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 11. 30.~12. 2.(월~수) - 음력(10. 16.~18.), 일몰 17:23~일출 07:21
●산행지: 땅끝기맥 1구간 (바람봉-제안고개)
●산행코스: 운곡마을-바람봉-바람재-화학산분기점-능선삼거리-각수바위-우치재/가마티재-장산재-소반바위산-451m봉-문암재-수락재-447m봉-큰재/왕정재-굴래봉-까치골재-덕룡재/행산재-세류고개/중장터고개-410m봉-820번도로/덕룡임도-기동재-계천산-탐진강발원지성터샘-궁성산갈림길-아크로CC골프장/오두재-통신탑-걸매고개-승장재/비사리고개-전망바위-사슴목장-노룡재(도로)/차일봉고개-차일봉-모개나무재-주당고개-쌍계사지갈림길-국사봉-사각정자-축사-가음치/23번국도-송장고개-금오재-311m봉-320m봉-철망펜스-영암목장-백룡지맥분기봉-활성산-한속굴재-둔덕치-달뜬봉-자지골재-돈밧재/835번지방도-375.3m봉-332m봉-307m봉-불티재-누릿재-양면석불-구름다리갈림길-통천문-천황봉-바람재-구정봉-향로봉-미왕재-도갑산-도갑재-주지봉갈림길-뫼봉갈림길-묵동재-월각산갈림길-밤재-밤재삼거리-별뫼산-13번국도-814번지방도/제안고개
●먹거리: 생수2리터, 호떡빵1, 빵6, 산도4, 땅콩샌드3, 사브레3, 다이제스트1, 사탕30, 게비스콘2
●준비물: 쟈켓, 스틱, 구급약,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 헤드랜턴2, 수건, 장갑2, 핫팩, 손수건2, 휴지, 물티슈, 버프, 팔토시, 반팔, 긴팔, 우의, 귀덮개, 부직반창고, 안대, 귀마개, 매트리스, 은박매트, 예비의류, 양말
●거리: 약 68.48km
●소요시간: 29.51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광주고속버스28,100, 찜질방6,000, 식사10,000, 장흥시외버스10,100, 장평택시12,000, 풀치재아침5,000, 성전택시9,600, 저녁44,000, 성전 모텔25,000, 편의점14,080, 아침8,000, 성전택시6,560, 강진시외버스10,600, 뒤풀15,000, 서울고속버스20,500
●날씨: -1~10, 맑음
●산행경과:
*11. 30일
- 07:55 : 운곡마을(장흥 장평 병동리)
- 08:20 : 바람봉(340m)/ 이군삼면봉
- 08:41 : 바람재/ 군계
- 09:24 : 각수바위재, 각수바위봉(456.1m), 100m
- 09:56 : 우치재/가마티재
- 10:30 : 소반바위산갈림길, 소반바위산(492.6m), 50m
- 11:05~11:17 : 447m봉/ 삼군봉
- 12:00 : 419m봉(굴래봉)
- 12:?? : 덕룡재/ 행산재 /삼군경계면
- 13:06 : 세류고개/ 중장터고개
- 13:14 : 410m봉/ 삼면봉
- 13:33 : 820번도로/덕고개, 동물이동통로, 세류리정류장, 물 보충
- 14:19 : 기동재
- 15:07 : 개천산(406m)/ 군계
- 15:30 : 궁성산갈림길, 500m
- 15:3~15:50 : 오두재, 아크로CC골프장 정문, 물보충 가능
- 16:47 : 사슴농장
- 17:06 : 노룡재, 14번지방도로, 칠성동버스정류소, 민가 컨테이너박스 수도 물 보충
- 17:21 : 차일봉(385m), 묘1기
- 18:28 : 쌍계사지갈림길
- 18:58 : 국사봉(614m)/ 군계, 무인감시카메라
- 19:58 : 가음치/ 23번국도
- 21:?? : 428m봉, 면계(금정면 - 영암읍)/ 백룡지맥분기봉
- 22:13 : 활성산(498m)/ 면계(금정면 - 영암읍), 통신기지국중계소
- 22:56 : 달뜬봉
*12. 1일
- 02:22 : 돈밧재/ 835지방도, 장강로/ 군계(영암군 영암읍-강진군 옴천면)
- 03:45 : 332m/ 삼면봉/ 수인분맥갈림길
- 03:50 : 307m/ 삼면봉
- 04:20~06:10 : 노박
- 05:20 : 불티재/ 829번지방도, 내려서기전 함바식당 물보충 가능
- 06:30~06:55 : 식사
- 07:44 : 누릿재
- 10:42~10:57 : 월출산(천황봉, 809m)/ 군계(영암군 영암읍-강진군 성전면)
- 12:43 : 미왕재/ 삼면봉
- 13:47 : 도갑산(400.9m)
- 13:20 : 주지봉갈림길/ 삼면봉
- 14:10 : 뫼봉갈림길
- 15:43 : 묵동재
- 16:14~16:31 : 월각산갈림길
- 16:23 : 월각산 300m
- 17:48 : 밤재/ 면계(영암군, 강진군), 주유소 화장실
* 12. 2일
- 11:00 : 밤재, 주유소 화장실
- 11:00 : 별뫼산(465m)/ 삼군봉
- 12:37 : 13번국도
- 13:00 : 제안고개
