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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1. 30.(일) - 음력(12. 28.), 일출 07:29~일몰 17:49
●산행지: 보현지맥 3구간 졸업(돌고개-합수점)
●산행코스: 돌고개-261m봉-오현-곤지산(328.6m)-330.9m봉-선의현-비봉산(481.1m봉)-비로재-포장임도-172m봉-징걸재-187m봉-이봉-비봉산(579.3m)-힌티재-139.8m봉-도암고개-광덕고개/28번도로-도암체육공원-행현고개/59번도로-산내고개-사갑고개-198.1m봉-166m봉-125m봉-우물리사거리-위천∙낙동강 두물머리-이탈(2km)-수암종택
●먹거리: 생수1리터, 콜라2, 포도즙3, 빵3, 양갱, 단백질바, 초코파이3, 사탕25
●준비물: 스틱, 헤드랜턴, 비니, 버프, 장갑,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말방울, 세라컵,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15
●거리: 약 32.56Km
●소요시간: 9.09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시외버스19,300, 식사14,000, 여관20,000, 상주여객2,000, 뒤풀이3,800, 상주시외버스19,200
●날씨: -8~6,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고 무난한 날씨...
●산행경과:
- 06:50 : 돌고개(石峴)/ 면계(안계면 - 안사면)
- 07:29 : 오현(烏峴)
- 07:38~44 : 행동식
- 08:02 : 곤지봉(坤池山, 327.8m)
- 08:08 : 선의현(仙義峴, 235m)
- 08:41 : 비봉산(飛鳳山, 478m)/ 문암산갈림봉/ 숫비봉산
- 09:10~24 : 비로재(150m)
- 10:17 : 사붓마을고개
- 10:22 : 징걸재/ 923번 지방도로
- 11:22 : 자미산2봉(451.1m)
- 11:48~12:11 : 비봉산(飛鳳山, 579.3m)/ 자미산/ 암비봉산, 행동식
- 12:35 : 힌티재/ 흰티재/ 백영현
- 13:07 : 도암(陶岩)고개(85m)
- 13:23 : 광덕고개/ 28번국도
- 13:37 : 도암체육공원
- 13:53 : 행현고개(75m)/ 59번도로/ 28번도로
- 14:10 : 산내(山內)고개(75m)
- 14:25 : 사갑(巳甲)고개(75m)
- 14:56 : 198.1m봉
- 15:33~39 : 행동식
- 15:57 : 우무실고개
- 16:17 : 합수점(45m)
- 16:43 : 첨모각(瞻慕閣)
- 16:52 : 수암종택(修巖宗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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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지맥 3구간 세부 구간거리
돌고개-(3km)-곤지산-(2.2km)-문암산-(6.7km)-징걸재-(3.9km)-비봉산-(5.5km)-광덕고개-(4.4km)-사갑고개-(6km)-위천-이탈(2km)-수암종택
* 구간거리
- 돌고개~위천 합수점 32.56km
-. 돌고개~도암고개 19.5km
-. 돌고개~비봉산 16.5km
-. 도암고개~광덕고개 3.1km
-. 광덕고개~위천합수점 10.4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돌고개: 하나로마트, 안사치안센터, 안사면사무소, 보건소
- 돌고개~안사면버스정류소: 약 0.1Km
- 안사면버스정류소~안계면버스정류장: 약 10분소요, 막차 19:20
- 안계면버스정류장~동서울 환승: 막차 18:30, 19,300원,
- 안계면버스정류장: 054-861-0430, 안계면 청호여관: 2만
- 안계택시: 054-861-0129, 010-3546-0129
- 안계~상주: 07:50, 10:30, 13:55, 15:30, 18:05, 19:50, 1h, 4,000
- 광덕고개~다인면소재지: 도보 약 1.7Km
- 다인면 택시: 054-861-4130
- 산내고개: 인가에서 식수보충 가능
- 상주여객(시내버스): 054-534-8250~1, 상주시외버스터미널 : 054-534-9001
- 우물1리마을버스정류장~낙동면: 막차 17:25, 수암종택~낙동면: 택시 1만원
- 낙동면 택시: 054-532-2116
* 서울에서 돌고개가는 길
- 청량리역~의성역: 06:50, 14:50, 03.05h, 17,300
- 동서울~안계: 07:20, 14:20, 16:20, 03.20h, 19,300
* 안계에서 돌고개 가는 길
- 안계버스정류장~중하리, 쌍호리: 06:30, 06:40, 0.10h
- 택시 1만원, 10분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우물1리~상주터미널: 17:25, 0.30h, 2,000원
* 상주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상주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터미널: 15:10, 15:30, 16시, 17시, 18:30, 19:10, 19:40, 2.30h, 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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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 누적 피로는 86.235% 회복되었습니다만,,,
2월 초에 팔공지맥을 길게 들어갈려니깐 자투리 시간에 보현에 다녀오면 되는데 시간이 나질 않는군요. 오늘 아침 첫차를 타면 좋겠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달려가겠습니다.^^
보현을 보다 편안하게 졸업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겠군요.
하나는 이틀에 걸쳐 비박으로 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안계에서 1박후 하루만에 졸업하는 방법입니다.
전체 34km, 10.20h 소요,,,,
안계에서 쌍호 가는 06:30분 첫차로 돌고개에서 내려, 07시에 출발하면 17:30분에 마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런 방법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어제 저녁 출발했을텐데 아쉽네요.^^
오늘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에서 보현지맥을 3구간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어제 안계에 내려와 안계막걸리 한잔에 객수를 즐기고, 오늘 아침 첫차를 이용해 돌고개에서 06:50 출발, 09.09h만인 16:17분 합수점에 섰습니다.
우물리에서 17:30분 상주로 나오는 버스를 이용하였으니, 마지막 구간은 대중교통으로만 마무릴 지었네요.
보현지맥은 의성 18개면 중에서 13개의 면을 통과한답니다. 그만큼 의성과 관계가 깊습니다. 의성과 관계가 깊은 역사의 인물은 둔덕산의 홍술장군이구요.
이제 위천의 북쪽 울타리를 마쳤으니 다음으론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을 마저 이어보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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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서울에서 16:20분 막차로 안계에 내려왔습니다. 저녁을 먹을 곳이 없어 잠깐 찾아보니 소담정이던가 깔끔한 음식점이 하나 눈에 띄이더군요. 마지막 손님으로 청국장에 솥밥을 두개 시키고, 안계막걸리도 한통 시켜 몽땅 다 먹었습니다. 객지에서 객수를 즐기며 한잔 하는 맛을 좋아라 합니다. 선답자님들 산행기에 등장하는 2만원 하는 청호여관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새로 지을려고 다 헐어놓은 안계 시장통 옆에 있더군요. 방은 손바닥만 한데 웃풍이 얼마나 세던지... 어깨가 다 시려웠습니다. 주인할머니 연세도 있고 이제 베풀고 갈 연세이니 2만원짜리 라디에이터 하나 들여놓으면 딱 좋겠더만은.... 전기판넬이라 바닥은 철철 끓었습니다.
중하리행 버스기사아저씨 만사가 귀찮은듯 도덕리에 내려주시네요. 초행길이니 안사면사무소에 내려달라고 분명하게 의사 전달을 드리는건데 안사면사무소에 내린다고 말씀드리고 탔는데도 도덕리에서 일어나니 거기서 내리는지 알고 그대로 문을 열어주시더군요. 한참을 걸어가다 뒤에 오는 쌍호리 버스를 다시 타고 안사면 치안센터에 내렸습니다.
