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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나 씨 대종회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시조 비문안건
금장 나승록 추천 0 조회 209 11.07.14 13:45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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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14 15:36

    첫댓글 좋은 안건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조님의 비문을 고치려면 제14회임원회의에서 협의를 거쳐 결정을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그러나 7월 25일 호남 인터넷족보추진회 구성 고문회의에 의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1.07.15 10:19

    어제의 글을 나주나씨 카페에 올려 확인해보고 싶고 그들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왜 우리가 나주나씨에게 밀려 하고자 하는것을 못해야 하는겁니까? 회장단께 묻고 싶습니다..

  • 11.07.16 09:47

    금성나씨 보학연구회를 발족할 예정입니다.
    참여 부탁 드립니다. 연락바랍니다.
    018-576-1734 나 진 드림

  • 11.07.15 11:21

    어제의글은 나주나씨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금성나씨의 시조를 음해하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글을 금성나씨 카페에 올리는것은 합당치가 않습니다.
    나주나씨에게 확인한다는것은 나주나씨 주장을 인정한다는것 밖에 않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시조 문제 때문에 수백년 동안 나주나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올해 부터는 금성나씨 대종회장과 나주나씨 중앙종친회장이 과거의 수백년 묵은 반목을 없애고 화합을하기로 약속을 하여 매년 2차례씩 회장단이 서울과 나주에서 화해 및 친선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시조 문제 가지고 논하는것은 배해 무익입니다. 협조 바람니다.

  • 11.07.15 11:11

    고문회의 전에 궁금할가보아 금성나씨 원로분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1. 우리 금성나씨는 원래 나주나씨 였으나 금성으로 이관하였기 때문에 나주인을 쓰면 혼란이 온나는 것입니다.
    2. 충문공은 시호이며 시조명 앞에 삼한공신 대광 금성부원군을 쓰면 충분하다는 의견입니다.
    3. 묘가 없어도 지묘를 쓰는 성씨가 있으나 우리는 묘가 아니기 때문에 단으로 쓴다는 의견입니다.
    7월 25일 고문회의에서 공론화 시켜 다수결로 결정할 예정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 11.07.15 21:32

    올라온 글 들을 보니 참으로 허탈 합니다!
    금나로 태어나 사는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는데...
    시조에 대한 정확한 고증도 조상의 근원에 대한 정립된 부분에서도 나나에 밀리는것 같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후손으로써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문중 어르신들께서 이번에 잘 정리 하셨습합니다~~

  • 11.07.15 23:22

    우리가 과거에는 나주인이었으나 지금은 금성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증이나 근원정립이 부족하단 말씀 하지 마시고 공부를 좀 하시기 바랍니다.
    간혹 시조의 유래나 이관에 대해 정확한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동보만 볼 줄 알아도 이런 무식한 언행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고문회의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 11.07.20 09:09

    금성나씨 보학연구회에 참여 부탁드립니다.
    연락 주십시요 018- 576-1734 34세손 나 진 드림

  • 11.07.16 12:37

    조상이나 가문에 대해서 폭넓게 아는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다,
    잘모르는 부분이나 의혹이나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잘 설명 해주고
    이해와 납득을 시켜 주셔야지 같은 종인 으로써 할 일이라 사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시고 안 무식 하신것 같으신데요.
    제가 무식한지 무지한지는 모르겠지만 근원정립 부분에 대한 유식한
    해석 부탁 드리겠습니다...

  • 11.07.16 09:47

    나대포님 ! 조상의 근원에 대한 정립된 부분에서 나나에 밀린는것 같다고 하시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보학연구회에 나오셔서 함께 토론하면 좋겠습니다. 지상에서 토론하면 과거로 회귀합니다.
    연락 주십시요 금성나씨보학연구회를 발족할 예정입니다. 018-576-1734 나 진 드림

  • 11.07.19 21:36

    보학연구회 발족 일시와 장소 올려 주시면 참석 하겠습니다!!

  • 11.07.19 16:43

    일전에 올라온 글 사본이 제게 있습니다.. 다시 읽어 봐도 이해가 안되는 귀절이 있고 나나 쪽에서 말한 김종례라는분을 찾기 위해 김해김씨 족보를 면밀하게 찾아 보았지만 찾을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나쪽에서 주장하는걸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반박을 하면 나나 쪽에서도 말을 못할것아닙니까. 고문단 회의 그런것 보다는 전무가를 찾아가 문언을 찾고 고증을 받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1.07.19 21:33

    라성택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작은것 부터 하나 하나 해 나가야 할것입니다~~
    보관하고 계시는 사본 메일로 좀 받아볼수 있을까요?
    다시한번 면밀이 보고싶네요...
    그리고 보학 연구회가 발족 한다니 기대해 보십시다요^^

  • 11.07.20 09:07

    먼저 전화 통화을 하고 싶습니다.
    꼭 전화 주십시요

  • 11.07.20 09:03

    보학연구회 발족 일시
    일시 : 2011년 7월 25일(월) 12시
    장소 : 광주시 금남로 1가 1-6번지 홍능갈비 음식점 (062-222-1421)
    ( 위치 : YMCA건물 뒷골목, 주변주차장 : 무등빌딩 지하주차장 )
    사전에 전화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전화 주십시요
    금성나씨 대종회장 34세손 나 진 올림
    연락처 052-222-1734, 018-576-1734

  • 11.07.21 00:21

    제가 카페 가입하고 게시된 글들을 읽고는 있습니다만, 댓글을 달기는 처음입니다.

