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에서 필자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의가 교사의 입장과 정치계의 논쟁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관련 기사 : 고교학점제, 학생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가). 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쟁에는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진로 탐색에 실효가 있는지' 학생의 목소리가 담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이번 기사에서는 수도권에 있는 한 고교학점제 시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범학교 학생들이 고교학점제에서 느끼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에서 선택과목을 신청하기 전에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안내하는 설명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과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B학생은 "한 사람당 과목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개수가 2개로 제한돼 있어 과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한, A학생은 "교양과목과 같이 세세한 과목들은 설명회를 하지 않아 담당 선생님마다 직접 여쭤보는 번거로운 일을 해야" 했다.
과목에 대한 안내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학년에 배우는 과목이 여러 개인 것에 비해 과목 설명은 매우 부족하다 보니 과목의 학습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과목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되는 선택과목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과목에 대한 충분한 사전 안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가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은 학생의 경우 선택과목의 큰 실효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컸다. D학생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 단순히 문과 과목 2개와 이과 과목 2개를 수강하거나 수강자 수가 많은 과목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의 진로 상담은 필요한 학생이 직접 개인적으로 선생님들께 질문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고 덧붙였다.
진로 탐색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은 진지한 진로 고민 없이 선택과목을 결정하고 있었다. 고교학점제 시행 전에 학생의 진로 탐색이 충분히 선행되도록 하여, 고교학점제가 학생에게 선택과목에 대한 부담만 지우고 진로 공부를 심화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로 면에서 수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진로와 연계성이 높은 과목을 마련할 필요성도 보였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자신의 진로와 연계된 과목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크게 갈렸다. C학생은 "교양과목들이 진로와 관련된 것이 많아서 진로에 도움이 된다"고 답변한 반면, D학생은 "선택과목이 완벽히 진로와 연관돼 있지 않아 고교학점제가 진로에 크게 도움 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진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과와 연계성이 높은 선택과목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열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시범학교에서 실행되고 있는 고교학점제에는 긍정적인 의견도 충분히 존재했다. 이전에 제기됐던 과목 선택권의 자유도 최대한의 수준으로 보장되고 있었으며, 성취 기준을 이수하지 못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문제도 거의 없었다. 선택과목 교실 부족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별관 공사가 완료돼 현재는 교실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학점제가 학생이 능동적 학습자가 되도록 하는 것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진로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고교학점제 개설과목이 진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을수록 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교학점제는 꾸준한 진로 탐색 기회와 다양한 선택과목을 제공한다면 충분히 학생의 진로 탐색이라는 본래 취지에 적합한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진로 탐색에 실효성이 있느냐를 중심으로, 현재 고교학점제에 숭숭 뚫린 구멍을 늦지 않게 매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