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흥민은 득점 왕이 됐고,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 안이 통과 된 가운데
‘코끼리 타이‘는 스텝이 1명밖에 없어서 제 코가 쑥 빠져 있습니다.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인력 충원을 애써봤지만 뾰쪽한 수가 없어서
이제 화가 날 지경입니다. 화성 시 송산으로 스텝1명을 픽업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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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고 만, 일방적으로 캔-슬 을 알려 와서 김이 확 샜습니다. 우씨,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심정으로 ‘제부도’ 바다를 보려고 나갔어요.
처가에 발길을 끊은 지 15년 만인 셈입니다. 나비를 찍어보니 제부
도가6K, 궁 평 항이9K 갈림길입니다. 방파제가 자동차 경주로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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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어있었고 둘레 길을 반쯤 달리다 유턴해서 ‘궁 평 항’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과거엔 딸랑 하나뿐이던 방파제가 네 다섯 개나
들어섰고 제법 유흥시설이 사람을 끌 만큼 생겼네요. 연안부두
보단 못해도 사이즈가 실미도 정도 돼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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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길로 만든 낚시터에 강태공이들이 포지션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후, 바닷 내음이 "이것이 자유야!' 드루와, 드루와! 하는 것 같습니다.
뚱보 박지원의 ‘열하일기’ 문장이 그리도 수려하다고 하더이다.
‘동방견문록’(마르코폴로)을 능가하는 최고의 기행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高선생의 말을 듣고 당장에 열하일기를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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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가 중국의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인간의 수명이120 세라는
얘기는 성경에만 나온 것이 아닙디다. 저보다 겨우 4살 더 먹었는데
인문학에 통달을 한 그녀는 어떻게 그 많은 도를 닦았을까요.
도올 이후로 제가 만난 고전문학 최고 권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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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용하는 단어가 귀를 사로잡습니다. '접속', '로마드'같은
단어들을 수집하다보면 그녀와 보폭을 마추며 고전 문학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선왕조 500년 대표적 두 성군은
'세종과 정조'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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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공! 이 두 양반이 모두 스토리텔러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시라.
정조는 책을 좋아해 밤을 새며 많은 책을 읽었고 규장각도 세웁니다.
'한글 창조'가 세종의 업적이라면, 정조는 ‘문체반정’통치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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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이 덕무)’ 와 ‘열하일기’를 연결하면 비로소 삼강
오륜의 '붕우이신'이 이해되었고, 이 덕무와 박지원 등 그들의 백탑청연의
우정이 눈물 나게 아름다웠어요. 작금의 이미 날 샌지 오랜 우정 말고
순수와 도덕의 네트워크로서의 우정의 관계로 어우러져 가라는
'공동체 지향'의 메시지가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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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지만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네요.
여행을 먼저 다녀온 벗들에게 '청' 문명의 번화함을 전해 듣고
중원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던 박지원이 삼종형(팔촌형) 박명원의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사절로 가는 비공식 수행원의
행운을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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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5월에 북경을 거쳐 중국 황제가 머무는 열하를 향해 떠나는
여행기로, 압록강 국경을 건너는 6월 24일부터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8월 20일까지의 여정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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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신에 대한 총애로 황제들의 여름 별장인 열하까지 조선인으로서
처음 가게 되는 험난한 행군이었지만 이때 온갖 이민족들(몽고, 이슬람,
티베트)의 기이한 행렬과 마주쳐, 낯선 공간에서 겪는 일들을 '악동의
팡세'처럼 디테일하고 적나라하게 기록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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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두 별이었던 다산(목민심서)과 연암(열하일기)의 비교 분석도
좋았어요, 정주민 '다산 정약용'과 달리, 연암 박지원은 유목민(프리랜서)의
삶을 살았대요. 탈 영토화'의 시선으로 어디에 있어도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는 NOMAD(유목민)적 삶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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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를 여행하며 쏟아내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역설의 표현들은 너무나
멋져부렀습니다. 번역을 잘 한 건지 원본이 좋은 건지 헛갈립니다.
20세기 이분법적 세계관을 깨고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창조는 언어의
향연으로 도래했다는 고 미숙의 고견에 공감하며 리스펙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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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이 동시대 같은 한양에서 살면서 일면식도 없었다니 머슨
일일까요? 다산은 금수저로 주류의 삶을 살았고 연암은 프리렌서로
원심력을 발휘했다는 얘기도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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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선비이면서 잡류들과 어울려 장막을 치고 풀밭에서 노숙하거나
비가 많이 내려 강을 건너지 못한 채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는 고된 여행을
했다네요. 청나라의 책방, 북경 뒷골목을 돌며 술집에서 몽골 인, 이슬람
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도(하류인생) 조선 후기 지식인으로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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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운과 백성의 피폐한 살림살이를 염려했다는 것 아닙니까? 생 날라리
연암 기행문을 접하면 누구라도 바로 지금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것입니다.
고미숙은 인생에서 '유머의 힘'을 힘주어 피력하더이다. 에예공! 우리는
유머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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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요동 벌판을 보노라니 훌륭한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
한 곳이로구나! “ 와우, 연암 리스펙트! 고 미숙이 공감한 연암을 반 만
이라도 공유하고 싶어집니다. 여행이 길이 되고 그 길이, 그 삶이 글이
되어 자기 존재 탐구에 이르는 도(道)까지도 모두 아우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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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나만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글쓰기)이 21세기 최고의 지성이며
경쟁력이라고 하더라. 물론 천국도 침노해야 얻는 것처럼 '사유와 공감'
능력도 지금 내가 뚫고 접속하지 않으면 낫-띵일 것이다. 접속 강추.
아빠가 애기한 '포트폴리오'만들기와 같은 의미일 테니 참고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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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서신) 포도가 당도가 있다고 아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났어요.
30분쯤 놀다가 장덕리로 가려고 나비를 찍었는데 ‘뫼 바위‘ 지나서
진입로를 도저히 찾을 길이 없네요. ‘장덕 감리 교회’를 다시 찍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어요. 목장에 소들이 꽉차있었고 교회는 텅 비어
있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 에스더가 플롯을 불고 예배에 참석을
했을 것입니다. 노엘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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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이 초라한 예배당을 보니 격세지감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어요.
느릿느릿 박철 목사님이 부산 교회에 계실 때 제가 장인장모님을 그곳에
조인해드린 일은 가장 잘한 일입니다. 사택도 누가 사는지 안 사는 지
마구간 같아보였어요. 장미동산은 뭘까요? 에덴동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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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살았다던 집터는 보수를 한 것 같네요. 골목 삼거리를 한 번에
꺾을 수가 없어서 병규네 집 쪽으로 크게 돌아 처갓집을 찾았어요.
민족 촌도 아니고 대문이 잠긴 것이 사람이 살지 않는 모양입니다.
연병. 눈물이 핑 돌았어요, 호 근이 이자식 집수리 좀 하고 살지 않고선.
2022.5.24.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