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성교육 】
성교육시간은 어떤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이 정답일까? 대상이 누구든 간에 강사는 어떤 태도를 지향하며 강의를 진행하여야 할까? 다시금 이런 질문을 필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이유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세상은 시간이 많이 흘렀던 조금 흘렀던 간에 우리의 뇌리에 자리 잡힌 큰 사건과 소동으로 인해 커다란 물결의 흐름을 형성하며 변화 되어간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인다. 성폭력과 관련하여 참 많은 변화가 있어왔음을 이 자리에 있으면서 느꼈다. 그런데 여전히 의식교육이 필요한 세상이다. 세상에서 피해자를 이해하려는 깊이는 깊어졌으나 피해자와 비피해자 간의 의식격차는 너무나 크다는 것이 지금 필자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성희롱 강의를 요청하는 곳에서는 성교육을 병행해 달라고 자연스레 이야기 한다. 정말 자연스럽다. 이유를 들어보니, 자신들은 성희롱보다는 성교육에 관심이 있단다. 성희롱은 하라고 하니까 진행하지만 강사비도 별로 없고 분위기 지루하지 않게 성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기사화 된 성폭력 사건 하나만 거론해도 이내 숙연해 지는 분위기를 경험하는 필자로서는 교육 신청을 담당하는 담당자의 이런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엄연히 성희롱과 성교육은 교육내용이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다르다는 것을 담당자에게 설명하고 시간을 늘려주면 두 내용을 다 해주겠다고 하면 교육 담당자의 반응이 어떠할 것 같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강의가 취소된다. 이런 현실 속에 여러분이 살고 있다. 도대체 교육은 누가 받아야 하는가?
또 하나, 교육을 하러 교육 장소에 가면 교육을 신청한 곳의 제일 높으신 분을 뵙게 되는데, 면담 중에 살짝 아이러니한 감정을 소유하게 된다. 필자는 예방교육을 하러 피해예방교육 내용을 가지고 왔는데, 높으신 분께서는 강사에게 덕담과 함께 요청하는 것이 바로 가해예방대책 이다. 강사가 하지 말라는 것을 규정해주면 그에 대해 규제를 하며 질서를 바로 잡아 가겠다는 것이다. 너무나 의욕적인 말씀이시지만, 필자는 강의를 하며 어느 누구도 가해자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수업 시작 전에 이야기 한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가지고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으로 우리가 행위에 관심을 두고 규정을 지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나에게 의도가 있든 없든 상대방에게 나의 행위가 영향을 나쁘게 미쳤다면, 그로인해 가해자가 되는 것으로 이를 단순 실수로 규정해서는 안 되고 잘못된 행동으로 규정하여 사과를 하여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질서를 세우기 위해 가해행위를 규정해 놓고 그에 대해서만 상벌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본다. 성희롱은 노동권의 침해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 엄연히 말하면 직장내 성희롱예방교육이다. 그리고 성폭력예방교육은 내용에 있어 생애주기별로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방대한 양에 대해 알아보기 보다는 단순히 호기심 해결이나 흥미위주로 자극적인 강의를 요청하며, 가장 높으신 분은 강의에 참석하지 않고 직원들을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교육장에 가면 늘 전달한다. 여기엔 ‘모든’ 직원이 참석하는 것으로 정말 그 ‘모든’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세상을 늘 변해야 된다고 한다. 결국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변화되어 가시화되는 것이 가장 좋은 변화라고 본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분명 새로운 의식의 인식 속에 자라는 것일텐데, 세상에서 나쁜 것이라고 규정된 것들이 이상하게도 더욱 잔혹해지고 험악해지고 있다. 왜일까? 정말 교육내용의 부재, 현실 여건의 문제인 걸까? 교육은 나날이 발전되어 지원되고 있지만, 정말은 공감하기의 부족이라고 본다.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면 자신의 주먹이 얼마나 아픈지 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 번에 주먹을 사용하게 될 때는 더 생각하고 사용하게 된단다. 때린 자신의 손도 아프니까 말이다. 잔혹하다는 것은 바로 이 같이 느끼지 못하고 자신은 아무런 느낌 없이 누군가에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본다.
성교육은 음담패설을 활용할 수 있으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하니 어쩌면 강사들은 더 이상 이러한 내용으로 분위기를 형성해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연령별로 나누지 못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교육을 제공할 있으나, 분명 맞춤 강의가 있다. 의왕시에서만도 벌써 수년 째 반으로 들어가서 대면 강의를 하고 있으나, 어째 아직도 전교생 대상의 강당강의와 방송강의를 요청하는 학교가 의왕시에 있다. 왜일까? 무엇때문일까? 자녀가 있다면 한 번 물어보길 권하고 싶다. 방송으로 성교육 받는지 선생님께 직접 받는지 말이다. 정말 성교육 시간이 입시 교육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전교생 대상 방송강의를 진행하는 학교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위를 둘러보길 권하고 싶다. 당신의 자녀가 의왕시의 성교육 평균교육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필자가 학교에 가면 아이들에게 인사를 가끔 받는다. 솔직히 사복을 입거나 지속적인 만남을가진 아이가 아니면, 누군지 잘 모른다. 아이가 먼저 말을 건낸다. 내 강의 내용을 몇 개 말하며 기억하고 있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인사하고 지나간다. 무엇이 그 아이가 내게 인사하고 싶게 만들었을까?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넓은 공간에서 나를 스쳐 지나가도 상관없었을 것을, 굳이 내게 인사는 하더라도 기억하고 있는 내용을 꺼내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이와 내가 서로 공유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성교육은 아직도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행가래로 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