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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운행 시간 |
8월 12일 | 동부터미날(07:20) - 추풍령(08:10∼55,전통왕순대 조식) - 금산 채석장(09:25∼35) - 502봉(10:10∼20) - 사기점고개(10:30 통과, 중간 15분간 휴식) - 묘함산 밑 포장임도 및 납골당(11:55∼13:55, 지릉진출 길찾기 등) - 중식(11:35∼14:20) - 작점고개(14:35 통과) - 용문산(17:15 통과, 중간 3차례 55분 휴식) - 국수봉(19: 20 통과, 중간 2차례 40여분 휴식, 두 팀으로 나누어짐, 현주 무릅 부상) - 큰재(21:00 1팀 착, 22:05 2팀 착, 석식 및 막영*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 폐교터) - 취침(12:10) |
8월 13일 | *김현주 대원 무릅 부상으로 산행불참 기상 및 출발(05:30∼07:50, 조식 및 캠프 철수) - 이영도목장 포장농로(08:20∼45, 길 찾기 및 휴식) - 회룡 재(09:25∼50) - 개터재(10:25∼50, 약간 올라서서 휴식) - 윗왕실(12:40∼14:00, 중간 2차례 20분간 휴식, 중식) - 백학산(15:20∼37, 중간 2차례 40분간 휴식) - 임도(16:00∼20, 버섯채취 사람들 수박대접 휴식) - 개머리재(17:50∼18:15, 중간 2차례25분간 휴식) - 지기재(19:20, 중간 중간 1차례 7분간 휴식, 석식 및 금은골 막영) - 취침(22:00) |
8월 14일 | *김현주 대원, 하창수 대원 산행불참 기상 및 출발(05:30∼07:45, 조식 및 캠프 철수) - 금은골 뒷산 마루(08:25∼40, 길찾기로 지체) - 신의재터 (09:45 통과, 안쑥밭골 지나 1차례 15분간 휴식, 도로 건너 농로 따라 올라 묘지에서 15분간 휴식) - 중식 (11:27∼12:50, 중간 1차례 15분간 휴식, 무지개산 못미쳐 중식) - 무지개산(13:07 통과) - 윤지미산(14:55∼ 15:10, 중간 2차례 30분간 휴식) - 화령재(16:25, 중간 1차례 10분간 휴식) - 977번 도로 가 휴게소(17:50, 석 식 및 막영, 비재 차량 주차 등) - 취침(12:00) |
8월 15일 | *김현주 대원 산행불참 기상 및 화령재 출발(05:30∼07:35, 조식 및 캠프 철수) - 산불감시초소 통과(09:15, 중간 2차례 27분간 휴식) - 봉황산(09:35∼53, 정상촬영, 봉황산 바로 전 안부에서 15분간 휴식) - 비재(12:05, 중간 2차례 40분간 휴 식) - 비재 및 계곡 중식 - 관기 경유 국도 이용 옥천 - 옥천 대전 경부고속도로 이용 |
나. 특 기 사 항
1. 우선 추풍령에서 화령재까지의 구간은 재미라곤 전혀없는 짜증스런 구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망 이나 경치 등도 별로이고, 표고차가 그리 크지 않으나 작은 둔덕들의 경사가 제법 된다, 또한 길 자체가 가시덤불이나 잡목으로 뒤섞여 있을 뿐만아니라 거미줄과 날파리 등이 산행 내내 지겹게 진행을 방해하 여 체력소모가 매우 심하다. 대간이 아니라면 전혀 산행의 가치가 없다. 전체 구간 중 백학산 오름길은 소나무들이 키가 작아 군데군데 햇볕에 노출되어 있고, 거의 전 구간이 수풀로 뒤덮여져 자연스레 그늘이 형성되어 있지만 바람이 별로 없어 좀 불만이었다.
2. 사기점 고개 지나 묘함산으로 오르는 포장임도를 만나면 무조건 임도를 따라 작점고개 쪽으로 내려가 왼 쪽의 납골당을 지나 도로 왼편의 농로로 진입하여야 한다. 도상의 묘함산 지릉을 올라 돌아나오는 능선이 라는 것은 대간의 성격 상 큰 의미도 없으며, 길도 없다. 이번에 이 곳에서 거의 두어시간을 까먹었는데, 대간의 물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공식에 너무 집착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대간을 논할 때 걸리와 같이 급 경사 지역에 작은 홈을 이룬 물길(경우에 따라 물이 존재하는)과 같이 사소한 것은 무시해도 좋을 듯 하 다. 길따라 내려가다 보면 코 앞에 작점고갯길이 보이고 납골당 거쳐 길 왼쪽으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잠 시 내려가 신애원 농장 부근의 작은 계곡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3. 큰 재의 폐교된 초등학교는 막영지로 아주 그만으로 놓치기 서운한 잠자리이다. 현재는 부산의 백두대간 생태학교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그저 비어 있다. 근처에 민가가 두어 채 있어 물을 구할 수 있으나, 주의 할 점은 대간팀들이 그 집 주인들께 많은 폐를 끼친 모양으로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으므로 깍듯이 예의 를 갖추어 줄 것을 당부드린다.