♤ 돌고개(石峴)/ 면계(안계면 - 안사면)
돌고개는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와 안계면 도덕리 사이를 오가던 고개로, 예전부터 산으로 가로막힌 양쪽 지역을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안사면소재지에서 안계면소재지로 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주변에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912번 지방도가 지난다. 돌고개의 남쪽 계곡은 위양천의 발원지로서 이 하천의 최상류부에 해당되는 돌고개 주변에는 석현지라는 저수지가 조성되어 위양천의 곡저 평야에 조성되어 있는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돌고개 주변 지역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층군 하산동층 문암산층원과 다인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낙동층군에 해당되는 중생대 퇴적암층은 침식 저항력이 매우 낮아 주변 산지의 높이가 매우 낮은 구릉성 산지의 특성을 보인다.
- 의성군 안사면 안사리에 위치한 안사교회, 안사치안센터, 안사면사무소가 있다. 치안센터 정문에서 안계 방향으로 도로 따라 약간 진행하면, 안계면 표지석 도로건너 전봇대와 CCTV 앞 벚나무에 돌고개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고 그 좌측이 들머리이다. 지맥은 안계면과 안사면의 면계를 따라 서쪽으로 향한다.
♤ 붉은점 모시나비
붉은점모시나비는 2012년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나비목 호랑나비과 곤충으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매우 흔하였으나, 현재는 지구온난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강원도 정선, 한탄강 일원, 경상북도 의성 등 주로 산지의 암반 지대나 강변의 암석지, 산 정상부 기반암이 드러나 있는 지대 등 양지바른 초지대의 기린초(麒麟草)가 자생하는 곳에서 일부 자생하는데, 이들 지자체에서는 서식지 복원 사업과 인공 번식후 방사 사업을 펼쳐 일부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붉은점모시나비의 앞날개 길이는 봄형 34~43mm, 여름형 47~58mm 정도로 백색 반투명으로 검정색 무늬가 있으며, 뒷날개에는 검은테가 있는 붉은색 무늬 2개씩이 있다. 수컷은 배 전체에 긴 털이 있다. 연 1회 발생하며 5월 상순에 나타나서 중순에 최성기를 이루고 하순에는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양지바른 풀밭에 살며, 나무딸기, 엉겅퀴, 기린초 등에서 꿀을 빤다. 유충은 기린초를 먹으며 알 속에서 초령 유충으로 월동한 뒤, 3월 하순~4월 상순에 알껍질을 뚫고 나온다. 과거에 상태가 좋은 붉은점모시나비 한 마리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여 일본인에게 팔리기도 하였다는데, 이 나비의 날개에 빨간 점이 선명하게 박혀 마치 일본의 일장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안계면 양곡리(陽谷里) 태양(太陽)마을
양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변의 송곡동과 태양동, 시동의 일부와 현동면의 운곡동, 용강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태양동의 ‘양’자와 송곡의 ‘곡’자를 따서 양곡이라 하였다. 태양마을은 곤지산 남쪽에 위치한 생태 마을로 태양(太陽)은 1359년 고려의 유신인 강릉 김씨 김사민(金俟民)이 남하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붙인 명칭이며, '생태 우수마을', '농촌체험마을', '자연회귀마을'로 선정된 강릉김씨 집성촌으로, 멸종위기 2종인 붉은점모시나비의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평평한 암반 바위 봉우리 지대를 통과하며 좌측으로 조망해 보면, 안계 들판을 지나 멀리 팔공지맥 마지막 봉에 해당하는 만경산(499m)과 그 좌측으로 팔공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의성군 신평면 검곡리에 있는 국사봉도 바라다 보인다.
♤ 오현(烏峴)/ 당산나무 보호수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거대한 당산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잘록이 안부로 등로 왼쪽 아래로 양곡리에서 곤지봉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고, 오른쪽 아래 만리리 자연 마을 중에 마을이 까마귀 머리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오두골(烏頭谷) 마을이 있다.
- 이정표(오현, ←정상1.5km, ↓입구0.5km, 돌고개2km→)가 세워져 있다.
♤ 328.2m봉/ 삼각점봉
간간이 조망바위도 만나며 전후 앞뒤로 조망을 살피며 진행한다. 등로에서 안사면 만리리 마을도 조망된다.
- 준희선생님 327.8m봉 산패가 나무에 매어져 있다.
♤ 의성군 안사면 만리리(萬里里)
의성군 안사면 만리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만이골(萬二谷)의 만자와 신리(新里)의 신자를 취하여 만리리라 하였다. 자연 마을로는 오가동(五佳洞), 석마곡(石磨谷), 작다리(爵多里) 등이 있다.
♤ 330.9m봉
곤지산을 내려서서 얕은 봉우리 두개를 넘고 세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면 입구에 「곤지봉 / 해발 327.8m / 안계천지산악회」표지판이 있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이다. 이곳을 곤지산(坤池山)이라고 표기한 지도도 있다. 이 봉은 곤지봉이 아니라 개념도 상 330m봉이다.
♤ 곤지산(坤池山, 327.8m)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과거 이 산에 물이 샘솟는 구멍이 있어 큰 습지가 형성되었는데, 이 습지가 말라 건지(乾池)가 되었다고 해서 곤지봉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전한다. 곤지봉은 곤지산으로도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곤지봉으로 불리고 있다. 곤지봉의 북쪽은 용천봉, 문암산과 능선이 연결되며, 곤지봉 정상에는 삿갓 모양의 소나무가 홀로 서 있다. 수령은 350년 정도이며, 2000년 2월 17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곤지봉의 정상부 전체를 통틀어 한 그루만 서 있기 때문에, 안계면 뿐만 아니라 의성군 서부의 많은 곳에서 산 정상부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 소나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에 전설이나 구전되는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면 옛날 한 농부가 이 소나무의 가지를 땔감으로 잘라 지게에 지고 집까지 잘 갔으나 결국 부정을 타서 집 마당에 들어서자 지게가 갑자기 무거워지며 그 무게에 눌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산지의 남쪽 사면은 안계면 양곡리에 속하는 동시에 위천의 북쪽 분수계에 해당되며, 북쪽 사면은 안사면 만리리에 속하여 신평천의 남쪽 분수계에 해당되어 위천과 신평천을 구분하는 분수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곤지봉의 남쪽 사면은 위천으로 유입되는 소지류의 발원지인데, 소지류들의 최상류부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사면 아래 곡구를 따라 빼곡히 축조되어 있다.
- 곤지산 정상 직전 등로 오른쪽 아래로 안사면 안사리 오가지 마을이 보이고 정상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와 띠지가 보인다. 수령 350년이 넘은 고목 소나무가 있다. 돌고개에서 2.7km 거리이다.
♤ 선의현(仙義峴, 480m)/ 삼면경계면(안사면, 안계면 → 다인면)
의성군 안계면 양곡리와 안사면 만리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우 고갯길이 뚜렷한 암릉지대 사거리 안부이다. 왼쪽은 용운저수지를 지나 양곡리 용강, 운곡 마을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만리리 오가지마을로 이어지는데, 이 선의현에서 지금까지 좌 안계면, 우 안사면으로 이어오던 맥길의 왼쪽이 다인면으로 바뀌어 좌 다인, 우 안사로 북서향하여 비봉산을 지나 문암산(門巖山, 460.1m) 방향으로 이어진다.