- 13:24 : 성전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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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북기맥: 129.4km (백월산~안흥진)
* 금남기맥: 107.6km (싸리봉~구드레)
* 한강기맥: 167km (두로봉~두물머리)
* 진양기맥: 156.6km (남덕유산~진양호 남강댐)
* 영산기맥: 159.5km (새재봉~유달산 다순금)
* 땅끝기맥: 123km (바람봉~땅끝마을 토말)
- 병동리~밤재 64km, 31h
- 바람봉~오두재 21.1km, 11.10h
-. 바람봉~820번도로/ 덕룡임도터널 16.34km, 7.15h, (접속 1.5km)
-. 820지방도/덕룡임도터널~가음치 14km
-. 820지방도/덕룡임도터널~오두재 4.76km
- 오두재~불티재 25km
-. 오두재~가음치 9.3km
-. 오두재~돈밧재 21.6km, 8.20h
-. 가음치~불티재 15.7km, 5.40h
- 돈밧재~밤재 24.18km, 10h
-. 불티재~제안고개 24.6km, 9.43h
-. 불티재~밤재 20.8km
-. 도갑재~제안고개 14.9km
-. 밤재~제안고개 3.8km,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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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정보 및 식수정보
- 광주 운암동 현대웰빙랜드: 062-526-2001, 24시간영업, 택시10분, 10,000
- 이양택시: 010-3611-6002(이성일)
- 장평택시: 010-3642-3182, 061-862-3858
- 운곡마을: 들창 정자
- 각수바위: 20m 다녀옴
- 소반바위산: 50m
- 덕고개/ 덕룡임도 동물이동통로: 원세류마을 물보충 가능
- 오두재: 직원식당, 골프장 수도 물보충 가능
- 노룡재/차일봉고개: 민가(컨테이너박스) 물보충 가능
- 가음치: 직전 축사지나 민가
- 금오마을회관: 화장실
- 영암택시: 061-473-3270, 061-471-0808
- 풀치재: 내려서기전 가건물 함바식당 물보충 가능
- 미왕재: 목책넘어 기맥길
- 월각산: 왕복15분 소요
- 밤재: 주유소, 화장실, 위로 300m 횡단보도
- 강진 성전택시: 061-432-5858
- 밤재~성전터미널: 도보3.8km, 50분
- 제안고개~성전터미널: 도보20분
- 성전면 숙소: 제일장모텔, 24시편의점
* 서울에서 화순군 운곡마을 가는길
- 센트럴시티~광주: 20:10, 20:20, 23:40, 20:50, 24시, 3.20h, 28,100~30,900~40,100
- 광주종합버스터미널~화순 이양, 장평시외버스: 06:05, 0.45h, 2,300
- 광주종합터미널~분교, 곰치행: 218-1번, 05:35, 07:05, 10:15, 1.25h
* 강진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성전면터미널~강진여객터미널: 농어촌버스, 완행
- 성전면터미널~광주종합버스너미널: 14:45, 10,600, 1.50h
- 강진여객터미널~센트럴: 07:30, 11시, 13:30, 17:30, 5h, 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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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계획을 세우며 매번 반복되는 실수가 있네요. 지구력의 저하를 감안하지 않고 둘쨋날도 세쨋날도 처음 시작하는 맹키로 계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구간 특징은 땅끝기맥 최고봉인 월출산을 넘어서는데 물을 공급받을 마땅한 장소가 드물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적었습니다.
참고할 만한 사항은 풀치재에서 월출산 정상까지 약 네시간, 구간 말미 밤재에서 제안고개까지 두시간 소요됩니다.
제안고개에서 성전면으로 도보 20분 걸어나가면 숙소와 편의점, 음식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홀대모에 다시 들어와 1대간9정맥6기맥을 땅끝기맥을 끝으로 마무리 지어갑니다.
편안한 모임에는 틀림없네요.
일단 나이드신 고수 분들이 많으니 산행외 부수적인 문제로 회원간 알력이나 세력다툼이 없습니다.
