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동원, '고인을 기억합니다'
1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한 故최동원 전 한화2군감독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한 조문객이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안내판을 바라보고 있다.
프로야구 한시대를 풍미했던 故최동원 전 한화2군감독은 지난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중 병세가 호전되며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병세가 나빠져 최근에는 입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동원 별세
1984년 야구팬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자리하고 있는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이끈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투수...
아침에 눈을 떠 인터넷 검색을 하다 정말 깜짝 놀랐었네요...
이따른 야구계의 슬픈 소식들이...
추석연휴를 끝내고 나서 들려온 최동원 별세 소식...ㅜ.ㅜ
어릴적 야구를 잘 모르던 시절 최동원 이름만 들어도 정말 가슴이 두근 두근....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투수였었는데
최동원 별세 소식
경남고를 졸업하고 1983년 롯데 입단
1984년 한국시리즈 삼성라이온즈와의 경기 5경기중 3경기에서 완투
혼자 4승을 거두어 롯데 창단이후 첫우승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였죠
나이가 드신 후의 모습보다는 늘 80년대 펄펄날던 무쇠팔 최동원 선수의 모습이 늘 기억속에 남아있었는데
최동원 선수의 투병 생활 이야기도 이제서야 알았다는...ㅠ.ㅠ
최동원 별세 소식에 많은 야구팬들의 마음이 오늘은 참 무겁게 시작을 했을 거 같습니다
‘한국야구의 큰 별’ 최동원 지병으로 별세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오전 5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2007년 최초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최 전 감독은 한 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복귀하기도 했지만
최근 건강이 다시 악화돼 전날밤 일산병원에 긴급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아마추어 시절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으로 두각을 나타낸 최 전 감독은 1983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과 함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혼자서 4승을 책임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롯데에 사상 첫 우승을 선사한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한 최 전 감독은 1,3,5,6,7차전에 모두 나와 4승을 수확하며 시리즈를 결정지었다.
1989년 선수협의회 출범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삼성에 트레이드된 최 전 감독은 1991년 선수 생활을 마쳤다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혼자서 4승을 책임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롯데에 사상 첫 우승을 선사한 바 있다
1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한 故최동원 전 한화2군감독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
13일 출범 최초로 6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한국 프로야구는 최근 장효조 전 삼성 감독에 이어 최 전 감독까지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야구의 큰 별’ 최동원 지병으로 별세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오전 5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2007년 최초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최 전 감독은 한 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복귀하기도 했지만 최근 건강이 다시 악화돼 전날밤 일산병원에 긴급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아마추어 시절 17이닝 연속 노히트 노런으로 두각을 나타낸 최 전 감독은 1983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과 함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혼자서 4승을 책임지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롯데에 사상 첫 우승을 선사한 바 있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한 최 전 감독은 1,3,5,6,7차전에 모두 나와 4승을 수확하며 시리즈를 결정지었다. 훗날 강병철 감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칠 정도로 믿기 어려운 호투였다.
1989년 선수협의회 출범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삼성에 트레이드된 최 전 감독은 1991년 선수 생활을 마쳤다. 최 전 감독은 한화에서 투수 코치 및 2군 감독직을 역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써왔다.
최 전 감독은 지난 7월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운동을 쉬니까 자꾸 살이 찐다. 체중을 줄여야겠다고 하다보니까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며 "서서히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 알맞게 체중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복귀를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씨와 아들 기호씨가 있다.
지난 13일 출범 최초로 6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한국 프로야구는 최근 장효조 전 삼성 감독에 이어 최 전 감독까지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최동원]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별세
장효조 삼성 전 2군감독이 별세한지 일주일사이에 대한민국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한화 전 2군감독도 별세했다. 어제 30년사상 처음으로 6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는 기쁜소식도 있었지만, 장효초, 최동원 전 감독들의 별세로 안타까움이 더한것 같다. 두분다 암투병하다 50대의 젊은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30년 프로야구사상 투타에서 최고의 선수들인데 너무나도 안타깝다.
최동원 전 감독은 지난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레전드매치 경남고와 군산상고 경기에서 경남고 대표로 참석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 팬들을 깜짝 놀래킨적이 있었다.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한때는 호전되어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지난해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요양 및 입원치료를 했었다고 한다.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그는 누군가?
최동원은 한국야구 100년사에서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더불어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작성해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낸 그는 이듬해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솎아내 초고교급 투수 반열에 올랐다.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했던 1981년에는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최우수신인상을 싹쓸이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현역시절 최고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가 주무기였던 그는 특히 타자를 압도하는 승부 근성과 눈부신 연투 능력으로 '무쇠팔'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뒤 이듬해 프로에 진출한 최동원은 1984년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업적을 세웠다.
그 해 27승13패 6세이브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둬 정규리그 MVP로 뽑히며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견인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5경기에 등판해 혼자 4승(1패)을 따내 프로야구에서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7전4선승제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최동원은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하고 나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삼성에서는 젊은 시절 지나치게 혹사당한 탓에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통산 103승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은퇴 이후 한화 코치와 방송 해설가, KBO 경기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나 프로야구 1군감독으로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 현역시절 명선수는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한다(선동렬 감독 빼고)라는 징크스가 있긴 하던데...
최동원 전 감독의 별세, 한국 야구의 큰 별을 잃어버렸지만 최동원이란 이름 석자는 야구팬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씨와 아들 기호씨가 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운동을 쉬니까 자꾸 살이 찐다.
체중을 줄여야겠다고 하다보니까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며 "서서히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 알맞게 체중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복귀를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다.
최동원 전 감독은 지난 7월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989년 선수협의회 출범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삼성에 트레이드된 최동원 전 감독은 1991년 선수 생활을 마쳤다
최동원 전 감독의 별세, 한국 야구의 큰 별을 잃어버렸지만 최동원이란 이름 석자는 야구팬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