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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수지에서(1)
2005년 2월
연초에 토평에서 수지(水枝)로 이사왔다.
토평은 강변 코스모스 산책길이 좋았으나, 수지는 아파트 화단이 좋다. 개인 전용인데
3층 높이 축대 위라 햇볕이 잘 들고 밤에는 별이 잘 보인다. 동네 이름은 성복동(星福洞)
이다. 별이 복 있는 동네란 뜻이다. 이런 곳은 공기 맑다. 공기 맑은 곳은 꽃이 곱다.
화단 한쪽이 텃밭이다. 텃밭에 상추, 고추, 토마토 무공해로 키울 수 있어 기쁘다. 마트에서 사온 토마토와 밭에서 금방 딴 토마토는 맛이 완전히 다르다. 직접 농사 않해본 사람은 억만금 있어도 그 맛 볼 수 없다.
이사 올 때 너무 품종 좋은 것이라 그냥 두고올 수 없어, 백장미와 황색장미 가져왔다. 네 가닥 수형이 잘 생긴 먹골배 나무도 아까워서 옮겨왔고, 아이리스, 참나물, 방아, 박하, 돌미나리 같은 초본도 가져왔다.
이 집은 전용 텃밭 앞에 공용화단이 접해 있어 좋다. 시야 가리는 게 없는 넓은 정원이 별장 같다. 하필이면 건설회사가 공용화단에 소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어놓았다. 전에 살던 강남의 집에서 대나무 옮겨왔더니 세한삼우(歲寒三友)가 되었다. 추사는 소나무를 그린 세한도(歲寒圖)가 유명하고, 퇴계는 매화를 읊은 매화시첩(梅花詩帖)이 유명하고, 대나무는 소동파를 생각나게 한다.
추사는 55세 때 제주도 귀양살이 때 중국의 귀한 책 구해서 보내준 제자 이상적(李尙適)에게 찬바람 부는 바닷가에 선 고고한 소나무 그림을 그려보냈다. 추사가 그린 그 '세한도(歲寒圖)'는 천하 명품이다.
퇴계선생은 두향이라는 소녀와 매화를 매개로 한 고결한 사랑을 나누었다. 시첩에 이런 시를 남겼다. '산 속의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빈 것 같은데(山夜廖廖萬境空) 흰 매화와 밝은 달이 노신선을 벗해주네(白梅凉月伴仙翁) 그 속에 들리는 것은 냇가 물소리뿐이니(箇中唯有前灘響) 높은 때는 상(商) 음 같고, 낮을 때는 궁(宮) 음 같네(揚似爲商抑似宮)'
소동파는 어잠현에 있던 '녹균헌(綠筠軒)'이란 승려의 별장에서 대나무를 이리 읊었다. '음식에 고기를 없을 수는 있으나(可使食無肉) 거처하는 곳에 대나무가 없으면 안되네(不可居無竹) 고기가 없으면 사람이 수척하기만 하나(無肉令人瘦)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네(無竹令人俗)'
소나무 매화 대나무 보면서 추사, 퇴계, 소동파를 생각한다.
2005년 3월
손바닥만한 땅에도 봄은 온다. 넓은 땅은 아니지만 돌미나리 참나물 싹이 튼다. 박하와 방아 싹이 올라오고, 침실 앞 줄장미도 빨간 새 움 밀어 올린다.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제비꽃이다. 어디서 제맘대로 씨가 바람 타고 날라온 모양이다. 두어 송이 꽃이 피었는데, 꽃말은 'Forget me not'(날 잊지 말아요)이다.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이 바이올렛에서 추출한 향수를 즐겨 애용하였다 한다.
목단은 줄기에 싹이 돋았는데, 화개동천 달빛초당 김필곤 시인이 참으로 귀한 것이라며 부러워한 백모란이다. 수선화는 새파랗게 기세 좋게 올라오더니 추위에 움추리고 도로 들어가 버렸고, 옥잠화는 새 촉 무더기로 올라온다.