저같은 경우 사람이나 사귀러 산악회 가입한건 아니고, 다만 효과적으로 산행을 하기 위해 산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과 같이하면 도움이 될까 싶어 가입한 경우입니다.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고,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게 필요한 의식주를 자력으로 해결하며 산길을 걷는 홀대모 스타일이 저에겐 딱 맞는 산악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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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기맥(땅끝岐脈)의 개요(槪要)
- 땅끝기맥에 대한 이해
땅끝기맥은 동쪽으로 탐진강, 서쪽으로 영산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월출산 천황봉(809m)이 최고봉이고, 두륜산, 대둔산, 서기산 이외에는 500m 이하의 낮은 산세로 이어지지만 남도의 수석 전시장으로 불리듯 암릉 구간이 많은 옹골찬 산줄기이다. 산자분수령의 원칙을 따진다면 별매산 이후로는 영산강이나 탐진강의 하구와는 멀어지는 듯 하지만, 우리나라 산줄기의 끝점까지 명실공히 한반도를 북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진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대간이나 정맥의 구분 없이 백두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마루금으로는 가장 긴 산줄기이다. 백두산에서 우리나라 산줄기를 두루 거치면서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의 종주기도 기대할 만하다. 섬을 제외한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인 땅끝은 우리나라 바다를 구분 짓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낙동정맥의 끝자락인 몰운대는 동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기준점이고, 땅끝은 서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송호리 갈두부락 사자봉 아래 땅끝탑에서 남서(방위각222)로 그은 선이 바로 서해와 남해의 경계선이 된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백두대간이 영취산에서 호남정맥으로 이어지고, 호남정맥 바람봉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실제적인 한반도를 종단하는 산줄기인 셈이다. 땅끝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사자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530년 중종의 명에 의하여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하여 만든 신중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편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이 곳에서부터 북쪽으로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논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이 1937년에 저술한 조선 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 땅끝기맥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서 화순군 이양면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상의 839번 지방도로의 곰재(웅치)에서 올라서면, 국사봉(499.1m), 깃대봉(448m)을 지나고 삼계봉(503.9m)에 이르기 전 바람봉 헬기장(430m)에 올라선다. 이곳 바람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나주/장흥 영암을 지나며 각수바위, 소반바위산, 계천산(400m), 궁성산(482m), 국사봉(614m), 활성산(498m), 월출산(808.7m), 도갑산(401m), 월각산(456m)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의 남쪽 능선을 이루다가 별뫼산(464m)에서 영산강을 버린 후 강진/해남의 서기산(511m), 첨봉(354m), 주작산(428m), 두륜산(703m), 대둔산(671.5m), 달마산(499m), 도솔봉(421m)을 거쳐 사자봉(110m)까지 동으로는 탐진강, 서로는 영산강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한 땅끝기맥은 비교적 낮은 산세로 이어지지만 월출산, 별매산,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 등 '남도의 수석전시장'으로 불리듯 암릉구간이 많은 아기자기 하면서도 옹골찬 산줄기로 산악인들로부터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주저없이 손꼽는 곳이기도 하다. 그 최고봉은 영암 월출산(810m)이며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인 해남 땅끝 토말에 이르는 총 도상거리 약122.7km의 산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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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동쪽은 보성군·고흥군, 서쪽은 강진군·영암군, 남쪽은 완도군, 북쪽은 화순군과 접하고 있다. 마한시대에는 이곳에 건마국(乾馬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백제의 영역에 편입된 뒤로 이 지역에 오차현(烏次縣)·마사량현(馬斯良縣)·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계천현(季川縣)·두힐현(豆肸縣) 등이 있었다.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오차현은 오아현(烏兒縣), 마사량현은 대로현(代勞縣), 고마미지현은 마읍현(馬邑縣), 계천현은 계수현(季水縣)으로 개칭되어 모두 보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두힐현은 강원현(薑原縣)으로 개칭되어 분령군(分嶺郡)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말 경문왕 때 도의(道義)와 체징(體澄)에 의해 선종의 가지산문(迦智山門)이 보림사(寶林寺)에서 개창되어 선종구산문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초에 오아현이 정안현(定安縣)으로, 마읍현이 수령현(遂寧縣)으로 고쳐져서 영암에 예속되었다. 또한 대로현은 회령현(會寧縣)으로, 계수현은 장택현(長澤縣)으로 고쳐져 계속 보성군의 속현으로 있었다. 그 뒤 정안현은 인종 때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任氏)의 고향이라 하여 장흥부로 승격되었다. 이 무렵 장흥부는 회령현·수령현·장택현과 영암군의 속현이었던 탐진현(耽津縣) 등 4현을 이속시켜 거느리게 되었다. 1265년(원종 6)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다시 장흥부로 강등되었다. 1274년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일본정벌 때 선박 제조의 임무가 부과되어 천관산 부근의 목재로 전함을 만들었다. 또한 동정군(東征軍)이 회주성에서 출발하였다. 고려 말기에는 왜구의 침입 때문에 수인산성·상잠성 등 많은 성을 쌓았다. 1379년(우왕 5)에는 철야현으로, 1389년(공양왕 1)에는 보성군으로 주민들이 옮겨가서 이곳은 공지가 되었다. 1392년(태조 1) 부사 황보 덕(皇甫德)이 수령현의 중녕산(中寧山)에 성을 쌓고, 부의 치소로 정하였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가 되었고, 다음해 중녕산의 성이 좁기 때문에 치소를 다시 수령현의 옛 터로 옮겼다. 세조 때 진을 두고, 진도·강진·해남 등을 관할하였다. 1599년권율(權慄)의 청에 의해 병영을 강진에서 장흥으로 이설했다가 1604년 다시 강진 구영(舊營)으로 옮겼다. 1652년(효종 3)장흥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59년 복구되었다. 1666년(현종 7) 감사 민유중(閔維重)의 건의로 진을 따로 두어 부사가 겸임하게 하다가 1683년(숙종 9) 진을 순천으로 옮겼다. 1895년나주부 장흥군으로, 1896년전라남도 장흥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때 대덕면 등에 딸린 섬은 모두 완도군에 이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웅치면·회천면이 보성군에 편입되었고, 보성군 옥암면의 일부를 편입시켰다. 1940년 장흥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12월 1일관산면과 대덕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년 11월 1일대덕읍에 회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6년 4월 1일회진출장소가 회진면으로 승격되었다.
