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여행1 - 소렌토에서 치르쿰베 수비아나 기차에 올라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에 가다!
이탈리아 서부의 항구도시 아말피에서 시타 버스를 타고 절벽길을 달려
포지타노를 거쳐 절벽 위의 항구 도시 소렌토 에 내린다.
시가지를 둘러보고는 중심부에서 300여미터 떨어진 기차역까지 걸어가서는
소렌토 역 Stazione Sorrento 으로 들어간다.
역은 국철이 아닌 사철 치르쿰베 수비아나 철도 Ferrovia Circumvesuviana 이므로
유레일패스가 통하지 않으니 편도 2.2 유로짜리 기차표를 사는데......
앞에선 사람이 우물쭈물 당황을 하며 주머니를 게속 뒤지면서 기차표 구입을 못하고는
황당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는게 역무원이 "잔돈" 이 없는 모양이네?
예전에 러시아 전국일주 배낭여행을 할 때에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으로 들어가는 데,
입장료는 기본 300루불에 사진 촬영비가 50루불이라.......
해서 나는 350루불 + 마눌 300루불 해서 650루불이라 700루불을 주었더니...
직원이 티켓을 주지 않고 러시아말로 자꾸 뭐어라 그러니 죽을맛이라?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다행히 나에게 100루불을 달래더니 50루불 두장으로 바꾸어 주어
곤경을 면했는데 오늘 이 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잔돈 이 없는 모양이네?
기차는 터널을 많이 지나 북쪽으로 달리는데 왼쪽으로 나폴리만 이 나타나기에
이거 폼페이 가 왜 안나오는가 싶어 당황을 하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탈리아 청년이 한국말 로 “네정거장 남았어요” 라고 말을 해서 우릴 놀라게 한다!
저 청년은 어찌해서 한국말을 할줄아는 것일러나? 욕이라도 했으면 큰일날뻔 했네?
예전에 백두산 가는 기차 안에서 옆자리 할머니가 한시간 동안이나 말이 없기에 중국인인줄 알았는데
어떤 승객이 다가와 자리를 가르키기에 놀라 차표를 꺼내니....
할머니는 어디까지 가는 것이냐고 묻는거라며 한국말을 해서 놀랬더니 조선족 이라나?
기차는 바다를 끼고는 계속 북쪽으로 달려 소렌토를 출발한지 불과 30분만에 멈추니...
바로 폼페이 Pompei Scavi 빌라 데이 미스테리역 Villa dei Misteri 역이다.
기차역에 내려서는 물으니 배낭을 맡아주는 곳은 지하에 화장실을 겸하는 곳에 있는지라
1개에 0.5 유로 씩 돈을 내고 맡기고는 화장실은 공짜로 이용한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오니 입구가 보이지 않아 당황하는 데....
사람들에게 물어 오른쪽으로 100여미터를 가서는 11유로 입장료를 내고 마리나 문 으로 들어간다.
1592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폼페이 는 2천년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유적이다.
양쪽에 벽으로 막힌 터널 같은 통로를 올라가는데 돌바닥에 참새 새끼 한 마리가
길을 잃고 있기에 손바닥에 올리고는 풀을 찾아 내려준다마는 살수 있을런지 모르겠네?
파리 목숨보다 못한 위험에 처한 참새 새끼 를 보자니 여기 폼페이 동쪽에
이슬람 교도들 의 마을 루체라 가 50년간이나 존재했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시칠리아 왕실의 공주 콘스탄체가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시집가서
태어난 아들 프리드리히 2세 는 시칠리아 왕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다.
프리드리히 2세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6차 십자군을 이끌고 오리엔트로 가서는
이집트와 평화조약 을 맺는 일로 로마 교황청으로 부터 파문 을 당하는 인물이다.
그 전에 5차 십자군이 이집트 다미에타를 함락하고 술탄과 평화협정으로 예루살렘을 양도받는 것을 거부한
교황청은 "이슬람의 피로 예루살렘을 정화"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라!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랍인들이 거주하던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자라며
이슬람 문화와 아랍어를 익힌 그는
시칠리아에 살던 아랍인들을 여기 자신의 왕국령인 루체라로 이주 시킨다.
하여 여기 폼페이와 교황령 나폴리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슬람 마을 루체라가 만들어지고 모스크도 세워진 것이라....
하지만 황제 사후에 교황청의 지지를 받은 침략자 프랑스 앙주 백작이 지배하면서
이슬람 주민들은 모두 노예 로 팔려갔다니 저 어린 참새 신세와 같은 모양이네?
이 도시 폼페이 Pompei 는 로마 귀족의 별장이 있던 나폴리 남쪽 20km 휴양도시로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로
땅 밑에 묻혔다가 18세기 중반에 나폴리왕 카를로스 3세 시절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폼페이는 BC 8세기부터 상업의 요충지로 BC 1세기에 로마에 편입되었으며 인구 2만 5천명으로
현재 주피터 신전등 60개소의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계속 발굴하는 중 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삼거리를 만나니 저 앞쪽으로 보이는 기둥은 아마도 공공 광장인
포로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인 것 같은데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 왼쪽 작은길로 접어들어 걷노라니 왼쪽에 지붕이 날아간 집들이 보이는데
거기 방안에 폼페이 발굴품들을 모아 놓았다.
거기 선반에는 크고작은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 들이 많이 보이지만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의 형상" 이라....
화산폭발로 인해 뜨거운 열기가 덥쳐 사람은 녹아내렸거나 썩어 없어졌지만 부피가 있으니.....
발굴시에 거기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석고 를 채워넣어
굳히고는 이후 화산재를 걷어 낸 것이 지금 보이는 저런 사람 형상 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갑자기 죽을 때 어떤 생각 을 했을라나?
1,990년에 개봉한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해서 만든 뮤지컬 고스트 에 보면...
강도의 총에 맞아 급사한 샘은 “ 난 죽을 준비가 안됐어” 라고 말한다.
이를 지켜본 다른 영혼은 “다들 그렇게 말하지” 라고 대꾸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러나?
김효근 이화여대 교수 가 작곡한 “내 영혼 바람되어” 에 보면
사람이 죽으면 이세상 곳곳에 머문다고 생각한 인디언의 구전에 곡을 붙이 것이라!
“그곳에서 울지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앗다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비 되어
낙원을 굼꾸며 타히티로 더난 고갱 은 사랑하던 딸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기어이 자살 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살이 실패하자 죽기전에 필생의 역작을 그리기로 결심하고는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폭이 4m 나 되는 대작을 남겼다.
주로 비극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한 베르디 는 죽기전에 마지막 작품만은
유쾌하기 그지없는 오페라 “팔스타프” 를 작곡했다.
나이 많고 뚱뚱하지만 스스로 더없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동네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혼이나며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는데....
베르디는 "인생은 비극이 아니라 한바탕 즐거운 소동" 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해서 폴 앤더슨 감독이 키트 해링턴과 에밀리 브라우닝을 주연으로
“폼페이 최후의 날” 이란 영화가 상영되었던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