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민창 진주향토시민학교장 | 96년 무더운 여름 처음으로 창원의 검정고시 고사장에 늦깎이 제자들을 모시고 갔다. 배움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는 한을 가진 분들이 저마다 꿈은 다르지만 오직 합격을 향해 고사실에 들어가셨다. 힘든 배움의 길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기적은 시작됐다. 그리고 많은 분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다. 불가능이라 했던 합격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창원의 고사장에 가기 위해 아침 6시 30분까지 진주에서 모여 창원으로 출발했다. 9시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시험을 치는 늦깎이 제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시도 고사장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으면 제자들이 힘을 얻을 것 같았다. 4교시가 끝나면 제자들이 식사하는 점심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드렸다. 식사를 하며 오전에 봤던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자들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봄과 여름 두 차례에 있는 검정고시 시험장에 간 것이 이제 4월이면 서른여덟 번째가 된다. 최고령 합격자를 배출하고 50대ㆍ60대ㆍ70대 제자들이 합격을 하는 모습을 보며 기적이라 생각했다. 물론 기적이라는 말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필자는 기적을 이뤄냈다. 6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말해 주듯 늦깎이 제자들과 함께 점심을 나눠 먹으면서 공부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늦깎이 제자들의 꿈을 이루게 해준 검정고시 제도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때가 많다. 검정고시 제도는 1950년 6월 13일 대학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1951년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가 시행됐고 1957년 12월 9일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시행됐다.
또한 초중등교육법 제27조의 2(학력인정 시험)의 제2조에 따른 ‘학교의 교육과정을 마치지 아니한 사람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험에 합격해 초등학교ㆍ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돼 있어 많은 국민들이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 하고 있다.
하지만 검정고시 제도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 고졸 검정고시의 경우 ‘전체 평균 60점 이상 합격’이라는 절대평가 기준이 있지만, 합격선을 50∼55% 정도로 맞추기 위해 난이도를 조절하며 만학도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만학도의 꿈’을 실현시켜 주자는 취지의 고졸 검정고시가 10대들의 ‘대입 속성반’으로 변질되고 있다.
검정고시 제도가 2014년 1회 시험부터는 검정고시 명칭을 졸업학력으로 일괄 변경하고 2007 교육과정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바꾸게 됐다. 우리 학교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50대와 60대다. 교육과정이 7차 개정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곳이다. 청소년들이 대부분 검정고시를 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 중심으로 난이도를 맞춰 문제를 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정고시가 시작된 본래의 취지에 맞게 되도록 이면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환경의 개선과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검정고시제도를 이용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도 수정ㆍ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평균 합격률 50% 정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문제가 어려워져서야 되겠는가?
필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시험이 어렵게 나와야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이분들이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보는데 불합격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불합격한 분들의 꿈이 좌절됐을 때 느끼는 심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러하기에 수업을 게을리할 수 없다. 만학도로서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업을 하고 있다. 3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강의를 한다. 제자들의 꿈이 필자의 꿈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배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우리 늦깎이 제자들의 또 다른 어려움은 올해부터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의 출제 과목 수가 8과목에서 7과목으로 축소된다. 과목 수가 줄어서 시험 난이도가 하락한 게 아니라 늦깎이 수험생들의 평균 점수 상향에 도움을 주던 ‘가정과학’ 과목이 없어지며 사실상 늦깎이 수험생들은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늦깎이 수험생들에게 현장에서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 드리면 반복 학습을 하는데도 많이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비법을 가지고 설명을 드려야 한다. 영어발음도 못 하시는 분들을 문장해석을 해 문제를 풀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발음에 주안점을 두고 수업을 하다 보면 영어시험 점수가 너무 낮게 나온다.
하지만 검정고시 합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위안하며 4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자들의 아픔과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하며 많게는 75세 적게는 19세, 18명의 학우들이 부르는 합격의 노래가 경남에 울려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잘 마무리해 우리 대한민국의 검정고시 응시자들이 얼굴이 환하게 미소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다려 본다. 검정고시 수험생 여러분, 모두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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