    시조비문 안건이라는 이 글에 가장 댓글이 많군요. 그만큼 핫 이슈라는 것이겠지요. ^^*
    글을 올리신 나승록님은 시조비문 안건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시면서, 더하여 나주나씨들이 주장했던 글을 게재하므로써, 논쟁을 촉발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위 나주나씨들이 주장하는 土羅,唐羅의 문제, 그리고 나주나씨 시조 羅富가 총례공의 후손, 즉 錦羅와 羅羅가 同祖인가하는 문제가 쟁점인 듯 합니다. 댓글에서는 시조이신 총례공의 고증문제가 쟁점이 되었군요.

  • 11.07.21 00:35

    시조비문 안건은 7월 25일 고문회의에서 결정한다 하시니 그에 따를 일이지만, 앞서 제기되었던 문제는 대종회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토라,당라의 문제에 대한 담론은 우리 금성나씨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더욱 그러합니다.
    羅富가 총례 공의 후손인가 즉, 兩羅가 同祖인가 하는 문제는 1930년대에 간행된 금성나씨총보의 신뢰성문제와 관계되는 것이겠지만, 나주나씨 측에서 같은 조상이 아니라는데 굳이 우리가 서로 논쟁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댓글에서 논란이 된 총례공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 11.07.21 00:36

    우리 시조이신 총례공은 고려 초 인물로서, 역사서인 고려사와 그보다 먼저 간행된 이제현의 익재난고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려사는 조선 개국후 100여년이 지나 간행된 것입니다만, 익재난고는 고려 공민왕(1363년)때 처음 나온 문집입니다.
    이제현은 고려 충렬왕 때 태어나(1287년) 6대 왕을 섬기며 네번이나 재상에 오른 정치인이자 대학자였습니다.그런 인물이 아무리 양절공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나 함부로 묘지명을 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귀족사회인 고려에서 명문가 였던 나유,나익희같은 분들이 공의 후손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익재난고에서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고, 고려사와 같은 역사서에서도 실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 11.07.21 00:38


    양절공의 묘소가 송림 약사원(지금의 경기도 장단군 지역으로 추정, 휴전선 북측지역인 듯)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니, 제 생각엔 통일이 된다면 꼭 확인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족보에는 구보에 총례공의 묘소가 진도 정승동에 있었지만 잃어버렸다고 전한다(失傳)고 나옵니다. 이 부분도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소를 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생몰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후삼국과 고려조 초기를 살았던 실존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문헌사료와 금석문에 나오는 총례공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 11.07.21 09:34

    흔랑님 !
    좋은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학연구회에 참석하셔서 좀더 진지하게 조상의 업적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연락주십시요 금성나씨 대종회장 34세손 나 진 올림 052-222-1734, 018-576-1734
    7월 25일 보학연구회 발족을 합니다. 참석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1.07.26 20:29

    일가 여러분들의 의견 다 존중합니다, 여러분들이 문헌이라고 칭하는 것이 과연 맏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려 500년사가 지상에 남겨있습니까, 신라 천년의 사적은 많이 남아 있으나 고려 사적은 지하에서 발견되어 고려사를 새로 쓰고있습니다. 또한 고려사 문헌 역시 혼미하여 고려사 열전을 발간 하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고려 500년 역사를 재 적립하고 고려 숭의회에서 대 제전을 실행하고 있는데 우리나씨는 고려 숭의회에서 하는일을 믿지 않고 무엇을 문헌이라 하는지요, 역사는 만들어 지는것입니다, 자손이 훌융하면 조상의 업적은 배가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심사숙고바랍니다!!!!

  • 11.07.26 23:09

    고려사가 2차사료라는 것은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못믿겠다 하시면,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도 삼국시대에 쓰여진 사서는 아닙니다. 신라계 후손 김부식이 신라사 중심으로, 그것도 유교사관으로 쓴 역사서가 삼국사기 아니였던가요? 그래도 김부식 일파가 백제나 고구려의 사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역사를 서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설을 창작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요. 고려사도 정인지 등이 조선중심 사관에서 편찬했다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다른 사료가 없는데 무엇으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고려 사적이 지하에서 발견 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문헌인지 알고 싶습니다.

  • 11.07.26 22:57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역사로 기록될만한 사건이 있었고, 그 역사의 해석이 시대에 따라, 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에 의해 달라졌을 뿐이지요. 불과 백 수십년 전, 우리가 아는 동학혁명은 민란이었습니다.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좋으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왜곡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과거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제작된 많은 족보들이 비판받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 작성자 11.07.28 09:49

    역사가 만들어 진다고 한 뜻에 의건이 다른것 갔습니다. 본인이 말한것은 전체적인 역사를 논한것이 아니고 선대 조상에 데해 말한것 입니다. 나유 회원대장군은 나총례의 10세손이다 옛문헌에 수록된 문건을 의뜸으로 알고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고려숭의회에서 삼한공신 대광금성부원군으로 기록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 합니다, 그시대 정황으로 보아 많은 업적이 있었을 터인데 기록이 부진하여 후손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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