4. 큰재의 폐교 왼쪽 옆구리를 끼어 학교관사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약 30분 정도면 이영도 목장에서 올라 오는 농로로 보이는 시멘트포장길(지도에 표기안됨)이 나오는데, 농로를 가로질러 그 앞의 봉우리로 진행 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 앞의 봉우리는 541.9 봉이며 길이 없다. 농로를 따라 우측으로 산 옆구 리를 끼고 돌아나가면 저 밑에 목장이 보이고 농로 우측으로 능선진입을 알려주는 리본이 달려있다.
5. 윗왕실 고개길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진행방향 왼쪽 저 밑으로 마을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갈 필요는 없 고 그 바로 밑에 과수원에서 구하면 된다.
6. 백학산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고 잡목이 많아 매우 불편하다. 정상부위에서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한 후 바로 우측의 가파른 하산길로 하산해야 한다. 걸음의 타성으로 계속 진행하면 넘어마 마을로 내려갈 수 있으므로 정상에서는 반드시 리본을 확인해야 한다. 내려서면 함박골에서 백학산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산판길(포장도로)이 나타난다. 그 옆으로 흐르는 실개천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7. 지기재에서 금은골사이의 야산으로 대간을 이어나가다 보면 마을의 밭을 지나게 되고 잡목으로 우거진 산 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르다보면 화산암같은 현무암 계통의 바위가 사면에 군데군데 드리워져 있으며, 능 선에 올라서서 바로 우측의 길로 90도 각도로 꺽여 접어들어야 한다. 능선의 방향을 유의하지 않고 그냥 진행하면 정반대의 작은 봉우리로 이어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윤지미산에서 화령재까지의 구간은 이 외로 까다로운 구간이다. 표고차는 심하지 않으나 5만분의 일 지도로 표기되지 않는 20미터 미만의 작은 둔덕을이 제법 경사를 가지고 이어져 매우 짜증스럽고 피로하다.
8. 화령재는 산을 절개하여 도로를 만든 고개이다. 지형을 살펴보자면 도로길을 능선마루로 보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리본이 달려있는 화령재 도로 옆의 산길로 접어들면 다시 도로로 떨어졌다가 또 지저분한 산길 로 들어섰다가 갈림길 너머 둔덕으로 길이 이어지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은 온통 가시덤불이고 남의 집 밭고랑이고 뭐 그렇고 그런 길이다. 그냥 도로로 진행하여 내려가다가 갈림길 에서 도로를 건너 리본이 달려있는 둔덕으로 가면 된다.
9. 봉황산군의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약간의 암봉이 나오는데 우회길이 뚜렷하나 암봉으로 바로붙어도 재미있 을 듯 하다. 봉황산 봉우리 바로 밑 안부에서 살펴본 결과 암봉으로부터 내려오는 뚜렷한 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회보다는 바로 마루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10. 비재에서는 동관리쪽으로 비포장이고, 장자동 쪽으로는 잠시 내려가면 포장길이 나오며, 길 옆 계곡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비재에서 막영을 할 경우에 참조할 사항.
11. 여름철의 종주는 체력이 매우 많이 소진된다. 당연히 휴식시간도 길어지므로 전체 산행 소요시간이 많이 늘어난다. 그러나, 휴식시간의 안배를 게을리 하고 충분한 휴식 없이 강행을 할 경우, 여러가지 무리가 따 를 수 있으므로 신중한 산행계획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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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입 |
지 출 |
잔 고 |
8월 13일 금요일 날씨 맑음
4시 반의 기상계획이 무색하게 두런두런 몸을 일으킨 시각이 5시 반이다. 어제의 산행이 그처럼 힘들었다는 반증이다. 이리저리 뒤척여보는 몸뚱아리는 여기저기 삐꺽이는 소리가 요란하고, 영 부자연스럽다. 벌에 쏘인 다리는 무릅까지 벌겋게 부풀어 있는데 그런 건 별로 신경도 안쓰이고 약간 가려울 뿐 통증도 별로 없다. 문제는 각 근육들이 비정상으로 아프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근육의 상태를 보면서 내 몰라라 비웃어 본다. 그렇게 아픈 다리를 움직여 화장실에도 갔다 오고, 취사도 하면서 폐교를 둘러본다. 옥산초등하교 인성분교가 원래의 학교 명이었는데 지금은 부산시 백두대간 생태학원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언제 생태교실을 여는가? 궁금할 뿐이다.