*화순군
동쪽은 곡성군·순천시, 서쪽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장흥군, 북쪽은 광주광역시·담양군·곡성군과 접하고 있다. 마한의 여러 소국 가운데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이 이 지역에 비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 잉리아현(仍利阿縣)·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두부지현(豆夫只縣) 등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이릉부리군은 능성군(陵城郡 또는 綾城郡)으로, 잉리아현은 여미현(汝湄縣)으로 고쳐져 능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두부지현은 동복현(同福縣)으로 고쳐져 곡성군(谷城郡)의 영현이 되었다. 868년(경문왕 8) 무렵 쌍봉사(雙峰寺)에 철감선사(澈鑒禪師)의 탑과 탑비 등이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곳이 선종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것 같다. 940년여미현은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되어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능성현에 소속되었다. 1018년에 동복현은 보성군의 속현이 되었고 능성군은 처음 나주목에 영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이 파견되어 능성현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2)화순현과 동복현에 감무가 파견되었고 화순감무는 남평감무(南平監務)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에 운주사의 불탑과 불상이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다. 1394년(태조 3)남평과 화순이 분리되었고 화순감무가 동복감무를 겸하게 되었다. 1405년(태종 5)동복현이 폐지되어 화순현에 합쳐졌으며 1407년복순현(福順縣)으로 개칭되었다. 1416년 다시 동복현이 분리, 독립되었고 화순현은 능성현에 합속되어 순성현(順城縣)으로 개칭되었다가 1418년 각각 분리되었다. 1392년에 능주향교가, 1434년(세종 16)에 화순향교가, 1445년에 동복향교가 건립되었다. 1594년(선조 27) 임진왜란의 병화 때문에 화순현이 능성현에 합쳐졌다가 1611년(광해군 3) 다시 분리되었다. 1632년(인조 10)능성현이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의 관향이라 하여 능주(綾州)로 개칭되고 목으로 승격되었다. 1655년(효종 6)동복현이 폐지되어 화순현에 예속되었다가 1664년(현종 5) 다시 분리되었다. 이처럼 화순·동복·능주는 세 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어져 있으면서 빈번하게 폐합·분치를 거듭하였다. 1895년(고종 32)나주부 화순군·능주군·동복군으로 개편되었다가 능주군·동복군이 폐지되어 1896년전라남도 화순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능주·동복 지역 외에 남평군 저포면·다소면 일부, 광주군 지한면 일부, 창평군 일부가 합쳐져 지금의 화순군과 거의 같은 영역을 갖추게 되었다. 1932년 여러 면들이 이양면·북면·남면 등으로 합쳐지는 등 면간의 폐합이 있었다. 1950년 6·25사변 때 동복향교가 소실되었으며 1962년 11월 21일화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동면 수만리가 화순읍에, 1983년 2월 15일도곡면 주도리가 화순읍에 편입되었고, 1988년 3월 25일에 북면 외애리가 임곡리로 개칭되었다.
*나주시
전남 중서부에 있는 시로 나주시는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남 중서부로 육지부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은 화순 군,서쪽은 함평군,남쪽은 영암군,남서쪽은 무안군,북동쪽은 광주광역시와 접하고 있다.나주시는 우리 나라 4개강의 하나인 영산강 중·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산강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나주평야의 중심지로서 질좋은 쌀을 생산하는 전남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며, 과수농업과 원예농업도 활발한 지역이다. 백제시대 고분군과 칠불석상을 비롯해 구석기·불교·유교 문화유적이 많다. 1995년 나주군을 통합해 하나의 도농 통합시를 이루었다. 백제시대에는 발라군이라 칭했으며, 660년(신라 무열왕 7) 백제가 멸망한 뒤 당이 대방주를 설치하면서 속현으로 세운 죽군현·포현현이 이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통의군으로 고치고 757년(경덕왕 16)에는 금산군으로 개칭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나주라 칭했으며,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되어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996년(성종 15년)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로 바뀌어 해양도에 속하게 되었으나 1018년(현종 9)에 다시 목으로 환원되어 전라도 남부의 계수관으로서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무안·담양·남평·낙안·곡성 등 5군이 속군으로, 철야·회진·반남·안로·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진원·화순 등 11현이 속현으로 예속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645년(인조 23)에 향리가 목사 이갱생(李更生)을 해쳤다는 이유로 금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54년(효종 5)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현종 때와 영조 때에도 비슷한 이유로 잠시 강등되었다가 재차 복구된 바 있다. 이후 목으로서 지속되다가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나주부가 되어 나주군 등 16개군을 관할했으며, 이듬해에 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에 소속되었다. 이때 관찰부가 광주에 설치됨으로써 전라남도의 행정중심지 기능이 광주로 넘어갔고, 목포의 성장으로 나주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나주·나신·양지·왕곡·세지·반남·공산·동강·다시·문평·삼도·평동·노안·남평·다도·봉황·금천·산포·본량면 등 19개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29년 나주면과 나신면이 합하여 나주면이 되었으며, 1931년 나주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1914년 상곡면과, 수운과 육운이 교차하여 시장으로 유명한 영산포를 포함하고 있던 지량면을 합하여 만든 양지면은 영산면으로 개칭했다가 1927년 영산포읍으로 승격했다. 광주의 도시발달에 따라 위성도시화하자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을 합하여 금성시로 승격, 1985년 나주시로 개칭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나주군을 통합해 도농통합시인 나주시가 되었다.