고등학생 때 외우던 'Spring has come'이란 문장 생각난다.'봄이 왔다'. 화단과 텃밭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선운사 고(古)매화가 피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전원일기/수지에서(2)
2005년 3월
광교산 약수터에 누가 좋은 글귀 목판에 새겨 대련으로 걸어두었다. '산중의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山中好友林間鳥), 세상 밖의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世外淸音石上泉)'라는 글이다. 도대채 어떤 분이 이런 멋진 시를 읊었을까.
그걸 목각해서 기둥에 매단 분은 또 누구일까. 속세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숲속의 새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읊은 그 분이 누구일까? 또 세상 밖의 맑은 물소리란 무엇인가. 속세 버리고 돌 위에 흘러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경지는 어떤 경지일까? 임금 권하는 요임금 말이 자신의 귀를 더럽혔다며 영수에 귀 씻고 기산에 들어가 숨은 허유(許由)의 경지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이 시 쓴 사람은 19세기 초엽 전남 화순에 춘탄정(春灘亭)이란 정자를 짓고 살았던 광산인(光山人) 춘탄(春灘) 이지영(李之榮)이란 분이다.
청산은 채색 하지 않아도 만고 병풍처럼 아름답고(靑山不墨萬古屛)
흐르는 물소리는 줄 없는 천년의 가야금 소리로다(流水無絃千年琴).
산 중에 좋은 친구는 숲 속의 새요(山中好友林間鳥)
세상 밖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로다(世外淸音石上泉).
흰 구름 무심히 너럭바위를 감싸고(白雲無心抱幽石)
옥같이 맑은 샘물 밝은 달을 머금었네(玉泉有情含明月).
뜰 앞에 꽃은 떨어지나 안타까워 쓸지 못하고(花落前庭憐不掃)
창 밖 밝은 달 사랑스러워 잠 못 이루네(月明窓外愛無眠)
반창에 달 지니 매화 그림자 사라지고(半窓月落梅無影)
밤중에 바람 오니 대나무 소리뿐일세(夜中風來竹有聲).
거문고 타며 달 맞으니 꽃길에 달이 오고(彈琴邀月來花徑)
싯귀 구름에 실어 보내니 죽창에 닿네(詩句移雲到竹窓)
만사 무심해 낚싯대 하나에 의지하니(萬事無心一釣竿)
삼공벼슬과 이 강산을 바꾸지 않겠네(三公不換此江山)
개울가 아름다운 돌 달 거느리고 돌아가니(臨溪美石帶月歸)
처사의 풍류 수석 사이에 있네(處士風流水石間)
전에 청학집(靑鶴集)이란 책을 읽은 적 있다. 거기 한국의 신선 족보가 쓰여있다.
채하자 편운자라 부르는 신선이, 연꽃 모양의 등잔에 관솔불 밝히고, 파초잎 술잔에다
죽력주(竹瀝酒) 마신 이야기 나온다. 그들이 만난 장소도 신비롭다. 옥향로에 향 피우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옥로제천형(玉爐祭天形), 선녀가 춤추는 소매 모양의 선녀무수형(仙女舞袖形), 일곱송이 연꽃이 물에 떠있는 칠연부수형(七蓮浮水形), 선인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선인대기형(仙人對碁形) 같은 이런 곳이 신선이 살만한 곳이다.
내 차에는 항상 패철이 있다. 산에 가면 항상 쇠를 꺼내 방위를 보곤 한다.
자식들 분가한 후 나도 한 때 산속에 띠집 하나 세우는 걸 꿈으로 생각하였다.
시카고서 귀국한 고교 동기가 사는 지리산 중산리에 가서 이런 글을 남긴 적 있다.
무자년(戊子年) 7월 거사는 혜근 홍열과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 천장지비(天臧地秘),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로 해둔 명혈에 길성(吉星)이 비쳤기 때문이다.
땅은 높은 곳에 있는데, 지령(地靈)인 암석(岩石) 뿌리가 군데군데 밖으로 들어나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북에 등지고 도로에 접했으며, 향은 남동이었다. 물은 바위 사이로 흐르고,
큰 고로쇠나무가 많았다. 노년에 산을 사랑하고 산림에 의탁해 살고싶은 세 사람의 마음을
지리산 마고선녀께서 맺어주셨다 싶다.