조식 후 무릅부상인 현주가 산행을 생략하고 다음 막영지에서 기다리기로 하여 지도로 찾아갈 길을 일러주고 7시 50분 출발한다. 현주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유학 중 오랜만의 귀국나들이를 망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폐교를 오른쪽에 끼고 돌며 대간길이 이어진다. 폐교의 관사를 지나쳐 추풍령에서 내내 계속되는 지저분한 산길로 접어들어 한 20여분 웬 산판길인지 농로인지가 나타나는 데 지도를 보니 표기는 되어 있지않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이영도 목장 부근임이 틀림없을 듯. 그 앞의 봉우리는 542봉임이 분명한데 도로의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급경사 걸리를 지나치는 것이 물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위반하는 것 같아 영 찜찜하다. 542봉 쪽의 절개지로 아주 가끔씩 여기저기 리본이 보여 창조 형과 회장님이 길찾기를 나선 동안 재하와 도로길을 따라 가 보니 우측으로 한 200m쯤 산을 끼고 돌면 길 우측 얕은 능선으로 붙는 길에 리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 곳 역시 헷갈리기 쉬운 곳이라고 생각된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따라붙는 날벌레를 스카프를 휘둘러 쫓으며 부지런히 내려서니 회룡재가 나타난다. 모두들 모여 행동식을 먹으면서 쉰다. 창조형과 정복이 형이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는데 두 분 다 물집이 제법 아프게 나 있다. 터뜨릴까 말까로 고민하는 걸 보고 누구는 물집은 터뜨리는 게 아니라고 한다. 군대 시절 행군 중에 물집이 잡히면 터뜨려 통증을 다스린 경험이 있어 터뜨리시라고 하니까 손톱으로 물집을 잡아뜯는다. 그 모양을 보니 항문이 시큰거리면서 이번 산행은 모두에게 고행이구나 싶다.
개터재를 지나 가파른 고지를 올라 평탄한 능선을 지나쳐 한번의 다리 쉼 끝에 작은 고개를 올라서니 갑자기 전망이 탁 터지고 잠잠하던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좋은 쉼터이다. 바로 전의 휴식도 아랑곳없이 그 전망과 그 바람을 즐긴다. 벌써 12시이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래면서 그대로 진행 드디어 윗왕실. 커다란 산판길이 예까지 올라와 있는데 그늘하나 없어 취사하면서 쉬기가 마뜩챦다. 재하와 기현이가 마을로 물을 구하러 간 사이 능선으로 붙어 비좁은 길가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취사준비를 한다.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채워 나타난 기현이의 손에 웬 토마토와 참외가 들려 있다. 마을까지 갈 필요없이 바로 아래 과수원집이 있는데 거기서 물도 구하고 밭의 열매를 몇 개 따왔단다. 그러고보니 상품이 될 가치는 없는 못생긴 놈들이다.
홀로 남긴 현주가 걱정스러워 기현이가 핸디폰으로 현주에게 통화를 하더니 엉뚱한 소식을 전한다. 지기재 가는 차를 타려 기다리다가 웬 고마운 아저씨를 만나 차를 얻어타고 가다가 차 안에서 혼절을 하여 그 아저씨 댁에서 점심도 얻어먹고 휴식 중이라고...... 어제의 산행이 그처럼 힘들었었나? 그 아저씨 일행들 욕 엄청 했겠다 싶다. 그나저나 그 아저씨가 지기재까지 실어주시기로 했다니 참 고마운 분이다. 혼절이라기보다 피곤한 김에 잠이 들었겠거니 생각해 본다. 라면이 다 끓어 아침을 먹고 남은 찬밥덩이를 라면과 함께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토마토와 참외가 천덕꾸러기가 되는 순간 예의 의무방어전이 시작되고 다시 출발.
앞을 막는 봉이 백학산인데 작은 소나무 가지가 뒤덮여 대단히 불편하고 땡볕에 노출된 구간이다. 진이 다 빠져 정상부근의 평탄한 라인에 올라서니 천만다행으로 키큰 나무들이 많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아주 미미한 바람기를 느끼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한다. 재하가 하는 말이 걸작으로 "이게 무슨 백학산이야" 아마도 백학산이라는 우아한 지명으로 비추어 보아 제법 한가락하는 명산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모두가 그 말에 왁자 웃음꽃이 핀다. 평탄한 능선길을 잠시 진행하면 정상이 나오고 대간길은 정상 바로 우측으로 나 있다. 계속 진행하기 쉬운 곳이므로 주의해야 하지만 리본과 길의 상태를 살펴보면 대간길 짐작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백학산 정상을 뒤로하고 가파르게 내려오다보니 지도에 표기 안된 웬 산판길이 나타나고 승용차 두어대와 사람들이 여럿 모여 앉아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함박골로 짐작되는 곳에서 백학산 정상 쪽으로 산판길이 뚫여 있는 듯. 모여있던 분들이 상거지 행색인 우리를 보고 아이스박스에 잔뜩 시야시된 수박한통을 잘라 적선을 한다. -아이고 이거 웬 횡재- 길 옆으로 작은 도랑에 물이 보여 하나 둘씩 내려가 몸을 씻어 열기를 식히고 올라와 수박 맛을 본다. 내 생전에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수박을 맛 본일이 없다. 그 분들은 백학산 주변에 싸리버섯을 채취하러 오셨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오다가다 이상한 버섯들이 많기는 많았다.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수박맛을 보게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 잘 가라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자, 바로 출발 바로 얕으막한 능선으로 붙어 시간정도 운행하여 한번 다리쉼을 하고 5시가 한참 넘어 개머리재 도착.