♤ 의성군 다인면(多仁面)
의성군 서북부 변경에 위치하여 북으로 예천군 지보면과 풍양면, 서쪽으로 상주시 중동면과 접하고 있는 면으로 조선시대 다인현 지역이다. 일명 인양(仁陽)이라고도 하며 본래 신라의 달이현(達已縣 또는 多已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다인현으로 고쳐 상주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시대 보주(甫州: 지금의 예천군)로 이속하였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예천군의 속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동, 현남, 현내 3면이 의성군에 속하여 다인면이 되었다. 모두가 다인현의 현청 소재지를 기준으로 그 위치를 밝혀 지은 이름으로 옛 현서면 만은 예천군에 넘겨주었다. 면의 동쪽은 독점산(311m)과 문암산을 연결하는 일월산맥이 안동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에는 비봉산(579m)이 솟아 있다. 남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미곡생산이 주산업이며, 양서 양수장에서 공급되는 관개용수로 전농토가 수리안전답이다. 원리에는 관개시설물 제조업체 등이 입주한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봉정리에 대곡사가 있으며, 그 경내에 13층석탑이 있다. 소재지는 서릉리이다.
♤ 비봉산(飛鳳山, 482m)/ (다인면 - 안사면 → 다인면)/ 숫비봉산/ 문암산갈림봉/ 돌탑
다인면에는 비봉산이 두 곳인데 대동여지도에는 신평면(현 안사면)과 경계를 한 삼분 뒷산을 비봉산이라 하였고, 현 지도에는 평림 뒷산을 비봉산이라 하여 한개 면에 두개의 비봉산이 있는 셈이다. 평림 뒷산은 봉정리 대곡사 뒷편의 비봉산으로 큰 산이며 암비봉산이고, 삼분 뒷산은 삼분리-달제리에 있는 비봉산으로 숫비봉산이라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판자를 덧이어 만든 큰 정상표지판(해발 482m, 비봉산 정상입니다)이 세워져 있다. 지맥은 문암산갈림봉인 이곳 숫비봉산에서 온전히 다인면 안으로 접어들어 서향 및 북서향하고, 비봉산(579.3m)에서 남서향하여 도암고개 이후까지 이어간다.
- 돌고개에서 4.9km 거리이며, 문암산까지 편도 1.2km이다. 비봉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온전히 다인면 안으로 들어서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약 8분 내려서면, 문암산 갈림길로 이정표(↙한골 1.3km, ↖문암산정상 925m, ↗비봉산정상 453m)가 서 있다. 암릉을 내려서기 위해 약간 우회하여 진행하는 곳으로, 한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 문암산(門巖山, 460.1m)/ 편도 1.2km
문암산은 의성의 다인면 단북면 단밀면 안계면, 상주의 산동면 등 문암산의 서쪽과 남쪽에서 보면 웅장하고 마치 대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보여 문 ‘문(門)’ 자를 써서 문암산(門岩山)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문필(글과 글씨) 같기도 하여 글월 문(文)자를 써서 문암산(文岩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암산의 바위는 바위병풍처럼 보인다. 이 암문은 세 문설주가 있다. 대문과 쪽문을 달 수 있는 세 개의 기둥인 것이다. 동서 문설주는 모두 토산과 잇대어 있고 그 가운데 서쪽 문설주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암반이다. 이 암반에서 보면 건너의 문설주가 보이고 경관과 조망이 좋아 쉬어가기에 좋다. 이 산의 서쪽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는 중간 문설주는 높이가 20미터 둘레 30미터 규모의 여러 개의 기둥이 자연석 위에 동그랗게 서있고 높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장관이다. 동쪽 문설주에서 중간 문설주와의 사이는 2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매우 높아서 건너가기가 어렵다. 어떤 간 큰 사람이 건너가기는 했으나 되건너 오지를 못해서 다리목을 놓고 겨우 되건너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기한 것은 바위 기둥 위와 남면 암벽에 길이 1미터 넓이 50센티미터의 발자국이 있는데 주민들은 장수 발자국이라 부르고 있다. 또 서쪽 문설주 뿌리에 붉은 빛을 띄는 큰 호박 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것을 주민들은 장수 호박이라 부른다. 장수 발자욱, 장수 호박 등 문암산은 장수와 연관된 설화가 많다.
♤ 일월산맥
숫비봉산에서 북쪽으로 한갈레 능선길을 보내는데, 약 1km 정도 떨어져 문암산(460.1m)이 있고 계속 북으로 좌 다인면과 우 안사면의 경계를 이루며 독점산(311.4m)까지 이어지는데, 개념도상 일월산맥으로 표기된 산줄기이다. 일월산맥은 낙동정맥의 서쪽을 남북으로 달리는 조그마한 산맥이다. 서쪽으로는 첩첩 산들을 조망할 수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낮은 산들과 너른 들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들 건너에 소백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속리산이 조망되고 그 곁가지들에 있는 노음산 갑장산 등 많은 산들도 조망할 수 있다.
비산비야 논밭으로 바뀐 지맥길인데 간신히 남아있는 숲길로 이어지는 곳이다. 한골마을은 문암산 아래 큰 고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한골마을 전원주택 단지를 통과하는데 주택단지 내로 들어가는 경우 사유지를 통과한다며 제지하는 경우도 있다. 왼쪽에 보이는 소나무숲길이 "보현이 간 길"이다. 소나무숲길로 진행해도 되고, 조금 더 직진하면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삼분리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한골 마을 표지석도 보인다. 거기서 지맥은 우틀이다. 하지만 좌측으로 100m 내려서야 비릿재 표지석과 사각정자, 선정비, 차돌 등의 비릿재 유적이 있다. 한골마을 표지석에서 우틀하여 도로를 따라 100m 정도 진행하면 문암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후 지맥은 도로를 따르다 왼쪽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비릿재와 비로재는 같은 지명을 말함이며 거친 피비린내를 순화한 표현이라고 하겠군요.
♤ 비로재(飛鷺峴, 150m)/ 비릿재/ 2층팔각정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達堤里)와 삼분리(三汾里)를 잇는 비로재는 비릿재라고도 하는데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이곳에 산적이 살아서 오고가는 길손을 해치니 산적들의 습격으로 피가 흘러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하여 비릿재라고 하다가 현재는 비로재라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신라 진흥왕이 이곳을 지나다 지름 50Cm정도의 차돌을 보고 이상히 여겨 이 돌을 손수 들어 보았다 하고, 그 뒤로 이 길을 지나던 선비나 장수 가운데 이 돌을 들지 못하면 재를 넘다 도적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흘린 피가 이 돌에 스며들어 피비린내가 난다하여 비릿재로 부르던 것을, 60여년 전 이름난 풍수 남동수가 산 모양이 날아가는 백로와 같다 하여 비로재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비릿재에서 도로 따라 약간 나가면, 좌측편에 팔각정자(門岩亭) 데크목 광장과 넓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 다인면 외정리(外井里) 내산정(內山井)삼거리
의성군 다인면 외정리 내산정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이다. 외정리란 산 안에 맑은 물이 흘러 넘치는 우물이 있어 산우물(山井)로 불러오다가 일제시대 행정상 안쪽 산우물은 외정1리, 바깥 산우물은 외정2리로 개편되었다. 내산정 마을은 약 350년 전 광산노씨가 개척하였는데 지리상 산우물 구역을 한 생활권으로 만들어 안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내산정이라 한다.
♤ 169.9m봉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 일대가 조망된다. 지맥길은 여기서 우틀이다.