세 사람은 여기 가시덤불 헤치고, 차나무와 춘란과 장뇌를 심고, 암혈(巖穴)의 초막은
바람과 비를 가릴 정도로 예정하였다. 남송(南宋) 시대 주자가 백록동(白鹿洞)서원을
개설한 것처럼 동(洞)을 열자고 약속하였다. 봄이면 산나물 뜯고, 여름이면 계곡에서
바둑 두고, 가을이면 복령(茯笭) 지골피(地骨皮) 오가피 등 약초 캐러다니고, 겨울이면
백설 만건곤한 고요한 산 속에서 밤과 고구마 구워먹고 살자고 약속하였다.
세 사람 중 누가 촌장인지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이미 동(洞)을 열기로 한 이상,
동규(洞規)는 미리 정하였다. 동규에 자리와 위치를 제시하였다. 소식(小食), 단식(斷食),
기도하는 사람은 상석(上席)이요, 채소와 차의 진미를 아는 사람은 상석이요, 달빛을
즐기고 단소를 부는 사람은 상석이요, 술이나 김치 잘 담고 청소 잘 하는 사람은 상석이요,
노인끼리 안마 잘해주는 사람은 상석이요, 시서화를 알고 명상을 즐기는 사람이 상석이다.
반면 이재와 타산 밝으면 말석(末席)이고, 육류나 젓갈 즐기면 하석(下席)이요, 속가에
돈 많은 사람도 하석이요, 너무 이름 났거나 유식한 사람도 하석이요, 고스톱이나 포카
즐기면 당연히 말석이다.
허허허! 이번에 남쪽에 내려가 이러고 올라왔다.
그동안 도시서 60년을 살았다. 그 반작용인지 이젠 자연이 좋다. 넓적한 반석, 폭포, 달빛, 황토방, 대평상, 곶감, 야생 복숭, 당귀, 천궁, 오가피를 귀히 여긴다. 화개동천에 살면서 차 만드는 사람, 섬진강에서 은어 잡는 사람, 산사에서 수도하는 스님, 약초나 산나물
캐는 사람이 내 관심사다.
이젠 지리산을 소재로 글 쓰는 수필가로 늙어가고 싶다.
전원일기/수지에서(3)
2005년 4월
'물 맛있어요?'
어디서 왔는지 소녀 둘이 나타나서 묻는다. 하얀 옷과 부드러운 머리칼이 봄바람에 나풀거린다. 가날픈 허리는 이제 막 땅 위로 솟아난 수선화 같다.
'You are the angel from above'(너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꺼야). 네일세데카가 부른
<you mean everything to me>란 곡이 떠오른다. 요 꼬맹이들이 초등학생일까? 중학생일까? 봄의 요정 같다.
내려오는 길에 칡 캐는 남자를 만났다.
'살칡이네요.'
아내가 감탄하자 남자는 선뜩 한 뿌리 건네준다. 이 무슨 횡재인가? 칡은 당뇨끼 있는
아내에게 좋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손에 들고 내려오니 흐믓하다. 집에 와서 씻어서
토막내고 말려 칡차 만드노라니, 느낌이 그냥 한약방서 덜렁 갈근 한 근 사오는 것과
다르다.
오래된 칡 줄기로 대웅전 기둥 만든 절이 어디더라? 칡은 그만치 생명력 강하다.
'칡은 8월에 보라색 꽃이 피고, 가을에 꼬투리 열매가 익는다. 뿌리는 굵고 살이 찌는데 녹말이 많다. 어린 순은 갈용(葛茸)이라 한다. 흑설탕과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일년 숙성시키면 맛있는 음료가 된다. 변비, 고혈압, 당뇨에 효과가 뛰어나고, 어린이 성장 발육에 큰 효과가 있다.
뿌리는 감기, 머리 아픈 데, 당뇨병, 설사, 이질약으로 쓴다. 꽃은 열을 내리고 가래를
잘 나오게 하며, 술독을 푸는데 쓴다.
이 좋은 것이 산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전원일기/수지에서(4)
2005년 4월
뜰에 매화와 살구가 꽃이 피었다. 까치와 뻐꾸기 중간 쯤 생긴 새가 아침마다 와서 꽃을 따먹는다. 어치란 놈이다. 어치는 만만치 않는 놈이다. 자기 영역 침범한 고양이한테 괴성을 지르며 반나절을 싸우는 걸 구경한 적 있다.