앞에 얕으막한 야산의 줄기를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인 지기재이다. 창수 형의 사타구니가 반바지에 쓸려 형편없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통을 호소한다. 과수원과 밭들이 풍요로와 보이는 마을에 사람을 만나 좀 씻을 곳을 물어보니 길 아래쪽을 가르킨다. 몇몇이 우르르 간 사이 기현이와 창조형, 해수와 소주잔을 기울인다. 잠시 후 나타난 일행은 씻을만한 곳이라는 게 작은 웅덩이로 씻을만한 곳이 아니라고 허탕을 치고 돌아왔단다. 얼마 안 남은 거리, 빨리 가서 쉬는 편이 좋겠다.
하루거리 산행이 마감이 되어 가는 지 몸이 매우 피곤하다. 산판길 하나를 지나쳐 도상으로 한 50m쯤 높이의 작은 오름길이 제법 고바우를 형성하여 힘이 들게 한다. 능선마루를 지나 잠시, 길이 좌측의 급사면으로 뚝 떨어지고 한참을 내려가니 낙엽송군락이 나타나며 작은 도랑물을 건넌다. 지기재는 과수원마을이다. 뒤의 산을 쳐다보면서 도랑을 건넌 것이 마음에 걸려 어디가 정상루트인가 가늠하여 본다. 모두들 우측으로 뻗은 능선 줄기를 가르키고 그 줄기가 이쪽으로 달리는 곳을 말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과연 그 줄기가 눈에 뜨인다. 하지만 지도에는 그 능선으로 길 표기가 되어있지 않다. 나로서는 역시 도랑물에 대한 걱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혼자 생각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과수원 사잇길을 사람있다는 표시인지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소리로 아릿한 발을 달래며 벗어나니 큰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너머 아주 잘 생긴 묘 한기와 그럴듯한 비석하나가 외로운 곳에 현주가 생글거리며 웬 아이 둘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다가가 오랜만에 맛보는 잘 식은 콜라를 벌컥인다. -어 시원하다- 굉장히 큰 수박덩이가 보이고 막걸리원액도 있다. 모두가 모인 뒤 막영지를 찾아보니 마땅한 데가 없다. 잠시 길 따라 더 나아가면 금은골이 있는데 그 곳이 적당할 듯 하여 이동하니 계곡에는 모두 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수원 옆에 비탈진 작은 공터에는 농약병과 농약으로 보이는 분말이 떨어져 있어 별로 기분이 좋지않다. 기현이가 멀리 보이는 저수지까지 가 보고 회장님과 정복이형이 금은골 길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 갔다가 온다. 기현이는 저수지가 역시 마땅치가 않다 하고 정복이 형은 길 옆 작은 곳이 텐트 두어동 들어갈 만 하다 한다. 그 사이 현주는 금은골 못 미친 민가 한 곳에서 물 사용할 것을 협상하고 돌아온다.
다시 이동.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옮겨 간 곳 역시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길 끝에 민가가 두채밖에 없으니 차량 이동은 없을 것이라 도로상에 텐트를 실례하기로 하고 밥을 하여 도로를 안방으로 둘러 앉는다. 저 위쪽에서 이쪽의 소리가 궁금한 지 봉고 한 대가 나타나 잠시 훼방을 하고 차를 돌려 돌아간다. 우리는 그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다. 대간종주가 마치 벼슬인 양 남의 동네에서 떠드는 것이 좀 켕긴다. 그런 저자세를 기특타 여겼는지 온 밤 내내 편안하다.
밥을 먹으면서 막걸리원액을 희석시켜 한잔씩 하는데 굉장히 쓰고 독하다. 거의 1/2이상 희석시키자 먹을만 해진다. 거기에 콜라를 더하여 먹으니 그런대로 술맛이 별미. 밥먹고 수박 반덩어리를 먹고(이 수박이 크기도 크려니와 굉장히 달다), 물쓰기 협상을 한 민가를 찾아가 몸을 씻는데 외양간에 수도가가 있으므로 냄새가 심하다. 소의 배설물의 수분이 골을 이루는 와중에도 몸을 씻으니 그런대로 살맛이 난다. 그래도 티셔츠의 땀냄새는 완전 발냄새와 한가지. 티셔츠도 대충 헹구어 뒤집어 쓰고 돌아와 텐트를 옮겨 길 한가운데 세워 하나 둘씩 안으로 사라진다. 기현이가 모기장을 가지고 와서 길가 나무를 이용하여 설치를 하고 한뎃 잠 좋아하는 현주 잠자리를 보아준다. 나 역시 오랜만의 한뎃잠을 즐기고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한다. 텐트안의 재하와 기현이가 덥다고 아우성이다. 가만보니 여름철 별자리가 하늘에 촘촘한 데 플라이까지 쳐 놓았다. 일어나 플라이를 걷어주자 안에서 어 시원해 하고 고마워 한다. 그건 그렇고 다시는 여름철에 평탄타는 이유로 도로에 텐트를 치는 무식함은 없어야겠다. 한낮동안 달궈진 시멘트 덩어리가 축열되어 밤에 방사되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모기는 또 왜 이리 극성이야? 못살겠다 꽤꼬리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바닥의 열기와 싸움 끝에 언제 잠이 들었는지?