♤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達堤里)
달제리는 다인면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시대 상주군 다인현에 속하였다가 고려 시대에 들어 밀성군 다인현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예천군 다인현에 속하였고 1906년이 되어서는 비안군 다인현에 속하였다. 이 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동, 모창동, 금제동을 병합하여 달제동이라 하여 의성군 다인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김제, 윗대골, 달동, 기련, 샘골, 한골, 모창 마을 등이 있다. 동쪽으로는 안사면의 월소리, 서쪽으로는 평림리, 남쪽으로는 송호리와 외정리, 북쪽으로는 봉정리와 면하고 있다. 달제리는 주변에 독점산과 문암산이 위치하고 있지만 마을 복판에 달제천이 흐르고 저수지인 대동 저수지와 달제지와 금제지가 있어 밭보다는 논이 발달하였다. 동쪽과 북쪽, 남쪽의 삼면이 높이 400m 이상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서쪽과 남쪽의 일부 지역에는 비교적 넓은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동, 모창동, 금제동을 병합하였다. 이때 달동과 금제의 이름을 따서 달제동(달제리)이라 하였다. 달동(達洞)은 조선 시대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쉬어가면 통달(通達)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제(金堤)는 달제(達堤) 1리에 있는 양지산을 바라보니 금(金)이 날 것 같았고, 그 산 모양이 길게 제방(堤)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 마을로인 달동 거릿 마을은 풍수지리상 마을 형태가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사봉산은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회의하는 곳을 부르는 말이었고, 샘골은 약샘(藥泉)이 부근에 있으므로, 대동은 문암산 밑의 큰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 지방도 923호선과 군도 25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사방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비로재(飛鷺峴)와 문암산의 경관이 뛰어나고 1801년에 지은 구암정이 있다.
♤ 사붓마을고개
너럭바위 암반지대를 오르며 좌측으로 다인면 송호리 사붓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의성군 다인면 송호리(松湖里) 사붓(沙湖)마을
사붓(사호)마을은 늪과 모래가 많아 생긴 지명이며, 사붓마을 동쪽 산에 의성군 송호리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은 4군으로 나눠지는데 첫번째 군은 송호리 산 60번지 근처에 동서로 길게 23기가 있으나 공사로 많이 파괴되었고, 두번째 군은 북서, 남동 방향 능선 위에 25기 정도 있다. 지름 10~13m, 높이 1~3m 의 중형봉들이 대부분이다. 세번째 군은 두번째 군 옆 능선에 11기가 있다. 마지막 군은 송호리 사붓마을 동쪽 산에 10기가 있다.
♤ 징걸재/ 923번 지방도로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와 송호리에서 달제리, 봉정리를 잇는 고개로 923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고개 왼쪽 아래 에 송호리 징걸골이 있다. 조금가면 대곡사 입구가 나타나는 곳이다.
- 징걸재에서 맥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능선으로 접속해야 하나, 수레길을 따라도 잠시 후에 만난다.
♤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鳳井里)
봉정리는 1914년 동정동, 봉평동, 산막동을 병합하여 봉평과 동정의 이름을 따서 봉정동이라 하였다. 비봉산에 날아드는 봉을 못 날아가게 하기 위하여 죽림마을을 만들고 봉이 먹을 우물을 만들기 위해 봉의 샘을 만들었다고 하여 봉정(鳳井)이라 칭하였다는 설도 있다. 자연 마을은 삼학, 대곡걸 혹은 댓골, 샛터, 뱃가, 매암, 새주막 등이 있다.
♤ 효천지(孝川池) 갈림길
왼쪽은 다인면 도암리에 있는 효천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 비봉산으로 향한다. 효천지갈림길에서 우틀하니 이 일대 임야가 의성교육청 소유재산이라 무단 점용과 사용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나온다. 효천지는 수원이 근처 계곡 밖에 없었으나 양서 양수장이 세워진 이후 간선수로가 개설되어 낙동강 물을 수원으로 하게 되었으며 집수면적 20㏊의 저수지로 1964년 준공하여 의성농지개량조합의 노력으로 많은 어족이 자생하여 유람지로 각광받고 있다.
오름길 동북쪽으로 문수지맥 학가산이 보입니다. 경북 도청소재지 검무산에서 낙동강 건너로 보현지맥을 애써 찾아보았지만 그때 능력으로는 식별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305m봉/ 암봉
편하게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서지만 봉우리를 둘러쳐져 있는 암벽밴드로 직등하여 305m 암봉으로 직접 올라갈 수도 있다. 310m, 321.9m 높이가 다양하다. 위치표시목(비봉산 07)이 세워져 있다.
♤ 개념도상 449m봉(국지원 지도상 451.1m봉)/ 자미산2봉
어떤 의미에서 이봉인지, 비봉산을 일봉이라 보고 그 아래 높은 봉우리이니 차례대로 메긴 순번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미산 2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대곡사(大谷寺)
봉정리 대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의성 단촌면 소재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비봉산은 고려 이전에는 태행산(太行山), 대항산(大恒山)이라 하였다고 하고, 조선시대에는 자미산(紫薇山)이라고 하였다. 비봉산 중턱 아래에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였던 인도 승려 지공(指空) 선사와 혜근선사가 창건하였다. 지공이 건립해 지국사라 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는 지공이 원나라와 고려의 양국을 다니면서 불법을 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곡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중창하였으며, 1687년(숙종 13) 중건하였다. 대곡사 범종루는 ‘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의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병화로 전소돼 17세기 중·후반인 1644년에서 1683년 사이에 중창됐다고 전해지는데 범종각은 1978년에 다시 보수가 이루어졌다. 문화재청에서 이 범종루(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를 보물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 문화재는 고려의 말기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는 청석탑과 하대석 간석만 남겨진 석등대석이 있다.
- 대곡사갈림이정표(이봉, →정상 0.9km, ↓대곡사 1.9km, ←달제학생야영장 2.5km, ←죽림마을 1.8km)가 서있다.
합수점까지 약 15.5km를 남겨둔 지점으로, 북서향 하던 지맥이 비봉산에서 문수지맥과 마주보는 삼강나루터로 향할 수도 있으나 위천의 수계를 가른다는 산자분수령원칙에 충실하여 남서향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바꿉니다.