*영암군
영암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월나군과 아로곡현(阿老谷縣)·고미현(古彌縣)이 있었다. 일본에 유학을 전수해 준 왕인(王仁)의 탄생지가 있으며, 유적도 전하고 있다. 신라의 통일 이후 경덕왕 때 영암군으로 개칭했고, 월출산은 신라의 소사(小祀)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최지몽(崔知夢)과 도선 등의 활동으로 고려초에 영암의 지위는 급속히 상승되어, 995년(성종 14)에 낭주로 승격되었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감으로써 다시 영암군으로 복칭되었다. 이 무렵의 영암은 남부의 황원군·도강군·곤미현·해남현·죽산현 등을 영속하는 호남 서남부의 행정중심지로서 존재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의 파견이 시작되는 것을 계기로 이들 군현이 독립해 대체로 현재의 지역에 상응하는 구역으로 축소되었다. 월출산에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석(움직이는 돌)이 세 개가 있다고 전해 오는데 그 하나는 운무봉(雲霧奉)에 나머지는 도갑과 용암 아래에 있었다 한다. "월출산에는 세개의 신령스러운 움직이는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는 천명을 동원해도 절벽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지만, 단 한 사람이 흔들어도 곧 떨어질 것같이 흔들거렸다. 높이는 1m 정도이고 둘레는 열 아름 쯤 되는 큰 바위인데 서쪽은 돌뼈(石骨)뿐인 산머리에 있고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동석은 그 무게로 보아 수 백인을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흔들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 보거나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이 세개의 동석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해서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바위 세개를 모두 떨어뜨렸는데, 그 중 하나가 다시 옛 자리에 올라와 있어 이 바위를 신령(神鈴)한 바위라고 전하고 있다. 이 동석 전설로 인해 영암(靈巖: 신령한 바위)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강진군
강진군은 삼한시대 마한의 54국 중 구해국(狗奚國)이 강진에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제의 도무군(道武郡)과 동음현(冬音縣)이 이 지역에 설치되었다. 신라의 통일 이후 757년(경덕왕 16)에 도무군을 양무군(陽武郡)으로, 동음현은 탐진현(耽津縣)으로 개칭하였다. 이 시기에 무위사·백련사·정수사(淨水寺) 등 많은 사찰이 세워졌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양무군을 도강현(道康縣)으로 개칭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영암군에 속하게 했으며,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탐진현은 처음 영암군에 속했다가 후일 장흥부에 속하게 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도강과 탐진의 두 현을 합쳐서 강진현(康津縣)으로 만들고 탐진에 치소(治所)를 두었으며, 병마도절제사의 영은 도강의 치소로 옮겼다. 현의 치소는 이후 1429년(세종11)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겨졌다가 1475년(성종 6)에 탐진으로 되돌아왔다.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출신의 많은 인물들이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다. 순조 때 정약용이 이곳에 귀양을 와 18년을 지내면서 그의 저술을 대부분 완성하였다. 그 때 거처했던 귤동의 다산초당은 다산실학(茶山實學)의 산실로 유명하다. 한편 무위사의 극락전은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1914년에 현재와 같은 강진의 윤곽이 잡혔으며, 1936년에는 강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8면으로 되었다. 1919년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김안식(金安植)·오승남(吳承南)·김윤식[金允植, 김영랑(金永郎)] 등이 주축이 되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강진군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황소가 누워있는 와우형국으로 봉은산 정상을 우두봉(牛頭峰)이라 하고 강진읍내의 지명이 소와 관련된 지명(초동. 싯끝, 초지, 가우도)이 많다고 한다. 남해안에 쑥 들어와있는 강진만은 따스한 '요니'처럼 육지속으로 쑥 들어와 조붓하고 아늑하게 보인다고 한다. 어느 작가가 ‘요니(女陰:여성의 성기)’로 표현하였는데 강진의 산과 물의 생김새를 토대로 강진의 지형을 살펴보면 영락없는 여성의 자궁과 같은 형국이라고 한다. 강진군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상징물이 청자모형인데, 강진군의 모토가 ‘청자의 고장’ 이라고 한다.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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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봉→0.2km→바람재–1.3km→화학산갈림길→1.2km→개바위등→0.6km→각수바위→1.5km→바람재/유치재→0.6km→461m(장산재)→1.2km→소반바위산→0.9km→문암재→0.3km→수락재→1.3km→큰재→2km→굴래봉→0.6km→까치골재→0.9km→덕룡재/행장재→1km→세류촌임도→0.3km→덕룡분맥갈림→0.8km→덕용임도/820번도로→1.9km→기동재→1.1km→계천산(406.1m)→0.4km→탐진강발원지→0.4km→궁성산갈림→0.3km→오두재/아크로CC→1.2km→걸매고개/질마재→1km→승장재→1.5km→노룡재→0.5km→차일봉→0.7km→전망바위→0.2km→모개나무재→1km→주당고개→1.5km→국사봉(615m)→0.2km→암반갈림→1.9km→가음치
가음치→1.0→송장고개→0.4→281.2m→1.4km→323m→0.6→철망펜스→0.2→368m→1.2→영암목장→0.4→백룡지맥갈림→0.9→한속굴재→0.6→활성산→0.9→달뜬봉(384m)→0.5→둔덕치→1.6→356m→1.1→암릉봉(246m)→0.8→돈밧재→1.3→산죽봉(328m)→1.2→수인분맥분기봉→0.9→풀치재/불티재
풀치재/불티재→1.4→누릿재/노루재→0.2→정약용남도유배길→1.2→묘비석→0.1→양면불상→0.5→달구봉→0.4→사자봉갈림길→0.3→경포대능선삼거리→0.3→통천문→0.1→월출산 천황봉→0.9→남근바위→0.2→바람재→0.4→베틀굴→0.1→구정봉→1.5→헬기장→0.1→미왕재→1.8→도갑산→2.4→주지봉갈림길→1.1→354.7m봉→1.2→묵동재→0.8→월각산갈림길→0.3→월각산(456m)→0.2→월각산갈림길→1.7→307m봉→0.7→285.5m봉→1.1→밤재
밤재→1.1→별뫼산(465m)→2.5→13번국도→0.5→제안고개/814지방도→0.8→정골재→0.7→깃대봉→1.3→장군봉→0.8→부림골임도→0.3→산불감시초소→1.9→당재→0.6→329.1m봉→1.4→장산봉→1.4→351m봉→1.3→헬기장→0.6→서기산→1.7→406.7m봉→1.0→만덕산갈림봉→1.0→만세재→0.6→임도→2.2→255.1m→1.7→계라리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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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향기팬션입니다. 전봇대 띠지 보이시죠? 땅끝기맥의 진정한 어프로치가 시작되는 곳이죠. ㅋㅋ
팬션 지붕이에요. 저 아래가 운곡마을...