8월 14일 토요일 날씨 맑음
밖이 훤하지만 모두 일어날 생각들이 없다. 앞길이 걱정이지만 에라 모르겠다. 굉장한 배짱으로 태평을 부리는 데 "비상 비상" 비몽사몽 중에 발동기 소리가 요란하다. 느릿하게 빼꼼이 밖을 보니 부지런한 농촌의 경운기가 텐트 앞에 버티고 있다. 우르르 달려나와 텐트를 들어 길 한켠으로 치우고 연신 굽신굽신, 약간 메마른 듯한 표정의 농군 얼굴이 비시시 웃음기를 보이면서 사라진다.
취사 후, 창수 형이 어제의 산행이 과했는지 오늘 산행을 못 하겠다고 하신다. 현주의 동무가 하나 더 늘은 셈이다. 어차피 이번의 산행은 애초 속리산을 넘기로 한 일정을 수정해야겠기로 늘재에 주차한 차량을 가지고 화령재에서 기다리시라고 차 키를 현주와 창수형께 맏긴다. 창수형과 현주가 이번 산행의 지원조 구실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좀 늦은 시각인 8시 다 되어 출발, 금은골 초입의 민가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지기재에서 작은 둔덕을 따라 이곳에서 합류하는 곳이다. 그 길을 따라 능선으로 진입하여 잠시면 다시 금은골의 논밭들이 나타난다. 밭의 고랑을 따라 이동하다가 코 앞의 덤불로 진입하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후미를 기다리는데 뒤의 창조형이 계속 에코를 넣으신다. 웬일인가 했더니 정복이 형이 잠시 길을 잃어 야산의 길로 걷던 타성으로 그냥 지나치신 모양이다. 한참 후 나타나신 정복이형은 수통의 뚜껑이 열려 배낭이 젖어 늦었다고 미안해 하신다. 다시 출발 경사가 나타나는 곳에 마치 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린 듯이 검붉은 빛깔의 저밀도 암벽지대가 나타난다. 현무암이라고 해야할지 화산암이라고 해야 할지...... 그곳을 올라 꼭대기에 올라서서 계속 진행 컴파스의 각도가 반대방향이다. 뭐 이러다 돌겠지 했는데 작은 소나무들이 코 앞을 가로막고 길도 불분명한 것이 꽤 오래 간다. 앞에 소리쳐 주의를 주니 회장님과 재하가 이미 멈추어서 길을 확인 중이다. 회장님이 앞의 볼록한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와서 아니라 한다. 그 사이 두명의 등산객이 그 위에서 내려와 우리가 지나쳐 온 길로 내뺀다. 회장님이 그들에게 길을 일러 주었단다. 다시 빽, 최초 올라섰던 곳에 와 보니 역시나 바로 올라붙어 우측으로 90도 꺾여 리본이 달려있다. 오르면서 약간 좌측으로 휘어지는데 그 타성으로 반대방향으로 내달은 것이다.