♤ 비봉산(飛鳳山, 579.3m)/ 자미산/ 암비봉산/ 정자(飛鳳亭)/ 산불감시초소/ 헬기장/ 1등삼각점
비봉산은 다인면 평림리, 봉정리, 덕미리, 양서리의 경계에 있는 다인면의 진산이다. 보현산에서 발원한 보현지맥은 다인에서 낙동강을 맞이하여 비봉산에서 지기를 내려놓고 다시 두 갈래로 분지하는데 한 갈래는 비봉산 정면에서 남쪽으로 분지하여 중동면 우물리 위천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에서 끝을 맺으며 낙동강에 합수하는 동쪽으로 위천 건너 팔공지맥의 끝자락과 마주한다. 또 한 갈래는 서쪽의 반정고개를 지나 예천군 풍양면 삼강나루터에서 낙동강 건너 내성천 하류에 끝을 맺는 문수지맥과 마주한다. 다인면에는 비봉산이 두개 있는데, 이곳 평림 뒷산을 암비봉산이라 한다. 두 비봉산 중 경관을 비교한다면 이 곳 암비봉산이 월등 우월하고 높이도 100여m 더 높은데, 산 동쪽에 위치한 대곡사에 걸린 기문 제목에는 태행산이라고 쓰여있다. 비봉산은 고려시대 이전에는 태행산, 또는 대항산으로 불리기도 한 명산인데, 삼국시대에는 견훤이 이곳에 성을 쌓고 웅거했다는 전설이 있다. 태행산(太行山)은 중국 하남성에 있는 명산인데, 이 명산 이름과 같이한 시대가 있었고 조선말에는 자미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자미산(紫微山)이란 별이름인데 중국 천문학에서는 천제가 있는 곳으로 상징한다. 이렇게 비봉산은 이름의 역사배경도 화려하거니와 정상에 올라 주변경관을 살피면 형언할 수 없는 명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산을 동쪽에서 바라보면 봉이 날개를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며, 남쪽에서 보면 장군이 투구를 쓰고 서있는 형국이고, 북쪽에서 건너다 보면 옥녀봉을 바라보는 옹골찬 장군기상으로 보인다. 북쪽 산밑으로는 예천군 지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이 하얀 비단처럼 가로 놓여있고 사방으로 넓은 평야와 학가산, 팔공산, 보현산, 갑장산, 노악산, 속리산 등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정상에 이정표(↑산두골[용샘] 1.3km, 대곡사 3.1km→, 달제학생야영장 3.4km→, ←반정고개 2.0km, ↓죽림마을[보현지맥] 3.2km)가 서있다. 남쪽 방향 데크 계단길로 내려서는데 지맥능선이 급격하게 내려앉아 이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 의성군 다인면 평림리 죽림마을
1914년 평지동과 죽림동을 병합하여 평림동이라 하였다. 평지 혹은 평림마을은 서당이 있었기에 서당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서당 앞에 큰 소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죽림 창마을은 조선 전기 이 마을에 관원의 관사와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 마을로 불려오던 것을, 비봉산의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의미에서 일제시대부터는 죽림이라 불러 두 이름이 합하여 죽림 창마을이 되었다. 비봉산 남쪽 사면의 계곡을 따라 계단식 경지가 만들어져 있고, 계곡의 상류에서부터 죽림·평지·거무네 마을이 위치해있다. 인근에 효천지가 있다.
♤ 힌티재/ 흰티재/ 백영현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평림리 죽림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이 재는 평림리 마을 서쪽 비봉산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첫 마루 고개이다. 조선시대 한양가는 왕래의 중심된 도로였다. 다인 동남부 안계방면에서 예천군 풍양면으로 갈려도 이 재를 넘어야 했는데, 한양에 과거(科擧) 응시객(客)들은 백의에 책보자기를 놓고 기원제를 지내고 간다고 전하며 흰 의관에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하여 백영현 또는 흰티재라 하였다. 고개 위에는 옛날 성황당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이 고개를 넘는 사람마다 돌 한개 혹은 엽전 한푼씩 던지고 갔는데, 이것은 무사고를 기원하는 뜻이 담긴 풍속 중의 하나였다.
♤ 평지마을 고개/ 양회임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평림리 평지마을로 넘나드는 고개이다. 평지마을 쪽에서 양회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비포장 수레길로 올라 비포장 수레길을 버리고 묘지로 오른다.
♤ 139.8m봉
왼쪽에 보이는 평림2리 마을이 보이고 양회임도를 지나 길이 희미한 봉우리를 향해 올라 139.8m봉에서 우틀로 내려선다. 맥길이 거의 사라진 논밭지대로 바뀐 농로길을 따라 이어간다.
♤ 도암(陶岩)고개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서 도암리로 넘어가는 길이다. 이동통신 중계탑 농로길 사거리이다. 도암고개 좌측에 축사 농가 한채가 있다.
남쪽 방향 이동통신 중계탑 앞 포장 농로길로 출발하여 약 2분 포장 농로길을 따르다 좌곡각지점에서 농로길을 버리고 직진 방향 밭뚝길로 올라서고 다시 약 2분여 밭뚝길을 올라 106m봉 직전 양회임도 농로길과 만나, 우틀하여 농로길을 따른다. 직진하여 106m봉을 지나는 길이 바른 지맥길처럼 보이므로 주의할 지점이다. 그냥 농로길을 따라도 된다. Y자 갈림길에서 좌측 묘지(처사 경주김공) 뒤쪽으로 올라간다.
♤ 의성군 다인면 도암리(陶岩里)
도암리는 다인면 중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 송호리, 서쪽으로 덕지리, 남쪽으로 서릉리, 북쪽으로 평림리와 인접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지방도 923호선이 통과하며, 인접한 다인면 소재지 서릉리에서 국도 28호선과 만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산동(陶山洞)과 백암동(白岩洞)에서 한 글자씩 따서 도암동(陶岩洞)이라 하였다. 비봉산에서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마을 북부에 이르러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 주변은 평야 지대로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 동마람은 마을 동쪽의 산등에 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동마암(東馬岩)이라 부른 것이, 그 뒤 변음되어 동마람이라 하였다 한다. 마산두마을(馬山頭 마을)은 뒷산의 형태가 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신두(馬身頭)라고도 한다. 동마람과 마산두마을을 합쳐 도구(陶邱)라고 부른다. 백암마을(白岩 마을)은 마을 뒤에 큰 바위가 많아 백암이라 하였으며, 뱀이 많아 뱀실로도 불렀다. 마을 뒤에는 옛날 도자기를 굽던 가마골이 있다.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해야 하나?? 우회를 어떻게....
일단 도로를 넘어오면, 도암졸음쉼터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엄두가 안난다. 직진하여 절개지 사각정자 뒤쪽 철계단으로 올라야 하는데 가파르기도 하지만 철문이 닫혀있다. 28번국도 오른쪽 양회임도로 올라 삼거리에서 우틀하면 왼쪽에 다인정수장 관리동이 보인다. 다인정수장을 지나 묘지(처사경주김공 합장묘) 뒤쪽으로 올라 마루금에 복귀한다.
♤ 28번국도/ 광덕고개
축사로 내려서니 구28번 국도 앞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나타난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절개지가 되어 우회하여 내려선다. 축사 앞에서 좌틀하여 신고속도로로 나간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광덕고개로 칭해지는 지점이다. 차량 흐름이 그리 많지않아 다행이다. 불가피하게 무단횡단하고, 좌측으로 몇발자욱 나가다 우측의 다인정수장 입구 도로로 들어선다. 2017년 개통한 상주-영덕간 고속도로이다.
다인정수장에서 오른 무명 139m봉을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서서 임도를 만나면 정면 봉우리가 맥길처럼 보이나 좌틀로 내려섭니다.
♤ 도암체육공원
의성군 다인면 도암리 일대가 조망된다. 국민체육 진흥기금으로 세워진 곳이란 대형 입간판이 서있다.
- 도암체육공원을 지나 7분 정도 넓은 수레길을 따르다, 수레길을 버리고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직진하면 다인면소재지로 향하는 길이다.
서릉삼거리 쪽으로 걸어서 1.2km 지점에 다인면 버스정류소가 있고, 안계에서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가 18:40분에 경유합니다. (2.50h, 17,600원)
♤ 59번도로/ 행현고개
동쪽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西陵里)와 서쪽 상주시 중동면 금당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등로는 도로 따라 약간 왼쪽으로 나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서서 맞은 편 2층 폐콘크리트 건물 앞을 지나게 된다.
- 도암고개에서 3.4km 지점이고, 합수점까지는 8.5km 지점이다.
♤ 산내(山內)고개
인공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논으로 변한 지맥길을 한참 지나 외딴 농가 앞 고갯길로 올라선다. 의성군 다인면 산내리에서 상주시 중동면 금당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 좌틀하여 밭 왼쪽으로 난 수조 옆 농로를 따라 나간다.