호남정맥을 하며 바람봉 가기 전에 이 간판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호남정맥과 합류합니다.
♤ 운곡마을/ 장흥군 장평면 병동리
운곡마을은 임진왜란 때 진주강씨 강서동이란 사람이 난을 피해 화순 청풍면 신석골에 거주
하면서 유람삼아 운곡마을 고개에 오르던 중, 눈 아래 안개구름이 길게 뻗은 계곡이 있어 길지라
생각하고 마을 이름을 '운곡'이라 하고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강씨는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 자손이 없어 대가 끊어지고 그후 죽산 안씨와 평강 채씨 등이 살고 있다고 한다.
들꽃향기팬션에서 25분 소요되었습니다. 제일 가까워요. 길도 편안하고....
자 이제 본격적으로 땅끝기맥을 걸어볼까요~
올라오면서도 제암산 정상이 보였지만, 이 이정표의 중앙 가운데 뒤로 제암산 정상이 보입니다.
♤ 바람봉(434m)/ 삼면봉(장흥군 유치면, 장평면 → 화순군 청풍면)/ 땅끝기맥갈림봉
전남 화순군 청풍면과 장흥군 유치면, 장평면 화순군 청풍면 등 2개군 3개면의 접경하고 있는 봉우리로 땅끝기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며, 화순군 청평면으로 흐르는 봉우리는 영산강 상류인 지석천으로 흐르고, 장흥군 유치면으로 흐르는 물은 탐진강 상류인 탐진댐으로 흐르는 두 강줄기의 발원지이다. 봉우리 북쪽 200여m 아래에 있는 바람재 위에 있는 봉우리라하여 바람봉이라 부른다. 진행방향 헬기장의 왼쪽 모서리는 호남정맥 길이고, 오른쪽 모서리 방향은 땅끝기맥이다.
바람재로 가며 저 아래 이만저수지가 보입니다. 저 곳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요.
바람재인데 아무런 표시가 없습니다. 그냥 육감이죠... 네가 바람재구나 하는...
♤ 바람재
전남 장흥군 장평면 병동리, 유치면 대천리와 화순군 청풍면 신석리, 이만리 사이의 고개이다. 고개 아래에 있는 우치리 남쪽에 있는 고개로 북쪽이 트여서 바람이 세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우측 아래로 이만제저수지가 보인다.
능선삼거리는 걸치지 않고 왔습니다. 화학산삼거리에서 내려오는 능선에 합류합니다.
♤ 삼면봉/ 화학산갈림길(장흥군 유치면, 화순군 청풍면 → 화순군 도암면)
463m봉을 우회하여 만나는 임도를 따르다 만나는 Y갈림길 근처, 화학산갈림길이 장흥 유치면, 화순 청풍면, 도암면의 삼면봉이다. 화학산갈림길에서 우측은 화학산 가는 길이고, 좌측 내리막은 땅끝기맥길이다. 이곳부터는 "영암금정청용마을" 갈림길 임도까지 약10km를 잡목 하나 없이 등로 상태가 양호한 남도오백리길이 이어진다.
♤ 구례-해남 "남도오백리 역사숲길" 조성
- 구례 지리산 백두대간 자락서 해남 땅끝까지 339km
전남도는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종점 지리산 자락으로부터 국토 최남단 해남 땅끝까지 연결하는 ‘남도오백리 역사숲길’ 조성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다. 이 숲길은 국토 대동맥인 백두대간의 지맥을 잇는 상징적인 숲길로 남도의 다양한 역사와 빼어난 자연, 문화, 환경을 즐기며 농어촌체험 등 건강 증진을 위해 지난해 10월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4년간 84억 원을 투입, 총 338.8km의 숲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요 노선은 구례~곡성~화순~영암~강진~해남으로 6개 군을 통과한다.
요게 각수바위에서 바라본 화학산인데, 정상이 어디인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능선입니다.
