에서와 같이 그러한 ‘부가된’ 문제는 아니다. 인종, 계급, 성이 ‘서로 연결되어 표현되는 것’이 강조되고 있으며, ‘다중적 정체성’은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국 흑인, 호주 토착민, ‘유색 여성’ 그리고 노동 계급 작가들 사이에 공유된 유대를 형성한다.
이 혼혈 여성의 개념은, ‘문화화 되었지만’동시에 ‘문화를 결여하고 있는,’ 구속되지 않고 유연한 여성성의 상징이다. 치카나인인 작가, 교사 그리고, 스스로 규정한 ‘변경의 여성’인 안잘두아에게 있어서 새로운 혼혈인 여자는 모순과 모호성을 견뎌내며 ‘문화를 가지고 요술을 부리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다원적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원주의적 방식으로 작용한다.’ 혼혈인 여성의 의식을 가진 작품은 이중성을 뛰어넘는다. “백인종과 유색 인종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삶, 우리의 문화, 우리의 언어, 우리의 사고의 토대 그 자체로부터 유래하는 분열을 치료하는 데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만큼 그들의 정체성이 그 실존과 유리되어 사회화된 집단은 없다. 특히『어둠속의 놀이』(1992)에서 그녀는 지배적인 백인의 문학적 감수성으로부터 흑인의 문화가 이중으로 배제되고 주변화 되는 과정을 폭로한다.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의 ‘이중성’ 혹은 ‘잡종성’을 탐구한다.
4. 탈식민주의와 한국문학의 조명
탈식민주의와 민족주의와의 연관은 탈식민주의의 세부 시기가 ‘식민주의’ 시기 혹은 피식민 사회의 민족주의 이데올르기 자체가 탈식민주의 성격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게 된 시기에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탈식민주의 비평과 연구가 일반적이며 본격적으로 의식화되고 정립된 결정적인 계기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오리엔탈리즘』이 박홍규에 의해 1990년 초반 번역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탈식민주의적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 현대문학작품의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김성곤의『빼앗긴 시대의 문학과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현진건, 이상, 김승옥을 다시 읽으며, 탈식민주의 이론에 따라 한국 현대소설을 텍스트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있다. 현진건의『B사감과 러브레터』, 이상의『날개』등에서 탈식민주의를 찾아내고 있으며, 염상섭의 『만세전』에 대해 탈식민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과 사회의 통일을 추구한 염상섭의 문학이 탈식민화를 통한 주체성 확립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본지배의 식민지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에 누구나 명시적 혹은 암시적인 탈식민주의적인 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방 후의 작품들에서도 일제하의 식민주의와 해방 후의 식민주의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나타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승옥의『서울 1964년 겨울』, 이해조의『자유종』, 조정래의『아리랑』,『태백산맥』과 김진명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최인훈의『총독의 소리』, 전광용의『꺼삐딴 리』, 황석영의『무기의 그늘』등을 식민주의에 대한 탈식민화의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들에 탈식민주의 이론의 적용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지금은 다른 형태의 문화식민주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탈식민주의 문학 중 현대시에 나타나는 작품 몇 편을 조명해보자. 김억은 일찍부터 1920년대에 지향해야 할 근대시가, 조선심을 배경으로 보다 세부적으로는 조선의 시체(詩體)와 조선의 음율과 호흡을 같이 해야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래에 부분 인용하는 그의 글에서 시형이 조선의 음률과 호흡에 잘 맞아야 됨이 강조되고 있다.
조선 사람에게도 조선사람 다운 시체( 詩體)가 생길 것은 물론이외다.
내부와 외부의 생활이 다른 것만큼 호흡과 고통도 달나지리라.
위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김억은 조선에 알맞은 시의 형식과 율격을 추구하려 했는데, 그가 민족적 문화 형식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활용한 것이 민요시라 하겠다.
근대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주변화 된 민족 전통 문화를 되찾아 그 문화의 주체화를 통하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문화를 배격하려는 시도를 판소리를 패러디한 김지하의 텍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광입니다 각하 근대화작업에 얼마나 고되십니까 각하
오늘은 평민이래두, 허허허 이집이 바로 근대화의 상징이군
잘됐어 잘됐어 잘됐어
........(중략)............
휘황한 샹들리에 휘황한 저 아련한 베르사이유宮의 저 아련한 추억!
바닥에는 카펱 벽에는 타펱 그 위엔 거대한 베라스케쯔
- 김지하 시 『蜚語 』 중 『尻觀 』 부분
위의 인용은 고관이 묘령의 사치스러운 여인과 동침하려고 거대한 호텔에 들어가는 대목인데, 추악한 일을 위해 고관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스스로 평민의 입장이 되려고 한다. 식민주의의 앞잡이 정치인에 대한 시인의 응징이 패러디라는 형식으로 표출되어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 텍스트는 패러디된 텍스트를 다른 패러디 형식을 통하여 되받아 쓰기를 하여 부분적으로 패러디가 이루어진 경우다.