제법 가파르게 떨어져 역시 논과 밭이 있는 곳이 나타나는데 바깥쑥밭과 안 쑥밭골인 듯 하다. 역시 밭고랑 사잇길을 지나쳐 아주 얕으막하게 길게 누워 있는 둔덕으로 진입한다. 시골 야산으로 소풍나온 기분으로 길이 아주 좋고 볕이 알맞게 청명하다. 신나게 내달아 포장도로. 신의터재이다. 비석과 신의터재의 유래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서 있고 잔디가 아주 곱다. 앞에 갔던 사람 둘이 거기서 담배를 물고 있다. 쉬어가고 싶었으나 그늘이 없어 쉬기에 부적당하다. 길을 건너 계속 진행하여 언덕마루를 지나니 그 너머 동네가 한가롭게 보이는 데 대간길을 그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비탈에 자리한 밭가로 귀챦은 덤불을 지나 오르니 묘가 두기 앉아있다. 앉을 자리는 다소 지저분하지만 그늘이 있어 쉴만한 곳이다. 퍼질러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아까 그 두 사람이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한 10분 후 출발, 길 좌측으로 마을이 바라다보이는 곳을 지나치자 두 사람이 앉아 쉬다가 일행들에게 사탕 두어알씩을 건네어 준다. 이틀간의 산행으로 몸이 피곤한 지 이들과 어데서 오셨냐? 어데로 가느냐?는 둥 가벼운 수인사도 못하고 그저 "고맙습니다"고 감사의 뜻만 표하고 내닫는다. 표고가 그리 나지 않는 길따라 가다가 안부처럼 옴폭한 곳에 바람이 시원하다. 무지개산 너머에서 중식을 하느니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훨씬 더 좋을 듯. 고된 삶의 멍에같은 짐을 풀어 시름을 잊는다. 웃통을 벗어 땀에 절은 티셔츠를 나무에 걸어놓고 라면이 끓는 시간에 그늘진 맨땅을 골라 드러누웠는데 개미들이 극성이다. 다시 하릴없이 일어나 앉아 있다보니 아까의 두사람이 나타나 물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지도를 보니 왼쪽으로 길 없는 계곡을 헤쳐 한참 가면 중인초등교라는 곳에서 올라 오는 계곡을 만날 듯도 싶다. 그렇게 자신없이 일러주자 서로들 마주보며 뭐라 하다가 그리로 내려간다. 아마도 중식을 해결할 곳이 이 곳밖에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 속으로 고생좀 하겠구나고 쥐가 고양이 생각한다. 밥을 먹고 나서 졸음이 쏟아지자 조금 자고 가자는 의견이 나와 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하다가 배낭이 쳐지는 듯 하여 끈을 조정하다보니 기현이가 다가와서 손을 보아 준다. 기현이의 배낭이 내 것과 같은 종류인 데 대수술 끝에 착용하니 아주 착용감이 좋다. 그 모양을 보던 대원들이 남의 배낭 손 보아 주기는 하면서 제 것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느냐며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비아냥거린다. 덕분에 웃음 끝에 시간 반을 죽치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무지개산까지 제법 고생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능선길이 이외로 기복이 없고 수월하다. 걷다보니 무지개산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어느결에 뒤로 하고 각도가 꺾인다. 다리쉼 한번 하고 계속 진행, 능선 좌측 아래로 판곡저수지로 보이는 듯한 것을 언듯 확인하고 한참을 더 나아가 배가 고플 즈음에야 걸음을 멈춘다. 미싯가루를 풀어 허기를 달래면서 참 잘도 왔다고 흐뭇해 한다. 꺼진 배를 달래고 일어서 한 30여분 코 앞에 경사가 있는 고바우가 있는데 아주 잠깐일 듯. 예가 윤지미산인 듯 하다. 올라서서 쉬기에는 좀 힘이 달린다. 예전의 젊은 혈기가 근자에 많이 죽었다. 몸이 쉬자는 신호를 보내면 쉬어 가는게 약이다. 저걸 한번 치고 쉬자는 혈기를 달래고 퍼질러 앉는다.
정상 밑의 휴식 후 오르는 고바우는 이외로 금새 끝이 난다. 정상을 지나 적당한 비탈을 잡목을 헤치며 나아가면서 갈길을 가늠한다. 앞에 고만고만한 야산들이 있다. 저거 하나 넘고 또 저거 이렇게 가늠하면서 살피니 지도에 표기된 쌍봉으로 보이는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밑에 도착하니 왼편으로 계곡이 있고 오른쪽으로 제법 큰 도로가 나 있다. 여기는 마륜이라는 곳인 듯. 계곡쪽으로 제일광업소라고 표시된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앞의 쌍봉이 지척이라 온 길에 대해 인심을 더 쓴다. 앉아서 대원들에게 이제 10분이면 된다고 흰소리를 한다. 이제 마지막이다 하고 일어서 길 따라 작은 언덕을 넘으니 왼쪽 둔덕의 밭으로 길이 이어지고 제법 비탈이 힘들다. 저거 하나 넘으면 화령재가 보일 듯 한데, 고만고만한 둔덕이 계속 나타나고 화령재의 오고가는 차소리가 지척인데도 어디까지 가야 할지 지저분한 수풀로 가득한 작은 언덕들이 끝을 보이지 않는다. 흰소리 끝의 10분이란 시간이 거의 3배가 지나서야 화령재가 매우 가파르게 뚝 떨어지는 비탈이 저 아래 보인다.
조심조심 내려서니 창수 형과 현주가 시원한 콜라병을 들고 웃음을 보인다. 마지막 10분에 속은 대원들이 파김치가 되어 모이고 창조 형이 괘씸한 심정을 뱉아 놓으신다. "뭐가 10분이야" "히히히"
산행은 끝났지만 몸 씻을 물 걱정과 막영지 걱정이 한창이다. 창수 형과 현주의 give-up덕에 이동할만한 차량이 있으니 뭐 별 걱정도 되지 않는다. 이 곳은 텐트 칠만한 곳은 지천이나 물을 구할 민가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몸을 씻지 않을 량이면 그냥 딩굴어도 되겠지만 사흘간 질끔거린 목욕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씻고 싶은 그 바램 하나만으로 차에 동승하여 이동을 한다. 산 중의 고행이 주는 가치를 차 버리는 나약함이 느껴져 웬지 뭔가 찜찜하다.