♤ 화학산(華鶴山, 613.8m)
전남 화순군 청풍면 청룡리, 이만리, 도암면 우치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상 지형이 큰화학산, 작은 화학산으로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형상을 하고있는 화학귀소형(華鶴歸巢形)이라 하여 화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수많은 능선이 새의 깃털 같아 마치 황금 새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해서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부른다. 화학산은 아들딸을 낳고자 소원을 빌었고, 소원성취를 위해 만사형통 산신제를 올렸으며, 예전에는 가뭄이 들면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산에서 산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잇는 지형적 특성과 산세가 험하고 장흥과 연결되어진 지리적 위치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학혁명 시에는 동학군이 이곳에 은거했고, 이후에도 의병전쟁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6.25 때는 정상고지에 방호진지가 있었던 곳으로 1951년 4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대혈전이 벌어져 수많은 귀중한 인명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주호의 풍경이 보이고, 주변에 운주사, 개천사, 쌍봉사, 도곡온천, 장흥 보림사 등이 있으며 특산품으로 표고버섯과 더덕이 유명하다.
배낭을 놓아두고 각수바위를 다녀옵니다. 20m 왕복
♤ 각수바위재
대나무숲을 지나면 Y자 갈림길이 있는 각수바위재를 지나게 된다. 장흥군 유치면과 화순군 청풍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의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좌측 유치면쪽 직진방향으로 등로가 뚜렷하다. 하지만 기맥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바위 두개가 양 봉우리를 이뤄 흡사 짐승의 뿔처럼 보인다는 뜻이겠죠.
바로 아래 우치저수지가 보이고요.
제암산 정상도 살짝 보입니다.
그리고 차일봉과 국사봉 뒤로 뾰족한 월출산 정상도 조망이 가능합니다.
♤ 각수바위(角首巖峰, 456.1m)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 경계 능선에 있는 암봉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뿔 모양(角首)이라해서 각수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새댁의 원혼이 서려있어 '각시바위'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각수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각수바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2개의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천길 낭떠러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옛날에는 두 바위 사이로 난 작은 골짜기를 따라 호랑이가 지나 다녔다고 전해온다.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아찔하며, 바로 아래로는 '우치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화학산이 각수바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암릉 아래에 있는 마을이 우치리(牛峙里)인데 우치의 뜻은 원래 소재(牛峙)라 부르는 것을 한자로 소우(牛)자와 고개치(峙)자를 각각 취하여 우치라 한 것이다. 우치리에는 소재(牛峙)마을, 문바위(門巖)마을, 각수바위(角首巖)마을, 가마터마을 등 4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120호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6.25 이후 폐촌이 되다시피 되었고, 이후 이농현상으로 문바위, 가마터, 각수바위 마을은 폐촌되고 현재는 소재마을만 남아 30여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각수바위 아래로 우치제가 내려다 보인다. 각수바위 우측 중앙의 큰 봉우리가 화순군 청풍면의 금성산(468m)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무등산이 조망된다.
삼나무라고 다 반듯한건 아니고요. 이렇게 시련을 겪고 이겨낸 경우도 있네요.
우치재입니다. 바람재라고도 하고 유치재라고도 하고...
장흥군 유치면 소양리와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의 경계입니다.
♤ 우치재(牛峙)/ 유치재/ 바람재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소양리를 잇는 임도로, 우치재 또는 바람재라고도 부르며, 우치는 지형이 산을 오르는 소와 같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보면 각수바위는 소뿔로 보인다. 우치재 우측 아래에 '우치'의 이름을 딴 우치마을이 있다.
우틀하는 데서 10m 다녀와야 합니다.
♤ 소반바위산(小盤巖山, 493m)
장흥군 유치면과 화순군 도암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짧은 발이 달린 밥상을 소반(小盤)이라 하는데 밥상처럼 생긴 바위라 하는데, 소반 모양의 바위는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고 잡목만 무성하다.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만이 소반바위 산임을 알려준다. 정상에서 뚜렸한 직진길이 있지만 기맥길은 270도 우틀하여 이어진다.
재이니깐.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안부가 맞겠지요. 봉우리에 올라서 문암재라고 하면 안됩니다.^^
♤ 문암재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헤치고 봉을 오르고 급경사를 내려서기를 반복하며 산죽이 자라고 있는 안부로 개념도 상 '문암재'로 표시된 곳이다.
임도가 있습니다.
♤ 수락재
수락재(상수락재)는 좌측 수락마을과 우측 상수락마을을 잇는 잘록한 안부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마을이라 수락이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삼군봉인데요. 봉우리는 우측에 있는것 같고...
♤ 447m봉/ 삼군봉(화순군 도암면, 장흥군 유치면 → 영암군 금정면)
화순군 도암면과 장흥군 유치면, 영암군 금정면의 삼군봉이다. 넓은 공터봉으로 기맥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삼군봉이라는 특징도 없고, 표시도 없다. 남쪽으로 국사봉까지 연결 되는 뚜렷한 능선이 장흥과 영암의 경계이다. 기맥은 여기서 영암 금정면과 화순, 나주의 경계를 따라 서진하여 개천산까지 진행하다가 개천산에서 나주시와 헤어지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국사봉에서 장흥 유치면을 잠깐 만나고, 서진으로 다시 금정면에 들어가 활성산 직전 백룡지맥분기점에서 영암읍에 이르러 남하하고 활성산에서 금정면과 헤어지며 영암읍으로 진입한다.
우측으로 왕정리의 저수지가 계속 내려다 보입니다.
