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선장 (출애굽기 2:1-10)
지난 9월 12일 월요일 밤에 경주 부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1978년 우리나라의 지진 계기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고, 영남지역은 거의가 흔들렸습니다.
경주 지역은 제법 피해가 있었고,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면서 모두가 불안해 합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만 듣던 지진이 막상 발생하니 어떻게 해야 하며, 대피는 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진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자연 재해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층 건물들이 흔들리면서 어디든지 안전한 곳이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너무도 작고 약한 존재임을 알고 조금은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를 맞을 때 “내 인생이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위기를 만날 때, 또 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의 일들을 만날 때 내 인생이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세가 태어날 때의 환경이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는 히브리(이스라엘) 민족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히브리 민족은 애굽에서 종이었고, 학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엄한 노동과 인구 정책으로 히브리 민족을 관리하였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혹독한 괴로움 속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애굽기 2:23)
모세의 부모는 레위 지파의 사람 아므람과 요게벳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았지만 나일강에 던지라는 바로의 명령에도 아들을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
결국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갈대상자 속의 동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고, 모세를 자기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미리암이 자기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였습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랐고,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면서 삯을
받았습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띄워 보낸 갈대상자에는 석 달 된 모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도 더 이상 아들을 키울 수가 없게 되어 나일강에 띄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대상자는 되는 대로, 물결 따라 흘러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각본을 짠 것처럼 갈대상자는 정확하게 흘러가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남자아이들이 강에 던져져 죽는 가운데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안전하게 자란 것입니다.
갈대상자를 누가 조종하거나 노를 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상자의 선장이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제어되는 자동항법장치가 자동차나 항공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리 입력해 둔 데이터에 따라 목적지를 찾는 관성항법장치(inertial navigation system)를 이용하여 항공기나 배, 잠수함을
조종합니다.
구글에서는 운전자가 핸들과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자율주행차를
2009년부터 시험 운행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접촉 사고를 냈습니다.
기계의 힘으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다 대처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지난 3월,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계의 위력을 보았고, 조만간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나 비행기 등의 출현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계도 자동차나 배, 비행기가 정해진 항로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갈대상자가 정확하게 가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손길은 가장 정확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일생을 정확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편 48:14)
또 갈대상자는 가장 안전하였습니다.
약하고 보잘것없고 위험해 보이는 갈대상자였으나 사실은 가장 안전하였습니다.
나일강의 물결 한 번에 뒤집어질 것 같고, 악어 같은 짐승의 한입 거리에 불과해 보였으나 하나님의 손길이 지키시는
갈대상자였습니다.
모세가 담겼던 갈대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tebah)’인데, 테바라는 단어는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갈대상자와 방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양이나 규모부터 배라고 하기에 이상하고, 더욱이 배를 조종할 사람도 없고, 돛도 없고 노(櫓)도 없고 키도 없습니다.
갈대상자와 방주는 사람이 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물 위에 떠 있고, 되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가장 정확하고 안전한 배였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상자와 방주의 선장이셨기 때문입니다.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선장이 운행하는 배나 비행기는 위험합니다.
1912년, RMS 타이타닉호(46,300톤)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배, 절대 침몰하지 않는 배라고 자랑하였으나 첫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였습니다.
2014년 3월 8일, 239명이 탄 여객기가 인도양에서 실종되었는데, 기장이 자살 비행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2015년 3월 24일, 150명을 태운 여객기가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악지대에 추락하여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우울증을 앓던 부기장의 자살 비행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인간이 만든 배는 거친 바다에서 작은 나뭇잎 정도로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운행하신 갈대상자는 안전하게 제 항로를
따라갔습니다.
시편 107:30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107:30)
개역한글성경에서는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원의 항구라는 말이 훨씬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모세의 부모가 갈대상자를 띄우면서 소원했던 안전하고 복된 항구로 인도하셨습니다.
갈대상자가 인간이 만들고 조종하는 어떤 배보다도 정확히 항해하고 안전한 것은 거기 모세가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고역으로 시달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사도행전 7:17-20)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내신 모세가 담겨있었기에 갈대상자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다윗도 많은 괴로움과 위험을 만났으나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21-23)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다윗이기에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타고 가시던 배가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배가 깨어지겠습니까.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마가복음 4:39-41)
오늘도 내 인생의 배에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십니다.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이 탔던 배가 지중해에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습니다(사도행전 27장).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을 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23-25)
그리고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멜리데 섬에 겨우 상륙하여 배에 탔던 276명 모두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렇게 큰 광풍을 만나 살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나 모두 살게 된 것은 그 배에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외치는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받은 성도,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사는 성도의 배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명자의 인생의 선장이 되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 31:15)
내 인생의 가장 믿을 수 있고 완전한 선장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가장 정확한 항로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가장 안전한 항로를 아십니다.
바다와 바람도 주관하시며, 광풍이 이는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키를 맡기면 문제가 없습니다.
내 인생의 키를 하나님께서 잡으실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소명을 가진 자는 끝까지 인도하시고 지키십니다.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모세가 누운 갈대상자를 인도하심같이 오늘도 약하고 보잘것없는 내 인생의 갈대상자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선장이십니다.
나는 갈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내가 만난 풍랑을 잠잠케 하시며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