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의 장독대
위옥복
솜처럼 하얀 사과꽃 향기가 마중을 나온다. 초록융단을 펼쳐놓은 듯 청보리도 들바람에 춤을 춘다. 길가의 고풍스러운 노송은 짐짓 점잖게 길손을 맞는다. 향기롭고 푸른 고장 청송이다.
맑은 기운을 감싸고 사뿐한 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송소 고택이다. 고택은 거북등을 닮은 산과 실개천으로 둘러싸인 배산임수형 터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만석꾼 심처대의 후손인 송소 심호택이 개화기 즈음 이곳 덕천마을로 이주하여 지은 한옥이다. 평생 뿌리 내렸던 곳을 버리고 터를 옮긴 것은 오로지 조상의 숨결을 이으려는 후손들의 염원이었으리라.
대문에서 풍긴 첫인상은 예상 밖이다. 여느 지체 높은 가문의 솟을대문과는 사뭇 다르게 행랑채보다 살짝 솟았을 뿐 압도하지 않는다. 새가 좌우로 날개를 펼친 듯 행랑채 지붕은 비스듬히 내려오는 뒷산의 물매를 닮아 나지막하다. 높지만 낮게 살려는 심상(心狀)인가 보다. 고택의 대문을 넘을 때 으레 있을 법한 문턱이 없다. 넘어야 할 경계가 없으니 객이야 편하건만 얽힌 사연 하나쯤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대문을 통과하니 문지기 마냥 흙담이 막아선다. 왼쪽 사랑채로는 트여있고, 오른쪽 안채로는 ˩ 자형으로 꺾여있다. 안팎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보통의 담은 아닌 듯하다. 숨바꼭질을 하려는 것일까 흙담에 가리고 키 큰 회양목에 숨어 안채와 사랑채는 보일 듯 말 듯 까만 정수리만 내민다. 의문의 담이 수수께끼를 던진다.
왼쪽 사랑채 앞마당의 둥근 정원을 돌아 드디어 사랑채와 마주한다. 대청마루는 하회마을의 충효당 만큼이나 올려보아야 할 정도로 높지 않다. 기단도 걸터앉기에 나지막한 공간을 내어준다. 옛날 집집마다 드나들던 방물장수가 보따리 물건들을 펼쳐놓고 할머니와 흥정하던 그 정겨운 뜨락이 스쳐간다.
지붕에는 버선코처럼 우아한곡선의 처마는 없다. 잘록한 안허리곡으로 멋부리지 않은 처마가 안을 듯양팔을 벌리고 있다. 만석부호는기교나 허세 따윈 버린 듯하다. 기단 위에 올라 마당을 보니 정원과 담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담장 앞 고목에 핀 라일락 향기가 바람에 실려 달콤하게 사랑채를 감싼다.
사랑채 왼쪽에는 안채로 향하는 폭이 좁은 쪽마루가 붙어있다. 사랑의 오작교일까.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 보고픔마저도 숨겨야 했을까. 다른 이의 눈을 피해 그리운 각시를 만나러 가는 설렘 가득한 길이었을 터이다. 그 타던 마음이 아궁이 속 장작불을 부추겨 쪽마루에 거뭇한 흔적을 남겨놓았나 보다.
뒤뜰로가는 쪽문에서 조약돌과 기와로 모양을 낸 꽃담을 만난다. 꽃담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다. 쪽문 넘어 반대편에서 세어보니 구멍이 세 개 밖에 없다. 속은 듯 다시 봐도 틀림없다. 눈을 대어본다. 하나의 구멍 안에 두 개의 구멍이 들어 있다. 차별의 시대에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안채 여인들이 사랑채 손님을 확인하기 위한 눈이라 한다. 음식을 내어가기 위해 손님의 수를 헤아리거나 얼굴을 붉히며 훔쳐보는 설렘도 있었으리라. 어쩌면 숨죽여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숨구멍은 아니었을까.
디딤돌이 여인들의 깊숙한 공간으로 이끈다. 안채 뒤뜰에서 장독들과 마주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모두 엎어져 있다. 가까이서 보니 옆면과 바닥면이 찌그러진 못난이들 아닌가. 하나같이 만석꾼의 집에 어울리지 않는 볼품없는 것들이다. 정작 옹기장에게는 쓸모없다고 버림받았을 터인데….
못나서 미움 받을 때가 있고 못나도 사랑 받을 때가 있다. 운명을 가르는 것은 외양보다는 내면일진데,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주인의 안목은 장독 속 장맛만큼 깊었으리라.
눈에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꽃만 찾아다니느라 향기로운 꽃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덧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되었건만, 그 삶의 반경 안에서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손바닥을 대어본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표면은 온기를 품고 있다. 투박한 몸으로 햇볕을 막아내고 엄동설한의 혹독한 날씨에도 묵묵히 숨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장독대에서 허영심을 들킨 것 같아 얼른 발길을 옮긴다.
안채를 나오자 그늘에 벌러덩 누워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인다. 낯선 객이 오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지만, 본능을 초월한 녀석이 부럽기만 하다. 애써 짓는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아는 것일까. 세상사 이렇다 저렇다 할 것 없이 부끄러운 나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오늘 봄 속을 한가로이 걸으며 고택의 고상한 운치를 감상하고자 했을 뿐인데, 뜻밖에 귀한 선물을 받아 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