♤ 큰재/ 왕정재
화순군 도암면 왕정리로 내려가는 고개로, 옛고개로 보이는 안부에 왕정리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의 흔적이 보인다.
행산리 마을로 내려가는 임도입니다. 임도가 여기까지 올라와 있네요.
♤ 굴래봉(409m)
행산리 임도에 내려서서 임도를 가로질러 오른다. 임도 우측길은 산허리를 꼬불꼬불 돌아 먹방제를 지나 왕정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임도를 지나 5분 오르면 409m봉에 '故 한현우'씨가 걸어놓은 '굴래봉' 표지기가 걸려 있다.
까치골재 지나 동산마을 가는 임도에요. 글래봉은 행산리 임도와 여기 임도의 중간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사진을 찍긴 했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고, 띠지만 찍어서 올리나마나입니다.
♤ 까치골재
잡풀만 무성한 잘록이 안부가 까치골 임도와 만나는 까치골재이다. 좌측으로 잡풀을 헤치고 약간 나가면 까치골을 지나 동산마을(동산교)로 내려서는 임도와 만난다.
행산리 마을을 계속 내려보며 진행하다가 여기 철탑을 지나 조그만 임도가 삼군경계면으로 인식해야할 중요한 지점인데, 준희님 부러진 표지판도 없어졌는지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났네요. 동산마을로 내려서는 임도에서 0.9km 진행하면 덕룡재이고, 다시 1km 진행하면 중장터고개입니다.
♤ 덕룡재(德龍峙, 345m)/ 삼군삼면경계면(영암군 금정면, 화순군 도암면 → 나주시 다도면)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룡리로 넘는 고개로, 행산재라고도 부르는데 화순군의 극서점이기도 하다. 덕룡재는 동으로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 남으로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서쪽으로는 나주시 다도면 도동리가 갈리는 3군계이자 3면계이다.
♤ 덕룡산(德龍山, 450m)
덕룡산은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와 다도면 암정리 사이에 위치한 봉황면의 주산이다. 특별히 모난 산세는 아니지만 첩첩이 둘러싼 산들이 날카로운 인상이다. 이 산줄기는 남으로 영암땅의 궁성산과 국사봉을 지나 월출산까지 이어지며, 호남의 오지를 형성한다. 정상 아래 동북방 기슭에는 운흥사(雲興寺)라는 유서깊은 사찰이 있었는데, 이 사찰은 조선후기의 대선사이자 한국 다도의 중흥조인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운흥사터 동쪽 능선 너머에는 '불회사'라는 또 다른 유서깊은 사찰이 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마라난타'가 개창하여 그후도선국사가 2창, 조선 태종 2년(1402) '원정국사'가 3창하고, 정조 22년 (1789년) 큰화재로 불타 버려 1800년에 중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원래는 불호사(佛護寺)라 하였으나 불탄 이후 불회사(佛會寺)라 부르고 있다. 이처럼 덕룡산은 예로부터 많은 유서깊은 사찰들이 자리했던 불교적 색채가 짙은 곳이다. 덕룡산에는 잘 정비된 등산로는 없다. 운흥사지에서 동암으로 오르기 까지는 양호한 도로가 이어지나 능선으로 오르려면 잡목숲을 지나며 상당한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불회사에서 동암으로 산행할 수 있지만 계곡에 수풀과 가시덤불이 가득해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가 덕룡재인지 알았는데 가만 둘러보니 중장터고개더군요.^^
♤ 세류촌 임도/ 중장터고개
남쪽 영암군 금정면 세류마을에서 북쪽 나주시 다도면 중장터와 화순군 도암면으로 가는 임도로, 중장터고개라고도 부르며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이다. 기맥길은 시멘트 포장도로 맞은편 낡은 철문 오른쪽 산길로 이어진다. 세류촌임도에서 정상적인 땅끝기맥길은 378봉을 거처 421m(410m)봉에서 좌틀하여 덕룡임도로 이어지나, 원형철조망이 계속 앞을 가리고 있고 등로도 험해 우회하기도 한다.
삼면봉인데 임도로 우회하긴 아깝지요. 잠깐 올라봤습니다만 별다른 표식도 특징도 없습니다.
♤ 410m봉/ 삼면봉(영암군 금정면, 나주시 다도면 → 봉황면)/ 덕룡분맥갈림봉
세류촌임도에서 건너편 철책을 지나 철망을 좌측에 두고 가시덤불을 뚫고 올르면 공터가 나오는 봉에서 기맥의 우측이 나주시 다도면에서 봉황면 덕곡리로 바뀐다. 마루금은 직진이 아니고 좌측에 있는 철망을 밟고 넘어 직좌틀해서 진행해야 한다.
저 아래 덕고개가 보입니다. 영암과 나주의 경계입니다.
가건물 같은데 사람이 사는가봐요. 내려서기 전 무덤 옆에서 남자 두명이 비료포대를 들고 고사목 나무를 하고 있더군요.
♤ 덕룡임도/ 820번 지방도, 동물이동통로, 5분(50m) 내려서면 원세류마을 정류장, 물보충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로 이어지는 곳으로, 축사로 쓰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산꾼들의 지도에는 덕룡임도로 표기되어 있고 오랜 공사끝에 동물이동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동물이동통로 공사장 건너편 편백나무숲이 진행 들머리다.
저기 궁성산과 그 좌측 아래로 골프장이 보입니다. 기맥이 진행하는 선을 주욱 그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