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제목만 보면 여지없는 인문학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인 것처럼 보인다. 15페이지에 나오는 “거만한 바보”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 작가처럼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거만’을 이야기할 만큼의 어떤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그냥 바보’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수학을 못해서 문과가 된 사람을 ‘운명적 문과’라고 했다. 나 역시 운명적 문과 여자다. 나는 태생적으로 수학으로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적 이해가 있어야만 하는 공부에는 젬병이었다. 호기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책에 대한 편식이 매우 심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내게 필요한 책만 선택적으로 읽었다. 필요한 책만 읽다 보니 나의 책에 대한 편식은 더 심해졌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한 지적인 호기심을 탐구하는 일은 내게는 너무도 어렵게 느껴졌다. 방금 읽은 책의 구절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책장을 되돌려 확인하는 일도 허다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인문학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과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20대부터 절도 쫓아다니고, 교회도 다니고, 성당도 다녔다. 20대에는 성철 스님이 계시는 송광사에 가서 천배를 하며 ‘이 뭐꼬’라는 화두로 죽비를 맞아가면서까지 나를 찾아보려고도 했다.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으며, 30대에서 40대까지는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볼만 여유가 없을 만큼 치열한 삶을 살기도 했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어야만 했던 그 때 아이 키우기 바빴고 먹고 살기 위해 정말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열심히 살았던 시절,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40대 중반,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을 하고 난 뒤부터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나이 5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나를 찾는 과정이 진행형이다.
168페이지에 원래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이 구절에 200% 공감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여러 과학적 공식이 어렵게만 느껴진 것에 대한 자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168페이지 뒷장을 넘기면서 나오는 어려운 용어는 그냥 넘겨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내게 어렵게 느껴지는 과학용어를 이해하려고 굳이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구절의 맥락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 여자이니까^^
나는 2장의 “나는 무엇인가”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그중에서도 인문학의 표준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서 과학의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가 가장 인상적인 구절로 기억에 남았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나는 뇌다’라고 작가가 말했는데, 나라는 존재적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이 필수라는 구절에서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에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를 하는 것과, 내가 그 사실에 동의를 하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필요한 답이 ‘나는 뇌다’라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더 깊이 파고들어 존재적 가치를 해부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고,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이해를 하며 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의 책에 대한 편식, 내가 느끼는 나만의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됐다. 굳이 지적인 호기심이나 탐구심도 없고, 어려운 책들을 붙잡고 폼을 냈던 그동안의 가식적인 독서는 이제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독서를 하며,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이며,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자 할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선호하는 책만을 읽다 보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관점의 폭이 좁아지고, 편향적인 사고가 굳어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과 여자“라는 것을 핑계 삼아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욕구와 속도에 맞게 내 스타일의 책 읽기를 시도해볼 요량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만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나의 편향적 독서와 성향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으며, 앞으로 나는 책 읽기를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려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지적 수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나의 성향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으로의 여행을 좀 더 편안하게 떠날 수 있게 내 마음을 다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