화령재에서 977도로로 통하는 길을 따라 달려 내려가 삼거리에서 동관리 쪽으로 좀 달려나가자 왼쪽 큰 계곡에 휴게소가 보이고 휴게소의 터가 놀이터로 이용되는 지 제법 넓다. 휴게소로 진입하는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차를 세운다. 커다란 천막이 두어채 쳐져있고 그 안에 무슨 종친회를 하는 지 많은 사람들이 회합을 벌이고 있다. 짐을 내려놓고 내일 종착지인 비재로 차를 주차시키고 자 창조 형과 함께 다녀오니 텐트가 가설되어 있고 한창 저녁거리가 끓고 있다.
매트리스 서너장을 사각으로 펼쳐놓고 거기에 엉덩이를 걸쳐 둘러앉아 언제나처럼 한잔씩을 기울인다. 그런데 갑자기 휴게소 식당의 아주머니들이 바비큐판과 숯 그리고 양념된 고기를 우리 곁에 설치한다. "뭐예요?" "시키졌쟎아요" 어리둥절하는 중에 아주머니들의 웃음 너머로 해수의 쑥스런 이빨이 보인다. 뭐 오랜만에 포식을 해 보자나? 호강을 해 보자나? 양심에 찔리고 말고 육체는 이미 그걸 원하고 있다. 술잔이 오락가락 하고 기현이가 뒤적여 적당히 잘 익은 고기가 입에 들어가는 와중에 창조 형은 기분이 좀 그러신 듯 하다. 나 역시 좀 켕기는데 원채가 꼬장꼬장하신 성미가 그럴만도 하시겠지. 하지만 술보고 그냥 넘어가실 형님이 아니다. 으흐흐
배불리 포식을 한 연후 계곡으로 몰려가 홀딱벗고 멱을 감는다. 이건 휴가를 온 기분이다. 수영을 할만큼 깊지는 않고 물의 수온도 적당하다. 벗고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리를 치운 후 잠자리로 들어가는 데 모두들 많이 취한 탓으로 찢어지는 게 굉장히 힘들다. 기현이와 해수가 동분서주하여 선배님들을 한분 두분 씩 모시고 -정복이 형과 창수형은 원래가 일찍 잠자리에 드시므로 생략 - 매점에 둘러앉아 맥주 한잔씩을 더한다. 저쪽의 종친들은 노래방기계로 기분을 내더니 이미 파장이 난 모양으로 조용하다. 북새통 끝에 부끄러운 잠이 든 시각은 영 오리무중!
8월 15일 일요일 날씨 맑음
어제 먹은 술이 과했는지 속이 영 거북하다. 어쨋거나 오늘의 산행은 비재까지로 큰 걱정은 없다. 차 역시 미리 가져다 놓았으므로 일정이 엄청 널널하다. 텐트벽이 노랗게 물이들어 자는 눈꺼풀을 간지럽히도록 일어날 생각이 없다. 밖에는 이미 술 없는 속이 편한 정복이 형과 창수 형의 목소리가 들리고 피곤한 와중에도 분주한 후배들의 마음씨가 요란한 데 그냥 뻗어있다. 나이 탓으로 돌리기에는 정신력 역시 체력의 저하와 비례하는 듯.
아침을 먹고나서 짐을 챙긴다. 하루를 쉰 탓으로 창수 형이 함께 산행에 합류키로 하고 현주는 여전히 무릅의 이상으로 또 하루를 쓸쓸하게 보내겠다고 한다. 오랜만의 귀국나들이가 이렇듯이 재미없다니 하여 위로를 하니까 "뭘요 아주 즐거운걸요"하면서 까르륵거린다. 에구 귀여운 것.
다시 화령재. 화령재 옆의 작은 능선으로 표시기가 즐비하다. 그 길로 들어서 아주 잠시 다시 도로로 떨어지는 데 밭고랑 사이를 거쳐 도로로 나서게 되어 있다. 길이 영 개판으로 거미줄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느라 종아리 허벅지가 성할 수 없다. 도로로 나서자 다시 지겨운 가시덤불로 기어들어간다. 헤쳐나오니까 비로소 도로의 갈림길이 나오고 건너편에 리본이 알려주는 좋은 길이 나온다. 여기 화령재의 지형을 가만히 살펴보니 역시 도로로 내려오다 붙는 편이 아주 현명한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 이건 쓸데없는 노가다인 셈이다. 조금 가파른 능선길은 초입에 덤불로 고생하지만 반시간정도 다리품을 팔면 길이 순해진다. 한번 쉰 후 계속 나아가다 보니 저 앞에 뾰족한 봉우리가 보이고 꼭대기에 뭔가 가설물이 보인다. 아마도 봉황산 전의 산불감시초소인 모양이다. 제법 고생을 할 것 같이 위압감을 주는 높이. 그러나 부지런히 셈을 하며 고도를 올리다보니 금새 마루턱이다. 기현이가 맥주를 꺼낸다. 아마도 막영지에서 하나 꼬불쳐 가지고 온 듯 한모금씩을 마시면서 즐거워 한다.