'저놈이 꽃 다 따먹는다.'
'꿀을 따먹는 거 같은데...'
아내와 소근소근 말하는데, 포르르 날라와서 우리집 돌확의 물도 찍어먹는다.
모처럼 빙자옥질(氷姿玉質)의 매화꽃 피면 친구 불러 '매화차' 시음하려는데 새가 먼저 꽃을 건드린다. 그러나 반송(盤松)에서 작약꽃 모란꽃 사이로 비행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경허스님 '낮잠'이란 시가 있다.
일 없음이 오히려 일을 이룸이로다(無事猶成事)
빗장 내리고 대낮에 낮잠 자는데(掩關白日眠)
그윽한 새들이 나 홀로임을 알고(幽禽知我獨)
그림자 그림자 창 앞을 스쳐가네(影影過窓前)
대낮에 빗장 내리고 낮잠 자는 경지는 무슨 경지인가. 선미(禪味) 가득하지만 그 뜻은 알듯 모를듯 하다.
임어당은 소리의 운치에 대하여 쓴 글이 있다. 시냇물 소리(谿聲), 대나무 소리(竹聲), 소나무 소리(松聲), 산새 소리(山禽聲), 그윽한 골짜기 소리(幽壑聲), 파초에 듣는 빗소리(芭蕉雨聲), 꽃 지는 소리(落花聲), 낙엽 지는 소리(落葉聲)를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천지의 맑은 소리라 하였다.
전원일기/수지에서(5)
2005년 4월 -미당(未堂)과 일석(一石)
정원을 가꾸면서 간혹 나는 미당(未堂)과 일석(一石) 선생님을 비교해보곤 한다.
불교신문 기자 시절 원고 청탁차 두 분 댁을 들락거린 적 있다.
사당동 예술인촌에 살던 미당은 뜰에 매화, 오동, 파초, 대나무, 국화 등이 가득했다. 반면 동승동 일석 댁은 바람에 쓰러진 국화 몇 그루 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일석 선생을 한 수 위로 보았다. 미당은 헌사스런 문인취미 들어났고, 일석은 자연스러웠다.
미당은 벽에 걸어둔 목탁을 두드리곤 했다. 그러면 사모님을 나타나 차 주문을 받아갔다. 일석은 손님이 갔을 때 손녀가 방에 들락거렸다. 귀여운 작은 소리로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때 일석은 아기를 안아주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미당은 원고 마감일까지 끝 부분 결론 못내곤 했다. 기자더러 마무리 해서 신문에 내달라고 부탁했다. 어려운 한자는 '자네가 더 잘 알지?' 하시면서 맡겼다. 친근미는 있었다. 원고료도 가난한 기자 택시 타고가라고 주곤 했다. 인간미가 있었다.
일석은 한 술 더 뜬다. 단국대 교수로 계실 때다. 원고 받으러 가니 마침 자장면을 들고
계셨다. 아들처럼 젊은 기자더러 '점심 하셨나?' 묻고, 식사 끝나자 담배를 권하시기도 했다. 내가 담배를 덤썩 받아 와이셔쓰 웟주머니에 넣으면서, '이 담배는 제가 교과서에서 글을 읽은 존경하는 선생님 선물이라서 기념으로 하나 가져가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린 적 있다.
일석 선생이 정원도 더 자연스럽고, 사람 대하는 태도도 더 자연스러웠다.
전원일기/수지에서(6)
2005년 4월 -꽃을 준 사람들
꽃을 좋아하다보니, 꽃을 준 사람도 귀하게 느껴진다. 싱그러운 봄비 온 날 화단에 나가 있으려니 아내 전화가 왔다.
'여보! 경숙이가 꽃을 줬으니, 차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 좀 나오세요.'
