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5/ ~.
지체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는데도, 왜?
세상에는 지체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나, 선천적으로나 사고 등의 재난으로 불행을 당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렵고 힘이 들어 그분들은 삶이 원망, 한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정부나 복지 단체, 카톨릭 등의 종교 단체에서 그분들을 많이 돕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분 들을 못 본 척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으니, 주의 가족, 친척 중에도 그러한 분들이 있었고 있으나... 하나님께옵서 그나마 정부 등을 통해 도우시니, 전 보다는 나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멀쩡하면서도 정신적 나약함이나, 잘못된 삶으로 정신 지체 있는 사람처럼 살아온 면이 많아 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그분들을 돕는데 있어서, 영적 감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육신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좀 더 나아지게 하고, 희망을 주는 데만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잘하는 것이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카톨릭을 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늘 봉사하는 곳에 함께하고, 약한 자편에 서는 것을 봅니다. 때론 힘 있는 자와 함께도 하고, 세상과 섞여 세상에서 위선적으로 행하지만... 문제는 그 곳에 속한 분들이 성경과 반대 되는 악성 교리들을 전하고 있고, 죽음 이후의 심판이나, 영생보다는 이 땅에서의 조금 나은 회복을 도와주는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원수 짓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이끄는 최선봉에 서 있습니다. 육신적인 도움을 그분들에게 주어야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지만, 그 위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도움을 반드시 주어야하고, 그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육신적인 도움으로 그들의 영적인 눈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주님께옵서도 네 명의 사람들이 침상 채로 들고 온 중풍병자에게 그 병 이전에 그 사람의 마음의 죄의 짐부터 풀어주신 것을 봅니다. 그 사람은 병도 고통이지만, 죄의 고통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성경 찾는데 아직 부족하고 또 여건상 성경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룸이 늘 걸립니다 그렇다고 장과 절의 숫자만 적어 놓는다고 다는 아닐 것입니다. 제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프로그램은 장과 절 내용을 다 적는 것이 아니라, 인용한 장과 절의 숫자를 누르면 그 내용이 영어와 한글로 보이게 하는 하이퍼 링크입니다. 일일이 장과 절의 숫자를 다 찾아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을 평가하기에 앞서, 죄 문제를 따져 봐야 합니다. 죄의 대ㆍ소가 문제가 아니라, 양심이나 율법에 비추어 죄인임을 깨닫고, 이미 하나님의 피를 흘려 용서해 놓으신 하나님의 죄사함의 복음을 믿느냐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양심의 예민한 감각으로 죄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죄를 짓고도 세상, 남의 원인 제공을 핑계 대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정의의 사도로 세상을 심판했다는 이도 있습니다. 죄는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 성장해 양심의 자각이 생기면,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행동으로 지은 것만 따지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미움을 품으면 이미 살인으로 보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면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행동뿐만 아니라, 입으로 지은 수많은 죄를 악하다 하십니다. 혀로 지은 죄를 지적하십니다. 더욱이 마음으로 지은 죄, 곧 양심의 감각으로 느낀 죄는 하나님의 피로 씻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자기 부모님이나, 조상님들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죄와 무관하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아담의 자손인 이상 그 누구도 죄와 죄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양심을 떼어내어 버릴 수 없는 한. 더더욱 지옥은 장애를 가지신 분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도 단 한 번이라도 양심으로 지은 죄를 자각한다면 죄사함을 받아야만 지옥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라고 그 죄를 사랑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장애인이라고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면 모를까? 죄사함은 장애와는 무관하고, 요즈음은 미디어의 발달로 절대 핑계 댈 수도 없습니다.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다 가능합니다. 조금만 있고 부탁한다면, 각 장애의 정도나 신체 부위에 관계없이 그 장애 기능을 보완해 주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실제로 행동으로 짓는 것은 더물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정상인보다 더 많은 마음의 죄를 지을 것입니다. 인격적 모독이라든지,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를 주었다든가, 동정을 미끼로 사기를 쳤다든가하는 경우를 당하면, 일반인은 지을 수 없는 마음의 원한으로 저주하며 속의 죄가 마음에서 끓을 것입니다. 저도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은 경험이 있습니다. 일반인과 똑 같은 마음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다만 장애로 불편의 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마음이 정상인보다 순수하다거나, 죄와는 상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 지체아에 대해서는 저는 말할 만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반드시 죄사함을 받아야하고, 다른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지 않으면 지옥 심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장애를 가졌다고 사람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마음의 죄로 인한 죄로서 죄인임을 자각하고 성경을 통해 원래 죄인된 것을 깨닫고 예수스님의 피로서 대속하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보호자가 있고, 생계 때문에 너무 어려운 분들 외에는 성경 공부하기가 더 좋은 면도 있습니다. 누가 집에서 논다고 욕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상인이 그러하면 자기 양심과 또 주의 눈총을 따갑게 느끼곤 합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고,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구하고 다가갈 기회가 많습니다. 더욱 집중력을 갖고 공부할 수 있으며, 인터넷 등으로 얼마든지 큰 믿음이나 영적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정상인보다 더욱 훌륭한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고, 영상매체를 통해서 앉아서도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지옥의 심판에서 결단코 예외 일 수 없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자각하고 통회하여 하나님께 방향을 돌려, 예수스 크흐리스트님의 피의 단 한 번 흘리심으로 인한 구속의 복음을 믿고, 영원한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해방을 받지 않는 한 지옥 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심한 장애가 있어도 본인이 마음만 멀쩡하면 그 필요한 기술은 다 발달되어 있습니다. 아직 시각 장애나 여러 장애가 겹치신 분들은 미흡하지만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하나님을 찾으시면 누구보다 더 가까이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옵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옥의 공포에서 완전 자유로울 때까지 누구나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반드시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스님의 피로 구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장애인이라고 결코 죄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길애 반드시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죄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삶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옵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기 위한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고, 아니더라도 그 어려움을 넘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정상인에 초점을 맞추면 그보다 더 비참할 수 없습니다. 회복된다고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에서 따라가려면 또 다른 수고와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영원한 평안을 마음에 가진 후 현실에서 믿음의 분량만큼 소망을 가지는 것이 최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