마루를 따라 잠시 오르다보면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게 되고 전망이 터진다. 앞에 크고작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암릉이 보이고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그 왼쪽 밑으로 우회길이 나온다. 위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우회길로 접어들어 돌아나간다. 봉황산 바로 밑의 안부에 다다라 암봉 쪽을 보니 그 위에서 내려오는 길이 보여 허탈하게 만든다. 앉아서 간식을 먹기로 한다. 재하가 과자를 꺼내어 아주 맛나게 먹으면서 누군가 뭐냐?고 물으니 "저는 그레이스가 좋아요" 한다. 하나 맛보니까 수긍이 가는 맛이다. 봉황산 오름길 역시 아주 잠깐 올라서니 시야가 탁 턱지고 진행방향 쪽으로 가로지른 능선 저 너머로 치닫는 능선이 보이고 능선의 말미에 우뚝솟은 이쁜 암봉이 바라다 보인다. 각도도 따지 않은 주제에 저것이 속리산 천황봉이려니 지레 짐작하고 야 속리산이다고 대원들을 속인다. 모두 모인 후 증명사진 한 찰칵하고 내려서는데 저 위에서는 정복이 형과 재하가 계속 저게 무슨 봉우리인가? 고 의논 중이다. 각도를 보니 서쪽이고 지도를 보니 과연 서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말미에 구병산이 있다. 봉황산 지나 잠시면 암벽지대가 나오고 약간 위태롭게 우회하여 더듬더듬 하강한 후 다시 능선마루로 붙는다. 중간 적당한 곳에 터를 잡고 살펴보니 진행 방향의 능선은 가늠키 어렵고 우측의 저쪽으로 대궐터산이 보인다. 천황봉은 그 산의 능선을 따라 이동하다가 왼쪽의 갈령마루로 붙어 오르겠지. 그러고보니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앞길이 구만리이다.
쉬는 도중 창수 형이 기분이 좋으신 지 쉴 틈 없이 이런 말씀 저런 말씀들을 하신다. 일행들 이 모두 실없이 함께 좋아하고 해수녀석이 " 어제는 형이 없어서 영 심심했어"한다. 그 말에 모두 또 함께 폭소가 터진다. 일정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함께 누리도록 배려해 주는가보다.
창조 형의 걸음이 영 불편하시고 늦어져 여쭈어보니 무릅이 완전히 고장이 나신 모양이다. 앞서가라는 형님 말씀에 내닫고 싶은 욕심을 참고 뒤쳐져 함께 동행을 한다. 내리막이 제법 가파르고 길다. 형님의 아픔이 어떤 것인 줄 잘 알 수가 있다. 동행이 있다는 것이 상당한 힘이라는 걸 아는 놈이 그냥 갈 수는 없다.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산행은 없지만 그래도 그저 말동무 동행만으로도 힘이 된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 아닌가? 깨달음의 끝은 자신이 완전히 죽는 체험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자기 아닌 이 세상 온갖 것들만이 남는다고도 했다. 그걸 보고 그걸 자각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게 자기라고 생각하면 세계와 자기의 분리가 새롭게 시작되는 윤회이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세상의 것들만을 자각하는 그 끝! 아 그 끝은 어디인가? 형님이 남의 도움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은 그런 종류는 아니다. 존재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속세의 기준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멤버쉽이자 자존심이다. 형님 그걸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요?
내려와 현주의 반가운 미소를 접한 시간이 12시 5분. 산행 끝. 저 앞 속리산의 능선이 미진한 우리의 숙제로 남았다. 그래도 참 좋다. 계획과 집착에 얽매이지 않은 최선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웬지 스스로 엄청 대견스럽다.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부디 이러한 대견스러움이 스스로의 나태함의 소산이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얽매이지 않은 최선이 있을까? 이번의 산행에서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관기의 검문소에서 싸가지없는 새파란 경찰녀석들이 일일이 신원조회하겠다 고 바락거리는 바람에 기분이 잡쳤다. 대한민국의 경찰이 검문으로 일궈낸 검거실적이 어느정도인지 모르나 이것 역시 그저 실적위주의 근무형태가 아닌가? 실효가 불명한 실적은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거의 못된 유산 중 하나이다. 국민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권위만 남은 실적이 뭐가 말라비틀어진 효용인지 원!
돌아와 뒤풀이 시간에 함께 어울려 기뻐해 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회원님들과 함께 더불어가는 기쁨이 더 큰 끼쁨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가는 가족들이 아닌가?
보고자 이 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