♤ 의성군 다인면 산내리(山內里)
의성군의 서쪽 다인면 내에서도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구릉성 산지의 산간 마을이다. 내동, 용승골, 사갑, 새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동쪽으로는 서릉리와 가원리, 서쪽으로는 상주시 중동면, 남쪽으로는 용무리, 북쪽으로는 덕지리, 서릉리와 면하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상주군 다인현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밀성군 다인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가 되어서는 예천군 다인현에 속하였다가 1906년 비안군 현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과 신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다인면 산내동이 되었고, 1988년 산내리로 개칭되었다. 서쪽과 북쪽에는 비봉산(579.3m)의 남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한 높이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가로 놓여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다. 비봉산 줄기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합류하여 만들어진 말지천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말지천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내동(內洞)은 조선시대 1609년 황의중(黃義中)이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는데, 양지바르고 아늑한 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동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음달(陰達)은 불당 남동쪽에 있는 산밑 음지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햇빛이 오후가 되어야만 들므로 음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터는 밀양 박씨와 안동 김씨가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새터라 부르게 되었다. 용승골은 마을 중턱의 큰 골짜기가 용이 승천하는 형상과 같아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뱀골은 용승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냇가 옆이라 뱀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 95.3m봉
서쪽의 의성군 다인면 산내리 일대와 동쪽의 의성군 다인면 신락리 일대가 조망된다. 등로 우측으로 가선대부평해황공 묘지가 있는데 정부인을 세분이나 두었다. 정부인 경주김씨묘 내동후자좌, 정부인 단양장씨묘 응봉상신좌, 정부인 함안조씨부 라고 적혀있다.(경주김씨 묘는 내동 자좌 뒤에 있고, 단양장씨 묘는 응봉 신좌 위에 있고, 함안조씨는 같이 묻혔다.)
- 4등삼각점(안계 412/ )이 있다.
♤ 의성군 다인면 산내리 사갑(巳甲)고개
인공 수로가 지나는 고개 안부이다. 사갑고개는 오른쪽(서쪽) 다인면 산내리 사갑마을과 왼쪽(동편) 의성군 다인면 가원리 용산마을과 가야마을을 잇는 고개다. 다인면 산내리 사갑마을은 마을 뒷산 기슭이 뱀이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사갑이라 부르게 되었다. 왼쪽 용산마을 쪽은 축사가 많이 보이고, 수로 오른쪽으로는 사갑지(巳甲池)가 있다.
♤ 의성군 다인면 용무리(龍武里)
단북면에서 다인면으로 편입되면서 용산의 용자와 무릉의 무자를 합하여 용무리가 되었다. 용산(龍山)은 약 550년전에 이정시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마을 뒷산이 용같이 생겼다 하여 용산 마을이라 하였다 한다. 무리 또는 무릉(武陵)은 1592년 임진왜란 시에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이곳을 정착하여 개척했으며 특히 봄철에 복숭아 꽃이 산야에 만발하므로 중국 도원명이 살던 선경 무릉도원을 연상하여 무릉이라 이름 지었다하며 먼 옛날 서울로 과거 길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10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음에 여기서 기다리다 지쳐 그 여인의 한을 높고높은 벼랑에서 깊은 위천에 투신하여 잊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198.1m봉/ 삼각점봉/ 시군면계(의성군 다인면 - 상주시 중동면)
높이는 197.5m에서 198.1m까지 다양하다. 197.9m봉을 내려서며 지맥은 의성군을 떠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로 진입한다. 내려서는 길이 없어 난해하다. 잡목을 헤치며 서남쪽으로 내려서면 바위턱지대를 지나 묘지로 향한다. 선답자 흔적을 따라 쫒는게 편하다. 시군계에 자리잡은 풍산류씨 가족묘원을 지나며 이후로도 지저분한 잡목 구간이 계속 된다.
- 판독이 불가한 3등삼각점(안계 303/ )이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와 띠지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도암고개에서 7.5km 지점이다.
♤ 상주시 중동면(中東面)
상주시 중동면은 상주시 최동단부에 위치하여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수삼산[二水三山]의 명소로, 3세기 신라 첨해왕 때 중동으로 칭하여 상주에 속한 이래, 고려ㆍ조선시대에는 상주목 관할 중동현(中東縣) 이었으며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중동면(中東面)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면이 낙동강과 위천이 굽이쳐 흐르고, 낙동강이 서쪽과 남쪽 면계를 곡류하며, 우물리 일대에서 위천과 합류한다.
♤ 166m봉
띠지가 여러개 매달려 있다. 직진으로 선명한 등로가 나있지만 좌틀로 급하게 꺽어서 내려선다. 알바주의 지점이다. 166m봉에서 3분 정도 내려서다 직진 방향 선명한 등로를 버리고, 우틀로 희미하게 나 있는 선답자 흔적을 따라 내려서야 한다.(알바주의)
♤ 125m봉
좌측으로 위강이 보이기 시작하고, 구덩이가 숭숭한 바위지대를 올라 고인돌 형태의 바위가 있는 봉우리이다.
우측 양회임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양회임도를 잠시 따르다 왼편 능선으로 향한다. 양회임도는 오른쪽으로 약간 우회하는 길이다.
♤ 우무실고개/ 우물리삼거리갈림길/ 우무실 수암종택 갈림길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우무실 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삼거리 오른쪽으로 조선조 선조 때 명재상 류성룡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 선생의 종택이 있다. 왼편으로 우무실마을과 의성군 다인면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지난다. 마주 보이는 곳에 여러개의 이정표와 '수암종택' 표지석과 '우물1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우무실 풍산류씨 우천파의 수암종택 갈림길이다. 우무실마을에는 조선시대 말기 고종 때 대원군에 발탁되어 좌의정까지 지냈던 낙파(落波) 류후조(柳厚祚)가 낙향하여 살았던 마을이다.
- 수암종택' 표지석과 내고향 우물1리 마을 표지석 사이 숲길이 들머리다.
♤ 수암선생유허비(修巖先生遺墟碑)
수암 유진(柳袗: 1582년[선조 15] ~ 1635년[인조 13]) 선생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으로, 영의정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아들이다.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2년 해서지방에서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이 일어났을 때 무고를 당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616년에 유일(遺逸: 조선시대 초야에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천거하는 인재 등용책)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 洗馬: 정9품)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다시 학행으로 천거되어 봉화현감이 되었다. 수령으로 있으면서 전묘(田畝)와 부세(賦稅)를 바로 잡았다. 이듬해 형조정랑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원옥(寃獄)을 해결하여 판서 이서(李曙)의 경탄을 샀다. 1627년에 청도군수가 되었다가, 이듬해에 수포장인(收布匠人)에 대한 보고에 허위가 있다 하여 파직당하였다가 1634년 재 등용되어 지평으로 있었다. 고관대작을 역임하지는 않았지만 세신(世臣)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하게 생애를 보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안동병산서원(屛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수암집』과 임진록, 임사록이 전한다. 임진록은 임진왜란 때인 선생의 나이 11세 때, 4월부터 11월까지 서울을 떠나 경기도 동부와 강원도 영동지역으로 피난길 때의 체험을 기록한 국문으로 쓰여진 수필문학이고, 임자록은 1612년 김직재옥에 연루되어 투옥되었을 때 쓴 기록이다.
- 수암선생유허비에서 약간 내려서면 등로 우측편에 수암종택 뒷담이 보인다.