일본도를 뽑아라, 약탈하자 착취하자!
바닥까지 긁어서 끝장내어 버리자!
제휴도 합작도 그 어느 것도
植民으로 치닫는다 帝國이여 萬歲!
. ...........(중략)...........
민주주의 같이 생긴 파시즘똥,
.......(중략)..........,
자유주의같이 생긴 전체주의똥,
평화주의같이 생긴 제국주의똥, 四海동포주의같이 생긴 식민주의
-김지하 시 『똥바다』 부분
위에 인용한 시 텍스트들은 판소리 장르를 원용하여 패러디한 텍스트들이다. 장르 패러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패러디된 텍스트인 판소리와 패러디한 텍스트인 김지하의 판소리시 관계는 반대형식이 아닌 변용형식의 패러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패러디된 텍스트를 반대형식으로 패러디하여 패러디된 텍스트가 되받아 쓰기를 드러내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 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사슬이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사슬이 된 것 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북돋우사
다만 정의와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고정희 시 ‘새 시대 주기도문’ 전문
위에 인용한 시는 제목에서부터 『마태복음』제6장의 『주기도문』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노획할 때 겉으로 종교를 앞세우고 속으로 군사력을 통해서 지리적 확장을 꾀하여 온 것은 제국주의 침략사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사실이다.
김승희는 시 작품을 통해 탈식민주의적 인식을 드러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적 인식도 드러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탈식민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체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칼을 든 군인이 따라가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케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흰 장갑을 낀 신랑이 따라가면서
신혼 예식은 끝난다고 한다
모든 결혼에는 흰 장갑을 낀 제국주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김승희 시 ‘사랑 5 결혼식의 사랑’ 전문
이 시는 탈식민주의적이면서 페미니즘적인 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종교를 앞세우고 뒤에서 군사력을 동원하여 지리적 확장을 꾀하여 온 초기의 제국주의 침략사를 간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암, 보, 다, 더, 제, 국, 주의적인, 것, 은, 없, 다, 암, 앞, 에, 서,
는, 어, 느, 육, 체, 도, 제, 3, 세, 계, 가, 된, 다.
..........중략.........
육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식민화가 이루어져 왔던 것
고향 없는 추방자가 된, 원주민, 아니
타자들의 목소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김승희 시 “암과 제국주의” 부분
이 시는 제국주의의 속성을 암에 비유하여 폭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 제3세계에 대한 제국의 침략은 암의 침투와도 같다. 암이 다른 세포마저도 다 같은 세포로 만들 듯이,암 세포 앞에서 육체는 이미 제국주의 식민화가 이루어지듯 진행되고 점령되는 “동일화의 법칙”에 따라 식민화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정체성의 상징인 “얼굴”, “정신”은 점점 지워지거나 혼탁해지는 것이 탈식민주의적 속성이 되어 제국주의에 의해 주체적인 정체성 상실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미국을 식민지배자로 노래한 시도 있다. 김남주의 「불꽃」이란 시다.
활
성조기를 살라먹고
반미의 불꽃이 타오른다
활
식민지의 하늘을 붉게 붉게 물들이고
해방의 불꽃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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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불꽃이 타오른다
부자를 만나면 기름진 배때기
증오의 불길로 튀겨먹고
활
불꽃이 타오른다
흰둥이 깜둥이 이방인을 만나면
저주의 낙인 까맣게 하얗게 태워먹고
활 활 활
예속이 싫어
예속의 나라 식민지의 하늘이 싫어
시인 김남주는 남민전 사건으로 형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시가 미국이 우리를 예속하여 지배하는 식민주의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시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현대의 식민주의를 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기서 한번쯤 고찰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탈식민주의 문학을 고찰해 보았다. 세 명의 학자들의 탈식민주의 이론을 고찰해 보았고 인종적인 문제와 관계되는 사항들을 검토해 보았으며, 그리고 한국의 탈식민주의 문학을 살펴보았다. 이런 고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식민주의가 오랜 세월 지구를 지배해 왔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분석하여 고발하는 것이 문학의 의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 고부응 『 탈식민주의 이론 쟁점』 문학과 지성 2003년
⦿ 고현철 『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 새미 2005년
⦿ 나병철 『 탈식민주의와 근대문학』 문예출판사 1996년
⦿ 호미 바바 저 / 나병철 역 『 탈식민주의 문화이론』 2002년
⦿ 고려대민족문학연구소 『전자시집 한국의 현대시 』 1996년
첫댓글 수고하셨네요~~ 강의 열심히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