가보니 장충단 태극당집 따님답게 손이 크다. 백합, 수선화, 벌개미취, 앵초, 아주가,
발레리안, 이베리스 등 꽃과 꽃이름 적힌 팻말까지 너무나 푸짐하다. 아내와 꽃을 심어놓고, 그날은 저녁 먹으며 '짜잔!' 포도주로 축배 올렸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꽃을 보내준 사람 더러 있다. 이장군은 철쭉 화분과 상추씨 한봉지를 들고왔다. 신문사 은퇴한 정국장은 진주서 모친이 보내준 옥잠화 구근과 야래향(夜來香)을 가져왔다. 답례로 나는 죽전 그의 아파트 베란다에 수석과 이끼로 산을 만들어주었다. 양재동 같이 가서 정자나무처럼 잘생긴 철쭉 분재 골라주고, 그 밑에 옹기 묻어 호수 만들어주니 그가 그리 좋아할 수 없었다.
토평 살 때도 아내 친구인 S대 김교수 부인이 남편 대학원장 취임 축하로 받은 비싼 난화분과 다른 꽃들까지 사들고 찾아와 직접 화단에 심어주고 간 적 있다.
기흥에서 난농장을 하는 고향 후배가 난화분 5개 들고와서 같이 온 여류시인과 다도회를 열고 간 적 있다.
'아저씨! 봉선화 심으실래요?'
매일 화단에서 꽃만 가꾸니 4층 할머니가 우리집 문앞에 봉선화 묘종을 놓고 간 적 있다.
꽃향기만 향기랴! 생각해보면 솔솔 풍기는 그분들 마음 향기가 더 아름답다. 꽃을 볼 때마다 그분들 생각난다. 봄비야! 또 오거라. 설악산서 온 곰취나물 참나물 잘 자라면 이 분들 초청해서 채소 파티 한번 열란다.
전원일기/수지에서(7)
수필
<그녀의 정원> 처음 이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1층 사는 사람들 모임에서 그녀를 보았다. 남편이 대학교수인 숙녀는 젊고 상냥했다.
‘우리 모임을 <가든 클럽>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멋진 제의를 한 그녀를 우리는 <가든 클럽>회장으로 뽑았다.
봄비 오고 크로커스 히아신스 꽃이 필 때 우리는 서로 정원에 찾아가서, 그 꽃을 어디서 사왔는지, 값이 얼마였던지 묻곤했다. 서로 사 온 꽃을 나누기도 했다.
산에 진달래와 벚꽃이 필 때,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머리칼이 빠져 수건을 쓰고있다고 했다. 늦봄이었다. 슬리퍼 신고 잔듸 덮힌 정원을 거쳐서 그 집에 가니, 그녀가 꽃을 가꾸고 있었다. 차 한잔 대접 받은 며칠 후 머리에 수건을 쓴 그녀도 우리집에 와서 화단에서 아내와 꽃을 보며 한참 이야기 나누었다. 우리가 선물한 몇송이 장미 들고 돌아가는 그녀 뒷모습은 너무나 쓸쓸했다. 그리고 그녀는 목단꽃 붉게 질 때 지고 말았다.
비 개인 여름의 어느 일요일. 그녀의 정원에 가보니 남편 혼자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작은 물망초꽃처럼 애처로운 엄마 잃은 어린 딸이 아빠 옆에 꼭 붙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초가을 아침, 그녀의 정원은 너무나 쓸쓸하다. 잡초 속에 국화꽃은 가려있다. 그녀가 심은 목백일홍 나무는 꽃도 없이 말라있었다. 복자기나무 붉은 잎은 하얀 이슬 맺혔다. 주인 없는 흔들의자는 비어있고, 장미는 가지가 제멋대로 뻗었는데, 아름답던 숙녀가 매달아놓은 정원 램프등은 너무나 외로웠다.
‘고운 꽃일수록 일찍 시든다’던 어느 시인의 한탄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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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 하십니다
꽃 이름을 아주 많이 알고 계시니
대 문호가 되려면 동식물 이름을 많이 알아야 한다지요
거사님은 분명 신선임엔 틀림없다. 꽃을 가꾸는 그 아름다운 시심에 유별난 우정까지 나누며 동서양을 넘나드시니 이 시대의 걸출한 보물이고 신선입니다. 그 우람한 체구에 제비꽃 같은 여린 시심까지 지니고 있으시니까요 < 최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