♤ 95m봉
95m봉에서 정면으로 팔공지맥 끝 봉우리인 새띠고개 위 토봉 줄기를 건너다 보인다. 약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시그날이 몇개 달린 암릉봉(102m)을 지나 내려선다. 마당바위를 지나는데, 우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마당바위에서 우측의 얼어붙은 낙동강과 그 너머 나각산(螺角山, 240.2m)을 조망해 보고 낙엽이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내려서서 위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닿는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합수점과 첨모각 사이 낙동강변의 절벽 어디에 굴이 있는것 같습니다. 첨모각을 관리하는 것으로 봐선 후손들에게는 지도라도 한장 전해지는 건지 아니면 위치가 실전되었는지 궁금하군요.
♤ 양처사굴(梁處士窟)
비봉산에서 수십리 남쪽으로 달리니 이수삼산이 조화한다. 비봉산 봉황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나각산과 마주보며 천길 기암절벽은 굽이쳐 흐르는 낙위합강(洛渭合江)에 떠있으니 그 천작절경은 오남국에서 보기드문 명승지라. 비봉산 가파른 천장절벽 속에 비조가 아니고는 찾지 못할 석굴이 있으니 이 굴을 세인은 양처사굴이라 부른다. 그 옛날 임진왜란 때 오조처사 부군께서 병화로 집도 잃고 가족과도 흩어져서 홀홀단신 도성을 빠져나와 유유자적 하신 끝에 이 굴에서 병화난 팔년을 피하신 유적지이다.
♤ 나각산(螺角山, 240.2m)
나각산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 구잠, 물량의 삼리봉으로 낙동강변에 위치한 나즈막한 산이다. 산 전체가 둥글고 완만하며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서 바라본 모습이 마치 소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소라형국의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동상주IC의 좌측면 산위에 출렁다리가 보이는 산이다. 이 산을 세번 오르면 뜻을 이루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마고할멈 굴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상주의 낙동은 나각산이 솟아있는 낙동강의 본고장이다.
낙양의 동쪽에 있기에 낙동강이란 지명을 얻었으며, 이것이 황지에서 몰운대까지 길게 흐르는 강의 전체 이름으로 확장되었다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덕산지맥을 마치고 황당하게 접해야 했던, 황지에서 흘러오는 강이 낙강이요, 일월산에서 흘러오는 강이 동강이라 합해서 낙동강이라는 안동 지자체의 억지 논리보다는 한결 부드럽습니다.^^
♤ 합수점
상주시 낙동면과 중동면 사이로 흐르는 낙동강과 위천과의 합수점에 보현지맥이 그 맥을 다하는 모습이다. 두물머리 오른쪽으로 낙동강 건너 나각산 방향, 왼쪽 위천 건너편으로 팔공지맥 끝봉인 토봉이 바라다 보인다. 상주의 낙동은 낙동강의 이름을 탄생시킨 곳이라고 하는데, 황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천 자락을 굽돌고 수만 가닥의 하천과 내를 아우르며 낙양(洛陽, 상주의 옛 지명)의 동쪽 즉, 상주에 와서 비로소 강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하여 낙동강이라 한다.
♤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의 첨모각(瞻慕閣)/ 파란 기와지붕
마당바위에서 10분 정도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삼거리 갈림길에서 왔던 길로 직진해 나가도 되지만, 더 편한 길이면서 좌측 아래 첨모각을 구경하기 위해 좌틀한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낙동강변 아래에 첨모각 누각이 보이고, 우측 위로 상주시 중동면과 낙동면을 잇는 중동교(中東橋)가 지난다. 첨모각 안에는 '두암처사양공유허비(杜巖處士梁公遺墟碑)'가 모셔져 있다. 첨모각 앞의 '첨모각창건기병서(瞻慕閣刱建記並書)' 내용을 살펴보니 飛鳳山에서 수십리 남쪽으로 달리니 二水三山이 조화한다. 피봉산(彼鳳山) 봉황산(鳳凰山)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나각산(螺角山)과 마주보며 천길 기암절벽은 굽이쳐 흐르는 낙위합강(洛渭合江)에 떠 있으니 그 천작절경(天作絶景)은 오남국(吾南國)에서 보기 드문 명승지라. 피봉산(彼鳳山) 가파른 천장절벽(千丈絶壁) 속에 비조(飛鳥)가 아니고는 찾지 못할 석굴(石窟)이 있으니 이 굴을 세인은 양처사굴(梁處士窟)이라 부른다. 그 옛날 임진왜란 때 오조처사부군(吾祖處士府君)께서 병화로 집도 잃고 가족과도 흩어져서 홀홀단신 도성을 빠져나와 유유전전(流流轉轉) 하신 끝에 이 굴에서 병화난(兵禍難) 팔년을 피하신 유적지이다.
- 첨모각을 구경한 뒤 북쪽 방향의 수암종택을 향한다.
♤ 수암종택(修巖宗宅)
수암종택은 경북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 있는 조선후기(1700년대 중기)에 세워진 주택으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0호로 지정되었다. 풍산유씨(豊山柳氏) 우천파(愚川派)의 종택으로, 이강정사(二江精舍) 또는 우천세가(遇川世家) 또는 대감댁이라고도 불리어 왔다. 건물이 자리 잡은 이곳은 낙동강과 그 지류인 위강(渭江)이 합치고, 속리산, 팔공산, 일월산 지맥이 한 곳에 모이는 이수삼산(二水三山)의 명당(名堂)‘ 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몸채와 ‘ㄴ’자형 녹사청(祿使廳), ‘一’자형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몸채는 중문 간채를 중심으로 안과 밖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녹사청은 녹봉을 지고 오는 관리들을 대접하기 위한 곳으로 보기 드문 사례가 된다.
첫댓글 보현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궁금한게 준비물에 안대와 귀마개는
언제 쓰는 물건인가요.
네 밀당님!
시외,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잠잘 때 사용하기도 하고요.
산에서 비박할 때도 사용하면 무서운 소리가 들리지않아 보다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구요.
저도 사용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2년 후배입니다.
고산사는 미순누나 친구라 들었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아! 미순이요. 수선리... 살았어요. 반갑습니다.^^
신축년 장식을 축하 드립니다.
새해에는 보다 좋은 산행을 위해 건강과 복을 빕니다.
사진과 내용글 잘 보고 갑니다.
뚝배기선배님 일찍 기침하셨군요.
잠깐 헛갈리신듯 하십니다.^^
선배님도 임인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감사합니다.^^
陰曆 辛丑年 ?
아! 신축년 마지막 장식을 말씀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와 보현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점 감회가 새롭습니다 맞은편 팔공지맥 날머리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화이팅입니다 ~~~
첨모각 저도 찾아가 봤습니다.
이때보다 외관에 돈을 더 바른것 같군요.
저도 곧 가야할 곳이라서 건너편 팔공 합수점을 유심히 봐두었습니다.^^
보현 길은 변함없이 잘 있네요.
페차량은 왜 안치우는 걸까요.
주인이 있는데 그 주인이 죽었을까요.
비로산에 정자는 벽면이 막혀 있어 바람을 피하기 좋아서 준비해간 떡으로 아침을 먹엇던 기억도 뚜렸합니다.
그 때가 벌써 4년전이구요.
4년전에 내사진을 보니 지금것과 비교를 할 수 없을정도로 화질에 차이가 남니다.
그때는 대포카메라를 가지고 다녔거든요.
지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무게를 덜어 볼려구 디카로 바꿨더니 항상 사진 화질이 마음에 안듭니다.
기나긴 보현지맥 졸업 축하드림니다.
부뜰이운영자님!
보현 하신지가 벌써 4년이나 흘렀군요.
고흥지맥에도, 여수지맥에도, 그리고 보현지맥에도 비봉산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백운산, 국사봉, 매봉산, 응봉, 깃대봉, 옥녀봉 다음으로 비봉산도 여기저기 꽤 되는것 같습니다.
비봉산(일명 자미산) 정상이 꽤 널찍하더군요.
반대편으로 헬기장 끝에 있는 참호에서 나부산을 찾아볼렸는데 나무에 가려 쉽지가 않았습니다.
정자(비봉정)에 밀창문이 달려있어 안에다 텐트를 치면 찬바람은 모면할 듯 보였구요.
그리고 준희선생님이 여기서 직진하면 반정고개를 지나 삼강나루로 가게 된다며...
그럼 삼강나루에 문수지맥, 국사지맥, 운달지맥, 보현지맥이 모이니 대단하게 된다고 유심히 살펴보라고 말씀주시더군요.
헬기장 끝으로 반정고개로 내려가는 곳으로도 나무데크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방치차량은 아무나 의성군청에 신고를 하면 처리하는데 누구 신고하는 사람도 없는가봐요.
비봉산에서 대포카메라로 여기저기 밀어대면...
팔공지맥 부터, 문수지맥 까지... 그리고 합수점까지 바짝 다가왔을것 같네요.^^
팔공 출격준비는 되었는데,
영축때문에 2월에 휴가를 이틀 내놔서 추가로 더 내기가 망설여지네요. 고민중입니다.
3구간으로 보현지맥도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심을 축하 드림니다.
산악회를 따라갔다 산악대장의 어이없는 진행에 화가 나 홀로 3 Km 정도를 저 문암정까지 뒤돌아 가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진행한 곳이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구간으로 남았네요
진행 전 구간에서 문암정까지 왔으면 그곳에서 진행을 해야 하는데 어둡고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면서 문암정에서 3 Km 가까이 지난 지점에서 더욱이 시간이 이르다고 버스에서 한시간 쉬었다 진행한다기에 홀로 문암정으로 뒤돌아 가는데 2명의 지맥 정통파가 함께 따라 와 힘겹게 진행한 곳이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생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 산악회는 이곳을 마지막으로 탈퇴해 더 이상 함께 할 기회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비봉산에서의 조망이 아름다웠는데 특히 보현지맥 마지막 구간의 비산비야 좌측으로 조금 더 뚜렷한 산줄기가 있어 한참 헷깔려하며 힘들게 산줄기를 찾아 사진에 담았던 기억도 있네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하였고 첨모각과 수암종택도 들려보셨군요
저 첨모각은 많이 낡았었다고 기억되는데 새로 누각을 세웠나 봅니다.
이제 또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시겠군요
새해에도 늘 건강하게 즐기는 산행길 되시기 바람니다
칠갑산선배님!
故 조은산선배님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효천지에서 차박을 하고 나침의와 지도로 능선을 찾으며 진행하셨더군요. 2008년이었으니 14년 전에 진행하셨습니다.
마지막 166m봉에서 직진으로 알바좀 하고 되돌아와 좌측으로 내려서니, 좌측의 능선을 버리고 또 내려서야 했습니다. 거길 말씀하시는듯 합니다.
저는 한골마을에서 비릿재 표석을 찾으려 동네분들에게 세번이나 물었습니다.
산행후기에서 비릿재 표석을 찾아볼려 했는데 위치를 설명주신 후기를 찾지 못했습니다. 안보고 가기는 서운하고, 동네 분에게 물었더니 그 한골표지석에서 반대 방향으로 100m만 내려가면 길섶에 있었습니다. 사각정자, 선정비, 비릿재 유래 설명비 등등이 같이 있더군요.
합수점에서 돌아나오며 첨모각을 찾아 내려섰는데 완전 가시밭이더군요. 낙동강 옆으로 바짝 붙어 절벽으로 내려서는게 조금 나았습니다.
첨모각은 양씨집안에서 관리가 되는것 같았습니다. 양처사굴도 그 낙동강 절벽 어딘가에 있을것 같았구요.
수암종택도 장독대 등 세간살이가 있는게 후손들 중 누군가 고택에서 살림을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지게 보현을 마무리하셨군요.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퐁라라님의 발걸음에
산에 대한 사랑이 잔뜩 배어 있음을 목격합니다.
이 세상의 꽃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꽃이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산으로 향하는 우리들 마음 속에 사랑꽃이 피기 때문이 아닐까 싶구요.
2만원짜리 여관이 있군요.
허름한 잠자리일수록 여수를 달래는 술맛은 더 맛나게 마련이지요.
제가 보현지맥 마무리할 당시는 한여름이었답니다.
산내고개 외딴집에서 주인장 양해 구하고 등목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더위를 참지 못하고
바다 같은 합수점 강물에서 수영을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이제 팔공으로 향한다구요?
팔공에 드시거든 청운대 원효굴과 좌선대를 꼭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이유는 뭐 눈으로 보시면 아시리라 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범산선배님!
팔공지맥 공부를 다 했는데 청운대와 원효굴, 좌선대는 미처 챙겨보질 못했습니다.
하여 언질주신 대로 한바퀴 둘러보니...
공산성 레이다돔 ○군부대를 왼쪽으로 우회하면 중간에 멧돌바위가 나오는데,,
그 멧돌바위를 지나서 오도봉에서 오도암으로 내려서는 길에 청운대와 원효굴이 있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군부대를 오른쪽 하늘정원길로 편하게 지나는가봅니다.
그렇다면 군위하늘정원에 배낭을 놓고 다시 군부대 좌측 울타리로 되돌아 내려와야 하는거로군요. 그렇게 해야 멧돌바위도 가볼 수 있는 거구요.
물론 처음부터 왼쪽 울타리로 가는걸 제지하는 않는다면 당연히 왼쪽으로 가야할 이유가 되겠습니다.^^ 왼쪽 울타리 쪽이 산사태로 지나기 위험하다고는 하나 일단 부딪쳐 보겠습니다.
보현을 한여름에 하셨군요.
위천 합수점이 강모래 퇴적층으로 수심이 얕았던가 봅니다.
고인이 되신 조은산선배님도 보현에서 팔공합수점으로 위천을 건너가 새띠마을로 나가셨다는 후기를 읽기는 했습니다.
저는 물가만 가면 큰 아나콘다 같은게 기나올까봐 무섭답니다. 유년기 때는 경천저수지에서 꽤 길게 헤엄치며 놀았는데도 말이죠. 감사합니다.^^
보현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변함없이 열정적인 거침없는 발자취를 남기시면서 위천 합수점에 이른 감회도 느껴집니다.
32km거리면 비교적 가볍고? 순탄한 여정이셨구요..
막 다녀가신 최상배운영자님 흔적도 반갑고, 얼마전 뵈었던 반바지님께서도 잘 계시죠?
멋진 여정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보현 마지막 구간 32km는 하루 거리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날 안계에서 버스로 들어가 마지막 구간을 걷고,
우물리에서 버스로 나와 상주에서 시외버스로 상경하였으니 모두 대중교통만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영축 일정으로 팔공을 다음 달로 미뤘습니다.
다음 달에는 겨울 텐트보다 가벼은 여름텐트로도 괜찮을듯 보입니다.
반바지님은 요즘 좋은사람들, 봉산악회 따라서 부지런히 지맥 섭렵중이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